한글 산성일기 4부-홍타시<동지달 25일까지니라! 산셩으로 날을 막을소냐?> 병자호란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있던 궁녀로 추정되는 사람이 궁중 언문체 한글로 남긴 

<산성일기>를 틈틈이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나만갑 병자록의 필사본으로 추정되는데요. 작성된 시기는 미상이나 대개 효종 때로 추정하더군요.


영인본 출처 : 국립중앙도서관


1부-노라치란 오랑캐로 뇽호쟝군을 하이다

2부-뎡묘 호란 강홍닙이 아국을 틸새

3부-뇽골대 황망이 다라나니 셔울이 진동하다


*중세 한글 표기로 구현이 어려운 부분은 임의로 변경하였습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한글이라 딱히 번역할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오역이나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자료를 소개해 주신 클라우디우스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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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타시 역관다려 니르대

네 나라히 동지달 이십오일 젼으로 대신 왕자를 보내디 아니면 내 당당이 동으로 크게 나가리라 

하고 그 답셔의 하야시대

네 나라히 산셩을 만히 싸거니와 내 당당이 대노로 조차갈 거시니 산셩으로 날을 막을소냐

네 나라히 강화를 밋거니와 내 팔도를 즛 바를 적 죠고만 셤으로 나라 노르슬 할소냐

네 나라히 의논 잡으 니 다 션배니 가히 붓을 들러 날을 막을소냐 하엿더라

묘당이 그 편지를 보고 대신을 보내고져 하대 쳑화하는 의논이 바야흐로 듕하기의 보내디 못하다가

오란 후의 보내대 밋디 못하니라

김뉴 김자뎜이 의논하야 의쥬를 백마산셩의 옴기고 황쥬를 젼광샨듕의 옴기고 평산을 댱슈산셩의 옴기니

각각 큰길해셔 삼십니나 하고 먼대는 한이틀 길이라 냥셔 큰길히 사람 없슨 따히 되고

김자뎜이 도원슈이 되여 니라대

도적이 반드시 오디아니리라 

하고 사람이 혹 도적이 오리라 하리 이시면 대로하고 셩 직흴 군사를 하나토 더 뎡티 아니 못하코

의쥬 져편 뇽골산 봉화를 

셔울가디 가면 소동하리라 

하여 도원슈이 잇는 젼방산셩까디 오게 뎡하얏더니

납월(臘月) 초뉵일 이후의 년하야 봉화 두 자로 날혀대 자뎜이 니르대

반드시 사신을 맛난 블이라 엇디 도적이 올 이시리오

초구일의 비로소 군관 신용을 의쥬 보내여 적병을 탐지할새

신용이 슌안 니라니 적병이 임의 편만(遍滿)하얏는디라 신용이 다라와 보하니 

자졈이 대로하여 신용을 버히려하더니 다른 군관이 또 하니 비로소 장계 하니라



홍타시 역관더러 이르되

<네 나라가 동짓달 이십오일 전으로 대신과 왕자를 보내지 아니하면 내 당당히 동쪽으로 크게 나가리라!>

하고 그 답서로 하였으되

<네 나라가 산성을 많이 쌓거니와 내 당당히 대로로 좇아갈 것이니 산성으로 나를 막을쏘냐?

 네 나라가 강화를 믿거니와 내 팔도를 짓 바를 적에 조그만 섬으로 나라 노릇을 할 쏘냐?

 네 나라의 의논 잡는 이 다 선비니 가히 붓을 들어 나를 막을쏘냐?>

하였더라

묘당이 그 편지를 보고 대신을 보내고자 하되 척화하는 의논이 바야흐로 중하기에 보내지 못하다가

오랜 후에 보내되 믿지 못하니라

김류와 김자점이 의논하여 의주를 백마산성으로 옮기고 황주를 정방산중으로 옮기고 평산을 장수산성으로 옮기니 

각각 큰길에서 삼십리나 하고 먼데는 하루 이틀 길이라 양서(황해도+평안도) 큰길이 사람 없는 땅이 되고

김자점이 도원수가 되어 이르되

<도적이 반드시 오지 아니하리라!>

하고 사람이 혹 <도적이 오리라 하리> 있으면 대노하고 성 지킬 군사를 하나도 정하지 아니 못하고 

의주 저편 용골산 봉화를 

<서울까지 가면 소동하리라!>

하여 도원수가 있는 정방산성까지 오게 정하였더니

섣달(12월) 초육일 이후에 연기를 피워 봉화 두 자루 날렸으되 자점이 이르되

<반드시 사신을 만난 불이라! 어찌 도적이 올리 있으리오?>

초구일에 비로소 군관 신용을 의주 보내어 적병을 탐지할 새 

신용이 순안 이르니 적병이 이미 가득하였는지라 신용이 달아나 보고하니 

자점이 대노하여 신용을 베려하더니 다른 군관이 또 하니 비로소 장계 하니라


병자호란의 서막 14부-11월 25일 Time is over (연재 종료)

 


-5부에서 계속-


한글 산성일기 3부-뇽골대 황망이 다라나니 셔울이 진동하다 병자호란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있던 궁녀로 추정되는 사람이 궁중 언문체 한글로 남긴 

<산성일기>를 틈틈이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나만갑 병자록의 필사본으로 추정되는데요. 작성된 시기는 미상이나 대개 효종 때로 추정하더군요.


영인본 출처 : 국립중앙도서관


1부-노라치란 오랑캐로 뇽호쟝군을 하이다

2부-뎡묘 호란 강홍닙이 아국을 틸새


*중세 한글 표기로 구현이 어려운 부분은 임의로 변경하였습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한글이라 딱히 번역할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오역이나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자료를 소개해 주신 클라우디우스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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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의 노적이 븍경을 침노하니 황뎨 원슝환이 잘 막즈라디 못한다 하샤 잡아다가 죽이시다

아국이 노적으로 더브러 형뎨 되고 츈츄의 사신을 보내더니

병자 츈의 무신 니확과 쳠지 나덕헌이 사신으로 심양의 가니

홍타시 황뎨로라 칭하고 국호를 대쳥이라 하며 니확 등을 겁칙하야 반녈의 참예하라 하니

확 등이 죽기로써 듯디 아니하니 모든 오랑캐 확 등을 치며 끄으니 의관이 쯰여지대 죵시 굴티 아니하니라

확 등이 홍타시의 답셔를 맛다오다가 가마니 셩 딕흰 오랑캐게 두고 오니

당초의 그 편지를 맛다 하야 됴졍이 논죄하니라

초년의 뇽골대 마부대 두 쟝슈이 인녈왕후 국상의 됴졔하라 나오니 대개 아국을 탐지하랴 하미라

됴뎡이 바야하로 화친을 배쳑하매 노사 대졉하기를 박히 하고 피국 왕재 쥬샹긔 편지하야시대 답디 아니하고

일즉 인묵대비 국샹의 오랑캐 와셔 됴제할 적 뎐샹의셔 대행녜 하기를 허하엿더니

이제 당하여는 금쳔교의 댱을 치고 치졔하더니

바람이 부러 댱이 열니매 금군들이 이시믈 뇽골대 등이 크게 의려하며 

댱녕 홍익한과 관학이 샹소하야 노사를 버혀디라 쳥하니 뇽골대 등이 듯고 황망이 다라나니

경셩이 진동하고 묘당이 황겁하야 재신을 따라 보내여 머믈기를 쳥하대 듯디 아니하고 도라가니라

샹이 즉시 팔방의 하됴하샤 화친을 파하는 뜻을 니르시고 날마다 드는 샹쇠 오랑캐 칠 말이라

부평 안산의 돌히 올마 노히고 경샹 평안도의 올히 싸하고 대구의 구름이 진치고 평파의 개고리 싸호고

녜안해 강믈이 끈허지고 셔울이 따히 븕고 셩듕을 하르 내예 스믈 닐곱 곳 별학을 치고

큰믈이 급히 드러와 동대문 길히 막히고 무지게 해를 께엇더라

녕의졍 김뉴 등이 묘당의 이시대 화친은 임의 미들거시 업고 싸호기와 딕희기 다 할 일 업더라

최명길이 샹소하야 화사 보내기를 쳥하대 

교리 오공과 니조졍낭 윤공이 샹소하야 명길을 버혀디라 하니 됴졍이 이리토 못하고 져리토 못하더니

김뉴와 명길이 의논하여 역관을 심양의 보내여 노적의 뜻을 탐지할새



경오년(1630년)에 노적(후금)이 북경을 침공하니 황제가 원숭환이 잘 막지 못한다 하시고 잡아다가 죽이시다.

아국이 노적과 더불어 형제 되고 춘추로 사신을 보내더니 병자년(1636년) 봄에 무신 이확과 첨지 나덕헌이 사신으로 심양에 가니

홍타시(홍타이지)가 <황제로다!> 칭하고 국호를 <대청>이라 하며 이확 등을 겁박하여 반열에 참여하라 하니

이확 등이 죽기로써 듣지 아니하니 모든 오랑캐 이확 등을 치며 끄니 의관이 찢어지되 끝내 굴복하지 아니하니라.

이확 등이 홍타시의 답서를 맡아오다가 가만히 성 지킨 오랑캐에게 두고 오니

당초에 그 편지를 맡았다 하여 조정이 논죄하니라!

연초에 뇽골대(잉굴다이)와 마부대(마푸타) 두 장수가 인열왕후 국상에 조제하러 나오니 대개 아국을 탐지하라 함이니라!

조정이 바야흐로 화친을 배척하매 노사(오랑캐 사신) 대접하기를 박하게 하고

저나라 왕자가 주상에게 편지하였으되 답하지 아니하고 일찍 인목대비 국상에 오랑캐 와서

조제할 적 전상에서 대행례 하기를 허락하였더니 이제 당하여는 금천교에 장(帳/장막)을 치고 치제하더니

바람이 불어 장이 열리니 금군들이 있음을 뇽골대 등이 크게 의심하여

장령 홍익한과 관학이 상소하여 노사를 베어라 청하니 뇽골대 등이 듣고 황망히 달아나니

경성이 진동하고 묘당이 황겁하여 재신을 따라 보내여 머물기를 청하였는데 듣지 아니하고 돌아가니라!

상이 즉시 팔방에 하조하시어 화친을 파하는 뜻을 이르시고 날마다 드는 오랑캐 칠 말이라!

부평과 안산의 돌이 옮겨 놓이고 경상과 평안도의 오리 싸우고 대구의 구름이 진치고 청파의 개구리 싸우고

예안의 강물이 끊어지고 서울이 땅이 붉고 성중을 하루 내에 스물 일곱 곳 벼락을 치고

큰 물이 급히 들어와 동대문 길이 막히고 무지개 해를 꿰었더라!

영의졍 김뉴(김류) 등이 묘당에 있으되 화친은 이미 믿을 것이 없고 싸우기와 지키기 다 할 일 없더라!최명길이 상소하여 화친 사신 보내기를 청하니

교리 오공(오달제)과 이조정랑 윤공(윤집)이 상소하여 명길을 베어라 하니 조정이 이리도 못하고 저리도 못하더니

김뉴와 명길이 의논하여 역관을 심양에 보내여 노적의 뜻을 탐지할 때


-4부에서 계속-


신원사 나이만 구출룩칸/증손자 베테킨 열전 테무진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몇몇 인물들에 대한 열전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테무진 당시 남부 나이만 군주 타양칸의 아들로 서요 황제가 된 구출룩칸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인물 열전>

청사고

왕올당, 왕고, 다이샨, 태조 누르하치, 추옝, 슈르하치, 야르하치 

피옹돈, 호호리, 어이두, 안퍙구후르한푸차 군다이

잉굴다이어르더니 밬시양구리보르진특금마심, 캉카라도르곤도도아지거푸헝

하르졸(해란주)호오거망굴타이아민고이마혼/와산/제극탑합/공아지르가랑두두니칸

송사

한세충이치, 양재흥, 동관[방랍], 채경, 부언경, 곽약사, 반미, 이사사고구송강장방창, 황잠선묘부(유정언)진회

금사

명사

두송 이성량 모문룡

송서

만주팔기씨족통보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96%B0%E5%85%83%E5%8F%B2/%E5%8D%B7118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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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祖元年,親征不月魯克。

不月魯克方獵於兀魯黑塔山,太祖兵奄至,殺之。

古出魯克與脫黑脫阿奔也兒的石河。

三年,太祖以衛拉特降酋忽都哈別乞爲嚮導,至也兒的石河,陣斬脫黑脫阿,古出魯克復奔西遼。

是時,西遼古兒罕爲直魯古。

古出魯克至西遼,將謁古兒罕,慮有變,令從者僞爲己入謁,自立於門外俟之。

適古兒罕之女格兒八速自外至,見其狀貌,偉之。

後詢得其實,乃以女晃忽妻古出魯克。

晃忽年十五,性慧黠。

以古兒罕喜諛,使古出魯克迎合其意,古兒罕遂以國事任之。

古出魯克聞其父潰卒多藏匿於舊地,欲糾合部衆,以奪古兒罕之國。

乃言於古兒罕曰:

「蒙古方有事於乞都,不暇西顧。

  若我往葉密裏、哈押立克、別失八里,招集潰卒,衆必響應,可藉其力以衛本國。」

古兒罕從之。

古出魯克既東,乃蠻舊衆果聞命附從。

又遇貨勒自彌使者,約東西夾攻古兒罕。

西軍勝,則拓地至阿力麻裏、和闐、喀什噶爾,東軍勝,則拓地至費那克特河。

議定,古出魯克即至鄂思懇,奪西遼之庫藏,進攻八剌沙袞。

古兒罕自出御之,古出魯克敗退。

而貨勒自彌之兵已至塔剌思,擒古兒罕之將塔尼古。

八剌沙袞城守鄂思懇潰卒以象毀門而入,大掠三日。

古出魯克乘機再進,古兒罕戰敗,生獲之。

奉古兒罕爲太上皇,篡其國而自立。

越二年,古兒罕以憂卒。

古出魯克既篡立,又納西遼前宰相之女爲妃,貌甚美,與正妃晃忽同信佛教。

契丹本舉國事佛,及耶律大石西遷,其地盛行回回教。

大石聽其信仰,不之禁,故上下相安。

古出魯克用其妃之言,定佛法爲國教。

諭其民奉佛,不行奉謨罕默德。

自至和闐,招集天方教士辯論教理。

有教士曰阿拉哀丁,與古出魯克往復駁難,古出魯克慚怒,置而縛之,釘其手足於門。

又賦斂苛重,每一鄉長家置一卒監之。

於是民心瓦解,惟望蒙古兵速至。

太祖亦聞之,使哲別伐古出魯克。

哲別入西遼境,諭民各奉舊教勿更易,各鄉長皆殺監卒應之。

古出魯克在喀什噶爾,兵未至先遁。

哲別追及於撒裏黑庫爾,古出魯克匿於葦拉特尼之山谷。

哲別遇牧羊人詢知古出魯克蹤跡,獲而殺之。

古出魯克自太祖三年奔西遼,六年篡直魯古,十四年爲哲別所殺,距太陽罕之死已十有一年。

古出魯克有子敞溫走死。

敞溫子抄思幼,從母康里氏間行歸太祖,給事中宮。

年二十五,出從征伐。

破代、石二州,不避失石。

太宗四年,從皇帝拖雷敗金師於鈞州之三峯山。

論功,賜湯陰黃招撫等百十有七戶,不受;

復賜俘口五十、宅一區,黃金鞶帶、酒壺、杯、盂各一,再辭,不許,乃受之。

擢副萬戶,與忽都虎留撫河南,尋移隨州,九年,籤西京、大名、濱、棣、杯孟、真定、河間、邢、洺、磁、威、新、衛、

保等路軍,得四千有六十餘人,以抄思統之。

移鎮潁州。

卒。

子別的因,襁褓時鞠於祖母康里氏,留和林。

稍長,給事乞兒吉思皇后。

父卒,母張氏迎別的因南來。

張賢明,嘗從容訓之曰:

「人之所以成立者,知恐懼、知羞恥知艱難,否則禽獸而已。」

憲宗四年,以別的因襲父職副萬戶,鎮隨、潁二州。

別的因身長七尺,多力,尤精騎射,士卒畏服之。

中統四年,入覲,賜金符爲壽、潁二州屯田達魯花赤。

時州境有虎食人,別的因縛羊置檻中,誘虎殺之。

至元十三年,授信陽府達魯花赤。

信陽亦多虎,別的因加馬踢鞍上出獵,命左右燔山,虎出走,別的因擲以踢,虎搏踢,據地而吼,還馬射之,立斃。

十六年,進常德路副達魯花赤。

會同知李明秀作亂,別的因單騎往諭之降。

事聞朝廷,誅明秀。

三十一年,進池州路達魯花赤。

大德十一年,遷臺州路。

卒,年八十一。

子三人:

不花,僉嶺南廣西道肅政廉訪司事;文圭,有隱德,贈祕書著作郎;延壽,湯陰縣達魯花赤。

孫可恭,曾孫與權,皆進士。

史臣曰:

「王罕猜忌失衆,賴烈祖父子亡而復存,乃聽讒子之言,辜恩負德。

  太陽罕懦耐我謀,橫挑強敵。

  考其禍敗之由,皆不量智力,輕於一舉,身隕國滅,同趨覆轍,愚莫甚焉。

  古出魯克乘機篡奪,民心未附,乃強其所不從,而淫刑以逼之,淵魚叢爵,徒爲吊伐之資而已。」

태조(太祖) 원년(元年)에, 부월로극(不月魯克)을 친정(親征)하였다.

부월로극(不月魯克)이 바야흐로 올로흑탑산(兀魯黑塔山)에서 엽(獵)하였는데, 태조(太祖)의 병(兵)이 엄지(奄至)하여, 

살지(殺之)하였다.

고출로극(古出魯克)이 탈흑탈아(脫黑脫阿)와 함께 야아적석하(也兒的石河)로 분(奔)하였다.

[칭기스칸] 3년에, 태조(太祖))가 위랍특(衛拉特)의 항(降)함으로써 추(酋) 홀도합별걸(忽都哈別乞)을 향도(嚮導)로 삼아, 

야아적석하(也兒的石河)에 지(至)하였고, 탈흑탈아(脫黑脫阿)를 진참(陣斬)하였으며, 고출로극(古出魯克)은 서요(西遼)로 

복분(復奔)하였다.

이때에, 서요(西遼) 고아한(古兒罕)은 야율직로고(直魯古)였다.

고출로극(古出魯克)이 서요(西遼)에 지(至)하자, 장차(將) 고아한(古兒罕)을 알(謁)하고자 하였는데, 유변(有變)을 려(慮)하여,

종자(從者)로 하여금 거짓으로 위기(爲己/자신을 가장함)하여 입알(入謁)하였고, 문외(門外)에서 자립(自立)하여 

사지(俟之)하였다.

때마침 고아한(古兒罕)의 녀(女) 격아팔속(格兒八速)이 외(外)로부터 지(至)하였는데, 그 상모(狀貌)를 견(見)하더니, 

위지(偉之/훌륭하게 여김)하였다.

후(後)에 순(詢/물음)하여 그 실(實)을 득(得)하니, 이에 녀(女) 황홀(晃忽)로써 고출로극(古出魯克)에게 처(妻)로 삼았다.

황홀(晃忽)의 연(年)은 15였는데, 성(性)이 혜힐(慧黠/총명하고 교활함)하였다.

고아한(古兒罕)에게 희유(喜諛/아첨하여 기쁘게 함)함으로써, 고출로극(古出魯克)으로 하여금 그 의(意)를 영합(迎合)하게 

하였으며, 고아한(古兒罕)이 마침내 국사(國事)로써 임지(任之)하였다.

고출로극(古出魯克)이 그 부(父)의 궤졸(潰卒)이 구지(舊地)에 많이 장닉(藏匿)하였다는 것을 문(聞)하더니, 부중(部衆)을 

규합(糾合)하고자 하였고, 이로써 고아한(古兒罕)의 국(國)을 탈(奪)하고자 하였다.

이에 고아한(古兒罕)에게 언(言)하여 말하길

「몽고(蒙古)가 바야흐로 걸도(乞都)에 유사(有事)하여, 서고(西顧)할 겨를이 없다.

  만약(若) 내가 엽밀리(葉密裏), 합압립극(哈押立克), 별실팔리(別失八里)에 왕(往)하여, 궤졸(潰卒)을 초집(招集)한다면,

  중(衆)이 필히(必) 향응(響應/호응)할 것이니, 가히(可) 그 역(力)을 차(藉/빌림)하여 이로써 본국(本國)을 위(衛)하자!」

고아한(古兒罕)이 종지(從之)하였다.

고출로극(古出魯克)이 이윽고 동진(東)하였는데, 내만(乃蠻)의 구중(舊衆)이 과연(果) 문명(聞命)하고 부종(附從)하였다.

또 화륵자미(貨勒自彌)의 사자(使者)와 우(遇)하여, 고아한(古兒罕)을 동서(東西)로 협공(夾攻)하자 약(約)하였다.

서군(西軍)이 승(勝)하면, 즉(則) 척지(拓地)하여 아력마리(阿力麻裏), 화전(和闐), 객십갈이(喀什噶爾)에 지(至)하고,

동군(東軍)이 승(勝)하면, 즉(則) 척지(拓地)하여 비나극특하(費那克特河)에 지(至)하기로 하였다.

의정(議定)하자, 고출로극(古出魯克)이 즉시(即) 악사간(鄂思懇)에 지(至)하였고, 서요(西遼)의 

고장(庫藏/창고에 저장해 놓은 것)을 탈(奪)하였으며, 진(進)하여 팔랄사곤(八剌沙袞)을 공(攻)하였다.

고아한(古兒罕)이 자출(自出)하여 어지(御之)하였는데, 고출로극(古出魯克)이 패퇴(敗退)하였다.

그러나 화륵자미(貨勒自彌)의 병(兵)이 이미(已) 탑랄사(塔剌思)에 지(至)하여, 고아한(古兒罕)의 장(將) 탑니고(塔尼古)를 

금(擒)하였다.

팔랄사곤(八剌沙袞)의 성수(城守) 악사간(鄂思懇)의 궤졸(潰卒)이 상(象)으로써 훼문(毀門)하고 입(入)하여, 

3일(日)을 대략(大掠)하였다.

고출로극(古出魯克)이 승기(乘機)하여 재진(再進)하였고, 고아한(古兒罕)이 전패(戰敗)하여, 생획지(生獲之)하였다.

고아한(古兒罕)을 봉(奉)하여 태상황(太上皇)으로 삼고, 그 국(國)을 찬(篡)하여 자립(自立)하였다.

2년(年)을 월(越)하자, 고아한(古兒罕)이 우(憂)로써 졸(卒)하였다.

고출로극(古出魯克)이 이윽고 찬립(篡立)하자, 또 서요(西遼)의 전(前) 재상(宰相)의 녀(女)를 납(納)하여 비(妃)로 삼았는데,

모(貌)가 심미(甚美)하였는데, 정비(正妃) 황홀(晃忽)과 더불어 불교(佛教)를 동신(同信)하였다.

글단(契丹)은 본래(本) 거국(舉國)하여 사불(事佛)하였는데, 야율대석(耶律大石)이 서천(西遷)함에 이르러, 그 지(地)는 

회회교(回回教/이슬람)가 성행(盛行)하였다.

야율대석(大石聽)이 그것을 신앙(信仰)하여, 금(禁)하지 못하였고, 이런 연고(故)로 상하(上下)가 상안(相安)하였다.

고출로극(古出魯克)이 그 비(妃)의 신(言)을 용(用)하여, 불법(佛法)을 정(定)하여 국교(國教)로 삼았다.

그 민(民)에게 봉불(奉佛)하라 유(諭)하였고, 모한묵덕(謨罕默德/무함마드/마호메트)을 행봉(行奉)하지 못하게 하였다.

스스로 화전(和闐)에 지(至)하여, 천방교사(天方教士)를 초집(招集)하여 교리(教理)를 변론(辯論/논쟁)하였다.

아랍애정(阿拉哀丁)이라 말하는 교사(教士)가 있었는데, 고출로극(古出魯克)과 더불어 왕복(往復)하여 박난(駁難/반박)하였고,

고출로극(古出魯克)이 참노(慚怒/부끄러워 성을 냄)하였고, 치(置)하여 박지(縛之)하였으며, 그 수족(手足)을 문(門)에 

정(釘)하였다.

또 부렴(賦斂/조세)이 가중(苛重/가혹하고 과중함)하였고, 매(每) 일향(一鄉)의 장가(長家)에 일졸(一卒)를 치(置)하여 

감지(監之)하였다.

이에 민심(民心)이 와해(瓦解)되었고, 오직 몽고병(蒙古兵)의 속지(速至)를 망(望)하였다.

태조(太祖)가 역시(亦) 문지(聞之)하였고, 철별(哲別)로 하여금 고출로극(古出魯克)을 벌(伐)하게 하였다.

철별(哲別)이 서요(西遼)의 경(境)에 입(入)하여, 유민(諭民)하고 각각(各) 구교(舊教)를 봉(奉)하고 물경역(勿更易)하니,

각(各)  향장(鄉長)이 모두 감졸(監卒)을 살(殺)하고 응지(應之)하였다.

고출로극(古出魯克)이 객십갈이(喀什噶爾)에 재(在)하다, 병(兵)이 미지(未至)하였는데도 선둔(先遁)하였다.

철별(哲別)이 추(追)하여 살리흑고이(撒裏黑庫爾)에 급(及)하였는데, 고출로극(古出魯克)이 위랍특니(葦拉特尼)의 

산곡(山谷)에 닉(匿)하였다.

철별(哲別)이 목양인(牧羊人)을 우(遇)하여 고출로극(古出魯克)의 종적(蹤跡)을 순지(詢知)하였고, 

획(獲)하여 살지(殺之)하였다.

고출로극(古出魯克)은 태조(太祖) 3년으로부터 서요(西遼)로 분(奔)하였다가, 6년에 야율직로고(直魯古)를 찬(篡)하였고, 

14년에 철별(哲別)에게 소살(所殺)하였는데, 태양한(太陽罕)의 사(死)로부터 벌써 11년이었다.

고출로극(古出魯克)은 자(子) 창온(敞溫)이 있었는데 주사(走死)하였다.

창온(敞溫)의 자(子) 초사(抄思)는 유(幼)하였는데, 모(母) 강리씨(康里氏)를 종(從)하여 간행(間行/사잇길로 감)하여 

태조(太祖)에게 귀(歸)하였고, 중궁(中宮)에 급사(給事)하였다.

연(年) 25에, 출종(出從)하여 정벌(征伐)하였다.

대주(代)와 석주(石) 2주(州)를 파(破)하였고, 시석(失石/矢의 오기)을 불피(不避)하였다.

태종(太宗) 4년에, 황제(皇帝) 타뢰(拖雷)를 종(從)하여 금사(金師)를 균주(鈞州)의 삼봉산(三峯山)에서 패(敗)하였다.

논공(論功)하여, 탕음황초무(湯陰黃招撫) 등(等) 117호(戶)를 사(賜)하였는데, 불수(不受)하였다.

부구(俘口) 50, 택(宅) 1구(區), 황금(黃金) 반대(鞶帶/가죽띠), 주호(酒壺/술병), 배(杯/술잔), 우(盂/사발) 각(各) 1을 

복사(復賜)하였는데, 재사(再辭)하자, 불허(不許)하였고, 이에 수지(受之)하였다.

부만호(副萬戶)에 탁(擢)하여, 홀도호(忽都虎)와 함께 하남(河南)을 유무(留撫)하였으며, 수주(隨州)로 심이(尋移)하였다.

[태종] 9년에, 서경(西京), 대명(大名), 빈주(濱), 체주(棣), 배맹(杯孟), 진정부(真定), 하간주(河間), 형주(邢), 명주(洺), 

자주(磁), 위주(威), 신주(新), 위주(衛), 보주(保) 등(等)의 로군(路軍)을 첨(籤)하여, 4060여인을 득(得)하였고, 

초사(抄思)로써 통지(統之)하였다.

영주(潁州)로 이진(移鎮)하였는데, 졸(卒)하였다.

자(子) 별적인(別的因)은, 강보시(襁褓時)에 조모(祖母) 강리씨(康里氏)에게 궁(鞠/기름)하였고, 화림(和林)에 유(留)하였다.

초장(稍長)하자, 걸아길사(乞兒吉思) 황후(皇后)에게 급사(給事)하였다.

부(父)가 졸(卒)하자, 모(母) 장씨(張氏)가 별적인(別的因)을 영(迎)하여 남래(南來)하였다.

장(張)이 현명(賢明)하였는데, 일찍이 종용(從容)하게 훈지(訓之)하여 말하길

「사람으로 성립(成立)하는 자의 소이(所以)는, 공구(恐懼)를 지(知)함이요, 수치(羞恥)를 지(知)함이요,

  간난(艱難)을 지(知)함이니, 부(否)한다면 즉(則) 금수(禽獸)일뿐이니라!」

헌종(憲宗) 4년에, 별적인(別的因)으로써 부직(父職)을 습(襲)하여 부만호(副萬戶)로 삼았고, 수주(隨)와 영주(潁) 2주(州)를 

진(鎮)하게 하였다.

별적인(別的因)의 신장(身長)은 칠척(七尺)이었고, 다력(多力)하였으며, 또한 기사(騎射)에 정(精)하니, 사졸(士卒)이 

외복지(畏服之)하였다.

중통(中統) 4년에, 일근(入覲)하였는데, 금부(金符)를 사(賜)하고 수주(壽)와 영주(潁) 2주(州)의 둔전(屯田) 

달로화적(達魯花赤)으로 삼았다.

이때 주경(州境)에 식인(食人)하는 호(虎)가 있었는데, 별적인(別的因)이 박양(縛羊)하여 함중(檻中)에 치(置)하여, 

유호(誘虎)하여 살지(殺之)하였다.

지원(至元) 13년에, 신양부(信陽府) 달로화적(達魯花赤)에 수(授)하였다.

신양(信陽) 역시(亦) 다호(多虎)하였는데, 별적인(別的因)이 마(馬)의 안상(鞍上/안장 위)에 척(踢)을 가(加)하고 

출렵(出獵)하였고, 명(命)하여 좌우(左右)는 산(山)을 번(燔/불사름)하게 하였는데, 호(虎)가 출주(出走)하자, 별적인(別的因)이

척(踢)으로써 척(擲/던짐)하니, 호(虎)가 박척(搏踢)하였는데, 거지(據地)하며 후(吼/울부짖음)하였고, 환마(還馬)하여 

사지(射之)하였고, 입폐(立斃)하였다.

[지원] 16년에, 상덕로(常德路) 부달로화적(副達魯花赤)에 진(進)하였다.

때마침 동지(同知) 이명수(李明秀)가 작난(作亂)하였는데, 별적인(別的因)이 단기(單騎)로 왕유지(往諭之)하여 항(降)하였다.

조정(朝廷)에서 사문(事聞)하자, 이명수(明秀)를 주(誅)하였다.

[지원] 31년에, 지주로(池州路) 달로화적(達魯花赤)에 진(進)하였다.

대덕(大德) 11년에, 대주로(臺州路)로 천(遷)하였는데, 졸(卒)하였고, 연(年) 81이었다.

자(子)는 3인인데, 불화(不花)는, 첨영남광서도(僉嶺南廣西道) 숙정렴방사사(肅政廉訪司事)다.

문규(文圭)는, 은덕(隱德)이 있어, 비서저작랑(祕書著作郎)을 증(贈)하였다.

연수(延壽)는, 탕음현(湯陰縣) 달로화적(達魯花赤)이다.

손(孫) 가공(可恭)은, 증손(曾孫) 권(權)과 더불어 모두 진사(進士)였다.

사신(史臣)은 말한다!

「왕한(王罕)이 시기(猜忌)하여 실중(失衆)하였고, 열조(烈祖)의 부자(父子)에게 뇌(賴)하여 망(亡)했다가 

  복존(復存)하였는데도, 이에 참소(讒)하는 자(子)의 언(言)을 청(聽)하여, 고은(辜恩/은혜를 저버림)하고 

  부덕(負德/덕을 등짐)하였다.

  태양한(太陽罕)은 나내(懦耐)하였는데도 아모(我謀/아집을 부려 도모함)하여, 강적(強敵)을 횡도(橫挑/멋대로 공격함)하였다.

  그 화패(禍敗)의 유(由)를 고(考)하면, 모두 지력(智力)을 불량(不量)한 것인데, 일거(一舉)에 경(輕)하여, 

  신운(身隕/목숨을 잃음)하고 국멸(國滅)하였으니, 복철(覆轍/엎어진 수레바퀴/전철)을 동촉(同趨)하였으니, 

  우(愚)가 심(甚)하지 아니하던가?

  고출로극(古出魯克)은 승기(乘機)하여 찬탈(篡奪)하였는데, 민심(民心)이 미부(未附)하였고, 이에 그 소(所)의 불종(不從)을 

  강(強)하였으며, 음형(淫刑/부당한 형벌)하여 이로써 핍지(逼之)하니, 연어총작(淵魚叢爵)이라, 

  도(徒)가 적벌(吊伐)의 자(資)로 삼았을 뿐이었노라!


*연어총작(淵魚叢爵)
 : 수달이 고기를 깊은 못으로 몰고, 새매가 참새를 숲 속으로 쫓는다는 말로,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적들 편으로 몰아준다는 뜻이다.




태조 원년 1206년에, 부이룩(부월로극)을 친히 정벌하였다.
부이룩이 바야흐로 울룩탁산(올로흑탑산)에서 사냥하였는데 태조의 군사가 기습하여 살해하였다.
구출룩(고출로극)이 톡타아(탈흑탈아)와 함께 에르디시강(야아적석하)으로 달아났다.
태조 3년 1208년에 태조가 오이라트(위랍특)가 항복함으로써 추장 쿠투카 베키(홀도합 별걸)을 향도로 삼아 에르디시강에 
이르렀고 톡타아를 진중에서 참하였으며 구출룩은 다시 서요로 달아났다.
이 때에 서요 구르칸(고아한)은 야율직로고였다.
구출룩이 서요에 이르자 장차 구르칸을 알현하고자 하였는데 변이 있을까 염려하여 종자로 하여금 거짓으로 자신을 가장하여 
알현하게 하였고 스스로 문밖에 서서 기다렸다.
때마침 구르칸의 부인 구르베수(격아팔속)가 밖으로부터 이르렀는데 그 용모를 보더니 훌륭하다 여겼다.
후에 물어 그 사실을 얻게 되니 이에 딸 쿵쿠(황홀)를 구출룩에게 처로 주었다.
쿵쿠는 나이가 15세였는데 성품이 총명하고 교활하였다.
구르칸에게 아첨하여 기쁘게 함으로써 구출룩으로 하여금 그 뜻을 부합하게 하였으며 구르칸에게 마침내 국사를 맡기게 하였다.
구출룩이 그 부친의 패잔병이 옛 땅에 많이 숨어 있다는 것을 듣더니 부족 무리를 규합하고자 하였고,이로써 구르칸의 나라를 
빼앗고자 하였다.
이에 구르칸에게 말하길
「몽고가 바야흐로 키타이(걸도/중국)에 일이 있어 서쪽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만약 내가 에밀(엽밀리), 카얄릭(합압립극), 비시발릭(별실팔리)에 가서 흩어진 병졸을 모집한다면 무리가 필히 호응할 
  것이니 가히 그 힘을 빌려 이로써 본국을 지키자!」
구르칸이 따랐다.
구출룩이 이윽고 동진하였는데 나이만(내만)의 옛 무리들이 과연 명을 듣더니 복종하였다.
또 호라즘(화륵자미)의 사자와 만나 구르칸을 동서로 협공하자 약조하였다.
서군(호라즘)이 승리하면 곧 땅을 나누어 알말릭(아력마리), 호탄(화전), 카쉬가르(객십갈이)에 이르고, 동군(나이만)이 
승리하면 곧 땅을 나누어 파나카트강(비나극특하)에 이르기로 하였다.
의논이 정해지자 구출룩이 즉시 악사간에 이르렀고 서요의 창고에 저장해 놓은 것을 탈취하였으며 진군하여 
발라사쿤(팔랄사곤)을 공격하였다.
구르칸이 스스로 나가 방어하였는데 구출룩이 패하여 물러났다.
그러나 호라즘의 군이 이미 타라즈(탑랄사)에 이르러 구르칸의 장수 타양구(탑니고)를 사로잡았다.
발라사쿤의 성 수비 장군 악사간의 패잔병이 코키리로써 문을 부수고 들어가 3일간 크게 약탈하였다.
구출룩이 기회를 틈타 재차 진군하였고 구르칸이 패전하여 사로잡혔다.
구르칸을 태상황으로 받들고 그 나라를 찬탈하여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2년이 넘자 구르칸이 근심하다 졸하였다.
구출룩이 이윽고 찬탈하자 또 서요의 전 재상의 딸을 거둬 비로 삼았는데 용모가 심히 아름다웠고 정비 쿵쿠와 더불어 불교를 
믿었다.
거란(글단)은 본래 나라를 일으키며 불교를 숭상하였는데 야율대석이 서쪽으로 천도함에 이르러 그 땅에서는 
이슬람(회회교)이 성행하였다.
야율대석이 그것을 신앙하여 금지하지 못하였고 이런 연고로 상하가 서로 편안하였다.
구출룩이 그 비의 신앙을 이용하여 불법을 세워 국교로 삼았다.
그 백성에게 불교를 받들라 유지를 내렸고 마호메트(모한묵덕/무함마드)를 받들지 못하게 하였다.
스스로 호탄(화전)에 이르러 천방교사(이슬람 사제들/이맘)를 불러 교리를 논쟁하였다.
알라 앗 딘(아랍애정)이라 말하는 사제가 있었는데 구출룩에게 가서 더불어 반박하였고 구출룩이 부끄러워 성을 내며 
포박하게 하여 그 수족을 문에 못 박게 하였다.
또 조세를 가혹하게 매겼고 한 마을의 촌장집에 병사 한 명을 두어 감시하게 하였다.
이에 민심이 와해되었고 오직 몽고병의 속히 이르기를 기대하였다.
태조가 또한 듣고는 제베(철별)로 하여금 구출룩을 정벌하게 하였다.
제베가 서요의 국경에 들어가 백성을 회유하고 각각 옛 종교를 받들어 바꾸지 말라 하니 각각의 마을의 촌장들이 모두 
감시병을 살해하고 호응하였다.
구출룩이 카쉬가르(객십갈이)에 있다가 군이 미처 이르지 않았는데도 먼저 달아났다.
제베가 추격하여 사릭 콜(살리흑고이)에 이르렀는데 구출룩이 위랍특니의 산곡에 숨었다.
제베가 양을 유목하는 사람을 만나 구출룩의 종적을 물어 알고는 사로잡아 살해하였다.
구출룩은 태조 3년(1208년)으로부터 서요로 달아났다가 6년(1211년)에 야율직로고를 찬탈하였고 14년(1218년)에 제베에게 
살해당했는데 타양칸의 죽음으로부터 벌써 11년이었다.
구출룩은 아들 자우쿠(창온)가 있었는데 달아나다 죽었다.
자우쿠의 아들 초사는 어렸는데 모친 캉글리씨(강리씨)를 따라 사잇길로 가서 태조에게 귀부하였고 중궁에서 일을 보게 하였다.
25세에 종군하여 (금을) 정벌하였다.
대주와 석주 2주를 깨트렸는데 시석을 피하지 않았다.
태종(우구데이) 4년에 황제의 동생 톨루이(타뢰)를 따라 금군을 균주의 삼봉산에서 격파하였다.
공을 논하여 탕음황초무 등 117호를 하사하였는데 받지 않았다.
포로 50, 저택 1구, 황금 가죽띠, 술병, 술잔, 사발 각각 1개씩을 다시 하사하였는데 재차 사양하자 불허하였고 이에 받게 하였다.
부만호에 발탁하여 쿠투쿠(홀도호)와 함께 하남에 남아 위무하게 하였으며 수주로 거듭 옮겼다.
[태종] 9년에 서경, 대명, 빈주, 체주, 배맹, 진정부, 하간주, 형주, 명주, 자주, 위주, 신주, 위주, 보주 등의 지방군을 뽑아 
4060여인을 얻었고 초사로써 통솔하게 하였다.
영주로 진을 옮겼는데 졸하였다.
아들 베테킨(별적인)은 강보에 있을 때 할머니 캉글리씨가 길렀고 코룸(화림)에 남았다.
점차 성장하자 키르키즈(걸아길사) 황후에게 종사하였다.
부친이 졸하자 모친 장씨가 베테킨을 맞이하여 남쪽으로 왔다.
장씨가 현명하였는데 일찍이 조용하게 훈계하며 말하길
「사람으로 성공하는 자의 까닭은 두려워하는 것을 아는 것이요, 수치를 아는 것이요, 고생을 아는 것이니 이를 모른다면 곧 
  금수일 뿐이니라!
헌종(몽골 4대칸 뭉케) 4년 1254년에 베테킨으로써 부친의 직위를 세습하여 부만호로 삼았고 수주와 영주 2주를 다스리게 
하였다.
베테킨의 신장은 칠척이었고 힘이 많았으며 또한 기사에 훌륭하니 사졸이 두려워 복종하였다.
중통(몽골 5대 칸 원 세조 쿠빌라이의 #1연호) 4년 1263년에 알현하였는데 금부를 하사하였고 수주와 영주 2주의 둔전 
다루가치(달로화적)로 삼았다.
이때 주의 경계에 식인하는 호랑이가 있었는데 베테킨이 양을 포박하여 함정속에 두고 호랑이를 유인하여 죽였다.
지원(몽골 5대 칸 원 세조 쿠빌라이의 #2연호) 13년 1276년에 신양부 다루가치에 제수하였다.
신양에 또한 호랑이가 많았는데 베테킨이 말안장 위에 그물을 올리고 사냥을 나갔는데, 명을 내려 좌우는 산을 불사르게 
하였고 호랑이가 나가서 달아나자 베테킨이 그물을 던져 호랑이를 포박하니 땅에 의지하여 울부짖으니 빠르게 말을 타고 
살을 쏘아 선채로 죽였다.
[지원] 16년 1279년에 상덕로 부 다루가치에 올랐다.
때마침 동지 이명수가 난을 일으켰는데 베테킨이 단기로 가서 회유하여 투항시켰다.
조정에서 일을 듣자 이명수를 주살하였다.
[지원] 31년 1294년에 지주로 다루가치에 올랐다.
대덕(몽골 6대 칸 원 성종 테무르의 #2연호) 11년 1307년에 대주로로 옮겼는데 졸하였고 81세였다.
아들은 셋인데 부카(불화)는 첨영남광서도 숙정렴방사사다.
둘째 문규는 은덕이 있어 비서저작랑을 추증하였다.
셋째 연수는 탕음현 다루가치다.
손자 가공과 증손 권은 모두 진사였다.
 
사신은 말한다!

「옹칸은 시기하여 무리를 잃었고 열조(예수게이) 부자에게 의지하여 망한 것을 다시 보존하였는데도 

  이에 참소하는 아들의 말을 들어주어 은혜를 저버리고 덕을 등졌다.

  그 망한 이유를 고찰하면 모두 자신의 힘을 헤아리지 못한 것인데 일거에 경거망동하여 목숨을 잃고 나라가 멸하여,

  모두 전철을 밟은 것이니 어찌 어리석음이 심하지 아니한가?

  구출룩은 기회를 틈타 찬탈하였는데 민심이 미처 붙지 못하였는데도 자신을 따르라 강요하였고 부당한 형벌로 핍박하니 

  자신 편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을 적들 편으로 몰아준 셈이며, 다른 무리들의 토벌의 이유를 만들어준 셈이었느니라!」


요약.

구출룩칸(쿠쉴룩칸)은 남부 나이만 군주 타양칸의 아들이다. 타양칸이 테무진에 살해당하자 구출룩은 삼촌 부이룩칸에게 

달아난다. 이후 부이룩칸마저 테무진에게 살해당하자 구출룩은 서요로 달아난다. 서요 3대 황제 아율직로고가 구출룩을 

받아들이고 부마로 삼는다. 구출룩은 흩어진 나이만 패잔병들을 모아 서요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야율직로고의 지원하에 

나이만을 규합한다. 그러나 구출룩칸는 서쪽 호라즘과 비밀리에 연합하여 서요를 분할하여 차지하기로 밀약을 맺는다.

구출룩이 야심을 드러내자 서요군이 구추룩을 공격하였고 구출룩은 패전한다. 그러나 때마침 호라즘군이 동진하여 서요군을 

격파한다. 구출룩은 야율직로고를 태상황에 올리고 자신이 황제의 위에 오른다. 본디 서요 황실은 불교를 숭상하였으나 

백성은 무슬림이 많아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었다. 한편 기독교도였던 구출룩은 불교로 개종하고 백성들에게 불교로 개종할 

것을 강요한다. 구출룩이 종교 지도자 알라 앗 딘을 살해하고 가혹한 세금을 부과하자 민심 이반이 가속화 되었다.

한편 중국 정벌 중에 호라즘 정벌을 선언한 테무진은 제베를 선봉으로 서요를 평정하게 한다. 제베군이 오자 구출룩은 달아났고

제베는 종교의 자유를 선언한다. 달아났던 구출룩은 1218년 제베에게 살해당하고 이로써 나이만과 서요는 멸망한다.

구출룩의 손자 초사는 모친 캉글리씨를 따라 몽골 중궁에서 일을 하였고 이후 몽골의 장수가 되어 용맹을 떨쳐 부만호에 오른다.

초사는 한족 여인 장씨와 혼인하였는데 장씨는 아들 베테킨을 현명하게 훈육한다. 베테킨은 원조에 출사하여 용맹을 떨쳤고 

아버지의 직위를 세습하여 부만호가 된다. 각지역의 다루가치를 역임한 베테킨은 호랑이 사냥에 능숙했다. 그의 일족은 

중원에 완전히 정착하였고 이름을 모두 한족식으로 바꿨으며 후손들은 원 과거에 급제하기도 하였다.


-끝-


한글 산성일기 2부-뎡묘 호란 강홍닙이 아국을 틸새 병자호란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있던 궁녀로 추정되는 사람이 궁중 언문체 한글로 남긴 

<산성일기>를 틈틈이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나만갑 병자록의 필사본으로 추정되는데요. 작성된 시기는 미상이나 대개 효종 때로 추정하더군요.


영인본 출처 : 국립중앙도서관


1부-노라치란 오랑캐로 뇽호쟝군을 하이다


*중세 한글 표기로 구현이 어려운 부분은 임의로 변경하였습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한글이라 딱히 번역할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오역이나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자료를 소개해 주신 클라우디우스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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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치 일즉 나가 노다가 뫼 녑해 한 겨집이 오좀을 누고 디나가거늘 보니

오좀이 뫼흘 뚜러 깁희 말채가 드러가니 노라치 긔이히 너겨 그 겨집을 다려다가

아들을 나흐니 이 니른바 홍타시라

뎡묘 졍월의 강홍닙이 홍타시로 다래여 대군을 니르혀 아국을 틸새 

압노강을 어름으로 건너 이 밤의 의쥐를 엄습하니 부윤 판관이 다 죽고 안쥐를 함믈하니 병사 목사들이 다 죽다

샹이 강화 피란하시고 셰자는 뎐쥬의 분됴하시니

초의 갑자 니괄의 난의 괄의 쟝슈 한명년의 아들이 도망하여

오랑캐게다 거즛말노 아국이 홍닙의 일문을 다 즛지라다 니르고 홍닙을 다래여 도젹을 인도하여 오니 

이에 니르러 됴졍이 홍닙의 삼촌 딘쟝군 강인과 홍닙의 쳐자를 진쳔의 보내여

홍닙을 뵈니 홍닙이 비로소 뉘웃고 노적도 구트여 아국을 틸 의새 업고

아국도 또한 사신을 보내여 화친하기를 쳥하니 젹이 허락하다

샹이 노사로 더브러 피 마셔 텬디긔 맹셰하실새

대신 윤방 오윤겸 병조판셔 니셩구 참판 최명길 한 가지로 맹셰예 참예하니라

홍타시 홍닙과 홍닙의 호녀와 한녀를 다 내여 보내니

아국이 노적을 두려 홍닙의 죄를 의논티 못하더니

미구의 홍닙의 일문이 의논하야 닙을 가마니 죽이다


노라치(누르하치) 일찍 나가 놀다가 산 옆에 한 계집이 오줌을 누고 지나가거늘 보니

오줌이 산을 뚫어 깊이 말채찍이 들어가니 노라치 기이하게 여겨 그 계집을 데려다가

아들을 낳으니 이 이른바 홍타시(홍타이지)라!

정묘(1627년) 정월에 강홍립이 홍타시를 달래여 대군을 이르게 하여 아국을 칠새

압록강이 얼으니 건너 이 밤에 의주를 엄습하니 부윤 판관이 다 죽고 안주를 함몰하니 병사 목사들이 다 죽다.

상(인조)이 강화 피란하시고 세자(소현)는 전주로 분조하시니!

처음에 갑자(1624년) 이괄의 난에 괄의 장수 한명련의 아들(한윤)이 도망하여

오랑캐에게다 거짓말로 아국이 홍립의 일문을 다 죽였다 이르고 홍립을 달래여 도적을 인도하여 오니

이에 이르러 조정이 홍립의 삼촌 진창군 강인과 홍립의 처자를 진천으로 보내여

홍립을 뵈니 홍립이 비로소 뉘우치고 도적도 구태여 아국을 칠 의사 없고

아국도 또한 사신을 보내여 화친하기를 청하니 적이 허락하다.

상이 노사(누르하치의 사신)와 더불어 피 마셔 천지에 맹세하실새

대신 윤방 오윤겸 병조판서 이성구 참판 최명길 한 가지로 맹세에 참여하니라!

홍타시 홍립과 홍립의 호녀(여진족 부인)와 한녀(중국 부인)를 다 내여 보내니

아국이 노적을 두려워하여 홍립의 죄를 의논치 못하더니

미구(未久/오래지 않음)에 홍립의 일문이 의논하여 홍닙을 가만히(조용히) 죽이다.


-3부에서 계속-


신원사 남부 나이만 부족장 타양칸 열전 테무진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몇몇 인물들에 대한 열전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테무진 당시 서부 몽골 최강자 남부 나이만의 군주 타양칸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인물 열전>

청사고

왕올당, 왕고, 다이샨, 태조 누르하치, 추옝, 슈르하치, 야르하치 

피옹돈, 호호리, 어이두, 안퍙구후르한푸차 군다이

잉굴다이어르더니 밬시양구리보르진특금마심, 캉카라도르곤도도아지거푸헝

하르졸(해란주)호오거망굴타이아민고이마혼/와산/제극탑합/공아지르가랑두두니칸

송사

한세충이치, 양재흥, 동관[방랍], 채경, 부언경, 곽약사, 반미, 이사사고구송강장방창, 황잠선묘부(유정언)진회

금사

명사

두송 이성량 모문룡

송서

만주팔기씨족통보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96%B0%E5%85%83%E5%8F%B2/%E5%8D%B7118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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乃蠻部,遼時始著,耶律太石西奔,自乃蠻抵畏吾兒,即此部也。

基部初居於古謙河之傍,後益強,盛拓地至烏隴古河。

乃蠻譯義爲八,所據之地:

一阿而泰山,一喀喇和林山,一哀略以賽拉斯山,一阿而帖石湖,一阿而帖石河,一阿而帖石河與乞裏吉思中間之地,

一起夕耳塔實山,一烏隴古河。

故稱其部曰乃蠻。

其北境爲乞裏吉思,東爲克烈,南爲回紇,西爲康裏。

其酋曰亦難察貝而喀布庫罕,以兵力雄長漠北。

客烈亦王罕之弟額而帖合剌來奔,亦難察爲出兵伐王罕,大破之。

王罕奔西遼。

亦難察卒,二子,一曰泰赤布喀,一曰古出古敦不月魯克。

初亦難察無子,禱於神而生泰赤布喀。

亦難察嫌其闍弱,謂不能保其部衆,及卒,泰赤布喀與不月魯克以爭父妾相仇,不月魯克北徙於起夕耳塔實山。

泰赤布喀居其父舊地,後受封於金爲大王。

蒙古語訛大王爲太陽,故稱爲太陽罕。

太祖與王罕知其兄弟有釁,乘機攻不月魯克至忽木升古兒、烏瀧古河,不月魯克之將也迪土卜魯黑率百騎偵敵,馬潼斷,

爲太祖兵所執。

進至乞溼泐巴失之野,不月魯克拒戰,大敗,奔于謙謙州。

其驍將撒卜剌黑稱曰可克薛兀,譯言老病人也,以兵援之,遇於拜答剌黑巴勒赤列之地,戰一日,無勝負。

王罕夜引去,太祖亦退。

可克薛兀追王罕至伊庫魯阿而臺之地,王罕弟札合敢卜殿後,爲所襲,輜重、妻子皆失。

別遣一軍至帖列帖禿阿馬撒剌,掠王罕部衆。

桑昆以中軍追之,又爲所敗,流矢中桑昆馬胯。

桑昆墜馬,幾被執。

太祖使博爾術等救之,可克薛兀始敗去。

金泰和二年,不月魯克與蔑兒乞、斡亦剌、泰亦兀赤、朵兒邊、塔塔兒、合塔斤、撒勒只兀特諸部立札木合爲罕,合兵攻太祖。

太祖與王罕自兀而庫夷河至喀剌溫赤敦山,不月魯克等從之,其部將能以術致風雨,欲順風擊我。

忽風反,大雨雪,人馬多凍死,遂大敗而返。

又二年,太祖襲破王罕,王罕走至乃蠻界之捏坤烏孫,爲守將火力速八赤騰喀沙兒所殺,白其事於太陽罕。

太陽罕後母古兒別速,又爲太陽罕可敦,聞之曰:

「脫斡鄰勒是東鄰老王罕,取彼頭來視之,若信,當祭以禮。」

頭至,置白氈上。

乃蠻人有識之者,果王罕也。

乃陳樂以祭之,其頭忽有笑容。

太陽罕以爲不祥,蹴而碎之。

可克薛兀退謂諸將曰:

「割死王罕之頭而蹴之,非義也。

  況近日狗吠聲甚惡。

  事其殆乎。

  昔王罕嘗指古兒別速言:

  此婦人年少,吾老且死,泰赤布喀柔軟,他日恐不能保我部衆。

  今古兒別速用法嚴,而我太陽罕顧性懦,舍飛獵外無他長。

  吾亡無日矣。」

太陽罕忌太祖勢日強,欲用兵於蒙古。

可克薛兀諫,不聽。

乃使其部將卓忽難告汪古部長曰:

「我聞有北邊林木中之主,欲辦大事。

  我知天上惟一日、一月、地下亦不得有兩主。

  請汝助我爲右手,我將奪其弓矢。」

汪古部去遣使告於太祖,太祖議先攻之。

泰和五年春,會諸將於迭滅該河,衆以方春,馬瘦,俟馬肥而後進。

別勒古台請先發以制之。

太祖從其言。

進兵至乃蠻境外之哈剌河。

乃蠻兵不至,不得戰。

秋,再議進兵,以忽必來、哲別爲前鋒。

時太陽罕亦遣兵爲前鋒,而自與蔑兒乞酋脫黑脫阿、客烈亦酋阿鄰太石、衛拉特酋忽都哈別乞、札只剌酋札木合及朵兒奔、

塔塔兒、哈答斤、撒兒助等部連合駐於阿勒臺河、杭海山之間。

太祖營有自馬,鞍翻而逸,突入乃蠻軍中。

乃蠻皆謂蒙古馬瘦。

太祖進至撒阿里客額兒之地,部將朵歹言於太祖曰:

「吾兵少。

  至夜,請使人各燃火五處爲疑兵,以張聲勢。」

太祖從之。

乃蠻哨望者果疑蒙古兵大至,走告太陽罕。

太陽罕與諸將計曰:

「蒙古馬雖瘦,然戰士衆,亦不易敵。

  今我退兵,彼必尾追,則馬力愈乏,我還而擊之可以得志。」

太陽罕子古出魯克聞之,恚甚,曰:

「吾父何畏葸如婦人,達達種人吾知其數,大半從札木合在此,彼從何處增兵?

  吾父生長宮中,旦孕婦更衣、童牛齧草之地,身所不至。

  故懼爲此言耳。」

其將火力速八赤亦曰:

「汝父亦難察從不以人背馬尾響敵,汝恇怯如此,曷不使汝婦古兒別速來乎!

  惜可克薛兀老,吾兵紀律不嚴,得毋蒙古人應運將興耶?」

言畢嘆息而出。

太陽罕大怒曰:

「人各有一死,七尺之軀辛苦相等,汝輩言既如此,吾前迎敵可也。」

遂決戰,渡斡兒洹河至納忽嶺東崖察乞兒馬兀惕之地。

太陽罕與札木合登高了敵,見太祖軍容嚴整,有懼色,退至山上陳兵自衛。

札木合謂其左右曰:

「乃蠻平日臨敵,自謂如宰小牛羊,自頭至足不留皮革。

  汝等今視其能否?」

遂率所部先遁。

是日戰至晡,乃蠻兵大潰。

太陽罕受重傷,臥於地。

火力速八赤曰:

「今我等尚在山半,不如下爲再戰之計。」

太陽罕不應。

火力速八赤曰:

「汝婦古兒別速已盛飾待汝得勝而回,汝盍速起。」

亦不應。

火力速八赤乃謂其部將十人曰:

「彼如有絲毫氣力,必不如此。

  我等與其視彼死,不如使彼視我等之死。」

遂與諸將下山力戰。

太祖欲生致之,而不從,皆死。

太祖嘆息曰:

「使吾麾下將士能如此,吾復何憂。」

太陽罕既死,餘衆夜走納忽嶺,墜死崖谷者無算。

太祖獲古兒別速,調之曰:

「汝謂蒙古人歹氣息,今日何故至此。」

遂納之。

朵兒奔、塔塔兒、哈答斤、撒兒助四部悉降。

古出魯克奔於不月魯克。

내만부(乃蠻部)는, 요시(遼時)에 비로소 저(著/나타남)하였는데, 야율태석(耶律太石)이 서분(西奔)하였는데, 

내만(乃蠻)으로부터 외오아(畏吾兒)를 저(抵/이름)하였는데, 즉(即) 이 부(部)였다.

그 부(部)가 초(初)에 고(古) 겸하(謙河)의 방(傍)에 거(居)하였는데, 후(後)에 익강(益強)하였고, 성(盛)하여 척지(拓地)하여 

오롱고하(烏隴古河)에 지(至)하였다.

내만(乃蠻)은 역의(譯義)하면 팔(八)이라 하는데, 소거(所據)의 지(地)이다.

일(一)은 아이태산(阿而泰山)이 되었고, 일(一)은 객라화림산(喀喇和林山)이 되었고

일(一)은 애략이새랍사산(哀略以賽拉斯山)이 되었고일(一)은 아이첩석호(阿而帖石湖)이 되었고

일(一)은 아이첩석하(阿而帖石河)이 되었고, 일(一)을 아이첩석하(阿而帖石河)와 더불어 걸리길사(乞裏吉思)의 

중간(中間)의 지(地)이고, 일(一)은 기석이탑실산(起夕耳塔實山)이 되었고, 일(一)은 오롱고하(烏隴古河)다.

이런 연고(故)로 그 부(部)를 칭(稱)하길 내만(乃蠻)이라 말하였다.

그 북경(北境)은 걸리길사(乞裏吉思)였고, 동(東)은 극렬(克烈)이었고, 남(南)은 회흘(回紇)이었고, 서(西)는 강리(康裏)였다.

그 추(酋)는 왈(曰) 역난찰(亦難察) 패이객포고한(貝而喀布庫罕)인데, 병력(兵力)으로써 막북(漠北)을 

웅장(雄長/패권을 장악함)하였다.

객렬역(客烈亦) 왕한(王罕)의 제(弟) 액이첩합랄(額而帖合剌)이 내분(來奔)하였는데, 역난찰(亦難察)이 출병(出兵)하여 

왕한(王罕)을 벌(伐)하였고, 대파지(大破之)하였고, 왕한(王罕)은 서요(西遼)로 분(奔)하였다.

역날찰(亦難察)이 졸(卒)하였고, 자(子)가 둘이었는데, 일(一)을 왈(曰) 태적포객(泰赤布喀)이고, 일(一)은 왈(曰) 

고출고돈부월로극(古出古敦不月魯克)이다.

초(初)에 역난찰(亦難察)이 무자(無子)하였는데, 신(神)에게 도(禱)하여 태적포객(泰赤布喀)을 생(生)하였다.

역난찰(亦難察)이 그 도약(闍弱)을 혐(嫌)하였는데, 그 부중(部衆)을 보(保)할 수 없으리라 위(謂)하였고, 졸(卒)함에 이르러, 

태적포객(泰赤布喀)은 부월로극(不月魯克)과 더불어 부첩(父妾)을 쟁(爭)함으로써 상구(相仇)하였고, 부월로극(不月魯克)은 

기석이탑실산(起夕耳塔實山)에 북사(北徙)하였다.

태적포객(泰赤布喀)은 그 부(父)의 구지(舊地)에 거(居)하였는데, 후(後)에 금(金)에게서 수봉(受封)하여 대왕(大王)이 되었다.

몽고어(蒙古語)로 대왕(大王)을 와(訛)하여 태양(太陽)이 되었고, 이런 연고(故)로 태양한(太陽罕)이라 칭(稱)하였다.

태조(太祖)가 왕한(王罕)과 더불어 그 형제(兄弟)의 유흔(有釁/불화가 있음)을 지(知)하였고, 승기(乘機)하여 

부월로극(不月魯克)을 공(攻)하여 홀목승고아(忽木升古兒)와 오롱고하(烏瀧古河)에 지(至)하였는데, 부월로극(不月魯克)의 

장(將) 야적토복로흑(也迪土卜魯黑)이 백기(百騎)를 솔(率)하여 정적(偵敵)하였고, 마동(馬潼)이 단(斷)하여, 태조(太祖)의 

병(兵)에게 소집(所執)하였다.

진(進)하여 걸습륵파실(乞溼泐巴失)의 야(野)에 지(至)하였는데, 부월로극(不月魯克)이 거전(拒戰)하였는데, 대패(大敗)하였고,

겸겸주(謙謙州)에 분(奔)하였다.

그 효장(驍將) 살복랄흑(撒卜剌黑)은 칭(稱)하길 가극설올(可克薛兀)이라 말하는데, 역언(譯言)하면 노병인(老病人)으로, 

병(兵)으로써 원지(援之)하였고, 배답랄흑파륵적렬(拜答剌黑巴勒赤列)의 지(地)에서 우(遇)하였는데, 일일(一日)을 

전(戰)하였으나, 무승부(無勝負)였다.

왕한(王罕)이 야(夜)에 인거(引去)하였고, 태조(太祖) 역시(亦) 퇴(退)하였다.

가극설올(可克薛兀)이 왕한(王罕)을 추(追)하여 이고로아이대(伊庫魯阿而臺)의 지(地)에 지(至)하였는데, 왕한(王罕)의 

제(弟) 찰합감복(札合敢卜)이 전후(殿後/군대의 최후미)였는데, 소습(所襲)하여, 치중(輜重)과 처자(妻子)가 모두 실(失)하였다.

별견(別遣)한 일군(一軍)이 첩렬첩독아마살랄(帖列帖禿阿馬撒剌)에 지(至)하여, 왕한(王罕)의 부중(部衆)을 약(掠)하였다.

상곤(桑昆)이 중군(中軍)으로써 추지(追之)하였는데, 또한 소패(所敗)하였고, 유시(流矢)가 상곤(桑昆)의 마고(馬胯)에 

중(中)하였다.

상곤(桑昆)이 추마(墜馬)하였고, 거의 피집(被執)하였다.

태조(太祖)가 박이술(博爾術) 등(等)으로 하여금 구지(救之)하였고, 가극설올(可克薛兀)이 비로소 패거(敗去)하였다.

금(金) 태화(泰和/금 6대 황제 장종의 #3연호) 2년(1202년)에, 부월로극(不月魯克)이 멸아걸(蔑兒乞), 알역랄(斡亦剌), 

태역올적(泰亦兀赤), 타아변(朵兒邊), 탑탑아(塔塔兒), 합탑근(合塔斤), 살륵지올특(撒勒只兀特)의 제부(諸部)와 함께 

찰목합(札木合)을 입(立)하여 한(罕)으로 삼고, 합병(合兵)하여 태조(太祖)를 공(攻)하였다.

태조(太祖)가 왕한(王罕)과 함께 올이고이하(兀而庫夷河)로부터 객랄온적돈산(喀剌溫赤敦山)에 지(至)하였고, 

부월로극(不月魯克) 등(等)이 종지(從之)하였는데, 그 부장(部將)이 능히(能) 술(術)로써 풍우(風雨)를 치(致)하여, 

순풍(順風)하여 격아(擊我)하고자 하였다.

홀연히(忽) 반풍(風反)하였고, 대우설(大雨雪)하자, 인마(人馬)가 다동사(多凍死)하였고, 마침내 대패(大敗)하여 반(返)하였다.

또 [태화] 2년(1202년)에, 태조(太祖)가 왕한(王罕)을 습파(襲破)하였는데, 왕한(王罕)이 주(走)하여 내만(乃蠻) 계(界)의 

날곤오손(捏坤烏孫)에 지(至)하였는데, 수장(守將) 화력속팔적(火力速八赤)과 등객사아(騰喀沙兒)에게 소살(所殺)하였고,

그 사(事)를 태양한(太陽罕)에게 백(白)하였다.

태양한(太陽罕)의 후모(後母) 고아별속(古兒別速)인데, 또 태양한(太陽罕)의 가돈(可敦)이 되었고, 문지(聞之)하여 말하길

「탈알린륵(脫斡鄰勒) 이자는 동린(東鄰)의 노왕한(老王罕)이니, 피두(彼頭)를 취(取)하여 래시지(來視之)하여,

  만약(若) 신(信)이라면, 당(當)연히 예(禮)로써 제(祭)해야만 한다.」

두(頭)가 지(至)하자, 백전(白氈) 상(上)에 치(置)하였다.

내만인(乃蠻人)으로 식(識)한 자(者)가 있었는데, 과연(果) 왕한(王罕)이었다.

이에 진악(陳樂)하고 이로써 제지(祭之)하였고, 그 두(頭)가 홀(忽)연히 소용(笑容)이 있었다.

태양한(太陽罕)이 불상(不祥)이라 이위(以爲)하였고, 축(蹴/차버림)하여 쇄지(碎之)하였다.

가극설올(可克薛兀)이 퇴(退)하여 제장(諸將)에게 위(謂)하여 말하길

「왕한(王罕)의 두(頭)을 할사(割死)하고 축지(蹴之)하였으니, 비의(非義)로다.

  때마침 근일(近日)에 구폐성(狗吠聲/개짖는 소리)이 심악(甚惡)하였다.

  사(事)가 이미 태(殆)한 것인가?

  석(昔)에 왕한(王罕)이 일찍이 고아별속(古兒別速)을 지(指)하여 말하길

  [이 부인(婦人)이 년소(年少)하고, 오로(吾老)하여 차사(且死)할 것이고, 태적포객(泰赤布喀)은 유연(柔軟/부드럽고 연함)하니,

   타일(他日)에 아부중(我部衆)을 부능보(不能保)할까 공(恐)하다.] 하였다.

  지금(今) 고아별속(古兒別速)은 용법엄(用法嚴)한데, 그러나 우리 태양한(太陽罕)은 생각컨대 성나(性懦)하며,

  사비렵(舍飛獵/매사냥) 외(外)에는 타장(他長/다른 재간)이 없으니, 오망(吾亡)도 무일(無日)이로다!」

태양한(太陽罕)기 태조(太祖)의 세(勢)가 일강(日強)함을 기(忌)하여, 몽고(蒙古)에 용병(用兵)하고자 하였다.

가극설올(可克薛兀)이 간(諫)하였으나, 불청(不聽)하였다.

이에 그 부장(部將) 탁홀난(卓忽難)으로 하여금 왕고부(汪古部) 장(長)에게 고(告)하여 말하길

「아문(我聞)하기로 북변(北邊)의 임목(林木) 중(中)에 주(主)가 있어, 대사(大事)를 판(辦/준비함)한다고 한다.

  아지(我知)하기로 천상(天上)에는 오직 일일(一日)이요, 일월(一月)하여, 지하(地下) 역시(亦) 양주(兩主)가 있는 것을 

  부득(不得)한다고 한다.

  청(請)컨대 여(汝)가 조아(助我)하여 우수(右手)가 된다면, 아(我)가 장차(將) 그 궁시(弓矢)를 탈(奪)하겠노라!」

왕고부(汪古部)가 거(去/물리침)하고 견사(遣使)하여 태조(太祖)에게 고(告)하였고, 태조(太祖)가 의(議)하여 

선공지(先攻之)하였다.

태화(泰和) 5년 춘(春)에, 제장(諸將)을 질멸해하(迭滅該河)에 회(會)하였는데, 중(衆)이 바야흐로 춘(春)이고, 

마수(馬瘦)함으로써, 마비(馬肥)를 사(俟)하여 후진(後進)하고자 하였다.

별륵고태(別勒古台)가 선발(先發)을 청(請)하여 이로써 제지(制之)하였다.

태조(太祖)가 그 언(言)을 종(從)하였다.

진병(進兵)하여 내만(乃蠻) 경외(境外)의 합랄하(哈剌河)에 지(至)하였다.

내만병(乃蠻兵)이 부지(不至)하자, 부득전(不得戰)하였다.

추(秋)에, 재의(再議)하여 진병(進兵)하였는데, 홀필래(忽必來)와 철별(哲別)로써 전봉(前鋒)을 삼았다.

이때 태양한(太陽罕) 역시(亦) 견병(遣兵)하여 전봉(前鋒)으로 삼았고, 스스로 멸아걸추(蔑兒乞酋) 탈흑탈아(脫黑脫阿), 

객렬역추(客烈亦酋) 아린태석(阿鄰太石), 위랍특추(衛拉特酋) 홀도합별걸(忽都哈別乞), 찰지랄추(札只剌酋) 

찰목합(札木合)과 더불어 타아분(朵兒奔), 탑탑아(塔塔兒), 합답근(哈答斤), 살아조(撒兒助) 등(等)의 부(部)와 함께 

연합(連合)하여 아륵대하(阿勒臺河)와 항해산(杭海山)의 간(間)에 주(駐)하였다.

태조(太祖)의 영(營)에 백마(自馬/白의 오기)가 있었는데, 안번(鞍翻/안장이 뒤집힘)하고 일(逸/달아남)하여, 내만(乃蠻) 

군중(軍中)으로 돌입(突入)하였다.

내만(乃蠻)이 모두 몽고마(蒙古馬)가 수(瘦)하였다 위(謂)하였다.

태조(太祖)가 진(進)하여 살아리객액아(撒阿里客額兒)의 지(地)에 지(至)하였는데, 부장(部將) 타대(朵歹)가 태조(太祖)에게 

어(言)하여 말하길

「아병(吾兵)은 소(少)하다.

  지야(至夜)하면, 청(請)컨대 인(人)으로 하여금 각각(各) 5처(處)에 연화(燃火)하여 의병(疑兵)으로 삼아,

  이로써 성세(聲勢)를 장(張)하자!」

태조(太祖)가 종지(從之)하였다.

내만(乃蠻)의 초망자(哨望者)가 과연(果) 몽고병(蒙古兵)의 대지(大至)를 의(疑)하였고, 주(走)하여 태양한(太陽罕)에게 

고(告)하였다.

태양한(太陽罕)이 제장(諸將)과 더불어 계(計)하여 말하길

「몽고마(蒙古馬)가 비록 수(瘦)하나, 그렇지만 전(戰士)가 중(衆)하니, 역시(亦) 이적(易敵)할 수 없다.

  지금(今) 아(我)가 퇴병(退兵)하면, 저쪽이 필히(必) 미추(尾追)할 것이고, 즉(則) 마력(馬力)이 

  유핍(愈乏/괴로워하고 피로함)할 것이니, 아환(我還)하여 격지(擊之)한다면 가히(可) 이로써 득지(得志)하리라!」

태양한(太陽罕)의 자(子) 고출로극(古出魯克)이 문지(聞之)하더니, 에심(恚甚/심히 성냄)하여 말하길

「아부(吾父)는 어찌 부인(婦人)과 같이 외사(畏葸/매우 두려워함)하는가?

  달달(達達) 종인(種人)은 내가 알기로 그 수(數)는 대반(大半)이 찰목합(札木合)을 종(從)하여 재차(在此)하는데,

  저쪽이 하처(何處)에서 증병(增兵)하여 종(從)하였겠는가?

  오부(吾父)는 궁중(宮中)에서 생장(生長)하여, 단지(旦) 잉부(孕婦/임신한 부녀)만 경의(更衣)하고, 동우(童牛/어린 소)가 

  설초(齧草/풀을 뜯어먹음)의 지(地)에만 몸이 이르지 못하였다.

  이런 연고(故)로 구(懼)하여 이 언(言)하는구나!」

그 장(將) 화력속팔적(火力速八赤) 역시(亦) 말하길

「여부(汝父) 역난찰(亦難察)은 종(從)에게 인배(人背)와 마미(馬尾)로써 향적(響敵)하지 않게 하였는데,

  여(汝)는 이와 같이 광겁(恇怯/겁내고 무서워함)하니, 어찌하여 여부(汝婦) 고아별속(古兒別速)으로 하여금 래(來)하게 하지 

  않는가?

  석(惜)하다! 가극설올(可克薛兀)은 노(老)하였고, 오병(吾兵)의 기율(紀律)은 불엄(不嚴)하니, 틈림없이 몽고인(蒙古人)의 

  응운(應運/천명을 따름)이 장차(將) 흥(興)하지 않겠느냐?」

언필(言畢)하자 탄식(嘆息)하고 출(出)하였다.

태양한(太陽罕)이 대노(大怒)하여 말하길

「인(人)은 각각(各) 일사(一死)만 있을 뿐이니, 칠척구(七尺軀/)의 신고(辛苦/고생과 애씀)가 상등(相等/같음)하리라!

  여배(汝輩)의 언(言)이 이윽고 이와 같으니, 오(吾)가 전(前)하여 영적(迎敵)함이 가(可)하리라!」

마침내 결전(決戰)하였고, 알아원하(斡兒洹河)를 도(渡)하여 납홀령(納忽嶺) 동애(東崖) 찰걸마아올척(察乞兒馬兀惕)의 

지(地)에 지(至)하였다.

태양한(太陽罕)이 찰목합(札木合)과 함께 등고(登高)하여 요적(了敵)하였는데, 태조(太祖)의 군용(軍容)이 엄정(嚴整)함을 

견(見)하더니, 구색(懼色)이 있었고, 퇴(退)하여 산상(山上)에 지(至)하여 진병(陳兵)하고 자위(自衛)하였다.

찰목합(札木合)이 그 좌우(左右)에게 위(謂)하여 말하길

「내만(乃蠻)이 평일(平日)에 임적(臨敵)하면, 자위(自謂)하길 소우양(小牛羊)을 재(宰)하는 것처럼,

  자두지족(自頭至足/머리로부터 발끝까지) 피혁(皮革/가죽)도 불유(不留)한다 하였다.

  여등(汝等)은 지금(今) 그것이 능(能)한지 부(否)한지 시(視)하느냐?」

마침내 소부(所部)를 솔(率)하여 선둔(先遁)하였다.

시일(是日)에 전(戰)이 포(晡/해질 무렵)에 이르렀는데, 내만병(乃蠻兵)이 대궤(大潰)하였다.

태양한(太陽罕)은 중상(重傷)을 수(受)하여, 지(地)에 와(臥)하였다.

화력솔팔적(火力速八赤)이 말하길

「지금(今) 아등(我等)은 아직 산반(山半)에 재(在)하니, 하(下)하여 재전(再戰)의 계(計)로 삼는 것만 못하다!」

태양한(太陽罕)이 불응(不應)하였다.

화력속팔적(火力速八赤)이 말하길

「여부(汝婦) 고아별속(古兒別速)이 이미(已) 성식(盛飾/잘 차려입음)하고 대여(待汝)하니 득승(得勝)하여 회(回)해야 하는데,

  여(汝)는 어찌 속기(速起)하지 아니하는가?」

역시(亦) 불응(不應)하였다.

화력속팔적(火力速八赤)이 이에 그 부장(部將) 10인(人)에게 위(謂)하여 말하길

「그가 사호(絲毫/몹시 적음)의 기력(氣力)이라도 있었다면, 필히(必) 이와 같지 않았으리라!

  아등(我等)이 그의 사(死)를 시(視)하는 것은, 그로 하여금 아등(我等)의 사(死)를 시(視)함만 못하다!」

마침내 제장(諸將)과 함께 하산(下山)하여 역전(力戰)하였다.

태조(太祖)가 생치지(生致之)하고자 하였으나, 불종(不從)하였고, 모두 전사(死)하였다.

태조(太祖)가 탄식(嘆息)하여 말하길

「오(吾)의 휘하(麾下) 장사(將士)로 하여금 이와 같을 수만 있다면, 내가 다시 하우(何憂)하리오?」

태양한(太陽罕)이 이윽고 사(死)하자, 여중(餘衆)이 야(夜)에 납홀령(納忽嶺)으로 주(走)하였는데, 애곡(崖谷)에 추사(墜死)한 

자(者)가 무산(無算)하였다.

태조(太祖)가 고아별속(古兒別速)을 획(獲)하여, 조롱(調)하며 말하길

「여(汝)는 몽고인(蒙古人)의 기식(氣息/냄새)이 대(歹/나쁨)하다 위(謂)하였는데, 금일(今日) 하고(何故)로 이에 이르렀느냐?」

마침내 납지(納之)하였다.

타아분(朵兒奔), 탑탑아(塔塔兒), 합답근(哈答斤), 살아조(撒兒助) 4부(部)가 실항(悉降)하였다.

고출로극(古出魯克)은 부월로극(不月魯克)에게 분(奔)하였다.


<영화 By the Will of Genghis Khan 中>







나이만(내만) 부족은 요나라 때에 비로소 나타났는데 야율태석이 서쪽으로 달아나면서 나이만으로부터 위구르(외오아)에 

이르렀는데 곧 이 부족이었다.

그 부족은 처음에 옛 켐강(겸하) 근방에 살았는데 후에 점점 강해지고 번성하여 땅을 넓혀 우룽구 강(오롱고하)에 이르렀다.

나이만을 번역하면 8이라 하는데 근거하는 땅이다.

1은 알타이(아이태) 산이고, 1은 카라코룸(객라화림) 산이고, 1은 알루이 시라스(애략이 새랍사) 산이고,

1은 에르디시(아이첩석) 호수이고, 1은 에르디시(아이첩석) 강이고, 1은 에르디시 강과 더불어 키르키즈(걸리길사)의 

중간의 땅이고, 1은 소콘 오손(기석이탑실산)이고, 1은 우룽구(오롱고하) 강이다.

이런 연고로 그 부족을 칭하길 나이만이라 말하였다.

그 북쪽 경계는 키르키즈였고, 동은 케레이트(극렬)였고, 남은 위그루(회흘)였고, 서쪽은 캉클리(강리)였다.

그 추장은 말하길 이난치 빌게 부구 칸(역난찰 패이객 포고 한)인데 군대의 힘으로 사막 북쪽의 패권을 장악하였다.

케레이트(객렬) 옹칸의 동생 에르케 카라(액이첩 합랄)가 도망쳐 왔는데 이난치가 출병하여 옹칸을 정벌하여 대파하였고 

옹칸은 서요로 달아났다.

이난치가 죽고 아들이 둘이었는데 하나는 타이부카(태적포객)고, 하나는 고출고돈 부이룩(부월로극)이다.

처음에 이난치가 자식이 없었는데 신에게 기도하여 타이부카를 낳았다.

이난치가 그 문약함을 싫어하여 그 부족무리를 지킬 수 없으리라 일컬었고 졸함에 이르러 타이부카가 부이룩과 더불어 

아버지의 첩을 다툼으로써 서로 원수가 되었고 부이룩은 북쪽 올록 탁의 소콘 오손으로 옮겼다.

타이부카는 그 부친의 옛 땅에 살았는데 후에 금나라에게 대왕을 제수받았다.

몽고어로 대왕이 와전되어 타양(태양)이 되었고, 이런 연고로 타양칸이라 칭하였다.

태조가 옹칸과 더불어 그 형제간에 불화가 있는 것을 알고는 기회를 틈타 부이룩을 공격하여 쿰 싱기르(홀목 승고아)와 

우룽구강에 이르렀는데 부이룩의 장수 이디 투클룩(야적 토복로흑/예디 토블록)이 100기를 인솔하여 정탐하였고 말안장이 

끊어져 태조의 병에게 사로잡혔다.

진군하여 키실바시(걸습륵파실)의 들에 이르렀고, 부이룩이 막아 싸웠으나 대패하여 켐 켐치우트(겸겸주)로 달아났다.

그의 용맹한 장수 사브락(살복랄흑)은 칭하길 쿡세우(가극설올)이라 말하였는데 번역하면 늙은 병자란 뜻이다.

사브락이 군사로 구원하였고 바이타락 벨치레(배답랄 흑파륵적렬/바이다락 벨치르)의 땅에서 조우하였는데 하루종일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옹칸이 밤에 퇴각하여 가버렸고 태조 또한 물러났다.

쿡세우가 옹칸을 추격하여 이데루 알타이(이고로 아이대)의 땅에 이르렀는데, 옹칸의 동생 자아감보(찰아감복)이 후미가 

되었는데 습격을 당하여 치중과 처자를 모두 잃어벼렸다.

별도로 보낸 일군이 달라두 아마사라(첩렬첩독 아마살랄)에 이르러 옹칸의 부족 무리를 약탈하였다.

셍군(상곤)이 중군으로써 추격하였는데 또한 패배를 당하였고 유시가 셍군의 말 사타구리에 명중하였고, 셍군은 말에서 떨어져

거의 사로잡히게 되었다.

태조가 보오르초(박이술) 등으로 하여금 구원하게 하였고 쿡세우가 비로소 패하여 가버렸다.

1202년에 부이룩(부월로극)이 메르키트(멸아걸), 오이라트(알역랄), 타이치오트(태역올적), 두르벤(타아변), 타타르(탑탑아), 

카타킨(합탑근), 살지우트(살륵지올특)의 여러 부족과 함께 자무카(찰목합)을 옹립하여 칸(한)으로 삼고 합병하여 태조를 

공격하였다.

태조가 옹칸과 함께 올이고이하로부터 객랄온적돈산에 이르렀고 부이룩 등이 따라왔는데, 그 부장이 능히 무당술로 비바람을 

부를수 있었고 바람을 타고 우리를 공격하고자 하였다.

홀연히 바람이 반대로 불고 눈과 비가 크게 오자 인마가 많이 동사하였고 마침내 대패하여 돌아갔다.

또 1202년에 태조가 옹칸을 습격하여 격파하였는데 옹칸이 달아나 나이만의 경계 네쿤 우순(날곤 오손)에 이르러 그 수비 

장수 코리 수바추(화력 속팔적)와 테틱샬(등객사아)에게 살해되었는데, 그 일을 타양칸(태양한)에게 보고하였다.

타양칸의 계모는 구르베수(아별속)인데, 또 타양칸의 하톤이 되었는데 듣고는 말하길

「토오릴(탈알린륵) 이자는 동쪽에 인접한 늙은 옹칸이니 그의 머리를 취하여 보도록 하자!

  만약 맞다면 마땅히 예로써 제사하여야 한다!」

머리가 이르자 담요 위에 두었다.

나이만 사람으로 그를 알고 있는 자가 있었는데 과연 옹칸이었다.

이에 음악을 연주하고 이로써 제사 지내게 하였는데 그 머리가 홀연히 웃는 모양이 있었다.

타양칸이 상서롭지 않다 생각하고 차 버리더니 부수도록 하였다.

쿡세우 사브락(가극설올)이 물러나 제장들에게 일컬어 말하길

「옹칸의 머리를 베어 죽이고 발로 찼으니 의롭지 않도다!

  때마침 근자에 개 짖는 소리가 심히 악하였다.

  일이 이미 위태로워진 것인가?

  일전에 왕칸(이난치)이 일찍이 구르베수를 가리켜 말하길

  [이 부인은 어리고 나는 늙었으며 또한 죽을 것이고 타이부카(타양칸)는 나약하니

   다른 날에 우리 부족 무리를 지키지 못할까 두렵구나!] 하였다.

  지금 구르베수는 법을 엄하게 사용하는데 그러나 우리 타양칸은 생각컨대 성품이 나약하여 매사냥 밖에는 다른 재간이 없으니

  우리가 망할 날도 머지않았도다!」

타양칸이 태조의 세력이 날로 강해지는 것을 시기하여 몽고에 출병하고자 하였다.

쿡세우 사브락이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이에 그 부장 조카난(탁홀난)으로 하여금 웅구트(왕고) 부족장에게 고하여 말하길

「내가 듣기로 북변의 삼림 속에서 주인이 있어 대사를 준비한다고 한다.

  내가 알기로 하늘 위에는 오직 하나의 태양이요, 하나의 달이 있을 뿐이며, 

  땅 아래에는 또한 두 주인이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청컨대 네가 나를 도와 오른팔이 되어 준다면 내가 장차 그 궁시를 빼앗겠노라!」

웅구트 부족이 물리치고 사신을 파견하여 태조에게 고하였고 태조가 의논하여 선공을 가하고자 하였다.

1204년 봄에 제장을 모아 테메게인(테메엔/질멸해) 강에서 쿠릴타이를 열었는데, 무리들이 바야흐로 봄이고 말이 여위었다 

하여 말이 살찌기를 기다려 후에 진군하고자 하였다.

벨구테이(별륵고태)가 선발을 청하며 이로써 바로잡고자 하니, 태조가 그 말을 따랐다.

진군하여 나이만의 경계 밖 칼라강(합랄하)에 이르렀으나, 나이만 군이 이르지 않자 싸우지 못하였다.

가을에 재차 의논하여 진군하였는데 쿠빌라이(홀필래)와 제베(철별)를 전봉으로 삼았다.

이때 타양칸 역시 군사를 보내 전봉으로 삼고, 스스로 메르키트 추장 톡타아(탈흑탈아), 케레이트(객렬역) 추장 

아린 타이시(아린 태석), 오이라트(위랍특) 추장 쿠투카 베키(홀도합 별걸), 자다란(찰지랄) 추장 자무카(찰목합)와 더불어 

두르벤(타아분), 타타르(탑탑아), 카타킨(합답근), 살지우트(살아조) 등의 부족과 함께 연합하여 알타이강(아륵대하)과 

캉카이산(항해산)의 사이에 주둔하였다.

태조의 영에 백마가 있었는데 안장이 뒤집히자 달아나 나이만의 군중으로 돌입하였다.

나이만이 모두 몽고말이 여위었다 일컬었다.

태조가 진군하여 사아리(살아리) 케에르(객액아/초원)의 땅에 이르렀는데 부장 도다이(타대)가 태조에게 말하길

「아군이 적으니, 밤에 이르면 청컨대 사람들로 하여금 각각 5곳에 불을 피워 가짜 병력으로 삼아 이로써 성세를 펼치자!

태조가 따랐다.

나이만의 염탐하던 자가 과연 몽고병이 크게 이르렀다 의심하였고 도주하여 타양칸에게 고하였다.

타양칸이 제장들과 더불어 계책을 논의하며 말하길

「몽고말이 비록 여위었다 하나 전사들이 많으니 또한 쉽게 대적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퇴각하면 저쪽이 필히 꼬리를 추격해 올 것이고 즉 말의 힘이 피로할 것이다.

  우리가 돌아와 공격한다면 가히 이로써 뜻을 얻으리라!」

타양칸의 아들 구출룩이 듣더니 심히 성내며 말하길

「내 부친은 어찌 부인과 같이 두려워하는가?

  타타르 종족은 내가 알기로 그 수의 태반은 자무카를 따라와 이곳에 있는데 

  저쪽이 어느 곳에서 증병하여 따라오게 하였겠는가?

  내 부친은 궁중에서 성장하여 단지 임신한 여자가 옷을 갈아입고 어린 소가 풀을 뜯어먹는 땅에만 몸이 이르지 못하여

  이런 연고로 두려워하며 이런 말을 하는구나!

그 장수 코리 수바추 또한 말하길

「너의 부친 이난차는 따르는 사람들에게 등과 말 꼬리를 적에게 향하게 하지 않았는데,

  네가 이와같이 겁내고 무서워하니 어찌하여 너의 부인 구르베수로 하여금 오게 하지 않는 것인가?

  애석하구나! 쿡세우 사브락은 늙었고 우리 군의 기율은 엄하지 않으니,

  틈림없이 몽고인의 천명의 운수가 장차 흥하지 않겠느냐?

말을 마치자 탄식하고 나갔다.

타양칸이 대노하여 말하길

「사람은 각각 한 번 죽을 뿐이니 칠척의 몸이 고달픈건 매한가지리라!

  너희 무리의 말이 이윽고 이와 같으니 내가 앞장서 적을 맞이함이 옳을 것이니라!

마침내 결전하였고 오르콘강(알아원하)을 건너 나코 고개(납홀령) 동쪽 벼랑 차키르 마오드(찰걸 마아올척)의 땅에 이르렀다.

타양칸이 자무카와 함께 높은 곳에 올라 적을 헤아렸는데 태조의 군용이 엄정함을 보더니 두려운 기색이 있었고

물러나 산 정상에 이르러 진을 치고 스스로를 지켰다.

자무카가 그 좌우에게 일컬어 말하길

「나이만이 평일에 적을 만나면 스스로 일컫기를 

  어린 소나 양을 도살하는 것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죽 하나 남기지 않겠다 하였다.

  너희들은 지금 그것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보이느냐?」

마침내 소속 부족을 인솔하여 먼저 달아났다.

이날에 싸워 해질 무렵에 이르렀는데 나이만 군이 크게 흩어졌다.

타양칸이 중상을 입어 땅에 누워 있었는데 쿠리 수바추가 말하길

「지금 우리들은 아직 산 중턱에 있으니 하산하여 다시 싸우는 계책으로 삼는 것이 낫다.」

타양칸이 응하지 않았다.

쿠리 수바추가 말하길

「너의 부인 구르베수가 이미 잘 차려입고 너를 기다리니 승전하여 돌아가야 하는데, 

  너는 어찌하여 속히 일어나지 아니하는가?

또한 응하지 않았다.

쿠리 수바추가 이에 그 부장 10인에게 일컬어 말하길

「그가 털오라기의 기력이라도 있었다면 필히 이와 같지 않았으리라!

  우리들이 그의 죽음을 보는 것은 그로 하여금 우리들의 죽음을 보이는 것보다 못하다!

마침내 제장들과 함께 하산하여 힘껏 싸웠다.

태조가 생포하고자 하였으나 따르지 않았고 모두 전사하였다.

태조가 탄식하며 말하길

「내 휘하 장사들로 하여금 이와 같을 수만 있다면 내가 다시 어떤 걱정을 하리오?」

타양칸이 이윽고 죽자 남은 무리들이 밤에 나코 고개로 도주하였는데 벼랑과 골짜기에 추락하여 죽은 자가 헤아릴 수 없었다.

태조가 구르베수를 사로잡아 조롱하며 말하길

「너는 몽고인의 냄새가 나쁘다 일컬었는데 금일 어떤 까닭으로 이에 이르렀느냐?」

마침내 거두워들였다.

두르벤, 타타르, 카타킨, 살지우트 4부가 모조리 투항하였다.

구출룩은 부이룩에게 달아났다.


테무진의<카라가나 전술> 소수의 기병으로 다수의 기병을 박살낸다!




※나이만 지파

1. 베테킨

2. 달루

3. 아크사우트

4. 코리

5. 캉리

6. 구추우트


*이난치 빌게 부구 칸

 -이난치 : 믿는다
 -빌게 : 현명한

 -부구 칸 : 옛 군주의 칭호

*타양 칸 : 이난치의 큰 아들

 -본래 이름 : 타이부카

 -중국에서 쿠쉴룩에게 부여한 명칭 : 태왕(太王) → 와전되어 타양칸(태양한)

*부이룩 칸 : 이난치의 둘째 아들

*쿠쉴룩 칸/구출룩 칸 : 타양칸의 아들

 -뜻 : 힘이쎈 군주

*이난치 칸의 후처였던 구르베수를 차지하기 위해 타양칸과 구출룩칸이 적대하였고,

 타양칸이 남부 나이만 주인이 되자 구르베수가 정권을 독단한다.

 구르베수는 몽고인들을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몽골비사 中 (유원수 역주)

그들을 데려다 무엇하려는가? 몽골 사람들은 냄새가 나쁘고 의복이 더러운 것들이다.

따로 멀리 떨어져 살도록 데려오지 마라! 

그들의 아름다운 며느리들과 딸들만 데려다가 손발을 씻게 하고 다만 소와 양의 젖이나 짜게 해야 할 것이다.


몽골비사 中 (유원수 역주)

타양의 어머니 구르베수를 데려다가 "너는 몽골의 냄새가 나쁘다고 하지 않았느냐? 지금은 왜 왔느냐?" 하고 힐난하고 

칭기스 카한이 취했다.


요약.

나이만은 요나라 시기에 몽골 서부의 최강자가 되었다. 이난차칸 당시에는 케레이트를 공격해 옹칸을 패망 직전까지 몰아붙였고,

몽골인들은 나이만의 공격에 초원의 패권을 잃고 뿔뿔이 흩어져 동족상잔을 펼치게 되었다. 이난차칸 사후 두 아들 타양칸과 

부이룩칸이 계모 구르베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투다 북부와 남부로 분열되었다. 1204년 테무진이 몽골 동부를 통일하자 

타양칸은 테무진 섬멸을 결정하며 웅구트를 끌어들이나 웅구트는 이를 거절하고 테무진에게 투항한다. 칭기스칸에 즉위한 

테무진은 자사그와 천호제의 실시로 더욱 강력해진 몽골군으로 나이만을 공격해 숫적 열세에도 참수작전(카라가나 전술)을 

감행해 타양칸을 처단한다. 타양칸의 아들 구출룩칸은 서요로 달아났다.



※ 반전 : 구르베수는 칭기스칸의 총애를 받았음.


신원사 후비 열전 구르베수 고아팔속(古兒八速)

次後者:曰古兒八速皇后,本乃蠻亦難察汗之妻,太陽汗之後母也。

乃蠻敗,為太祖所獲,依蒙古禮納之,有寵。

다음 후자는 구르베수(고아팔속) 황후라 말하는데, 본래 나이만(내만) 이난차칸(역난찰한)의 처(妻)였고,

타양칸(태양한)의 후모(後母)였다.
나이만이 망하자 태조에게 사로잡혔고 몽고의 예법에 의해 거둬들였으며 총애를 받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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