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타이지가 요구한 1차 조공품목 병자호란 이야기

병자호란 막바지인 1637년 1월 28일 인조가 남한산성을 나와 투항하기로 통보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날 홍 타이지는 서신을 보내 매년 1차로 바칠 조공품목을 보냅니다.


그 품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1월 28일

每年進貢一次其方物數目。黃金百兩白銀千兩水牛角二百對豹皮百張鹿皮百張茶千包水獺皮四百張青黍皮三百張。

胡椒十斗腰刀二十六口順刀二十口蘇木二百觔大紙千卷小紙千五百卷五爪龍蓆四領各樣花蓆四十領白苧布二百疋

各色綿紬二千疋各色細麻布四百疋各色細布萬疋布千四百疋米萬包

매년(每年) 일차(一次)로 진공(進貢/공물을 바침)할 그 방물(方物/조공품)의 수목(數目/낱낱의 수).

황금(黃金) 100냥(兩), 백은(白銀) 1000냥(兩), 수우각(水牛角/물소뿔) 200대(對),

표피(豹皮/표범 가죽) 100장(張), 녹피(鹿皮/사슴 가죽) 100장(張), 차(茶) 100포(包),

수달피(水獺皮/수달 가죽) 400장(張), 청서피(青黍皮/청서 가죽) 300장(張), 

호초(胡椒/후추) 10두(斗), 요도(腰刀/허리에 차는 칼) 26구(口), 순도(順刀/양날 칼) 20구(口),

소목(蘇木/콩과에 속하는 상록교목) 200근(觔), 대지(大紙/큰 종이) 1000권(卷), 소지(小紙/작은 종이) 1500권(卷), 

오조룡석(五爪龍蓆) 4령(領), 각양(各樣/여러 가지 모양)의 화석(花蓆) 40령(領),

백저포(白苧布/눈모시) 200필(疋), 각색(各色/여러 가지 색)의 면주(綿紬/명주) 2천필(疋),

각색(各色/여러 가지 색) 세마포(細麻布/가는 삼실로 짠 매우 고운 베) 400필(疋),

각색(各色/여러 가지 색) 세포(細布/곱고 가늘게 짜여진 삼베) 1000필(疋), 포(布) 1400필(疋), 미(米/쌀) 10000포(包).


매년 일차로 공무를 바쳐야 할 그 조공품의 수효
황금 100냥
백은 1000냥
물소뿔 200대
표범 가죽 100장
사슴 가죽 100장
차 100포
수달 가죽 400장
청서 가죽 300장
후추 10두
요도(허리에 차는 칼) 26구
순도(양날 칼) 20구,
소목(콩과에 속하는 상록교목) 200근
큰 종이 1000권
작은 종이 1500권,
오조룡석 4령
여러 가지 모양의 화석 40령
눈모시 200필
여러 가지 색의 명주 2000필,
여러 가지 색의 세마포(가는 삼실로 짠 매우 고운 베) 400필
여러 가지 색의 세포(곱고 가늘게 짜인 삼베) 1000필
포 1400필
쌀 10000포.


*비슷한 경우라면 금의 북송 개봉포위전이 있겠네요.

 당시 1차 개봉포위전에서 종한은 황금 500만 냥, 은 5천만 냥, 우마 1만 마리, 비단 100만 필를 요구하였습니다.

 흠종은 100만 개봉성민에게 징발하여 금 20만 냥, 은 400만 냥을 금에 보냈지요. 


-끝-


병자호란 청실록 18부-인조 눈물로 삼학사를 죽음의 길로 보내다! 병자호란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그간 원초적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의 맨 마지막 부분, 즉 1636년 11월~12월 병자호란 관련 부분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는데요.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은 1636년이 마지막입니다.

하여 이후의 내용은 한문사서 청실록 태종 문황제실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1부-청태종 남한산성을 둘러보다

2부-아녀자같이 숨느냐? 만세의 웃음거리다!

3부-소국의 왕이 대국의 황제에게 간곡히 청하나이다.

4부-한족 3왕의 화포부대 도

5부-조선의 반격 광교산 전투와 양고리 전사!

6부-청 태종 통곡하고 또 통곡하다!

7부-도르곤 김자점을 추격하다!(홍이포 도착)

8부-목을 길게 빼고 패왕 대국황제의 말씀만 기다리고 있나이다!

9부-선봉대는 돌아가 배를 만들라! 강화도를 먼저 칠 것이노라!

10부-<조선왕 너는 입만 살았다!>조목조목 반박하는 청태종

11부-<엎드려 바라옵건대 황제는 용서하소서!>김상헌이 찢은 그 국서

12부-너의 죄를 사하노라! 성을 나와라! 척화대신 3~4명은 반드시 죽이겠노라!

13부-칭신하다! 그러나 국왕 출성과 척화대신 박송은 거부하다.

14부-강화도 함락!

15부-강화도가 함락되었다! 안 나오면 네 식솔은 어찌 되겠느냐?

16부-폐하(홍타이지)는 신(인조)의 하늘이니 재조지은을 베푸소서!

17부-인조 출성을 결심하다!


병자호란 만주어 만문노당 1부~65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3


청실록 원본 출처 : http://sillok.history.go.kr/mc/main.do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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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1월 28일

○戊辰。朝鮮國王李倧又以書來奏曰小邦昔年曾有一等浮議壞事。臣摘其中尤甚者若干人並加斥黜。而首倡臺諫一人。

當天兵到境時。命為平壤庶尹。督令即日前進。或為前軍所獲。或從間道赴任。俱未得知。今在城中者。

雖或有雷同和附之罪。較前被斥者。則輕重相懸。伏見前日詔旨。實出恩恤小邦之至意臣若終始持難。則恐

陛下未察本國之事。疑臣有所容隱。臣誠心向順之意。將無以自白故察得弘文館校理尹集。

修撰吳達濟二人。送詣軍前。以竢處分。謹昧死以聞

○무진일(戊辰)에, 조선국왕(朝鮮國王) 이종(李倧)이 또 서신(書)으로써 와서 주(奏/아룀)하여 말하길

  <소방(小邦)이 석년(昔年/왕년)에 거듭 부의(浮議/근거 없는 들뜬 논의)로 

   괴사(壞事/일을 무너뜨림)하는 일등(一等/한 무리)가 있어,

   신(臣)은 그 중(中)에 우심(尤甚/매우 심함)한 자(者) 약간인(若干人/몇몇 사람)을 적발(摘)하여,

   모두 척출(斥黜/벼슬을 떼어서 내쫓음)을 가(加)하였고,

   수창(首倡/맨 먼저 주창함)한 대간(臺諫) 1인은 천병(天兵/황제의 군사)이 도경(到境/국경에 이름)한 때를 당(當)하여,

   명(命)하여 평양서윤(平壤庶尹)으로 삼았고, 즉일(即日/당일)에 전진(前進)하도록 독령(督令/영을 내려 독촉함)하였는데,

   혹(或) 전군(前軍)이 소획(所獲/포로로 잡힘)하였는지, 혹(或) 간도(間道/샛길)을 종(從/따름)하여 부임(赴任)하였는지,

   모두 알지 못하나이다.

   지금(今) 성중(城中)에 있는 자(者)들은 비록 혹(或) 뇌동화부(雷同和附/부화뇌동, 번개 소리에 맞춰 움직임)의 죄(罪)가 

   있지마는,

   전(前)의 피척(被斥/내침을 당함)한 자(者)와 비교(較)하면,

   곧 경중(輕重/가벼움과 무거움)이 상현(相懸/서로 현격함)하나이다.

   엎드려 전일(前日)의 조지(詔旨)를 보아하니, 

   실로(實) 소방(小邦)을 은휼(恩恤/불쌍히 여겨 은혜를 베풂)하시는 지의(至意/지극한 마음)에서 나왔으니,

   신(臣)이 만약(若) 종시(終始/처음부터 끝까지) 지난(持難/질질 끌며 미루기만 함)하기만 한다면,

   곧 폐하(陛下)께옵서 본국(本國)의 사정(事)을 미찰(未察/살피지 아니 함)하시고,

   신(臣)이 용은(容隱/속내를 숨김)하는 바가 있다 의심(疑)하시어

   신(臣)이 성심(誠心/참된 마음)으로 향순(向順/귀순)할 의(意/뜻)가 

   장차(將) 무이자백(無以自白/스스로 변명하고자 하나 되지 않음)할까 공(恐/두려움)하나이다.

   이런 연고(故)로 홍문관(弘文館) 교리(校理) 윤집(尹集), 수찬(修撰) 오달제(吳達濟) 

   두 사람을 찰득(察得/조사하여 얻음)하였고,

   송(送/보냄)하여 군전(軍前)에 예(詣/출두함)하였으니 이로써 처분(處分)을 사(竢/기다림)하나이다.

   삼가 매사(昧死/죽기를 무릅씀)하여 이문(以聞/임금께 아룀)하나이다.>


○1637년 1월 28일에 조선국왕 이종이 또 서신을 보내와 아뢰어 말하길

  <소방이 예전에 거듭 들뜬 논의로 일을 무너뜨리는 한 무리가 있어

   신은 그중에 매우 심한 자 몇몇 사람을 적발하여 모두 벼슬을 떼어 내쫓았고

   맨 먼저 주창한 대간 1인은 황제의 군사가 국경에 이른 때를 당하여

   명을 내려 평양서윤으로 삼아 당일에 나아가도록 영을 내려 독촉하였습니다.

   혹 폐하의 선봉군에 포로로 잡혔는지 혹 샛길을 따라 부임하였는지 모두 알지 못하나이다.

   지금 성중에 있는 자들은 비록 혹 부화뇌동한 죄가 있지마는 전에 내침을 당한 자들과 비교하면

   곧 죄의 경중이 서로 현격하나이다.

   엎드려 전일의 조서를 보아하니 실로 소방을 불쌍히 여겨 은혜를 베푸시는 지극한 마음에서 나왔으니

   신이 만약 처음부터 끝까지 질질 끌며 미루기만 한다면

   곧 폐하께옵서 본국의 사정을 살피시지 아니할 것이고, 신이 속내를 숨기는 바가 있다 의심하시어

   신이 성심으로 귀순할 뜻이 장차 변명하고자 하나 되지 않을까 두렵나이다.

   이런 연고로 홍문관 교리 윤집, 수찬 오달제 두 사람을 조사하여 군전에 보내 출두하게 하였으니

   이로써 처분을 기다리나이다.

   삼가 죽기를 무릅쓰고 폐하께 아뢰나이다.>


요약.

1637년 1월 27일 인조는 출성을 결심하고 홍 타이지에게 서신을 보내 안위를 보장해 달라 간청한다.

한편 28일 마침내 척화대신을 보내라는 홍 타이지의 협박에 

인조는 평양 부서윤 홍익한, 교리 윤집, 수찬 오달제 즉 삼학사를 청에 통보하고

남한산성에 있던 윤집과 오달제를 포박하여 청군에 보낸다.

이때 인조는 윤집과 오달제를 면담하고 서럽게 울었다.

윤집과 오달제는 모두 자청하여 나갔는데 당시 나이가 갓 30을 넘은 젊은 선비들이었다.

이로써 청이 요구한 인조의 출성과 척화대신 박송을 조선이 따르자 청은 인조의 출성 날짜를 통보해주겠다 말한다.


-19부에서 계속-


병자호란에 참전한 외번몽고 병력 현황(매우 상세함) 병자호란 이야기

병자호란 참전령에 따른 외번 몽고 징발 명령장!


출처 : 만문노당 1636년 11월 6일 기록


12부족 총현황 22기 41888호 832니루 갑병 11995명

족장 208명(기주 22명), 니루어전(장긴) 832명,

3.49호당 1갑병 차출, 1니루당 14.4갑병 차출


*이미 청에 투항한 카라친과 투머트 부족은 동원령에 빠져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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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이만 부족

- 기주 : 1기 다르한 군왕

- 호수 : 1360호

- 니루 : 27

- 갑병 : 245명

- 족장 : 7명(기주 포함)


2. 아오한 부족

- 기주 : 1기 반디 어푸, 소놈

- 호수 : 1300호

- 니루 : 26

- 갑병 : 340명

- 족장 : 2명(기주 포함)


3. 바린 부족

- 기주 : 2기 아유시, 만주시리

- 호수 : 1500호

- 니루 : 29

- 갑병 : 695명

- 족장 : 7명(기주 포함)


4. 자뤁(자루트) 부족

- 기주 : 2기 상아르, 너이치

- 호수 : 4722호

- 니루 : 94

- 갑병 : 1284명

- 족장 : 67명(기주 포함)


5. 두르번 커오컽 부족

- 기주 : 1기 다르한 조맄투

- 호수 : 2194호

- 니루 : 42

- 갑병 : 647명

- 족장 : 5명(기주 포함)


6. 모오밍안 부족

- 기주 : 1기 무장

- 호수 : 3480호

- 니루 : 70

- 갑병 : 665명

- 족장 : 20명(기주 포함)


7. 옹니욭(옹니요트) 부족

- 기주 : 2기 두렁, 하라 처맄 까르마, 다르한 다이칭

- 호수 : 3130호

- 니루 : 59

- 갑병 : 930명

- 족장 : 14명(기주 포함)


8. 우랕(우라트) 부족

- 기주 : 1기, 기주 없음

- 호수 : 1895호

- 니루 : 37

- 갑병 : 650명

- 족장 : 51명


9. 코르친 부족

- 기주 : 3기, 투셰투 친왕, 자샄투 군왕, 라마스히

- 호수 : 6750호

- 니루 : 135

- 갑병 : 2312명

- 족장 : 5명(기주 포함)


10. 잘아이트

- 기주 : 1기, 다르한 호쇼오치

- 호수 : 2750호

- 니루 : 55

- 갑병 : 2750명

- 족장 : 8명(기주 포함)


11. 두르벝(두르버트) 부족 (두르베트)

- 기주 : 5기, 서렁, 조맄투 친왕, 무자이, 갈투, 동오르

- 호수 : 9130호

- 니루 : 182

- 갑병 : 2659명

- 족장 : 23명(기주 포함)


12. 고르로스 부족 (칼카 몽고, 곽이라사郭尔罗斯)

- 기주 : 2기, 붐바, 구무

- 호수 : 3750호

- 니루 : 75

- 갑병 : 1023명

- 족장 : 7명(기주 포함)



-끝-

병자호란 청실록 17부-인조 출성을 결심하다! 병자호란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그간 원초적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의 맨 마지막 부분, 즉 1636년 11월~12월 병자호란 관련 부분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는데요.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은 1636년이 마지막입니다.

하여 이후의 내용은 한문사서 청실록 태종 문황제실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1부-청태종 남한산성을 둘러보다

2부-아녀자같이 숨느냐? 만세의 웃음거리다!

3부-소국의 왕이 대국의 황제에게 간곡히 청하나이다.

4부-한족 3왕의 화포부대 도

5부-조선의 반격 광교산 전투와 양고리 전사!

6부-청 태종 통곡하고 또 통곡하다!

7부-도르곤 김자점을 추격하다!(홍이포 도착)

8부-목을 길게 빼고 패왕 대국황제의 말씀만 기다리고 있나이다!

9부-선봉대는 돌아가 배를 만들라! 강화도를 먼저 칠 것이노라!

10부-<조선왕 너는 입만 살았다!>조목조목 반박하는 청태종

11부-<엎드려 바라옵건대 황제는 용서하소서!>김상헌이 찢은 그 국서

12부-너의 죄를 사하노라! 성을 나와라! 척화대신 3~4명은 반드시 죽이겠노라!

13부-칭신하다! 그러나 국왕 출성과 척화대신 박송은 거부하다.

14부-강화도 함락!

15부-강화도가 함락되었다! 안 나오면 네 식솔은 어찌 되겠느냐?

16부-폐하(홍타이지)는 신(인조)의 하늘이니 재조지은을 베푸소서!


병자호란 만주어 만문노당 1부~65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3


청실록 원본 출처 : http://sillok.history.go.kr/mc/main.do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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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1월 25일

○乙丑和碩睿親王多爾袞自江華島遣羅碩、胡球、來奏云。所獲江華島城內緞疋、小珠東珠、金銀、玉珊瑚、貂皮、

猞狸猻皮等物甚多

○을축일(乙丑)에, 화석예친왕(和碩睿親王) 다이곤(多爾袞)이 강화도(江華島)로부터 

라석(羅碩), 호구(胡球)를 보내 와 주(奏/아룀)하여 말하길

   <소획(所獲)한 강화도(江華島) 성내(城內)의 단필(緞疋/비단), 소주(小珠/작은 구슬), 동주(東珠/명주), 

    금은(金銀), 옥산호(玉珊瑚), 초피(貂皮/담비 가죽), 사리손피(猞狸猻皮/스라소니 가죽) 등(等)의 물품(物)이 

    심히(甚) 많습니다.>


○1637년 1월 25일에 화석예친왕 다이곤(도르곤)이 강화도로부터 라석, 호구를 보내와 아뢰어 말하길

  <강화도 성내에서 얻은 비단, 작은 구슬, 명주, 금은, 옥산호, 담비 가죽, 스라소니 가죽 등의 물품이 심히 많았습니다.>



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1월 27일

○丁卯。朝鮮國王李倧、又以書來奏曰。臣於本月二十日。欽奉

聖旨有曰。今爾困守孤城。見朕屢詔切責方知悔罪。朕開弘度許爾親盟。令爾出城。見朕者一則見爾誠心悅服。

一則欲加恩於爾。令永主爾國。旋師以後示仁信於天下耳朕方承

天眷撫定四方正欲赦爾前愆。以風示南朝若以詭計取爾天下之大能盡譎詐取之乎是絕人歸順之路矣臣自承

聖旨仰感天地覆育之大德歸附之心。益切於中。而循省臣躬罪積邱山。非不知

陛下恩信明著。絲綸之降。

皇天是臨。而猶懷惶怖。累日徘徊。坐積逋慢之誅。今聞

陛下旋駕。有日若不早自趨。詣仰覲

龍光則微誠莫伸。追悔何及。第臣方將以三百年宗社。數千里生民仰托於

陛下。情理誠為可矜。倘或事有參差。不如引劍自裁之為愈伏願

聖慈俯鑒血忱明降詔旨以開臣安心歸命之路謹冒死以聞

○정묘일(丁卯)에, 조선국왕(朝鮮國王) 이종(李倧)이 또 서신(書)으로써 내주(來奏/와서 아룀)하여 말하길

   <신(臣)이 본월(本月) 20일에 성지(聖旨)를 흠봉(欽奉/황제의 명령을 받듦)하였는데 말씀하시길

    [지금(今) 네가 고성(孤城/고립된 성)을 곤수(困守/지키기 곤란함)하였는데,

     짐(朕)이 누차(屢) 조서(詔)로 절책(切責/크게 책망함)함을 보고는,

     바야흐로 회죄(悔罪/죄를 뉘우침)를 알았다 하였다.

     짐(朕)은 홍도(弘度/큰 도량)를 개(開/엶)하여 너의 친맹(親盟/친히 맹세함)를 허(許)하노라.

     너로 하여금 출성(出城)하여 짐(朕)을 보게 한다는 것은, 

     하나는 곧 네가 성심(誠心/참된 마음)으로 열복(悅服/기쁜 마음으로 복종함)하는지를 보고자 함이고,

     하나는 곧 너에게 가은(加恩/은혜를 베풂)하여, 너의 나라의 영주(永主/영원한 주인)으로 하여,

     선사(旋師/승전하고 회군함) 이후(以後) 천하(天下)에 인신(仁信/어짐과 믿음)을 시(示/보임)하고자 함이노라!

     짐(朕)은 바야흐로 천권(天眷/하늘의 은혜)을 승(承/받듦)하여 사방(四方)을 무정(撫定/어루만지고 안정시킴)하니,

     바로 너의 전건(前愆/지난날의 잘못)을 사(赦/용서함)하여 풍(風/감화시킴)함으로써

     남조(南朝/명나라)에게 시(示/보임)하고자 함이노라!

     만약(若) 궤계(詭計/간사한 속임수)로써 너를 취(取)한다면

     넓은 천하(天下)를 모두 휼사(譎詐/간사한 꾀를 부림)로 취(取)할 수 있겠느냐?

     이는 사람이 귀순(歸順)할 길을 끊는 것이노라!>

   하셨나이다.

   신(臣)이 성지(聖旨)를 승(承/받듦)함으로부터 천지부육(天地覆育/천지가 만물을 덮어 기름)의 대덕(大德/큰 덕)을 

   앙감(仰感/감동하여 우러러 봄)하여,

   귀부(歸附)의 마음이 심중(中)에 익절(益切/간절함이 더함)하였나이다.

   그러나 순성(循省/살피어 돌아봄)하면 신(臣)의 궁죄(躬罪/자신의 죄)가 구산(邱山/산과 언덕)처럼 적(積/쌓임)하였고, 

   폐하(陛下)의 은신(恩信/은혜와 신의)이 명저(明著/밝게 드러남)함을 모르지는 않지마는,

   사륜(絲綸/조칙의 글)의 내려옴에, 황천(皇天/하늘)이 여기에 임(臨)하니,

   오히려 황포(惶怖/매우 두려워함)를 회(懷/품음)하여 누일(累日/여러 날) 배회(徘徊)하였고,

   마챔내 포만(逋慢/방자하게 도망감)의 주(誅/형벌)를 적(積/쌓임)하였나이다.

   지금(今) 듣자 하니 폐하(陛下)께옵서 선가(旋駕/임금의 수레를 돌림)가 유일(有日/날짜가 정해짐)하였다 하니,

   만약(若) 서둘러 스스로 취예(趨詣/빠르게 달려가 다다름)하여 

   용광(龍光/용안)을 앙근(仰覲/우러러보며 알현함)하지 않는다면,

   즉 미성(微誠/자신의 조그마한 정성)을 막신(莫伸/펼치지 못함)하니, 추회(追悔/후회)가 어찌 미치겠나이까?

   다만 신(臣)이 바야흐로 장차(將) 300년 종사(宗社)와 수천리(數千里) 생민(生民)으로써

   폐하(陛下)께 앙탁(仰托/의지하여 의탁함)할 것이오니, 

   정리(情理/인정과 도리)가 참으로 가긍(可矜/불쌍하고 가여움)하나이다.

   만일 일이 참치(參差/가지런하지 못함)한다면 차라리 인검(引劍/칼을 뺌)하여 자재(自裁/자결)하느니만 못할 것이옵니다.

   복원(伏願/엎드려 원함)하옵건대 성자(聖慈/성상)께옵서 혈침(血忱/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으로

   분명한(明) 조지(詔旨/황제의 교지)를 항(降/내림)하시어

   이로써 신(臣)이 안심(安心)하고 귀명(歸命/귀순)의 길을 개(開/염)할 수 있도록 부감(俯鑒/굽어살핌)하시옵소서!

   삼가 모사(冒死/죽음을 무릅씀)하여 이문(以聞/임금께 아룀)하나이다.>


○1637년 1월 27에 조선국왕 이종이 또 서신을 보내와 아뢰어 말하길

  <신이 이달 20일에 성지를 받들었는데 말씀하시길

   [지금 네가 고립된 성을 지키기 곤란하고 짐이 누차 조서로 크게 책망하는 것을 보고는

    바야흐로 너의 죄를 알고 뉘우친다 하였다.

    짐은 큰 도량을 열어 너의 화친 맹세를 허락하노라!

    너로 하여금 성을 나오게 하여 짐을 보게 한다는 것은

    하나는 곧 네가 참된 마음으로 기뻐하며 복종하는지 보고자 함이며

    하나는 곧 너에게 은혜를 베풀어 너를 너의 나라의 영원한 주인으로 삼고자 함이고

    회군한 이후에 천하에 어짐과 믿음을 보이고자 함이노라!

    짐은 바야흐로 하늘의 은혜를 받아 사방을 어루만지고 평정하였으니

    바로 너의 지난날 잘못을 용서하고 감화시킴으로써 남조(명나라)에 보이고자 함이노라!

    만약 간사한 속임수로써 너를 취한다면 넓은 천하를 모두 간사한 꾀를 부려 취할 수 있겠느냐?

    이는 사람이 귀순할 길을 끊는 것이노라!]

   하셨나이다.

   신이 성지를 받드니 천지가 만물을 덮어 기르는 것과 같은 폐하의 큰 덕을 감동하여 우러러보았고

   심중에 귀부할 마음이 더욱 간절하였나이다.

   그러나 살피어 돌아보면 신 자신의 죄가 산과 언덕처럼 쌓였고

   폐하의 은혜와 신의가 밝게 드러난 것을 모르지는 않지마는

   조칙의 글이 내려옴에 하늘을 막상 대하게 되니 오히려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어 여러 날 배회하였고

   마침내 방자하게 회피할 죄를 더욱 쌓게 되었나이다.

   지금 듣자 하니 폐하께옵서 어가를 돌릴 날짜를 정하셨다 하오니 

   만약 서둘러 스스로 빠르게 달려가 이르러 용안을 우러러보며 알현하지 않는다면

   곧 저의 조그마한 정성도 펼치지 못하게 되니 후회한들 어찌 미치겠나이까?

   다만 신이 바야흐로 장차 300년 종사와 수천리 백성으로써 폐하께 의지하여 의탁할 것이오니 

   인정과 도리가 참으로 불쌍하고 가련하나이다.

   만일 일이 잘못된다면 차라리 칼을 빼어 자결하느니만 못할 것이옵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성자(성상)께옵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으로 분명한 조지(황제의 교지)를 내려주시어

   이로써 신이 안심하고 귀순할 길을 열어주시길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폐하께 아뢰나이다.>



요약.

1637년 1월 25일 강화도를 함락한 도르곤은 라석과 호구를 홍 타이지에게 보내 약탈한 물품 목록을 보고한다.

1월 27일 마침내 인조는 남한산성의 출성을 결심하고 홍 타이지에게 서신을 보낸다.

다만 조선 종사의 보존과 인조의 안위를 보장할 조서를 내려달라 청한다.

한편 인조의 서신을 들고 청군으로 간 최명길은 세명의 청나라 장수들과 회견하였는데

최명길은 척화파 박송건에 대해서 주동자 홍익한은 이미 평양에 있고

남한산성에 있는 자들은 그저 부화뇌동한 어리석은 자 몇 명 뿐이며 

오로지 명나라와의 의리 때문에 그리한 것이고 이는 여인의 정절과 같다고 항변한다.

이를 들은 청나라 장수들은 크게 웃었고 인조가 출성한다면 양국의 전쟁은 멈출 것이라 말한다.

마푸타는 인조의 출성날짜는 홍 타이지에게 보고하여 결정한 후 통보하겠다 말한다.

한편 조정에서는 인조와 세자가 함께 출성함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또한 출성이 결정되자 김상헌은 조정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

김류는 척화파로 박송할 인물 선별에 나서는데 자진해서 나가겠다는 자들과

화친을 배척했던 삼사의 사람들을 많이 잡아서 보내면 청측이 기뻐할 것이라 인조에게 말한다.


-18부에서 계속-


명과의 의리를 여인의 정절에 비유하자 크게 웃은 청나라 장수들 병자호란 이야기

1637년 1월 27일 마침내 인조는 남한산성의 출성을 결심하고 

홍 타이지에게 안위를 보장해주면 성을 나가겠다는 서신을 보냅니다.

이때 최명길이 사신으로 갔지요.


당초 홍 타이지가 인조에게 요구한 가장 큰 조건은 두 가지였습니다.

1. 인조는 성을 나와 짐을 알현하라!

2. 척화파 대신 3~4명을 박송해서 보내라! 반드시 죽이겠다!


척화파 박송건은 인조를 비롯한 조정의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청이 요구한 홍 타이지 추존 행사에 참가하라는 것은 

조선으로는 명을 버리고 청을 황제국으로 섬기라는 뜻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척화는 명분상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즉 인조 입장에서는 척화를 주장한 자들은 어리석지만 명분이 있고 충심이 있는 자들이었고

이들을 내몰아 적국에 내준다는 것은 차마 실행하기가 난감한 상황이었지요.

몇 차례 척화파 박송은 우회적으로 힘들다고 청측에 표현하였으나 홍 타이지의 의지는 매우 강했습니다.

양국이 이 사단이 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조선은 이 책임을 척화파들에게 있다 항변하였고 

홍 타이지는 반드시 책임에 따른 처분을 내려야 할 입장이었기 때문에 

척화파 대신 3~4명은 반드시 처형하겠다 천명한 상태였지요.


이에 인조는 신하들이 알아서 결정해 주길 원했고

김상헌을 비롯한 남한산성의 많은 신하들이 모두 자진해서 박송당하겠다 말합니다.

이때 최명길은 자신의 사돈이기도 하며 척화를 강하게 주장했던 홍익한을 척화파 주동자로 지목하여 청측에 넘기기로 합니다.

당시 홍익한은 52세로 평양 부서윤으로 임명받아 평양에 나가있던 상태였습니다.

홍익한을 척화파 우두머리로 지목했다는 것은 52세 연상이거나 평양 부서윤 직급 이상의

관리들은 당연히 제외되기 때문에 조정의 대다수 대신들 또한 대상에서 제외되는 잇점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홍익한은 용골대(잉월다이)가 왔을 때 그 목을 쳐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는 등 극렬하게 척화를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김류는 자진해서 나가겠다는 사람들과 지난 세월 척화를 주장한 삼사의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모아 청군에 보내면 홍 타이지가 기뻐할 것이라 말합니다.

인조는 많은 사람을 보낸다고 홍 타이지가 용서해 주겠느냐며 주저하지요.


여하튼 출성이 결정되고 국서를 들고 청군으로 나간 최명길을 세 명의 청나라 장수가 맞이합니다.

한 명은 용골대(잉월다이)였고 나머지 두 명은 용골대의 상석에 앉아 깔끔한 용모를 갖춘 어떤 인물들이었습니다.

용골대의 당시 관직이 장관급이며 기주급이었으니 그 위의 관리라면 황실인물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최명길은 세 장수에게 인조가 출성할 것이라 말하고

척화파 박송건에 대해서는 주동자를 이미 내쳐서 평양에 있고

남한산성에는 부화뇌동한 어리석은 자 몇만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이들이 척화를 주장한 까닭은 명나라와의 의리 때문이며 이는 여인의 정절과 같다고 말하자

청나라 장수들이 크게 기뻐하며 웃었다고 합니다.



승정원일기 1637년 1월 27일 기사中

신이 지난번의 뜻으로 말하기를, 

주모자는 현재 평양에 있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내쫓겨 밖에 있고 

약간 부화뇌동(附和雷同)한 사람은 죄를 가하지 않아 여기에 들어와 있다

만약 끝까지 보내지 않는다면 황제께서 필시 우리를 무성의하다 여길 것이므로 지금 자세히 조사하고 있으니, 

추후에 국서를 지어 보내겠다.……’ 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저들이 뭐라고 대답하였는가?”

하자, 최명길이 아뢰기를,

“신이 일어나서 나올 때 말하기를, ‘척화한 사람들이 우리와 뜻은 다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그 죄가 용서해 줄 만한 점이 있으니, 

그들의 본의는 300년 동안 명나라 조정을 섬겼으므로 대번에 저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것뿐이다. 

그러나 이제 이미 청나라의 신하가 된 이상 당연히 대조(大朝)에 충성심을 옮길 것이니, 

여인에게 비유한다면 당초에 거절한 자를 정절(貞節)이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 하니, 

세 사람이 요란하게 웃고는 대답하기를, ‘알았다.’ 하고서 노기가 풀리는 기색이 있는 듯했습니다.”

하였다. 이홍주가 아뢰기를,

“대체로 기뻐하는 기색이 있었습니다.”

(중략)

아뢰기를,

용골대가 나왔습니다. 두 사람은 전에 보지 못한 자들이었는데, 

골대의 상석에 앉아 있는 모습이 지극히 깨끗하고 준수하였으며 그들이 말하기를 ‘문장을 잘 짓는다.’고 하니 

아마도 한(汗)의 측근인 높은 신분의 신하인 듯합니다.”


승정원일기 1637년 1월 28일 기사中

김류가 아뢰기를,

“비록 미리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반드시 먼저 정탈을 하셔야 때에 닥쳐서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척화한 사람을 오늘 보내야 하는데도 사람들이 모두 엄호하면서 곧바로 지목하지 않으니, 

비록 누차 자세히 조사한다 해도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저들이 이미 수모(首謀)하여 맹약을 무너뜨린 자를 대상으로 말했으니, 

그렇다면 지난봄에 의견을 상주한 자도 해당될 수 있을 것이고, 그 뒤로 준엄하게 논한 자도 의당 해당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자수한 자 이외에 지난봄에 그 일을 말한 사람이 또한 한두 사람이 아니니, 

이미 누가 가볍고 누가 무거운지도 모르는 상황에 또 어떻게 취사(取捨)할 수 있겠습니까. 

신들의 생각으로는 그 당시의 삼사(三司)와 오늘 자수한 자를 모두 호송한다면 저들은 필시 많은 사람을 보낸 데 대해 

기뻐할 것이고 자기들의 위엄을 두려워해서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리라 봅니다.”

(중략)

김류가 아뢰기를,

“만약 한두 사람을 보낸다면 반드시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니, 많은 사람을 보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두세 사람을 보낸다고 말해 놓고서 많은 사람을 보낸다면 화를 면할 길이 있지 않겠는가.”

하니, 김류가 아뢰기를,

저들이 용렬한 자는 아니니 어찌 다 죽일 리야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을 보낸다면 혹 죽이지 않겠지만, 

한두 사람만 보낸다면 필시 화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하였다. 



당시 인조의 심정은 다음 한 마디에 응축되어 있는듯싶습니다.


조선왕조실록 1637년 1월 26일 기사中

상이 이르기를,
형세가 이미 막다른 길까지 왔으니, 차라리 자결하고 싶다
 그러나 저들이 이미 제궁(諸宮)을 거느리고 인질로 삼고 있으니, 
 나 또한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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