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어 만문노당 285부-멋대로 움직인 정찰부대를 심문하다! 만문노당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만문노당은 누르하치의 일대기를 기록한 무권점 만문 사서 [만문원당/구만주당]을 
건륭조에 권점을 넣고 일부 내용을 변경하여 편찬하였습니다.
기 연재했던 내국사원당이 만주의 시조 부쿼리용숀부터 1584년 9월까지만 기록되어 있는데
만문노당은 1607년부터 기록이 시작됩니다.

만주어의 한글 발음은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하겠습니다.
만주어 문법을 이제 갓 배우고 있으며,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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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i beye gaibumbi kai.
시니 버예 가이붐비 카이.
너의 몸 전사함 이니라.

sini beye dain de gaibuci. geren gurun ainambahafi sambi seme.
시니 버예 다인 더 가이부치. 거런 구룬 아이남바하피 삼비? 서머.
너의 몸 적 에 전사하면. 여러 나라 어떻게 아느냐? 하며.

karun i ejen wajima gebungge niyalma be waha.
카룬 이 어전 와지마 거붕어 냘마 버 와하.
염탐 의 어전 와지마 이름난 사람 을 죽였다.

arbuha. samha. tuba. jerde duin karun i niyalma acafi.
아르부하. 삼하. 투바. 저르더 두인 카룬 이 냘마 아차피.
아르부하. 삼하. 투바. 저르더 4 염탐 의 사람 만나서.

ceni cisui hvlhame nikan be sucufi.
처니 치수이 훨하머 니칸 버 수추피.
그들 뜻대로 몰래 한족 을 습격하고.

morin eihen be gaifi. baha nikan i etuku sume gaifi jidere de.
모린 어이헌 버 가이피. 바하 니칸 이 어투쿠 수머 가이피 지더러 더.
말 나귀 를 취하고. 얻은 한족 의 옷 벗기며 취하고 올 때에.

nikan i cooha emu tanggv isime juwe tu jafafi amcanjifi.
니칸 이 초오하 어무 탕우 이시머 줘 투 자파피 암찬지피.
한족 의 군대 1 100 이르며 2 둑(군기) 잡고서 쫓아오고.

tere cooha de karun i ejen jerde ujulafi amasi dosifi.
터러 초오하 더 카룬 이 어전 저르더 우줄아피 아마시 도시피.
그 군대 에 염탐 의 어전 저르더 앞장서서 뒤로 들어가서.

nikan i cooha axxarakv ilihai alime gaiha manggi.
니칸 이 초오하 앗샤라쿠 일이하이 알이머 가이하 망이.
한족 의 군대 움직이지못하고 서서 받으며 가져간 뒤에.

dosime genere orin funceme karun i niyalma. gemu gabtame dosire jakade.
도시머 거너러 오린 푼처머 카룬 이 냘마. 거무 갑타머 도시러 자카더.
들어가며 갈 20 남짓 염탐 의 사람. 모두 쏘며 들어갈 적에.

nikan i tanggv isire cooha axxafi burulaha manggi.
니칸 이 탕우 이시러 초오하 앗샤피 부룰아하 망이.
한족 의 100 이를 군대 움직이고 도망간 뒤에.

sacime dosifi sunja niyalma wafi. amasi bedereme jifi.
사치머 도시피 순자 냘마 와피. 아마시 버더러머 지피.
베며 들어가고 5 사람 죽이고. 뒤로 물러나며 와서.

tere gisun be beise de alahakv. baha
터러 기순 버 버이서 더 알아하쿼. 바하
그 말 을 버이러들 에 알리지않고. 얻은

*ainambahafi[아이남바하피] : 어떻게, 어찌 얻느냐? 바라다.
*alime gaimbi[아리머 가임비] : 직역은 [받으며 가지다]이나 [받아들이다/맞이하다]의 뜻이 있음.





   (적이 온 것을 네가 모르면) 너의 몸 전사하느니라.
   너의 몸 적에 전사하면 여러 나라 어떻게 아느냐?>
하며 염탐의 어전 와지마라는 사람을 죽였다.
아르부하, 삼하, 투바, 저르더 4 염탐의 사람 만나서 그들 뜻대로 몰래 한족을 습격하고
말과 나귀를 취하고 잡은 한족의 옷 벗기며 빼앗으며 올 때에
한족의 군대 100명 이르며 2둑(군기) 잡고서 쫓아오고
그 군대에 염탐의 어전 저르더가 앞장서서 뒤로 들어가서 
한족의 군대 움직이지 못하고 서서 받으며 가져간 뒤에
들어가며 간 20명 남짓 염탐의 사람이 모두 쏘며 들어갈 적에
한족의 100명에 이르는 군대 움직이고 도망간 뒤에
베며 들어가고 5 사람 죽이고 뒤로 물러나며 와서 그 말을 버이러들에 알리지 않고 얻은

요약
1620년 1월 누르하치는 정찰 부대(카룬)의 어전 와지마가 멋대로 말을 풀었다며 처형한다.
한편 또 다른 정찰 부대인 저르더 니루의 병사 4명이 몰래 한족을 습격하고 약탈하고 돌아오는데 
명나라 군대 100명이 추격하였다.
이를 알아챈 저르더는 20명을 이끌고 반격에 나서 공격하니 명군이 패퇴하였다.
저르더 부대는 명군 5명을 죽였으나 이를 버이러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286부에서 계속-

만주어 만문노당 284부-정찰에 실패한 장교는 사형이다! 만문노당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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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연재했던 내국사원당이 만주의 시조 부쿼리용숀부터 1584년 9월까지만 기록되어 있는데
만문노당은 1607년부터 기록이 시작됩니다.

만주어의 한글 발음은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하겠습니다.
만주어 문법을 이제 갓 배우고 있으며,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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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imbi seme akdarakci. be gashvre seme henduhe manggi.

소밈비! 서머 앜다라쿼치. 버 가스훠러! 서머 헌두허 망이.
숨겼다! 하며 믿지않는다면. 우리들 맹세하리! 하며 말한 뒤에.

tere elcin i gisun be ineku ui jaisang. bayangga geren de donjibume gisurefi.
터러 얼친 이 기순 버 이너쿠 우이 자이상. 바양아 거런 더 돈짐부머 기수러피.
그 사신 의 말 을 같은 우이 자이상. 바양아 무리 에 듣게하며 말하고.

gaifi tebuhe cahar ubasi. haise gebungge juwe niyalma be sindafi unggihe.
가이피 터부허 차하르 우바시. 하이서 거붕어 줘 냘마 버 신다피 웅이허.
취하고 머문 차하르 우바시. 하이서 이름난 2 사람 을 놓아주고 보냈다.

tere biyade. wajima gebungge karun i ejen.
터러 뱌더. 와지마 거붕어 카룬 이 어전.
그 달에. 와지마 이름난 염탐 의 어전.

karun genehe bade. yaluha morin i enggemu be gemu gaifi sula sindaha be.
카룬 거너허 바더. 얄우하 모린 이 엉어무 버 거무 가이피 술아 신다하 버.
염탐 간 땅에. 탄 말 의 안장 을 모두 취하고 느슨하게 풀어줌 을.

han i beye safi hendume.
한 이 버예 사피 헌두머.
한 의 스스로 알고 말하길.

simbe karun bi seme. geren gurun gemu suweni karun de akdahabi kai.
심버 카룬 비! 서머. 거런 구룬 거무 숴니 카룬 더 앜다하비 카이.
너를 염탐 있다! 하며. 여러 나라 모두 너희의 염탐 에 의존함이었 느니라.

karun i morin be si gemu sindafi sula bici.
카룬 이 모린 버 시 거무 신다피 술아 비치.
염탐 의 말 을 너 모두 놓아주고 느슨하게 있으면.

dain be saha manggi. sindaha morin be si adarame bahambi.
다인 버 사하 망이. 신다하 모린 버 시 아다라머 바함비?
전쟁 을 안 뒤에. 풀어준 말 을 너 어찌하여 얻겠느냐?

dain i dosire be si bahafi sarkvci.
다인 이 도시러 버 시 바하피 사르쿼치.
적 의 들어옴 을 너 얻어서 알지못하면.

dain de
다인 더
적 에






    (여진족을) 숨겼다! 하며 믿지 않는다면 우리들 맹세하리!>
하며 말한 뒤에 그 (몽고 너이치 한이 보낸) 사신의 말을 같은 우이 자이상과 바양아 무리에 듣게 하며 말하고
취하고 머문 차하르 우바시와 하이서라는 2 사람을 놓아주고 보냈다.
그달에 와지마라는 염탐의 어전은 염탐 간 땅에 탄 말의 안장을 모두 취하고 느슨하게 풀어준 것을
한(누르가치)의 스스로 알고 말하길
   <너를 염탐 있다! 하며 여러 나라 모두 너희의 염탐에 의존하였었느니라.
    염탐의 말을 너 모두 놓아주고 느슨하게 있으면 전쟁을 안 뒤에 풀어준 말을 너 어찌하여 얻겠느냐?
    적의 들어옴을 너 (정탐) 얻어서 알지 못하면 적에

요약.
1620년 1월 몽고 여러 부족이 후금에 사죄 사절단을 보낸다.
칼카5부의 너이치 한도 여진족 250명을 데리고 있다며 날이 풀리면 곧 보내겠다고 약조한다.
이에 누르하치는 억류했던 차하르의 사신 우바시와 하이서를 돌려보낸다.
또한 너이치 한의 말을 다른 몽고 사신에게 들려주어 몽고 여러 부족이 자신을 따르고 있음을 알려준다.
한편 이달에 염탐 부대의 어전 와지마가 정찰을 나간 곳에서 말을 풀어서 방목한 사실을 누르하치가 알게 된다.

-285부에서 계속-

만주어 만문노당 283부-계속되는 몽고 부족의 사죄 사절단! 만문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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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문노당은 누르하치의 일대기를 기록한 무권점 만문 사서 [만문원당/구만주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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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문노당은 1607년부터 기록이 시작됩니다.

만주어의 한글 발음은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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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lome ihan benjire.
톨오머 이한 번지러!
헤아리며 소 보내리!

jai yehe ci burulame genehe juwan niyalma bi.
자이 예허 치 부룰아머 거너허 주완 냘마 비.
다시 예허 로부터 도망가며 간 10 사람 있다.

tere be halhvn oho manggi gama.
터러 버 할훤 오호 망이 가마!
그 를 뜨겁게 된 뒤에 데려가마!

te ere beikuwen de unggici. gemu geceme bucembi.
터 어러 버이쿠원 더 웅이치. 거무 거처머 부첨비.
지금 이 추움 에 보내면. 모두 얼며 죽는다.

erei dabala. bifi burakv seme mimbe akdarakvci. bi gashvre seme henduhe manggi.
어러이 다발아. 비피 부라쿠? 서머 밈버 앜다라쿼치. 비 가스훠러! 서머 헌두허 망이.
이의 뿐. 되고 주지않느냐? 하며 나를 믿지않으면. 내 맹세하리! 하며 말한 뒤에.

terei gisun be kalka i hvng baturu beile i elcin ui jaisang.
터러이 기순 버 칼카 이 훵 바투루 버이러 이 얼친 우이 자이상.
그의 말 을 칼카 의 훵 바투루 버이러 의 사신 우이 자이상.

barin i ebugedei beile i bayangga i juleri gisurefi.
바린 이 어부거더이 버이러 이 바양아 이 줄어리 기수러피.
바린 의 어부거더이 버이러 의 바양야 가 앞에 말하고.

gajiha juwan ihan be gaiha.
가이하 주완 이한 버 가이하.
데려간 10 소 를 취했다.

tebuhe loosa hiya be sindafi unggihe.
터부허 로오사 햐 버 신다피 웅이허.
머물게한 로오사 햐 를 놓아주고 보냈다.

neici han i elcin jifi geli hendume.
너이치 한 이 얼친 지피 걸이 헌두머.
너이치 한 의 사신 와서 또 말하길.

meni beile gashvme genehe bade geren i juleri [원당잔결] niyalma.
머니 버이러 가스훠머 거너허 바더 거런 이 줄어리 [원당잔결] 냘마.
우리의 버이러 맹세하며 간 땅에 무리 의 앞에 [원당잔결] 사람.

juwe tanggv susai niyalma ukame jifi. bi tere be gemu asarahabi.
줘 탕우 수사이 냘마 우카머 지피. 비 터러 버 거무 아사라하비.
2 100 50 사람 도망가며 와서. 내 그 를 모두 보관함이었다.

halhvn oho manggi. gemu gama seme suweni elcin de henduhe sere.
할훤 오호 망이. 거무 가마! 서머 숴니 얼친 더 헌두허 서러.
뜨거움 된 뒤에. 모두 데려가마! 하며 너희의 사신 에 말했다 한다.

tere be
터러 버
그 를
 



 


    (약탈한 소 만큼) 헤아리며 소 보내리!

    다시 예허로부터 도망가며 간 10 사람 있다.
    그를 뜨겁게 된 뒤에 데려가마!
    지금 이 추울 때에 보내면 모두 얼어 죽는다.
    이것 뿐밖에 안되고 주지 않느냐? 하며 나를 믿지 않으면 내 맹세하리!>
하며 말한 뒤에 그의 말을 칼카의 훵 바투루 버이러의 사신 우이 자이상과
바린의 어부거더이 버이러의 바양야가 앞에 말하고 데려간 10 소를 취했다.
머물게 한 로오사 햐를 놓아주고 보냈다.
너이치 한의 사신이 와서 또 말하길
   <우리의 버이러가 맹세하며 간 땅에 무리의 앞에 [원당잔결]
    사람 250 사람 도망가며 와서 내 그를 모두 보관하였었다.
    뜨거움 된 뒤에 모두 (후금에) 데려가마! 하며 너희의 사신에 말했다 한다.
    그것을

요약.
잇단 누르하치의 경고에 결국 1620년 1월 몽고 자뤁에서 해명 사신이 와서 약탈한 예허의 물품을 반납한다.
또한 사람은 겨울이 지나면 보내겠다고 말한다.
누르하치는 자뤁의 말을 칼카의 사신들에게 전해주고 억류했던 로오사를 풀어준다.
또 칼카5부의 너이친 한의 사신이 와서 예허 부족민 250명을 데리고 있다고 말하며
날이 풀리면 모두 보내겠다고 말한다.

-284부에서 계속-

만주어 만문노당 282부-몽고 자루트 부족이 해명하다! (14권) 만문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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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조에 권점을 넣고 일부 내용을 변경하여 편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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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어의 한글 발음은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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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aci dobton taidzu hvwangdi i abkai fulingga i sunjaci aniya
일아치 돕톤 타이주 훠왕디 이 압카이 풀잉아 이 순자치 아냐.
3번째 책 태조 황제 의 하늘의 명령 의 5번째 해.

aniya biyaci abkai fulingga i ningguci aniya. sunja biyade isinahabi
아냐 뱌치 압카이 풀잉아 이 닝우치 야냐. 순자 뱌더 이시나하비.
정 월로부터 하늘의 명령 의 6번째 해. 5 월에 이른다.

juwan duici debtelin abkai fulingga i sunjaci aniya aniya biyaci ilan biyade isinahabi
주완 두이치 덥털인 압카이 풀잉아 이 순자치 아냐 아냐 뱌치 일안 뱌더 이시나하비.
10 4번째 권 하늘의 명령 의 5번째 해 정 월로부터 3 월에 이른다.

tongki fuka sindaha hergen i dangse.
통기 푸카 신다하 허르건 이 당서.
점 권 놓은 문자 의 당자.

○ xanggiyan bonio aniya. aniya biyai ice ilan de.
○ 샹얀 보뇨 아냐. 아냐 뱌이 이처 일안 더.
○ 하얀 원숭이 해. 정 월의 초 3 에.

sunja tatan i kalka i beise be gashhvbume genehe elcin isinjiha.
순자 타탄 이 칼카 이 버이서 버 가스훠부머 거너허 얼친 이신지하.
5 부 의 칼카 의 버이러들 을 맹세하게하며 갔던 사신 이르렀다.

isinjiha jai cimari. monggo i butaci beile i emu niyalma ukame jihe be okdome jafafi.
이신지하 자이 치마리. 몽오 이 부타치 버이러 이 어무 냘마 우카머 지허 버 옼도머 자파피.
이른 다음 아침. 몽고 의 부타치 버이러 의 1 사람 도망가며 옴 을 맞이하며 잡아서.

enggeder taiji. ui jaisang. bayangga geren elcin de buhe.
엉어더르 타이지. 우이 자이상. 바양아 거런 얼친 더 부허.
엉어더르 타이지. 우이 자이상. 바양아 여러 사신 에 주었다.

○ tere biyade. jarut ba i jocit keoken i elcin jifi hendume. 
○ 터러 뱌더. 자뤁 바 이 조칱 커오컨 이 얼친 지피 헌두머.
○ 그 달에. 자뤁 땅 의 조칱 커오컨 의 사신 와서 말하길.

bi baicaci. meni gurun i niyalma juwan sejen de tebufi. yehe i jeku be gajihabi.
비 바이차치. 머니 구룬 이 냘마 주완 서전 더 터부피. 예허 이 저쿠 버 가지하비.
내 조사하니. 우리 부족민 의 사람 10 수레 에 머물게하고. 예허 의 양식 을 데려왔었다.

terei jalin de juwan sejen tohoho ihan be benjihe.
터러이 잘인 더 주완 서전 토호호 이한 버 번지허.
그의 때문 에 10 수레 씌운 소 를 보낸다.

erei amala bi geli baicara.
어러이 아말아 비 걸이 바이차라!
이의 뒤 내 또 조사하겠다!

jai jeku gajiha niyalma tucici. geli erei adali sejen
자이 저쿠 가지하 냘마 투치치. 걸이 어러이 아달이 서전
다시 양식 가져온 사람 살피니. 또 이와 똑같은 수레

*xanggiyan bonio aniya[샹얀 보뇨 아냐] : 하얀 원숭이 해. 경신년(庚申年), 1620년.





(만문노당) 3책 태조 황제의 천명 5년(1620년) 정월로부터 천명 6년(1621년) 5월에 이른다.
14권 천명 5년(1620년) 정월로부터 3월에 이른다.
유권점 문자의 당자(관문서)
○ 하얀 원숭이 해(1620년) 정월 3일에 5부 칼카의 버이러들을 맹세하게 하러 간 사신 이르렀다.
이른 다음날 아침에 몽고의 부타치 버이러의 1 사람 도망가며 오는 것을 맞이하고 잡아서
엉어더르 타이지, 우이 자이상, 바양아 여러 사신에 주었다.
○ 그달에 자뤁 땅의 조칱 커오컨의 사신이 와서 말하길
   <내 조사하니 우리 부족민의 사람 10 수레에 머물게 하고 예허의 양식을 데려왔었다.
    그 때문에 10수레 씌운 소를 보낸다.
    이뒤에 내 또 조사하겠다!
    다시 양식 가져온 사람 살피니 또 이와 똑같은 수레


요약.

1620년 1월 3일 칼카5부에 갔던 사신이 돌아왔다.

누르하치는 몽고 부타치 버이러 소속의 도망자 한 명을 칼카5부의 사신에게 인도하였다.

이달에 몽고 자뤁에서 사신이 와서 예허에서 약탈한 사람과 물품을 반납하겠다고 전한다.


-283부에서 계속-


진만인적 한세충 16부-대승! 중흥의 제1 무공을 세우다! 송사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거의 유일하게 무공으로 송사에 만인적이라 기록된 한세충에 대해서 연재하고 있습니다.


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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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年三月,進開府儀同三司,充淮南東、西路宣撫使,置司泗州。

時聞李橫進師討偽齊,議遣大將,以世忠忠勇,故遣之。

仍賜廣馬七綱,甲千副,銀二萬兩,帛二萬匹;

又出錢百萬緡,米二十八萬斛,為半歲之用。

命戶部侍郎姚舜明詣泗州,總領錢糧;

倉部郎官孫逸如平江府、常秀饒州,督發軍食。

李橫兵敗還鎮,世忠不果渡淮。

四年,以建康、鎮江、淮東宣撫使駐鎮江。

是歲,金人與劉豫合兵,分道入侵。

帝手劄命世忠飭守備,圖進取,辭旨懇切。

世忠受詔,感泣曰:

「主憂如此,臣子何以生為!」

遂自鎮江濟師,俾統制解元守高郵,候金步卒;

親提騎兵駐大儀,當敵騎,伐木為柵,自斷歸路。

會遣魏良臣使金,世忠撤炊爨,紿良臣有詔移屯守江,良臣疾馳去。

世忠度良臣已出境,即上馬令軍中曰:

「眡吾鞭所向。」

於是引軍次大儀,勒五陣,設伏二十餘所,約聞鼓即起擊。

良臣至金軍中,金人問王師動息,具以所見對。

聶兒孛堇聞世忠退,喜甚,引兵至江口,距大儀五里;

別將撻孛也擁鐵騎過五陣東。

世忠傳小麾鳴鼓,伏兵四起,旗色與金人旗雜出,金軍亂,我軍迭進。

背嵬軍各持長斧,上揕人胸,下斫馬足。

敵被甲陷泥淖,世忠麾勁騎四面蹂躪,人馬俱斃,遂擒撻孛也等二百餘人。

所遣董旼亦擊金人於天長縣之鵶口,擒女真四十餘人。

解元至高郵,遇敵,設水軍夾河陣,日合戰十三,相拒未決。

世忠遣成閔將騎士往援,複大戰,俘生女真及千戶等。

世忠複親追至淮,金人驚潰,相蹈藉,溺死甚眾。

捷聞,群臣入賀,帝曰:

「世忠忠勇,朕知其必能成功。」

沈與求曰:

「自建炎以來,將士未嘗與金人迎敵一戰,今世忠連捷以挫其鋒,厥功不細。」

帝曰:

「第憂賞之。」

於是部將董旼、陳桷、解元、呼延通等皆峻擢有差。

論者以此舉為中興武功第一。

[소흥(紹興/남송 1대 황제 고종의 #2연호)] 3년(1133년) 3월에,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로 진급(進)하였고, 
회남(淮南) 동로(東)와 서로(西路) 선무사(宣撫使)로 충원(充)되었고, 사주(泗州)에 치사(置司/관청을 설치함)하였다.

이때 이횡(李橫)이 진사(進師/진군)하여 위제(偽齊/금의 괴뢰국 제나라)를 토벌(討)한다는 것을 듣고는,

보낼 대장(大將)을 의논(議)하였는데, 한세충(世忠)이 충용(忠勇)하니, 이런 연고(故)로 보냈다.

거듭 광마(廣馬/광주의 말) 7마리, 갑옷(甲) 1천 벌, 은(銀) 2만 냥, 백(帛/비단) 2만 필(匹)을 하사(賜)하였다.

또 전(錢/돈) 100만 민(緡/돈꿰미), 쌀 28만 곡(斛/말)을 내어, 반세(半歲/반년)의 용품(用)으로 하였다.

명(命)하여 호부시랑(戶部侍郎) 요순명(姚舜明)에게 사주(泗州)에 예(詣/이름)하여,

전량(錢糧/돈과 곡식)을 총령(總領/총괄)하게 하였다.

창부낭관(倉部郎官) 손일(孫逸)이 평강부(平江府)와 상수(常秀)의 요주(饒州)에 가서, 군식(軍食/군량)을 독발(督發/독려)하였다.

이횡(李橫)의 병(兵)이 패(敗)하여 환진(還鎮/진으로 돌아옴)하자, 한세충(世忠)이 마침내 회(淮)를 건너지 못하였다.

[소흥(紹興/남송 1대 황제 고종의 #2연호)] 4년(1134년)에, 
건강(建康)과 진강(鎮江) 및 회동(淮東) 선무사(宣撫使)로 삼아 진강(鎮江)에 주둔(駐)하였다.

이해에, 금인(金人)이 유예(劉豫)와 더불어 합병(合兵)하여, 분도(分道/길을 나눔)하여 입침(入侵/침략하여 들어옴)하였다.

제(帝)가 수차(手劄/친필 명령서)하여 한세충(世忠)에게 수비(守備)를 칙(飭/단단히 경계함)하라 명(命)하였고,

진취(進取/나아가 취함)를 도모(圖)하게 하였는데, 사지(辭旨/조서의 말씀)가 간절(懇切)하였다.

한세충(世忠)이 수조(受詔/조서를 받음)하자, 감읍(感泣/감격하여 욺)하여 말하길

「주상(主)의 우(憂/근심)가 이와 같으니, 신자(臣子)가 어찌 이로써 살겠느냐!」

마침내 진강(鎮江)으로부터 군대가 건넜는데,

통제(統制) 해원(解元)을 시켜 고우(高郵)를 수(守/지킴)하게 하고는, 금(金)의 보졸(步卒)을 후(候/망봄, 염탐함)하게 하였다.

친히(親) 기병(騎兵)을 제(提/이끎)하여 대의(大儀)에 주둔(駐)하였고,

적기(敵騎/적군의 기병)를 방어하며, 벌목(伐木/나무를 벰)하여 책(柵)으로 하였고,

귀로(歸路/퇴로)를 자단(自斷/스스로 끊음)하였다.

때마침 위량신(魏良臣)을 금(金)에 사신(使)으로 보냈는데, 한세충(世忠)이 취산(炊爨/불을 때어 밥을 지음)을 철(撤/치움)하였고,

위량신(良臣)을 이둔(移屯/둔을 옮김)하여 수강(守江/강을 지킴)하는 조서(詔)가 있는 것처럼 태(紿/속임)하였고,

위량신(良臣)이 질치(疾馳/급히 달림)하여 가버렸다.

한세충(世忠)이 위량신(良臣)이 이미(已) 출경(出境/국경을 나감)함을 탁(度/헤아림)하여,

곧 상마(上馬/말에 올라 탐)하고 군중(軍中)에 영(令)하여 말하길

「내 채찍이 향하는 곳을 보라!」

이에 인군(引軍/군을 이끎)하여 대의(大儀)에 차(次/머묾)하였고, 오진(五陣)을 늑(勒/정돈함)하여,

20여 곳에 설복(設伏/복병을 설치함)하였고, 문고(聞鼓/북소리를 들음)하면 곧 기격(起擊/일어나 공격함)하기로 약조(約)하였다.

위량신(良臣)이 금(金)의 군중(軍中)에 이르자, 금인(金人)이 왕사(王師/임금의 군대)의 동식(動息/움직임과 휴식)을 문(問/물음)하였고,
일일이 소견(所見/본 바)으로써 대답(對)하였다.

섭아(聶兒) 패근(孛堇)이 한세충(世忠)이 퇴각(退)한다는 것을 듣고는, 희심(喜甚/심히 기뻐함)하였고,

인병(引兵/병을 이끎)하여 강구(江口)에 이르렀는데, 대의(大儀)와의 거리(距)가 5리(里)였다.

별장(別將) 달패야(撻孛也)가 철기(鐵騎)를 옹(擁/낌)하여 오진(五陣)의 동쪽(東)을 과(過/지나 감)하였다.

한세충(世忠)이 소기(小麾/작은 깃발)를 전(傳)하고 명고(鳴鼓/북을 쳐서 울림)하니,

복병(伏兵)이 사방(四)에서 기(起/일어남)하였고, 기(旗)의 색(色)이 금인(金人)의 기(旗)와 함께 난출(雜出/뒤섞여 나타남)하니,

금군(金軍)이 혼란(亂)하였고, 아군(我軍)이 질진(迭進/번갈아 나아감)하였다.

배외군(背嵬軍)이 각각(各) 장부(長斧/긴 도끼)를 지(持/손에 쥠)하여, 

위로는 인흉(人胸/사람의 가슴)을 침(揕/찌름)하였고, 아래로는 마족(馬足/말의 다리)을 작(斫/벰)하였다.

적(敵)이 피갑(被甲/갑옷을 입음)하여 니뇨(泥淖/진창, 수렁)에 함(陷/빠짐)하였고,

한세충(世忠)이 경기(勁騎/강한 기병)를 지휘(麾)하여 사면(四面)을 유린(蹂躪/함부로 짓밟음)하였고,

인마(人馬)가 구폐(俱斃/모두 넘어져 죽음)하였고, 마침내 달패야(撻孛也) 등(等) 200여인을 금(擒/사로잡음)하였다.

보낸 동민(董旼) 역시(亦) 금인(金人)을 천장현(天長縣)의 아구(鵶口)에서 공격(擊)하여,

여진(女真) 40여인을 금(擒/사로잡음)하였다.

해원(解元)이 고우(高郵)에 이르러, 우적(遇敵/적과 조우함)하였고, 수군(水軍)은 협하(夾河/하천을 낌)하여 진(陣)을 설치(設)하였고,

하루에 13번 합전(合戰)하였는데, 상거(相拒/서로 막음)하여 미결(未決/결정되지 못 함)하였다.

한세충(世忠)이 성민(成閔)을 보내 기사(騎士/기병)를 장(將/거느림)하여 왕원(往援/구원하여 감)하였고,

거듭 대전(大戰/크게 싸움)하였는데, 여진급(女真及) 천호(千戶) 등(等)을 부생(俘生/생포함)하였다.

한세충(世忠)이 거듭 친추(親追/친히 추격함)하여 회(淮)에 이르자, 금인(金人)이 경궤(驚潰/놀라 흩어짐)하였고,

서로 도자(蹈藉/짓밟음)하였고, 익사(溺死)가 심히(甚) 많았다.

첩문(捷聞/승전을 보고함)하자, 군신(群臣/뭇 신하)이 입하(入賀/들어와 하례함)하였고, 제(帝)가 말하길

「한세충(世忠)은 충용(忠勇)하니, 짐(朕)은 그가 필히(必) 성공(成功)할 것임을 알고 있었노라.」

심여구(沈與求)가 말하길

「건염(建炎/남송 1대 황제 고종의 #1연호) 이래(以來)로부터, 

  장사(將士/장졸)가 금인(金人)과 더불어 일찍이 영적(迎敵/맞이하여 대적함)하여 일전(一戰)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今) 한세충(世忠)이 연첩(連捷/연승)하여 그 봉(鋒/칼날)을 이로써 좌(挫/꺾음)하였으니,

  그 공(功)이 부세(不細/적지 아니 함)하나이다.」

제(帝)가 말하길

「고생한 차례대로 포상(賞)하라!」

이에 부장(部將) 동민(董旼)과 진각(陳桷) 및 해원(解元)과 호연통(呼延通) 등(等)을 

모두 유차(有差/차등이 있음)하게 준탁(峻擢/높이 발탁함)하였다.

논자(論者)가 이 거사(舉)를 중흥(中興/국운이 다시 일어남)의 무공(武功) 제일(第一)로 삼았다.


*30만에 이르던 상중의 반란군을 이용해 괴뢰국 제나라를 공격하다.

→ 남송초 최대 반란군 중 하나인 상중(桑仲)의 부하로 상중의 무리는 30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상중은 균주와 방주를 함락하고 촉을 넘봤는데 지금주(知金州) 왕언(王彥)에게 막혔다.

   이후 상중은 양양을 함락하였고 그 위세가 진동하였다.

   1131년 4월 상중이 등주(鄧州)를 함락하고 부하 이횡(李橫)을 지주사(知州事)로 삼았다.

   1131년 12월 상중은 촉을 확보하기 위해 이횡을 금주로 보냈고 왕언이 다시 이횡을 격파하였다.

   상중은 이횡을 양양과 등주의 부도통제(副都統制)로 삼았다.

   상중은 고종에게 서신을 보내 자신의 군과 관군이 협동으로 금 괴뢰국 제나라를 공격하여

   유예를 죽이고 개봉을 수복하자고 청한다.

   여이호의 청으로 고종은 상중을 절제응원경성군마(節制應援京城軍馬)로 삼아 유예를 공격하게 하였다.

   그러나 상중이 영주(郢州)로 진군하여 군을 훈련시키던 중 부하 곽명(霍明)에게 죽자

   이횡은 군을 이끌고 곽명을 공격하여 죽이고 그 무리의 대장이 된다.

   조정은 1132년 6월 이횡을 양양과 영주(郢)의 진문사(鎮撫使)로 정식 임명하였다.

   이횡은 남송과 연합하여 제나라를 공격하기로 약조하였고 1132년 12월 제나라를 공격하고 여주(汝州)를 수복한다.

   1133년 1월 이횡군은 다시 영창부(潁昌府)를 수복하자

   고종은 기뻐하여 이횡을 양양부(襄陽府), 등주(鄧), 수주(隨), 영주(郢州) 진문사(鎮撫使)에 임명한다.

   이횡은 계속 진군하여 마침내 동경을 수복하기에 이르렀으나 유예를 지원하기 위해 남하한 금군에 의해 대패를 당한다.



1133년 3월에 개부의동삼사로 진급하였고 회남 동로, 서로 선무사로 충원되었으며, 사주에 관청을 설치하였다.

이때 반란군 이횡이 진군하여 조정과 연합하여 금의 괴뢰국 제나라를 토벌한다는 것을 듣고는

보낼 대장을 의논하였는데 한세충이 충용하다 하여 이런 연고로 한세충을 보냈다.

거듭 광주의 명마 7마리, 갑옷 1천 벌, 은 2만 냥, 비단 2만 필을 하사하였다.

또 100만 민, 쌀 28만 곡을 내어 반년치 용품으로 내려주었다.

명을 내려 호부시랑 요순명은 사주에 이르러 돈과 곡식을 총괄하게 하였다.

창부낭관 손일이 평강부와 상수의 요주에 가서 군량 모집을 독려하였다.

이횡의 군대가 패하여 진으로 돌아가자 한세충이 마침내 회를 건너지 못하였다.

1134년에 건강, 진강, 회동 선무사로 삼아 진강에 주둔하게 하였다.

이해에 금나라 군이 유예와 합병하여 길을 나눠 침략하여 들어왔다.

황제가 친서를 써서 한세충에게 수비를 단단히 경계하라 명하였고

군을 이끌고 나아가 취할 것을 도모하게 하였는데 조서의 말씀이 간절하였다.

한세충이 조서를 받들자 감격하여 울며 말하길

   <주상의 근심이 이와 같으니 신하가 어찌 살겠느냐?>

마침내 진강으로부터 군대가 건넜는데 통제 해원을 시켜 고우를 지키게 하고는 금의 보졸을 망보게 하였다.

친히 기병을 이끌고 대의에 주둔하였고 적의 기병을 방어하기 위해 나무를 베어 책을 만들고 퇴로를 스스로 끊어 버렸다.

때마침 위량신을 금에 사신으로 보냈는데 한세충이 취사도구를 치우고

둔을 옮겨서 강을 지키라는 조서가 있는 것처럼 위량신을 속였다.

위량신이 급히 금나라로 가자 한세충이 위량신이 이미 국경을 나갔을 것이라 헤아리고

말에 올라타 군중에 영을 내려 말하길

   <내 채찍이 향하는 곳을 보라!>

이에 군을 이끌고 대의에 머물면서 5진을 정돈하였고 20여 곳에 복병을 설치하여 북소리를 들으면 곧 일어나 공격하기로 약조하였다.

위량신이 금의 군중에 이르자 금나라 사람이 왕사(임금의 군대, 남송군)의 움직임과 휴식을 물었고

위량신이 일일이 본 바대로 대답하였다.

금나라 섭아 패근이 한세충이 퇴각한다는 것을 듣고는 심히 기뻐하였고

병을 이끌고 강구에 이르렀는데 대의와의 거리가 5리였다.

별장 달패야가 철기를 끼고 5진의 동쪽을 지나갔다.

한세충이 작은 깃발을 전하여 북을 쳐서 울리니 복병이 사방에서 일어났고

깃발의 색이 금나라 군의 기와 함게 뒤섞여 나타나니 금군이 혼란에 빠졌으며 아군이 번갈아 나아갔다.

배외군이 각각 장부(긴 도끼)를 손에 쥐고 위로는 금군의 가슴을 찌르고 아래로는 말 다리를 베었다.

적이 갑옷을 입었는데 진창에 빠졌고 한세충이 강한 기병을 지휘하여 사면을 유린하니

금나라 군의 인마가 모두 넘어져 죽었고, 마침내 달패야 등 200여 명을 생포했다.

한세충이 보낸 동민 역시 금나라 군을 천장현의 아구에서 공격하여 여진족 40여인을 생포하였다.

해원은 고우에 이르러 적과 조우하니 수군은 하천을 끼고 진을 설치하여 하루에 13번 합전하였는데

서로 대치하여 승패가 결정되지 못하였다.

한세충이 성민을 보내 기병을 거느리고 구원하여 가게 하여 거듭 크게 싸웠는데 천호 여진급 등을 생포하였다.

한세충이 거듭 친히 추격하여 회에 이르자 금나라 군이 놀라 흩어졌고 서로 짓밝고 익사한 자가 심히 많았다.

승첩을 보고하자 뭇 신하가 조정에 들어와 하례하였는데 황제가 말하길

   <한세충은 충용하니 짐은 그가 필히 성공할 것임을 알고 있었노라!>

심여구가 말하길

   <건염(남송 1대 황제 고종의 #1연호) 이래로부터 장졸들이 금나라 군과 더불어 대등하게 맞아 싸워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지금 한세충이 연승하여 그 칼날을 이로써 꺾었으니 그 공이 적지 아니 하나이다.>

황제가 말하길

   <고생한 차례대로 포상하라!>

이에 부장 동민, 진각, 해원, 호연통 등을 모두 차등 있게 높이 발탁하였다.

논자들은 이 거사를 중흥(국운이 다시 일어남)의 무공(武功) 제일(第一)로 삼았다.


요약.

1133년 양양의 반란군 상중은 고종에게 괴뢰국 제나라를 함께 공격하자고 상소를 올린다.

이에 고종은 한세충을 제나라 토벌 대장으로 삼아 반년치 군비를 지급한다.

그러나 상중이 부하 손에 죽고 뒤를 이은 이횡이 제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출격한

금나라군에게 대패하자 한세충은 회를 건너지 못하고 회군한다.

다음 해 1134년 한세충은 3만 병력을 이끌고 진강에 주둔하였는데 금과 제의 연합군이 남송을 침공하였다.

고종은 한세충에게 친필 서신을 보내 간절하게 국경 수비를 부탁하였고 더불어 강을 건너 공격하기를 희망하였다.

한세충은 조서를 받고 감격하여 울면서 죽음으로써 싸우겠노라 맹세한다.

한세충은 곧장 진강을 건너 주둔하고는 금나라 군을 요격할 준비를 한다.

마침 주화파 위량신이 화친 협상을 위해 금나라 군으로 향하다가 한세충의 군영에 이르자

한세충은 급히 취사도구를 치우고 곧 화친 협상을 위해 퇴각할 것이라고 말해준다.

위량신이 금군 진영에 도착하자 섭아 패근은 한세충 군의 움직임을 넌지시 물어본다.

이에 위량신이 한세충 군이 곧 조서를 받들어 화친 협상을 위해 퇴각할 것이라 말해주었고

섭아는 안심하고 군을 전진시켜 한세충 군이 매복한 대의에서 5리 떨어진 강구에 이른다.

금나라 별장 달패야가 철기를 이끌고 선봉으로 진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세충의 매복군이 들고일어나서 공격하자 금군은 크게 혼란에 빠진다.

또 고우에서는 해원이 수군으로써 금 보병 부대와 대치중이었는데 한세충이 기병을 보내 금군을 격파한다.

한세충은 직접 군을 이끌고 회에 이르러 금군을 격파하였고

금나라 군은 크게 혼란에 빠져 짓밟혀 죽거나 물에 빠져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한세충이 승첩을 조정에 보고하자 뭇 신하들이 크게 기뻐하여 고종에게 하례하자

고종은 한세충이 반드시 승전할 것을 믿었노라고 답한다.

이 당시 남송군이 금나라 군과 싸워 한 번도 제대로 싸워 본 적이 없었는데

논자들은 이 승첩을 남송 부흥의 제1 무공으로 평하였다.


-17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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