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청실록 22부-회군개시! 인조가 또 3궤9고두례를 행하다! 병자호란 관련 사서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그간 원초적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의 맨 마지막 부분, 즉 1636년 11월~12월 병자호란 관련 부분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는데요.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은 1636년이 마지막입니다.

하여 이후의 내용은 한문사서 청실록 태종 문황제실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1부-청태종 남한산성을 둘러보다

2부-아녀자같이 숨느냐? 만세의 웃음거리다!

3부-소국의 왕이 대국의 황제에게 간곡히 청하나이다.

4부-한족 3왕의 화포부대 도

5부-조선의 반격 광교산 전투와 양고리 전사!

6부-청 태종 통곡하고 또 통곡하다!

7부-도르곤 김자점을 추격하다!(홍이포 도착)

8부-목을 길게 빼고 패왕 대국황제의 말씀만 기다리고 있나이다!

9부-선봉대는 돌아가 배를 만들라! 강화도를 먼저 칠 것이노라!

10부-<조선왕 너는 입만 살았다!>조목조목 반박하는 청태종

11부-<엎드려 바라옵건대 황제는 용서하소서!>김상헌이 찢은 그 국서

12부-너의 죄를 사하노라! 성을 나와라! 척화대신 3~4명은 반드시 죽이겠노라!

13부-칭신하다! 그러나 국왕 출성과 척화대신 박송은 거부하다.

14부-강화도 함락!

15부-강화도가 함락되었다! 안 나오면 네 식솔은 어찌 되겠느냐?

16부-폐하(홍타이지)는 신(인조)의 하늘이니 재조지은을 베푸소서!

17부-인조 출성을 결심하다!

18부-인조 눈물로 삼학사를 죽음의 길로 보내다!

19부-조선은 청의 영원한 속국이 될 것이니라!

20부-삼전도(1)

21부-삼전도(2)


병자호란 만주어 만문노당 1부~65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3


청실록 원본 출처 : http://sillok.history.go.kr/mc/main.do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


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2월 1일

辛未朔以所獲朝鮮江華島。人畜財幣。賞給各官有差

초하루 신미일(辛未)에 조선(朝鮮) 강화도(江華島)에서 인축(人畜)과 재폐(財幣/재물)를 소획(所獲)함으로써,

각관(各官)에게 유차(有差)하게 상급(賞給)하였다.


1637년 2월 1일에 조선 강화도에서 사람과 가축 및 재물을 얻음으로써 각 관리에게 차등을 두어 포상하였다.


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2월 2일

○壬申。

上自朝鮮班師命和碩睿親王多爾袞多羅安平貝勒杜度、率滿洲蒙古漢人大軍。

攜所俘獲在後行又命貝子碩託、恭順王孔有德 、懷順王耿仲明 、智順王尚可喜 、

率每牛彔甲士四人及三王下全軍舁紅衣礮。十六位。並朝鮮戰船五十艘往取明皮島

上率諸王貝勒大臣護軍班師朝鮮國王李倧率其群臣出王京十里外跪送

上下馬陞座李倧率群臣行三跪九叩頭禮命坐於

御座左側賜茶李倧仍退至左側遠坐命英俄爾岱馬福塔諭李倧曰爾之山城人民家口已盡付還矣

李倧起謝畢命英俄爾岱馬福塔送李倧還王京

○임신일(壬申)에, 상(上)이 조선(朝鮮)으로부터 반사(班師/회군)하였다.

명(命)하여 화석예친왕(和碩睿親王/호쇼이 머르건 친왕) 다이곤(多爾袞/도르곤),

다라안평패륵(多羅安平貝勒/도로이 얼허운 버이러) 두도(杜度/두두)는

만주(滿洲), 몽고(蒙古), 한인(漢人)의 대군(大軍)을 인솔(率)하고

부획(俘獲/포로)를 휴(攜/끎)하고 후미(後)에서 행군(行)하게 하였다.

또 명(命)하여 패자(貝子/버이서) 석탁(碩託/쇼토), 공순왕(恭順王) 공유덕(孔有德), 회순왕(懷順王) 경중명(耿仲明),

지순왕(智順王) 상가희(尚可喜)는 매(每) 우록(牛彔/니루)마다 갑사(甲士) 4인(人)과 더불어

3왕(王) 예하(下) 전군(全軍)을 인솔(率)하여, 

홍의포(紅衣礮) 16위(位)와 아울러 조선(朝鮮) 전선(戰船) 50소(艘) 를 거(舁/듦)하고

명(明) 피도(皮島/가도)를 왕취(往取/가서 취함)하게 하였다.

상(上)이 제왕(諸王)과 패륵(貝勒) 및 대신(大臣)과 호군(護軍)을 인솔(率)하여 반사(班師/회군)하니,

조선국왕(朝鮮國王) 이종(李倧)이 그 군신(群臣/뭇 신하)를 인솔(率)하고 

왕경(王京/한양) 10리(里) 밖까지 나와 궤송(跪送/꿇어앉아 전송함)하였다.

상(上)이 하마(下馬/말에서 내림)하여 승좌(陞座/자리에 올라감)하니 

이종(李倧)이 군신(群臣/뭇 신하)을 인솔(率)하고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를 행(行)하였다.

명(命)하여 어좌(御座) 좌측(左側)에 좌(坐)하게 하고 이종(李倧)에게 사차(賜茶/차를 하사함)하였다.

이에 퇴(退)하여 좌측(左側) 원좌(遠坐/먼 좌석)에 이르렀다.

명(命)하여 영아이대(英俄爾岱)와 마복탑(馬福塔)으로 하여금 이종(李倧)에게 유지(諭)하여 말하길

   <너의 산성(山城)의 인민(人民)과 가구(家口)는 이미(已) 남김없이 부환(付還/돌려 줌)하였다.>

이종(李倧)이 기(起/일어남)하여 사필(謝畢/사례를 마침)하자,

명(命)하여 영아이대(英俄爾岱)와 마복탑(馬福塔)으로 하여금 이종(李倧)을 전송(送)하여 왕경(王京)에 환(還)하게 하였다.


○1637년 2월 2일에 상이 조선으로부터 회군하였다.
명을 내려 화석예친왕(호쇼이 머르건 친왕) 다이곤(도르곤)과 다라안평패륵(도로이 얼허운 버이러) 두도(두두)는
만주, 몽고, 한인의 대군을 인솔하고 포로를 이끌어 후미에서 행군하게 하였다.
또 명을 내려 패자(버이서) 석탁(쇼토), 공순왕 공유덕, 회순왕 경중명, 지순왕 상가희는 매 우록(니루)마다 갑사 4인과 더불어
3왕 예하 전군을 인솔하여 홍의포 16문과 아울러 조선 전선 50척을 들고 명나라 피도(가도)를 가서 취하게 하였다.
상이 제왕과 패륵 및 대신과 호군(바야라)을 인솔하여 회군하니
조선국왕 이종이 그 뭇 신하를 인솔하고 왕경(한양) 10리 밖까지 나와 꿇어앉아 전송하였다.
상이 말에서 내려 자리에 올라가니 이종이 뭇 신하를 인솔하고 삼궤구고두례를 행하였다.
명을 내려 어좌 좌측에 앉게 하였고 이종에게 차를 하사하였다.
이에 물러나 좌측 먼 좌석에 이르렀다.
명을 내려 영아이대(잉월다이)와 마복탑(마푸타)으로 하여금 이종에게 유지를 내려 말하길
   <너의 산성의 인민과 가구는 이미 남김없이 돌려주었노라!>
이종이 일어나 사례를 마치자 명을 내려 영아이대와 마복탑으로 하여금
이종을 전송하여 왕경(한양)에 돌아가게 하였다.




요약.

1637년 2월 2일 마침내 청 태종의 본군이 회군을 개시한다.

1636년 12월 2일 수도 심양성(성경)을 떠난지 61일이며, 12월 10일 압록강을 건너 조선 땅으로 넘어온 지 52일 만이다.

홍 타이지는 도르곤, 두두에게 만몽 팔기와 우전 초오하(한군)을 통솔하여 

후미군을 편성하고 조선에서 노획한 포로를 수송하게 한다.

또한 쇼토와 한족 3왕(공유덕, 경중명, 상가희)에게 가도(피도) 공략을 명한다.

쇼토가 할당받은 병력은 니루당 갑사4인, 즉 갑사 1332명에 쿠툴어 666명을 포함하면 1998명으로 추정된다.

한족 3왕의 한족군은 1340명(기병670, 보병670)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조선에 건너왔던 청군 총병력 4만7천여 중에 3천3백명을 뽑아 가도를 공략하게 한 것이다.

한편 홍 타이지는 강화도 함락전에 동원된 선박 44척도 가져가라 명한다.

뗏못 수준의 44척은 청에서 육로로 수송하여 조립한 선박이다.

그러나 이미 강화도 인근에 정박했던 44척은 조선인이 모두 불지른 후였다.

또한 한족 3왕군이 보유한 홍이포 16문도 동원하라 명한다.

여기에 조선의 병선 50척 동원령도 인조에게 요구한 상태였다.

홍 타이지는 8기의 친위군인 호군(바야라)만을 이끌고 회군을 개시한다.

인조는 신하들을 거느리고 한양 10리 밖까지 나와 자리를 마련하고 꿇어앉아 청 태종을 전송한다.

이에 홍 타이지는 말에서 내려 자리에 앉았고 인조는 신하들과 함께 다시 한번 3궤9고두례를 행한다.

인조가 이번 병자호란에 3궤9고두례를 총 3번 행했다.

홍 타이지는 인조에게 차를 하사하였고 잉월다이(용골대)와 마푸타(마부대)를 통해

남한산성에 들어가 있던 모든 군민을 한 명도 포로로 잡지 않고 돌려보냈다 말한다.

인조가 사례를 마치자 홍 타이지는 잉월다이와 마푸타로 하여금 인조를 모시고 한양으로 돌아가게 하고는

2달간의 조선원정을 마치고 회군을 개시한다.


-23부에서 계속-




메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