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청실록 23부-조공을 감해 주시오소서! 병자호란 관련 사서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그간 원초적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의 맨 마지막 부분, 즉 1636년 11월~12월 병자호란 관련 부분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는데요.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은 1636년이 마지막입니다.

하여 이후의 내용은 한문사서 청실록 태종 문황제실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1부-청태종 남한산성을 둘러보다

2부-아녀자같이 숨느냐? 만세의 웃음거리다!

3부-소국의 왕이 대국의 황제에게 간곡히 청하나이다.

4부-한족 3왕의 화포부대 도

5부-조선의 반격 광교산 전투와 양고리 전사!

6부-청 태종 통곡하고 또 통곡하다!

7부-도르곤 김자점을 추격하다!(홍이포 도착)

8부-목을 길게 빼고 패왕 대국황제의 말씀만 기다리고 있나이다!

9부-선봉대는 돌아가 배를 만들라! 강화도를 먼저 칠 것이노라!

10부-<조선왕 너는 입만 살았다!>조목조목 반박하는 청태종

11부-<엎드려 바라옵건대 황제는 용서하소서!>김상헌이 찢은 그 국서

12부-너의 죄를 사하노라! 성을 나와라! 척화대신 3~4명은 반드시 죽이겠노라!

13부-칭신하다! 그러나 국왕 출성과 척화대신 박송은 거부하다.

14부-강화도 함락!

15부-강화도가 함락되었다! 안 나오면 네 식솔은 어찌 되겠느냐?

16부-폐하(홍타이지)는 신(인조)의 하늘이니 재조지은을 베푸소서!

17부-인조 출성을 결심하다!

18부-인조 눈물로 삼학사를 죽음의 길로 보내다!

19부-조선은 청의 영원한 속국이 될 것이니라!

20부-삼전도(1)

21부-삼전도(2)

22부-회군개시! 인조가 또 3궤9고두례를 행하다!


병자호란 만주어 만문노당 1부~65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3


청실록 원본 출처 : http://sillok.history.go.kr/mc/main.do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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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2월 2일

○是日朝鮮國王李倧奏請減貢額。疏云以罪而進以恩而退天地。生成。

不啻過之肅瞻耿光霑沃至渥懺悔宿愆悅服新命欲報之德河海猶淺淪浹之澤頂踵。難酬貢誠輸忱實出由中享

上之儀膚髮何惜苐積弱以來民散財竭。所在懸磬公私赤立而詔諭上貢或非地產或雖係地產力有所不逮

竊念千一之會首蒙曠典。名分已定恩義俱明

上撫下効宜盡其道日月之明。旁燭無疆小邦羸迫顛連寧不蒙察必須量力稟定。垂為定式毋負奉

上之禮以盡事大之誠矜愚憐孱既許自新愍窮恤瘠宜垂大德伏願

聖慈。察小邦危迫之私恢大朝薄來之度一以紓將絕之民命一以恢同仁之洪化不勝幸甚。謹具奏聞。

上覽畢遣范文程 額爾格圖傳諭李倧曰爾被圍山城時已有成議今不當言及爾國窮苦朕已知之。丁丑戊寅兩年准免貢物。己卯年。自秋季為始。照例入貢。表爾忠誠此後朕自有定奪今非爾言時也其大貢內。有朝賀禮及餽送使臣之禮。朕不必言。爾自裁之

○이날에 조선국왕(朝鮮國王) 이종(李倧)이 공액(貢額)을 감(減)해달라 주청(奏請/아뢰어 청함)하였는데,

상소(疏)하여 말하길

   <죄(罪)로써 진(進)하시었고, 은혜(恩)로써 퇴(退)하시어 천지(天地)가 생성(生成)되었나이다.

    뿐만 아니라 돌이켜 경광(耿光/빛나는 위엄, 밝은 빛)을 숙첨(肅瞻/엄숙히 바라봄)하니,

    점옥(霑沃/기름에 젖음, 부드러운 은혜를 입음)이 지악(至渥/은혜가 지극에 이름)하여

    참회(懺悔)하고 수건(宿愆/허물을 재계함)하여 신명(新命/새로운 명령)을 열복(悅服/기쁜 마음으로 복종함)하였나이다.

    하해(河海)와 같은 은덕(德)을 보(報/갚음)하고자 하나 

    다만 얕은 연못에 정종(頂踵/머리와 발뒤꿈치)이 빠져 공물(貢)을 수침(輸忱/정성으로 보냄)하기가 난수(難酬/보답하기가 어려움)함은 

    실로(實) 이런 연유(由)에서 나왔나이다.

    향상(享上/조공을 바침)의 의식(儀) 중(中)에 부발(膚髮/피부와 터럭)을 어찌 석(惜/아낌)하겠나이까?

    다만 적약(積弱/약함이 쌓임) 이래(以來) 민산(民散/백성이 흩어짐)하고 재갈(財竭/재물이 고갈됨)하였으며,

    소재(所在/있는 곳)는 현경(懸磬/가난하여 텅 빈 상태)하며 공사(公私)는 적립(赤立/몹시 가난함)하나이다.

    그리고 조유(詔諭)하신 상공(上貢/조공)은 혹(或) 비지산(非地產/토산물이 아님)이거나

    혹(或) 비록 지산(地產/토산물)과 관계(係)되어도 매우 어려워 다소 부체(不逮/미치지 못 함)합니다.

    절념(竊念/혼자 가만히 생각함)하면 두터운 광전(曠典/관대한 법)이 수(首/시작함)하는 천일지회(千一之會/천중의 일의 기회)이며,

    명분(名分)이 이미(已) 정(定)해졌고, 은의(恩義/은혜와 의리)가 구명(俱明/밝게 갖춤)하였나이다.

    상(上)께서 무(撫/어루만짐)하시니 아래는 효(効/본받음)하여 마땅히 그 도리(道)를 다해야만 하나이다.

    일월(日月/해와 달)의 명(明/밝힘)이 방촉(旁燭/두루 비춤)함은 무강(無疆/한이 없음)하나이다.

    소방(小邦)은 리박(羸迫/파리하고 궁함)하여 전연(顛連/잇닿아 넘어짐)하였는데 어찌 몽찰(蒙察/잘 헤아림)하시지 않으시나이까?

    필수(必須)로 역량(量力)을 품정(稟定/여쭈어 의논하여 결정함)할 것이오니 정식(定式/정한 의식)으로 삼아 수(垂/베풂)하신다면

    봉상(奉上/임금에게 바침)의 예(禮)를 무부(毋負/저버리지 않음)하여 이로써 사대(事大)의 정성(誠)을 다하겠나이다.

    긍우(矜愚/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김)하시고 연잔(憐孱/나약함을 가엾게 여김)하시어

    이미(既) 자신(自新/스스로 잘못을 고치고 새롭게 행동함)을 허(許)하셨으니

    민궁(愍窮/궁함을 가엾어 함)하고 휼척(恤瘠/여윔을 구휼함)하시어 마땅히 대덕(大德)을 수(垂/베풂)하시옵소서!

    복원(伏願/엎드려 바람)하옵건대 성자(聖慈/성상)께옵서 소방(小邦)의 위박(危迫/궁하고 위태로움)한 사정(私)을 찰(察/살핌)하시어,

    대조(大朝)가 박래(薄來/박하게 받음)의 도량(度)을 회(恢/넓힘)하신다면

    하나는 이로써 장차(將) 끊어질 민명(民命/백성의 목숨)을 서(紓/느슨하게 함)하게 함이요,

    하나는 이로써 동인(同仁/한 가지로 어질게 대함)의 홍화(洪化/크나큰 덕화)를 회(恢/넓힘)함이오니,

    대단히 행심(幸甚/매우 다행임)이옵나이다.

    주문(奏聞/임금께 아룀)을 근구(謹具/삼가 갖춤)하나이다.>

상(上)이 람필(覽畢/끝까지 읽어 보기를 마침)하고는 범문정(范文程)과 액이격도(額爾格圖)를 보내

전(傳)하여 이종(李倧)에게 유지(諭)하여 말하길

   <네가 산성(山城)에 피위(被圍/포위를 당함)할 때 이미(已) 성의(成議/의논이 이뤄짐)가 있었노라!

    지금(今) 부당(不當/감당할 수 없음)하다 말하고 너의 나라가 궁고(窮苦/궁하고 괴로움)에 이르렀음은 짐(朕)은 이미(已) 알고 있었노라!

    정축년(丁丑/1637년)과 무인년(戊寅/1638년) 양년(兩年)은 준(准/바로잡음)하여 공물(貢物)을 면(免)하노라!

    기묘년(己卯年/1639년) 추계(秋季/가을철)로부터 시작(始)하여 조례(照例/관례에 따름)대로 입공(入貢)하여 

    너의 충성(忠誠/마음에서 우러나는 정성)을 표(表)하라!

    차후(此後) 짐(朕)이 몸소 정탈(定奪/임금의 재결)함이 있을 것이니 지금(今) 네가 말할 때가 아니도다!

    그 대공내(大貢內/크게 조공을 받아들임)는 조하례(朝賀禮/동지,정조,성절,삭일에 임금께 하례하던 예)와 더불어 

    사신(使臣)을 궤송(餽送/호궤하여 전송함)하는 예(禮)가 있다면,

    짐(朕)이 필언(必言/반드시 말함)하지 않아도 너 스스로 재(裁/결정함)하라!>


○1637년 2월 2일에 조선국왕 이종이 조공의 액수를 감해달라 아뢰어 청하며 상소하여 말하길

   <죄로써 오시어 은혜로써 물러나시니 천지가 생성되었나이다.

    뿐만 아니라 돌이켜 빛나는 위엄을 엄숙히 바라보니 부드러운 은혜가 지극에 이르러

    참회하고 허물을 재계하여 새로운 명령을 기쁜 마음으로 복종하였나이다.

    하해와 같은 은덕을 갚고자 하나 다만 얕은 연못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빠져 

    공물을 정성으로 보내어 보답하기가 어려움은 실로 이런 연유에서 나왔나이다.

    조공을 바치는 의식 중에 어찌 피부와 터럭을 아끼겠나이까?

    다만 약함이 쌓인 이래 백성은 흩어졌고 재물은 고갈되었으며 있는 곳은 텅 비어 공사가 몹시 가난하나이다.

    또한 조유하신 조공은 혹 토산물이 아니거나 혹 비록 토산물이라 하여도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 다소 미치지 못하나이다.

    혼자 가만히 생각해보면 두터운 은전히 시작되는 천재일우이며 명분이 이미 정해졌고 은의가 명백하게 갖춰졌나이다.

    상께서 어루만지시니 아래는 본받아 마땅히 그 도리를 다해야만 하나이다.

    해와 달이 밝게 두루 비추는 것은 끝이 없나이다.

    소방은 파리하고 궁하여 잇닿아 넘어졌는데 어찌 헤아리시지 않으시나이까?

    반드시 저희의 역량을 품정(여쭈어 의논하여 결정함)할 것이오니 정식(정한 의식)으로 삼게 해 주신다면

    봉상(임금에게 바침)의 예를 저버리지 않고 이로써 사대(事大)의 정성을 다하겠나이다.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기시고 나약함을 가엾게 여기시어

    이미 스스로 잘못을 고치고 새롭게 행동함을 허락하시었으니

    궁함을 가여워하시고 여윔을 구휼하시어 마땅히 큰 덕을 베푸시오서!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상께옵서 소방의 궁하고 위태로운 사정을 살피시어

    큰 나라가 박하게 받음의 도량을 넓히신다면

    하나는 이로써 장차 끊어질 백성의 목숨을 늦추게 함이요,

    하나는 이로써 천하를 두루 어질게 하시는 크나큰 덕을 넓이는 것이니 매우 다행한 일이옵니다.

    삼가 주문을 갖춰 올리나이다.>

상이 끝까지 읽어보고는 범문정과 액이격도를 보내 전하여 이종에게 유지를 내려 말하길

   <네가 산성에 포위를 당할 때 이미 의논이 이뤄졌노라!

    지금 감당할 수 없다 말하고 너의 나라가 궁하고 괴로움에 이르렀음은 짐은 이미 알고 있었노라!

    정축년(1637년)과 무인년(1638년) 양년은 바로잡아 공물을 면하노라!

    기묘년(1639년) 가을철부터 시작하여 관례를 따라 입공하여 너의 충성을 표하라!

    이후로는 짐이 몸소 재결할 것이니 지금 네가 네가 말할 때는 아니노라!

    그 대공내(조공)는 조하례(동지,정조,성절,삭일에 임금께 하례하던 예)와 더불어 사신을 호궤하여 전송하는 예가 있다면

    짐이 반드시 말하지 않아도 너 스스로 결정하라!>


*대조(大朝)의 박래(薄來/박하게 받음)의 도량(度)

 : 대국은 후왕박래(厚往薄來)를 원칙으로 한다.

   후왕박래란 후하게 주고 박하게 받는다는 뜻으로

   대국이 소국의 조공은 조금 받고,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돌려준다는 뜻이다.


*1637년 1월 28일 결정된 조선이 청에 매년 바쳐야 하는 조공 품목
 황금 100냥, 백은 1000냥, 물소뿔 200대, 표범 가죽 100장, 사슴 가죽 100장, 차 100포,
 수달 가죽 400장, 청서 가죽 300장, 후추 10두, 요도(허리에 차는 칼) 26구, 순도(양날 칼) 20구,
 소목(콩과에 속하는 상록교목) 200근, 큰 종이 1000권, 작은 종이 1500권,
 오조룡석 4령, 여러 가지 모양의 화석 40령, 눈모시 200필, 여러 가지 색의 명주 2000필,
 여러 가지 색의 세마포(가는 삼실로 짠 매우 고운 베) 400필, 여러 가지 색의 세포(곱고 가늘게 짜인 삼베) 1000필,
 포 1400필, 쌀 10000포.


<건륭제 만국내조도 中>



요약.
1637년 2월 2일 인조는 회군하는 청태종에게 책정한 조공의 양을 감해달라 청한다.
이에 홍 타이지는 이미 남한산성 포위중에 서로 간에 조공 액수가 정해졌다 말한다.
그러나 조선이 전쟁의 피해를 입었으니 1637년, 1638년은 공물을 면하고
1639년 가을부터 정상적으로 조공을 하여 충성을 표하라 말한다.
이후로는 조공에 대해 일체 말하지 말고 오직 자신이 결정할 것이라 일침을 놓는다.
대신 각종 경조사 및 사신 접대에 관련된 것은 인조가 알아서 하라고 말한다.

-2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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