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청실록 29부-조선 정벌을 감축 드리오나이다! 병자호란 관련 사서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그간 원초적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의 맨 마지막 부분, 즉 1636년 11월~12월 병자호란 관련 부분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는데요.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은 1636년이 마지막입니다.

하여 이후의 내용은 한문사서 청실록 태종 문황제실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1부-청태종 남한산성을 둘러보다

2부-아녀자같이 숨느냐? 만세의 웃음거리다!

3부-소국의 왕이 대국의 황제에게 간곡히 청하나이다.

4부-한족 3왕의 화포부대 도

5부-조선의 반격 광교산 전투와 양고리 전사!

6부-청 태종 통곡하고 또 통곡하다!

7부-도르곤 김자점을 추격하다!(홍이포 도착)

8부-목을 길게 빼고 패왕 대국황제의 말씀만 기다리고 있나이다!

9부-선봉대는 돌아가 배를 만들라! 강화도를 먼저 칠 것이노라!

10부-<조선왕 너는 입만 살았다!>조목조목 반박하는 청태종

11부-<엎드려 바라옵건대 황제는 용서하소서!>김상헌이 찢은 그 국서

12부-너의 죄를 사하노라! 성을 나와라! 척화대신 3~4명은 반드시 죽이겠노라!

13부-칭신하다! 그러나 국왕 출성과 척화대신 박송은 거부하다.

14부-강화도 함락!

15부-강화도가 함락되었다! 안 나오면 네 식솔은 어찌 되겠느냐?

16부-폐하(홍타이지)는 신(인조)의 하늘이니 재조지은을 베푸소서!

17부-인조 출성을 결심하다!

18부-인조 눈물로 삼학사를 죽음의 길로 보내다!

19부-조선은 청의 영원한 속국이 될 것이니라!

20부-삼전도(1)

21부-삼전도(2)

22부-회군개시! 인조가 또 3궤9고두례를 행하다!

23부-조공을 감해 주시오소서!

24부-회군 중에 약탈은 절대로 금하노라!

25부-승전보를 울려라!

26부-피 흘려 얻은 포로이다! 찾고 싶으면 돈을 내라!

27부-꿇어앉아 전송하는 서북방 조선 관리들!

28부-조선인 포로를 엄히 지켜라!


병자호란 만주어 만문노당 1부~65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3


청실록 원본 출처 : http://sillok.history.go.kr/mc/main.do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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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2월 17일

○丁亥留守盛京和碩鄭親王濟爾哈朗鎮守西邊牛庄多羅武英郡王阿濟格鎮守北邊噶海多羅饒餘貝勒阿巴泰等遣恩格德阿布達禮齎奏言。

皇上親統六師南討朝鮮德威遠播所向無敵近聞平定朝鮮捷音中外臣庶。懽忭無已更仰賴

皇上洪福清寧宮及諸王貝勒等家。並皆康吉隨遣英俄爾岱偕恩格德阿布達禮還盛京。令諸王群臣於二十里外來迎

○是日。黑龍江地方額蘇里屯內俄倫扎爾固齊。克訥布魯達爾漢率九人至。奏言額蘇里屯東約六日程。有從未通我國者三十九屯。今欲來貢不知納貢禮儀求我等同

皇上使臣一人至彼即備方物隨使臣入貢。為此特遣人來其所獻之物。貂狐皮二百有六貂狐衣服七領謹奏

○先是。和碩鄭親王濟爾哈朗。令護軍校喇巴什希侍衛牙巴蘭率護軍五人同鎮守噶海多羅饒餘貝勒阿巴泰會兵捉生阿巴泰遣護軍參領囊古。馬克圖。噶巴喇及噶海守臣卦爾察尼堪率護軍百三十人。駐守噶海騎兵十人共百四十人於初六日由噶海起行初九夜入明境初十日至錦州義州界獲二步卒而還

○虎爾哈部落託科羅氏克益克勒氏耨野勒氏頭目率六十人至盛京貢貂狐皮等物

○정해일(丁亥)에 남아서 성경(盛京)을 지킨 화석정친왕(和碩鄭親王) 제이합랑(濟爾哈朗),
서변(西邊/서쪽 변경) 우장(牛庄)을 진수(鎮守/진주하여 지킴)한 다라무영군왕(多羅武英郡王) 아제격(阿濟格)과
북변(北邊/북쪽 변경) 갈해(噶海)를 진수(鎮守/진주하여 지킴)한 다라요여패륵(多羅饒餘貝勒) 아파태(阿巴泰) 등(等)이 보낸
은격덕(恩格德)과 아포달례(阿布達禮)가 재주(齎奏/상소를 가져옴)하여 말하길
   <황상(皇上)이 육사(六師)를 친통(親統/친히 통솔함)하여 남쪽(南)으로 조선(朝鮮)을 토벌(討)하여,
    덕위(德威/은덕과 위엄)가 원파(遠播/널리 퍼짐)하여 향(向)하는 곳마다 무적(無敵)하였나이다.
    근래(近) 조선(朝鮮)을 평정(平定)하였다는 첩음(捷音/승전보)을 들으니 
    중외(中外)의 신서(臣庶/신하와 서민)가 환변(懽忭/즐거워하고 좋아함)함이 무이(無已/끝이 없음)하여,
    계속하여 황상(皇上)의 홍복(洪福/크나큰 복)을 앙뢰(仰賴/우러러보아 의지함)하나이다.
    청녕궁(清寧宮)과 더불어 제왕(諸王)과 패륵(貝勒) 등(等)의 집은 모두 다 강길(康吉/편안하고 좋음)하나이다.
    수견(隨遣/딸려 보냄)한 영아이대(英俄爾岱)가 은격덕(恩格德)과 아포달례(阿布達禮)와 함께 성경(盛京)으로 돌아와
    제왕(諸王)과 군신(群臣)으로 하여금 20리(里) 밖에서 내영(來迎/맞이하여 옴)하게 하였나이다.>
○이날에 흑룡강(黑龍江) 지방(地方)의 액소리둔(額蘇里屯) 내(內)의 아륜(俄倫) 찰이고제(扎爾固齊)가
눌포로(訥布魯) 달이한(達爾漢)을 극(克/함락함)하고 9인을 인솔(率)하여 이르러 주(奏)하여 말하길
   <액소리둔(額蘇里屯) 동(東)으로 약(約) 6일 거리(程)를 따라 아국(我國)과 통(通)하지 못한 39둔(屯)이 있는데,
    지금(今) 내공(來貢/조공하여 옴)하고자 하나 납공(納貢)의 예의(禮儀/예절과 법도)를 알지 못하니,
    우리들과 함께 황상(皇上)의 사신(使臣) 1인(人)이 지피(至彼/저쪽에 이름)하기를 구(求)하였나이다.
    곧 방물(方物)을 준비(備)하여 사신(使臣)을 수(隨/따름)하여 입공(入貢/조공하여 들어옴)하겠다 하옵니다.
    위차(為此/그런 까닭에) 특별히(特) 사람을 보내왔나이다.
    그 소헌(所獻)하는 물품(物)은 초호피(貂狐皮/담비와 여우 가죽) 206, 초호(貂狐/담비와 여우) 의복(衣服) 7령(領)이나이다.
    근주(謹奏/삼가 아룀)하옵니다.>
○이에 앞서 화석정친왕(和碩鄭親王) 제이합랑(濟爾哈朗)이 호군(護軍/바야라) 장교(校) 라파십희(喇巴什希) 시위(侍衛)와 
아파란(牙巴蘭)으로 하여금 호군(護軍) 5인을 인솔(率)하여
갈해(噶海)를 진수(鎮守/진주하여 지킴)하는 다라요여패륵(多羅饒餘貝勒) 아파태(阿巴泰)와 함께 
회병(會兵/군사가 모임)하여 착생(捉生/포로를 잡아 심문함)하게 하였다.
아파태(阿巴泰)가 호군(護軍) 참령(參領) 낭고(囊古), 마극도(馬克圖), 갈파라(噶巴喇)와 더불어
갈해(噶海)의 수신(守臣) 괘이찰(卦爾察) 니감(尼堪)을 보내 호군(護軍) 130인과
갈해(噶海)를 주수(駐守/주둔하여 지킴)하던 기병(騎兵) 10인을 모두 합하여 140인을 인솔(率)하여,
초(初) 6일에 갈해(噶海)를 경유(由)하여 기행(起行/출발함)하였다.
초(初) 9일에 명(明)의 변경(境)에 야입(夜入/야간에 들어감)하였다.
초(初) 10일에 금주(錦州)와 의주(義州) 경계(界)에 이르러 2명의 보졸(卒)을 획(獲/사로잡음)하고 귀환(還)하였다.
○호이합(虎爾哈) 부락(部落) 탁과라씨(託科羅氏)가 익극륵씨(益克勒氏), 누야륵씨(耨野勒氏)를 극(克/함락함)하고는,
두목(頭目) 60인을 인솔(率)하여 성경(盛京)에 이르러 초호피(貂狐皮/담비와 여우 가죽) 등(等)의 물품(物)을 조공(貢)하였다.

○1637년 2월 17일에 남아서 성경(심양)을 지킨 화석정친왕(호쇼이 우전 친왕) 제이합랑(지르갈앙),
서쪽 변경 우장을 진주하여 지킨 다라무영군왕(도로이 바투루 군왕) 아제격(아지거),
북쪽 변경 갈해를 진주하여 지킨 다라요여패륵(도로이 바얀 버이러) 아파태(아바타이) 등이 보낸
은격덕과 아포달례가 상소를 가져와 말하길
   <황상이 육사(六師)를 친히 통솔하시고 남으로 조선을 토벌하시어 은덕과 위엄이 널리 퍼져 향하는 곳마다 무적하였나이다.
    근래 조선을 평정하였다는 승전보를 들으니 중외의 신하와 백성이 환호하고 좋아함이 끝이 없었으며
    계속하여 황상의 홍복(크나큰 복)을 우러러보고 의지하여 있나이다.
    청녕궁과 더불어 여러 왕과 패륵(버이러) 등의 집은 모두 다 편안하고 좋나이다.
    딸려 보낸 영아이대(잉월다이)가 은격덕, 아포달례와 함께 성경으로 돌아와
    여러 왕과 뭇 신하로 하여금 20리 밖에서 맞이하여 오게 하였나이다.>
○이날에 흑룡강 지방의 액소리둔 내의 아륜 찰이고제(자르궈치)가 눌포로 달이한을 이기고는 9인을 인솔하고 이르러 아뢰어 말하길
   <액소리둔 동쪽으로 약 6일 거리를 따라 우리나라와 통하지 못한 39둔이 있는데
    지금 조공하여 오고자 하나 납공의 예절과 법도를 알지 못하니
    우리들과 함께 황상의 사신 1인이 저쪽에 와 주기를 구하였고 
    곧 방물을 준비하여 사신을 따라 조공하여 들어오겠다 합니다.
    그런 까닭에 특별히 사람을 보내왔나이다.
    그 헌상하는 물품은 담비와 여우 가죽 206장, 담비와 여우 의복 7벌이옵니다.
    삼가 아뢰나이다.>
○이에 앞서 화석정친왕 제이합랑이 호군(바야라) 장교 라파십희 시위와 아파란으로 하여금 호군 5인을 인솔하고
갈해를 진주하여 지키는 다라요여패륵 아파태와 함께 병력을 모아 착생(포로를 잡아 심문함)하게 하였다.
아파태가 호군 참령 낭고, 마극도, 갈파라와 더불어 갈해의 수신 괘이찰 니감을 보내 호군 130인과
갈해를 주둔하여 지키던 기병 10인을 모두 합하여 140인을 인솔하여 (1637년 2월) 6일에 갈해를 경유하여 출발하였다.
9일 야간에 명나라 변경에 들어갔다.
10일에 금주와 의주 경계에 이르러 2명의 보졸을 사로잡고는 돌아왔다.
○호이합 부락 탁과라씨가 익극륵씨, 누야륵씨를 이기고는 두목 60인을 인솔하여 성경에 이르러 담비와 여우 가죽 등의 물품을 조공하였다.


요약.

1637년 2월 17일, 회군 16일차

본국을 지킨 지르갈앙, 아지거, 아바타이가 홍 타이지에게 은격덕과 아포달례를 보내 승전을 축하하였다.

이날 흑룡강 액소리둔 관리 아륜이 와서 액소리둔 동쪽 39부족이 청나라에 조공하려 한다고 전한다.

이날 동해여진 훠르하 부족의 60명이 성경에 조공하러 왔다.

한편 2월 6일 지르갈앙와 아바타이가 명 국경에 150명의 기병을 보내 염탐하게 하여 명 보병 2명을 잡아왔다.


-30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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