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청실록 31부-개선식을 준비하라! 병자호란 관련 사서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그간 원초적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의 맨 마지막 부분, 즉 1636년 11월~12월 병자호란 관련 부분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는데요.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은 1636년이 마지막입니다.

하여 이후의 내용은 한문사서 청실록 태종 문황제실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1부-청태종 남한산성을 둘러보다

2부-아녀자같이 숨느냐? 만세의 웃음거리다!

3부-소국의 왕이 대국의 황제에게 간곡히 청하나이다.

4부-한족 3왕의 화포부대 도

5부-조선의 반격 광교산 전투와 양고리 전사!

6부-청 태종 통곡하고 또 통곡하다!

7부-도르곤 김자점을 추격하다!(홍이포 도착)

8부-목을 길게 빼고 패왕 대국황제의 말씀만 기다리고 있나이다!

9부-선봉대는 돌아가 배를 만들라! 강화도를 먼저 칠 것이노라!

10부-<조선왕 너는 입만 살았다!>조목조목 반박하는 청태종

11부-<엎드려 바라옵건대 황제는 용서하소서!>김상헌이 찢은 그 국서

12부-너의 죄를 사하노라! 성을 나와라! 척화대신 3~4명은 반드시 죽이겠노라!

13부-칭신하다! 그러나 국왕 출성과 척화대신 박송은 거부하다.

14부-강화도 함락!

15부-강화도가 함락되었다! 안 나오면 네 식솔은 어찌 되겠느냐?

16부-폐하(홍타이지)는 신(인조)의 하늘이니 재조지은을 베푸소서!

17부-인조 출성을 결심하다!

18부-인조 눈물로 삼학사를 죽음의 길로 보내다!

19부-조선은 청의 영원한 속국이 될 것이니라!

20부-삼전도(1)

21부-삼전도(2)

22부-회군개시! 인조가 또 3궤9고두례를 행하다!

23부-조공을 감해 주시오소서!

24부-회군 중에 약탈은 절대로 금하노라!

25부-승전보를 울려라!

26부-피 흘려 얻은 포로이다! 찾고 싶으면 돈을 내라!

27부-꿇어앉아 전송하는 서북방 조선 관리들!

28부-조선인 포로를 엄히 지켜라!

29부-조선 정벌을 감축 드리오나이다!

30부-청태종 68일만에 조선땅을 벗어나다!


병자호란 만주어 만문노당 1부~65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3


청실록 원본 출처 : http://sillok.history.go.kr/mc/main.do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


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2월 20일

○庚寅。

上渡太子河詣迎水寺禮佛諭眾僧曰爾等既奉佛教務講明經典潔治身心克守清規方為有益若口宣佛號身多敗行有玷清規究何益哉

諭畢命賞大寧迎水兩寺僧人銀兩

○是日。留守盛京和碩鄭親王濟爾哈朗遣禮部參政尼堪哈爾松阿工部參政星訥等。於盛京南二十里塔北石橋後除道設帷幄。

多羅武英郡王阿濟格多羅郡王阿達禮率貝子文武群臣及土默特鄂爾多斯虎爾哈部落等貢使頭目出城二十里迎

駕時濟爾哈朗以病目未至

○경인일(庚寅)에 상(上)이 태자하(太子河)를 도(渡)하고 영수사(迎水寺)에 예(詣/이름)하여

예불(禮佛/부처에게 절함)하고 중승(眾僧/승려 무리)에게 유(諭)하여 말하길

  <너희들은 이미(既) 불교(佛教)를 봉(奉/받듦)하였으니 명경전(明經典)의 강(講/외움)함에 무(務/힘씀)하며,

   신심(身心/몸과 마음)을 결치(潔治/깨끗이 다스림)하여 청규(清規/계율)를 극수(克守/참고 지킴)하고

   사방(方)을 유익(有益)하게 해야 할 것이노라!

   만약(若) 입으로는 선불(宣佛/불교를 베풂)을 외치고 몸으로는 패행(敗行/나쁜 품행)이 많아 점(玷/욕보임)함이 있다면

   청규(清規/계율)를 연구(究)함이 어떤 이익(益)이 있겠느냐?>

유지(諭)를 마치자 명(命)하여 대녕사(大寧)와 영수사(迎水) 양사(兩寺)의 승인(僧人)에게 은냥(銀兩)을 상(賞)주었다.

○이날에 성경(盛京)을 유수(留守/남아서 지킴)한 화석정친왕(和碩鄭親王) 제이합랑(濟爾哈朗)이

예부(禮部) 참정(參政) 니감합이송아(尼堪哈爾松阿)와 공부(工部) 참정(參政) 성눌(星訥) 등(等)을 보내

성경(盛京) 남쪽(南) 20리(里) 탑북석교(塔北石橋) 후(後)에서 제도(除道/도로를 손질함)하고 유악(帷幄/장막)을 설치(設)하였다.

다라무영군왕(多羅武英郡王) 아제격(阿濟格)과 다라군왕(多羅郡王) 아달례(阿達禮)가 패자(貝子/버이서)와 

문무(文武) 군신(群臣/뭇 신하)과 더불어 토묵특(土默特) 악이다사(鄂爾多斯) 호이합부락(虎爾哈部落) 등(等)의 

공사(貢使/조공사) 두목(頭目)을 인솔(率)하고 출성(出城)하여 20리(里)를 영가(迎駕/어가를 맞이함)하였다.

이때 제이합랑(濟爾哈朗)은 병목(病目/눈병)으로 이르지 못하였다.


 


○1637년 2월 20일에 상이 태자하를 건너 영수사에 이르러 부처에게 절하고 승려 무리에게 유지를 내려 말하길

  <너희들은 이미 불교를 받들었으니 명경전의 외움에 힘쓰며 몸과 마음을 깨끗이 다스리고

   계율을 참고 지켜 사방을 유익하게 해야 할 것이노라!

   만약 입으로는 불교를 베풀겠다 외치고 몸으로는 나쁜 품행을 일으켜 욕보임이 있다면 

   계율를 연구함이 어떤 이익이 있겠느냐?>

유지를 마치자 명을 내려 대녕사와 영수사 양사의 승려들에게 은냥을 상주었다.

○이날에 성경을 남아서 지킨 화석정친왕(호쇼이 우전 친왕) 제이합랑(지르갈앙)이

예부 참정 니감합이송아와 공부 참정 성눌(싱너) 등을 보내 성경 남쪽 20리 탑북석교 뒤에

도로를 손질하고 장막을 설치하였다.

다라무영군왕(도로이 바투루 군왕) 아제격(아지거)과 다라군왕(도로이 군왕) 아달례(아달이)가 패자(버이서)와 

문무의 뭇 신하와 더불어 토묵특(투머트) 악이다사(오르도스) 호이합부락(훠르한 부락) 등의 

조공사 두목을 인솔하고 성을 나와 20리에서 어가를 맞이하였다.

이때 제이합랑은 눈병으로 이르지 못하였다.


요약.

1637년 2월 20일 홍 타이지의 본군은 압록강을 건넌 지 3일 만에 태자하를 건너 요양의 영수사에 이른다.

홍 타이지는 부처에 절을 하고 승려에게 은자를 내렸다.

한편 개선하는 홍 타이지를 맞이하기 위해 심양의 지르갈앙은 심양성 20리 밖의 도로를 정비하고 장막을 설치하게 하였다.

지르갈앙은 눈병으로 나오지 못하고 아지거가 신하들을 대동하고 심양성을 나와 탑북석교에서 대기하였다.


-32부에서 계속-




메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