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초 마니교 교주 종상 초나라를 세우다! 금초+요말+북송말+남송초 이야기

페르시아에서 전래된 마니교가 중국에서 나라를 세운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남송초의 혼란한 상황에서 정주(鼎州/호남)의 동정호(洞庭湖)에서

마니교 교주 종상(鐘相)이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초(楚)나라를 건국한 것이었습니다.



때는 1127년 북송이 멸망하고 고종(강왕 조구)가 남송을 개국하자

정주의 상인이자 마니교의 교주였던 종상은 아들 종자앙과 함께 교민 300명을 자위군(自衛軍)/충의군(忠義軍)이라 이름 짓고

이들을 이끌고 고종에게 달려갑니다.

그러나 종상은 관직도 없는 평민이라 홀대를 받았고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옵니다.

한편 도적 출신으로 희대의 배신자 아이콘을 획득한 공언주는 이 당시 조정에 투신해 휘하 부대를 이끌고

당연히 가는 곳마다 약탈질을 해대기 시작합니다.

공언주는 1130년 종상의 정주에 이르게 되었는데 역시 세금이라는 명목하에 백성들을 약탈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종상은 신분철폐와 빈부평등의 마니교 교리를 내세우며 자신을 천대성(天大聖)이라 자칭하고

백성들을 선동하여 공언주에 맞서기 시작합니다.

종상에 동조하여 정주 19현의 백성들이 급격하게 모여들기 시작하고 곧 엄청난 규모의 민란군이 됩니다.

민란군은 마니교를 신봉하며 종상을 초왕(楚王)에 추대하고 관리와 관군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종상은 정주뿐만 아니라 예주를 함락하게 됩니다.

이에 고종은 공언주에게 민란군을 토벌하라 명하였고 공언주는 휘하 병력을 이끌고 종상을 공격하여

마침내 거병 한 달 만에 종상은 아들 종자앙과 함께 공언주에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공언주는 종상과 종자앙을 고종에게 보냈고 종자앙은 도중에 탈출하고 종상은 처형됩니다.


그러나 종상이 불 붙인 마니교의 세력은 종상 사후에도 계속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종상의 부하 양화와 양광, 양태가 민란군을 모아 다시 각지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노역과 세금 면제를 선포하여 백성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2년이 지나자 그 세력은 무려 20만 명에 이르게 됩니다.

마니교 민란군 지도자가 된 양태는 동정호를 기반으로 스스로를 대성천왕(大聖天王)이라 부르고 

종상의 아들 종자의를 태자로 삼습니다.

고종은 민란군의 세력이 20만에 육박하자 마침내 1133년 11월 6만 명을 동원하여 

마니교당을 없애고자 하였으나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금의 괴뢰국 제나라 유예는 이기회를 틈타 양태에게 연합하여 남송을 섬멸하자 권하였는데 

양태는 유예의 사신을 모조리 죽여버립니다.

마니교 민란군이 국가 단위까지 세력이 커지자 고종은 마침내 총동원령을 발하여

장준(무관)과 악비에게 20만 명을 주어 토벌하게 합니다.

악비가 조세, 군역, 부역 면제를 선전하며 민란군을 포위 공격하자 투항자가 속출하였고

마침내 동정호에서 양태를 격파하고 양태를 참수하게 됩니다.

이때 투항한 호가 무려 2만 7천호나 되었습니다.

양태가 죽은 후 관군은 1년간이나 마니교의 잔당을 토벌하게 됩니다.


5년간 존재했던 마니교의 국가 초나라

이들이 남송과 제나라를 멸하고 중원의 주인이 되었다면

중국 최초의 신정일치의 나라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남송 고종<반란군은 반란군으로 제압하라!> https://cafe.naver.com/booheong/153275


송사中

1130년 2월 21일에 정주의 백성 종상이 난을 일으키고는 초왕(楚王)을 자칭하였다.

2월 28일에 종상이 예주를 함락하였고는 수신 황종을 살해하였다.

3월 26일에 공언주가 종상을 공격하여 깨트렸고 종상과 더불어 그 아들 종자앙을 사로잡아

행재(임금의 있는 곳)로 함거에 넣어 호송하였다.

6월 15일에 종상의 가짜 장군 호원이 병을 인솔하여 자리현을 침입하였는데

그 당여 진성이 사로잡고 항복하여 왔다.

10월 9일에 종상의 잔당 양화가 거병하여 도원현을 포위하였다.

10월 14일에 정창우가 정주로 들어가 양화를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1131년 6월 15일에 호의 도적 양화와 양광이 정주를 침략하였는데 정창우가 막아 물리쳤다.

8월 17일에 유초가 양화, 양광과 더불어 합병하여 정주를 다시 약탈하니

정창우가 두담을 보내 수군을 인솔하여 격파하게 하였고

신기종을 보내 복주로 군을 옮기게 하여 웅지녕과 호강 등의 여러 도적을 토벌하게 하였다.

1134년 4월 22일에 형남통제 라광이 군사를 인솔하여 정주에 이르렀는데,

양태의 무리가 더욱 성하였고 대성천왕(大聖天王)이라 자칭하고는 종상의 막내아들 종자의를 태자로 삼았는데,

라광 등이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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