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내국사원당 8부-홍 타이지 통곡하며 2일이나 굶다! 병자호란 관련 사서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만주어 내국사원당 1637년 1월분을 연재토록 하겠습니다.

한문 청실록에 비해 세밀한 부분이 있어 소중한 자료라 생각됩니다.

혹 1637년 2월 이후 내국사원당 자료를 소장하고 계신 분은 도움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묄렌도르프 전사라도 된 자료가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1636년 11월 25일~12월 30일 만주어 만문노당 1부~65부

1637년 1월 1일~7월 3일 한문 청실록 1부~51부

만주어 삼전도비 번역


1부-쌍령전투

2부-네가 보낸 선전교서 그것이 전쟁을 불러온 것이다!

3부-몽고왕들은 대원황제의 후예인데 너보다 낮더냐?

4부-조선왕 너 여자냐?

5부-평민도 하늘이 올리면 황제가 되느니라!

6부-황제가 오셨으니 몹시 다행! 몹시 다행!

7부-광교산 전투(청 서열11위 돌격대장 양구리 전사)


만주어의 한글 발음은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하겠습니다.

만주어 문법을 이제 갓 배우고 있으며,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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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eci] hoxoi erke cin wang cooha bargiyafi jai cimari gereke manggi afaki seci.
[터러치] 호쇼이 어르커 친 왕 초오하 바르갸피 자이 치마리 거러커 망이 아파키! 서치.
[그로부터] 호쇼이 어르커 친 왕 군대 거두고 다음 아침 날밝은 뒤에 싸우자! 하니.

solhoi cooha gemu morin waliyafi dobori burulame genefi ing de emu niyalma hono akv 
untuhun ohobi.
솔호이 초오하 거무 모린 와랴피 도보리 부룰아머 거너피 잉 더 어무 냘마 호노 아쿠 운투훈 오호비.
고려 군대 모두 말 버리고 밤 달아나며 가서 영 에 1 사람 도 없었고 텅비게 되었다.

tereci hoxoi erke cin wang batai emu minggan emu tanggv dehe morin be bargiyafi amasi bedereme da ing de jihe.
터러치 호쇼이 어르커 친 왕 바타이 어무 밍안 어무 탕우 더히 모린 버 바르갸피 아마시 버더러머 다 잉 더 지허.
그로부터 호쇼이 어르커 친 왕 적의 1 천 1 백 40 말 을 거두고 뒤로 물러나며 본 영 에 왔다.

jergici lakcaha [ujui] gung ni giran be gajime han i ing ni tule isinjiha manggi.
저르기치 랔차하 [우주이] 궁 니 기란 버 가지머 한 이 잉 니 툴어 이신지하 망이.
초 품 [1등] 공 의 시신 을 가져오며 한 의 영 의 바깥 이른 뒤에.

geren ambasa dahvn dahvn i tafulaci ojorakv.
거런 암바사 다훤 다훤 이 타풀아치 오조라쿼.
여러 암반들 거듭 거듭 으로 간하니 되지않았다.

enduringge han ambula songgome [ujui] gung ni giran de acanafi arki hisalafi.
언두링어 한 암불아 송오머 [우주이] 궁 니 기란 더 아찬나피 아르키 히살아피.
성스러운 한 많이 통곡하며 [1등] 공 의 시신 에 만나러가고 소주 술올리고.

[ini] beye de etuhe sahalca sekei sijigiyan jibca.
[이니] 버예 더 어투허 사할차 서커이 시지갼 집차.
[그] 몸 에 입은 검은 담비가죽 의 겉옷 모피외투.

sekei dahv mahala gvlha etubufi songgome nakarakv.
서커이 다후 마할아 궐하 어투부피 송오머 나카라쿼.
담비가죽의 갖옷 모자 신발 입게하고 통곡하며 멈추지않았다.

geren ambasa han be jombume dahvn dahvn i tafulara jakade.
거런 암바사 한 버 좀부머 다훤 다훤 이 타풀아라 자카더.
여러 암반들 한 을 권하며 거듭 거듭 으로 간할 적에.

han teni gisun gaifi ing de bedereme jihe.
한 터니 기순 가이피 잉 더 버더러머 지허.
한 비로소 말 취하고 영 에 물러나며 왔다.

[han jing gasame juwe inenggi buda jeterakv. cai muke omirakv oho manggi
[한 징 가사머 줘 이넝이 부다 저터라쿠. 차이 무커 오미라쿠 오호 망이.
[한 끊임없이 탄식하며 2 일 밥 먹지않았고. 차 물 마시지않게 된 뒤에.

geren ambasa jombume tafulahai. han teni cai omime buda jeme deribuhe.]
거런 암바사 좀부머 타풀아하이. 한 터니 차 오미머 부다 저머 더리부허.] 
여러 암반들 권하며 간함으로. 한 비로소 차 마시며 밥 먹으며 시작했다.]


*fiyeren[폐런] : 갈라진 곳, 틈, 산이 갈라진 곳.
*sahalca[사할차] : 검은 담비 가죽
*sijigiyan[시지갼] : 겉옷, 도포.


[그로부터] 호쇼이 어르커 친왕(도도) 군대 거두고 다음 아침 날 밝은 뒤에 싸우자! 하니
고려 군대(조선군) 모두 말 버리고 밤에 달아나며 가서 영에 1 사람도 없었고 텅 비게 되었다. 
그로부터 호쇼이 어르커 친왕(도도) 적의 말 1140마리를 거두고 뒤로 물러나며 본영에 왔다.
초품[1등]공(양구리)의 시신을 가져오며 한(홍 타이지)의 영의 바깥에 이른 뒤에
여러 암반들 거듭거듭 (통곡하지 말라) 간하니 되지 않았다.
성스러운 한(홍 타이지) 많이 통곡하며 [1등]공(양구리)의 시신에 만나러 가고 소주 올리고
[그(홍 타이지)] 몸에 입은 검은 담비가죽의 겉옷, 모피외투, 담비가죽의 갖옷, 모자, 신발 입게 하고 
통곡을 멈추지 않았다.
여러 암반들 한(홍 타이지)을 권하며 거듭거듭 간할 적에 한(홍 타이지) 비로소 말 타고 영에 되돌아 왔다.
[한(홍 타이지) 끊임없이 탄식하며 2일 밥 먹지 않고 차와 물 마시지 않게 된 뒤에
 여러 암반들 권하며 간함으로 한(홍 타이지) 비로소 차 마시며 밥 먹기 시작했다.]

요약.
1637년 1월 8일 양구리가 산 위로 오지 않고 날이 저물자 도도는 병력을 거두고 산 밑으로 철수한다.
밤사이 김준용은 말을 매어 두고 허장성세를 꾸미며 하산하여 수원으로 퇴각한다.
다음날 도도가 다시 산 위로 올라가 조선군을 공격하려 하였으나 말 1140마리만 묶여 있고 조선군은 1명도 없었다.
양구리의 시신을 수습하여 홍 타이지의 본영에 도달하자 이 소식을 들은
홍 타이지는 말을 타고 급히 와서 양구리의 시신을 보고 크게 슬퍼하며 계속 통곡했다.
홍 타이지는 자신이 입고 온 옷과 모자, 신발을 벗어 양구리에게 입혀주며 술을 올린다.
홍 타이지가 계속 통곡하자 신하들은 여러 차례 권하여 홍 타이지를 본영으로 가게 한다.
본영에 도착한 홍 타이지는 2일이나 물도 입에 대지 않으며 계속 통곡한다.
이에 신하들이 계속 권하여 2일 만에 차와 물을 마시기 시작한다.
양구리의 죽음은 역사상 누르하치대 개국공신의 퇴장을 의미한다.
양구리는 사르후 전투의 1등 공신이기도 하며 조선의 기록에 의하면 누르하치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 1621년 9월 10일 정충신의 보고서 中
이튿날 호장 언가리(彦加里)가 탕천관으로부터 왔는데, 추장의 귀여움을 받는 행신(幸臣)이었습니다.

*이날 기사의 한문 청실록과 만문 내국사원당 차이점
1. 내국사원당 : 부연설명을 통해 홍 타이지가 2일 동안 물도 먹지 않았다고 기록함.


-9부에서 계속

P.S) 혹 일본학자 하내양홍(河內良弘/카와치 요시히로) 선생의 

     내국사원 만문당안 역주 숭덕 2,3년분(內國史院滿文檔案譯註: 崇德二ㆍ三年分) 관련 정보가 있으시면 

     알려주시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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