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정권 시기 간덩이가 부은 떼도둑들 고려 역사 이야기

때는 서슬퍼런 무신정권 초기는 개뿔...... 무식한 무부들이 판치던 개판의 시대 그때!!!


고려의 세미가 모두 저장되어 있던 대창 그리고 태조 왕건의 신위가 있던 봉은사.

봉은사는 개성 안에 있었고 광종에 의해 태조의 원당으로 창건한 국찰.

태조의 초상화가 있던 곳으로 행사 때마다 왕 및 신하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절을 하던 곳.

즉 국가의 중요한 두 시설에 떼강도가 침입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고려사절요 1181년 3월 기사中
○ 떼도둑이 대창(大倉)에 들어오매, 대정(隊正) 송강청(宋康淸)이 군졸을 모아 힘을 다해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도둑이 또 봉은사(奉恩寺)에 들어가서 북을 치고 떠들며 약탈을 감행하고, 
태조진전(太祖眞殿)의 은병(銀甁) 30여 개를 도둑질하여 갔다.

동사강목 1181년 3월 기사中
3월 태조(太祖) 진전(眞殿)에 도둑이 들었다.
떼도둑이 대창(大倉)에 들어와, 대정(隊正) 송강청(宋康淸)이 군졸을 모아서 힘을 다하여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또 봉은사(奉恩寺)에 들어가서 북을 치고 떠들며 약탈을 감행하고 태조 진전의 은병(銀甁) 30여 개를 도둑질했으나, 
유사(有司)가 금하지 못하였다.


고려사 1181년 3월 22일 기사中
• 3월
무진일. 도적떼가 대창(大倉)에 침입하자 대정(隊正) 송강청(宋康淸)이 병졸을 모아 힘껏 싸웠으나 당해 내지 못하고 죽었다.
신미일. 도적떼들이 다시 봉은사(奉恩寺)에 침입해 소란을 부리며 약탈을 자행하고 
태조의 신위 앞에 진설해 두었던 은병(銀甁) 30여 개를 훔쳐 갔다.

<고려사 주석 中>
대창大倉 : 목종 원년(998)에 대창서령(大倉署令)이 존재하였던 사실을 통해, 목종 이전에 이미 설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창은 창고의 규모가 매우 커서 쌀 300만석을 저장하였다고 전해지는 고려의 대표적인 창고였다. 
문종 때 종 7품의 영 2명과 종 8품의 승 4명을 두었고 그 책임자는 국왕의 근시(近侍)가 담당하였다. 
대창은 빈민구제, 녹봉의 지급 등의 역할을 하였다.


떼강도1 : 심심한데 한국은행이나 털어볼까?
떼강도2 : 괜찮을까? 경찰들 바글댈 텐데...
떼강도3 : 어차피 나라도 개판인데 우리도 가만있을 순 없잖아!
한국은행을 털었습니다! 레벨업!!!
하는김에 국찰도 털어볼까??
왕건 : 네이놈들! 내가 누군질 모르는게냐??
ㅋㅋㅋ 왕건 ㅋㅋㅋ 할배 잘쓰겠음둥ㅋㅋㅋ

-그렇다..... 나라가 개판이었다-

P.S) 군인들도 왕실 창고를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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