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하치의 유언와 홍 타이지의 유언 누르하치 관련 이야기

1643년 8월 15일 홍 타이지의 급사 이후 차기 황제를 선출하는 팔기대장 회의에 태조의 유조 발언이 있었습니다.


통상 사료를 살펴보면 누르하치는 장남 추옝을 후계자로 낙점했다가 처형한 아픔이 있었기에

차기 한은 팔기 대장들이 선출하라는 방침을 1622년에 하달합니다.

누르하치의 중요한 후계자 발언 번역


하여 누르하치는 후계자를 선정하지 않고 사망하였고,

홍 타이지 또한 생전에 후계자를 낙점하지 않고 급사합니다.


헌데 1643년 8월 15일 팔기 대장 회의에서 유조 발언이 2번이나 나옵니다.

도도는 태조의 유조에 자신의 이름이 있으니 자신이 황제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고

도르곤은 호오거의 이름도 있으니 도도 독단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태조와 태종의 유조가 있다? 의구심이 들어 청실록을 찾아보았으나 전혀 나오질 않았습니다.

다만 청사고에 태조의 유조와 태종의 유조 각각 1건씩이 나오더군요.


청사고 색니(索尼) 열전中

豫親王曰︰「若不允,當立我。我名在太祖遺詔。」睿親王曰︰「肅親王亦有名,不獨王也。」

예친왕(豫親王)이 말하길

「만약(若) 불윤(不允/허락하지 않음)한다면, 마땅히 나를 립(立)하겠다!

  아명(我名)은 태조(太祖)의 유조(遺詔)에 있다!」

예친왕(睿親王)이 말하길

「숙친왕(肅親王) 역시(亦) 유명(有名)하니, 왕(王) 독단(獨)으로는 안된다!」


어르커 친왕 도도가 말하길

   <만약 허락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나를 세우자!

    내 이름은 태조의 유조에 있었다!>

머르건 친왕 도르곤이 말하길

   <파풍아 친왕 호오거 또한 이름이 있으니 왕 독단으로는 안된다!>



청사고 세조 1643년 9월 15일

丙午,頒即位詔於朝鮮、蒙古。以太宗遺詔減朝鮮歲貢。

병오일(丙午)에, 즉위(即位)의 조서(詔)를 조선(朝鮮)과 몽고(蒙古)에 반포(頒)하였다.

태종(太宗)의 유조(遺詔)로써 조선(朝鮮)의 세공(歲貢)을 감(減)하였다.


조선의 세공을 감한다는 1642~1643년간 홍 타이지의 조서가 있는지 청실록을 살폈으나 역시 존재하지 않았고,

청실록 1641년 5월 4일 기사엔 확인이 되더군요.

청사고에서도 1640년 10월에 조공을 감했다는 기록이 있고요.


그렇다면 홍 타이지의 유조가 있었다는 가정하에.......



청실록 태종 1643년 8월 9일

○1643년 8월 9일에 상이 황후, 여러 비와 함께 구룬 공주 등을 불러 숭전전에 이르렀다.

명을 정벌하여 얻은 단필, 재물, 여러 보물들을 코르친 푸진, 현비와 더불어 구룬 공주와 여러 푸진 등에게 차등을 두어 상을 내렸다.

그 미처 살펴보지 못한 물품은 후에 다시 사열하게 하고는 마침내 궁으로 돌아왔다.

○이날 밤 21시~23시에 상이 병이 없었는데 단정하게 앉아서 붕어하였다.

상의 재위 17년이었고 나이 52세였다.


여하튼 유조가 있다고 가정할 

태조 누르하치의 유언장에는

<나의 후계는 막내아들 도도가 이어라>라는 것이고


태종 홍 타이지의 유언장에는

<나의 후계는 장남 호오거가 이어라>라는 것일까요?


아님 누르하치의 유언장에

<나의 후계는 막내 아들 도도나, 손자 호오거가 이어라>라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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