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어 만문노당 519부-금주~여순구의 모든 한족을 강제 이주시키다! 만문노당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만문노당은 누르하치의 일대기를 기록한 무권점 만문 사서 [만문원당/구만주당]을 
건륭조에 권점을 넣고 일부 내용을 변경하여 편찬하였습니다.
기 연재했던 내국사원당이 만주의 시조 부쿠리용숀부터 1584년 9월까지만 기록되어 있는데
만문노당은 1607년부터 기록이 시작됩니다.



만주어의 한글 발음은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하겠습니다.
만주어 문법을 이제 갓 배우고 있으며,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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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실 분은 그림을 클릭하시고 원문보기를 누르세요>



juwe minggan cooha gaifi. g'ai jeo de anafu tehe niyalma be halame genehe.

줘 밍안 초오하 가이피. 까이 저오 더 아나푸 터허 냘마 버 하라머 거너허.

2 천 군대 가지고. 개 주 에 수비 머문 사람 을 바꾸며 갔다.


dobi ecike i tulkun. jakvn gvsai jakvn niyalma. nikan orin duin niyalma. fung hvwang ceng de teme genehe.

도비 어치커 이 툴쿤. 자쿤 구사이 자쿤 냘마. 니칸 오린 두인 냘마. 풍 후왕 청 더 터머 거너허.

도비 숙부 의 툴쿤. 8 기의 8 사람. 한족 20 4 사람. 풍 황 성 에 머물며 갔다.


○ amba beile. manggvltai beile. degelei age. yoto age. ilan minggan cooha gaifi genehe.

○ 암바 버이러. 망굴타이 버이러. 더거러이 아거. 요토 아거. 이란 밍안 초오하 가이피 거너허.

○ 암바 버이러. 망굴타이 버이러. 더거러이 아거. 요토 아거. 3 천 군대 가지고 갔다.


liyoodung ni hecen ci nadan tanggv orin ba i dubede. ginjeo i cargi. lioi xvn keo sere baci ebsi.

료오둥 니 허천 치 나단 탕우 오린 바 이 두버더. 긴저오 이 차르기. 료이 슌 커오 서러 바치 업시.

요동 의 성 으로부터 7 백 20 리 의 끝에서. 금주 의 위로. 려 순 구 하는 땅으로부터 아래로.


mederi hanci tehe pu hecen i irgen be gemu bargiyafi. juwan emu de han i hecen de isinjiha.

머더리 한치 터허 푸 허천 이 이르건 버 거무 바르갸피. 주완 어무 더 한 이 허천 더 이신지하.

바다 가까이 머문 보 성 의 백성 을 모두 거두고. 10 1 에 한 의 성 에 이르렀다.


○ juwan juwe de. aita ts'anjiyang be wesibufi

○ 주완 줘 더. 아이타 찬쟝 버 워시부피

○ 10 2 에. 아이타 참장 을 승진시키고


*g'ai jeo[까이 저오] : 개주(盖州), 지명.

*dobi[도비] : 여우.

*dobi ecike[도비 어치커] : 다벽숙(多璧叔), 인명.

*tulkun[툴쿤] : 도륵곤(图勒昆), 인명.

*fung hvwang ceng[풍 후왕 청] : 풍황성(风凰城), 지명.

*cargi[차르기] : 위, 저쪽, 저편.

*lioi xvn keo[료이 슌 커오] : 려순구(旅顺口), 지명.



(탕구다이와 양구리가) 2천 군대 가지고 개주에 수비 머문 사람을 바꾸러 갔다.

도비 숙부의 툴쿤과 8기의 8명과 한족 24명이 풍황성에 머물러 갔다.

○ 암바 버이러(다이샨), 망굴타이 버이러, 더거러이 아거, 요토 아거가 3천 군대를 가지고 갔다.

요동의 성으로부터 7백 20리의 끝에서 금주의 위로 려순구라는 땅으로부터 아래로

바다 가까이 머문 성보의 백성을 모두 거두고 11일에 한(누르가치)의 성(요양성)에 이르렀다.

○ (1621년 8월) 12일에 아이타 참장을 승진시키고


*<요양성에서 720리 끝에 있는 금주에서 위로 여순구의 아래로>라는 표현은

 남북의 개념이 아닌 요양성을 중심으로 바다가 있는 요동 남부를 위라고 표현한 것이다.


요약.

1621년 8월 12일 탕구다이와 양구리가 2천군을 이끌고 개주의 수비군과 교대하러 떠났다.

툴쿤은 여진인 8명과 한족 24명을 데리고 풍황성을 접수하기 위해 떠났다.

한편 다이샨, 망굴타이, 더거러이, 요토는 3천 병력을 동원하여

누르하치가 내린 소개령을 시행하여 해안가의 모든 한족을 강제로 끌고 요양성에 도착하였다.

한편 누르하치는 연이은 명나라와 조선의 선박 공격에 공을 세운 아이타(유해)를 참장에서 부장으로 승진시킨다.


-520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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