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무황제 노아합기 국역 72부-누르하치 만력제의 조서에 절하길 거부하다! 무황제실록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청 개국 후 태종 숭덕조 1636년에 편찬된 태조무황제실록(太祖武皇帝實錄)을 틈틈이 국역코자 합니다.
무황제실록은 강희제에 의해 다듬어지고 변경된 청실록 고황제실록의 원본으로
태조 누르하치의 일대기를 있는 그대로 투박하게 기록한 사서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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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寅年四月,萬曆皇帝遣守備蕭伯芝來,詐稱大臣,乘八抬轎,作威勢,強令拜旨,述書中古今興廢之故,種種不善之言。

太祖曰:

「嚇我之書,何為下拜,善言善對,惡言惡對」

,竟不覽其書,令之回。

四月十五日,蒙古扎掄衛樁農貝勒,送女與太祖次子古英把土魯貝勒為婚,貝勒親迎,大宴,以禮受之。

二十日,蒙古扎掄衛內七漢,送妹與太祖三子莽古泰貝勒為婚,貝勒親迎,大宴,仍以禮受之。

蒙古廓兒沁蟒孤貝勒,送女與太祖四子皇太極貝勒為婚,貝勒迎至輝發國胡里氣山城處,大宴,以禮受之。

十一月,遣兵五百,征東海之南兀吉部押攔、石臨二衛,收降民二百戶,人畜一千而回。

十二月,蒙古扎掄衛兒吉格貝勒,送女與太祖子得格壘台吉為婚,台吉親迎,設宴,以禮受之。

갑인년(甲寅年) 4월에, 만력황제(萬曆皇帝)가 보낸 수비(守備) 소백지(蕭伯芝)가 왔는데,

대신(大臣)을 사칭(詐稱)하였고, 팔태교(八抬轎/8명이 드는 가마)를 승(乘)하여 위세(威勢)를 작(作)하였으며,

강제로(強) 배지(拜旨/임금의 조서에 절함)하게 하고는, 

서중(書中)에 고금(古今)의 흥폐(興廢/잘되어 일어남과 못되어 망함)의 고사(故)를 서술(述)하였고, 

종종(種種) 불선(不善)의 말이었다.

태조(太祖)가 말하길

「나를 하(嚇/협박함)하는 서신(書)인데, 어찌 하배(下拜)하겠는가?

  선언(善言)에는 선대(善對)하고, 악언(惡言)에는 악대(惡對)하겠다!」

마침내 그 서신(書)을 불람(不覽/보지 않음)하고, 돌아가게 하였다.

4월 15일에, 몽고(蒙古) 찰륜위(扎掄衛) 장농(樁農) 패륵(貝勒)이 송녀(送女)하여,

태조(太祖)의 차자(次子) 고영(古英) 파토로(把土魯) 패륵(貝勒)과 더불어 혼인(婚)하게 하였는데,

패륵(貝勒)이 친영(親迎)하고는, 대연(大宴)하여, 예(禮)로써 수지(受之)하였다.

20일에, 몽고(蒙古) 찰륜위(扎掄衛) 내칠한(內七漢)이 매(妹)를 송(送)하여 

태조(太祖)의 3자(子) 망고태(莽古泰) 패륵(貝勒)과 더불어 혼인(婚)하게 하였는데,

패륵(貝勒)이 친영(親迎)하고는, 대연(大宴)하였고, 이에 예(禮)로써 수지(受之)하였다.

몽고(蒙古) 곽아심(廓兒沁) 망고(蟒孤) 패륵(貝勒)이 송녀(送女)하여 

태조(太祖)의 4자(子) 황태극(皇太極) 패륵(貝勒)과 더불어 혼인(婚)하게 하였는데,

패륵(貝勒)이 휘발국(輝發國) 호리기(胡里氣) 산성(山城)이란 곳에 이르도록 영(迎)하였고,

대연(大宴)하고는 예(禮)로써 수지(受之)하였다.

12월에, 병(兵) 500을 보내 동해(東海)의 남(南) 올길부(兀吉部) 압란(押攔)과 석림(石臨) 2위(衛)를 정벌(征)하였는데,

항민(降民) 200호(戶)와 인축(人畜) 1천(千)을 수(收)하고는 회(回)하였다.

12월에, 몽고(蒙古) 찰륜위(扎掄衛) 아길격(兒吉格) 패륵(貝勒)이 송녀(送女)하여 

태조(太祖)의 아들 득격루(得格壘) 태길(台吉)과 더불어 혼인(婚)하게 하였는데,

태길(台吉)이 친영(親迎)하였고, 설연(設宴)하여 예(禮)로써 수지(受之)하였다.


*고영(古英) 파토로(把土魯) : 구옝 바투루(guyeng baturu) 다이샨, 조선에서는 [고영]을 [귀영가]로 기록하였다.


1614년 4월에 만력제가 보낸 수비 소백지가 왔는데 대신을 사칭하고 8명이 드는 가마를 타고 위세를 꾸몄으며

강제로 만력제의 조서에 절하게 하였는데, 서신 중에 고금의 흥망성쇠의 고사를 언급하며 종종 불손한 말이었다.

태조가 말하길

「나를 협박하는 서신인데 어찌 엎드려 절하겠는가?

  좋은 말에는 좋게 대하고 나쁜 말에는 나쁘게 대하겠다!」

마침내 그 서신을 보지 않고 돌아가게 하였다.

4월 15일에 몽고 자루트 종논 버이러가 딸을 보내 태조의 차남 구옝 바투루 버이러와 혼인하게 하니

버이러가 친히 맞이하여 대연회를 베풀고 예로써 받아들였다.

4월 20일에 몽고 자루트 너이치가 여동생을 보내 태조의 3남 망굴타이 버이러와 혼인하게 하니

버이러가 친히 맞이하여 대연회를 베풀고 예로써 받아들였다.

몽고 코르친 망구스 버이러가 딸을 보내 태조의 4남 홍 타이지 버이러와 혼인하게 하니

버이러가 호이파 후르키 산성이란 곳까지 맞이하러 가서 대연회를 베풀고 예로써 받아들였다.

12월에 군사 500명을 보내 동해 남쪽 워지부 야란과 시린 2위를 정벌하여 투항민 200호와 인축 1천을 거둬 돌아왔다.

12월에 몽고 자루트 얼지거 버이러가 딸을 보내 태조의 아들 더거러이 타이지와 혼인하게 하니

타이지가 친히 맞이하여 연회를 베풀었고 예로써 받아들였다.


요약.

1613년 12월 누르하치의 4만 대군이 예허를 침공하여 19성을 초토화시키자

만력제는 사신을 보내 예허 침공을 당장 멈추라 경고하고 조총병 1천을 예허에 급파한다.

이에 누르하치는 직접 해명의 서신을 들고 무순의 이영방을 찾아가 명을 절대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만력제의 누르하치 경고는 이에 그치지 않고 1614년 4월 사신 소백지를 보내 다시 한번 누르하치를 모욕한다.

소백지는 가마를 타고 나타나 만력제의 조서에 누르하치가 절을 하라고 말하고

계속 불손한 말투로 누르하치를 겁박한다.

이에 화가 난 누르하치는 만력제의 조서를 읽지도 않고 그대로 돌려보낸다.

한편 누르하치는 자식들인 다이샨, 망굴타이, 홍 타이지, 더거러이와 

몽고 자루트, 코르친의 추장들의 딸과 혼인 동맹을 추진한다.

1614년 12월 예허 침공이 만력제에 의해 저지되자 누르하치는 다시한번 동해여진에 병력을 보내 남아 있는 여진족을 잡아온다.


-7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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