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하치 건주위 통일은 1588년인가? 1589년인가? 누르하치 관련 이야기

통상적으로 알려져 있기론 누르하치가 건주를 통일한 시기는 1589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후금과 청의 기록으론 누르하치가 건주를 통일하고 건주에 할당된 칙서 500통을

완전히 확보하게 된 시기는 1588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후금, 조선, 명의 기록을 살펴볼까요?


후금 태조무황제 실록 1588년 기사中

태조가 마침내 여러 부족을 회유시켜 만주(건주)를 둘러싸고 거주하는 자들이 모조리 평정되었고 국세가 날로 성해졌다.

대명과 더불와 화친을 통하고 사람을 보내 조공하였으며 500통의 칙서를 맡았고 매년 관례대로 상으로 주는 물품을 받았다.

만주(건주) 본지에서 생산되는 것은 명주, 인삼, 검은 여우, 흰 여우, 빨간 여우, 노랑가슴 담비, 스라소니, 범, 해달, 수달,

날다람쥐, 족제비 등의 가죽으로 국가의 용도로 사용하였다.

명의 무순관, 청하관, 관적관, 애양관 4곳의 관 입구에서 호시무역을 하였으며, 관례대로 상을 받았다.

이로 인하여 만주(건주)의 백성이 부유해지니 나라가 부유해졌다.


조선왕조실록 1589년 7월 12일 기사中

평안도 병사가 건주위의 오랑캐 상황을 보고하고 변방 대책을 세우자고 아뢰다

평안병사의 서장에,

“만포진(滿浦鎭)의 보고에 의하면, 건주위(建州衛)의 피인(彼人) 동평자(童坪者) 등 18명과 동해고(童海考) 등 16명 및 

동다지(童多之) 등 48명이 귀순해 와서 말하기를 ‘좌위 추장(左衛酋長) 노을가치(老乙可赤) 형제(兄弟)가 

건주위(建州衛)의 추장 이이난(李以難) 등을 휘하(麾下)로 만든 뒤에 노을가치는 스스로 왕(王)이라 칭하고 

그 아우는 선장(船將)이라 칭하면서 궁시(弓矢) 등의 물건을 많이 만들고 그 군사를 4운(運)으로 나누었는데, 

제 1은 환도군(環刀軍), 제 2는 철퇴군(鐵鎚軍), 제 3은 곶치군(串赤軍), 제 4는 능사군(能射軍)이라 하여 가끔 연습을 하고, 

군호(群胡)를 협제(脅制)하여 그 명령에 복종하는 자는 술을 주고 명령을 어기는 자는 머리를 베면서 

장차 중국을 상대로 보복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였는데, 소위 군호(群胡)의 말이 다 똑같습니다. 

모린(毛麟)은 이미 건주위를 거느리고 와서 복종하였고, 온화위(溫火衛)는 복종하지 아니하여 서로 공격을 가하고 있으니, 

노을가치의 사나운 상태를 여기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호인(胡人)들이 총병관(摠兵官)에게서 

많은 금은(金銀)을 받았으니 중국에 보복하리라는 설은 무리인 듯하지만, 우리로서는 사전의 준비에 유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도(本道)가 오랜 태평 속에 모든 방비가 극히 허술하니 조정은 십분 상량해서 서쪽 변방을 굳건히 해야 합니다.”

하였는데, 이를 비변사에 계하(啓下)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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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록 1588년 1월 25일 기사中

奴兒哈赤者建州黠酋也驍騎已盈數千

노아합적(奴兒哈赤)이란 자(者)는 건주(建州)의 힐추(黠酋/교활한 추장)이다.

효기(驍騎/용감하고 날랜 기병)가 이미(已) 수천(數千)으로 영(盈/가득 참, 증가함)하였다.


누르하치란 자는 건주의 교활한 추장이다. 용감한 기병이 이미 수천으로 증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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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록 1589년 9월 11일 기사中

始命建州夷酋都指揮奴兒哈赤為都督僉事

비로소 명(命)하여 건주이(建州夷) 추장(酋) 도지휘(都指揮) 노아합적(奴兒哈赤)을 도독첨사(都督僉事)로 삼았다.


비로소 명을 내려 건주 오랑캐 추장 도지휘 누르하치를 도독첨사에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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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후금의 기록으로는 1588년 건주위를 통일하고 칙서 500통을 확보하였다고 기록하였고,

조선왕조실록에 최초의 누르하치 기사인 1589년 기사에는 누르하치가 왕을 칭하고 있다고 기록하였고

명의 실록에는 1588년 누르하치 휘하에 기병이 수천이라 기록하고, 1589년에 건주위 도독첨사로 임명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즉 후금은 1588년을 건주위 통일 시점으로 보고 있는데,

아마 1589년이 건주위 통일 시점으로 보는 것은 명실록에 근거한 것으로 보입니다.

1589년 명에서 누르하치를 건주위 도독첨사에 임명하였으니까요.


결론.

1. 후금과 청의 기록엔 건주위 통일은 1588년

2. 조선이 누르하치를 처음으로 언급한 년도는 1589년

3. 명이 누르하치에게 건주위 도독첨사에 임명한 년도는 15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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