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몰살당하고 조선을 탈출하여 후금에 들어간 한윤에게
누르하치는 파격적으로 관직 유격에 임명합니다.
당시 후금의 고위 관직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한 | 누르하치 |
| 호쇼이 버이러 | 4명 |
| 버이러 | 4명 |
| 도당 | 팔기군 기주급 |
| 총병관 | |
| 부장 | 머이런 어전 |
| 참장 | 자란어전 (5니루 어전) |
| 유격 | |
| 비어관 | 니루 어전 |
유격은 자란 어전급으로 5니루를 통솔합니다.
누르하치 당시 1니루가 장정 300명이니, 팔기군 1500명을 통솔하는 자리입니다.
물론 한윤은 실제 5니루를 통치하지는 않았습니다.
한윤의 니루 통솔은 정홍기→제13령 예하의 제14니루의 조선인들로 구성된 솔호 니루 0.5니루를 실제 통솔합니다.
5니루 어전이나, 머이런 어전, 심지어 기주라 하여도 실제 통치하는 니루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후금 성립 자체가 부족을 합병하여 세운 것이라 니루라는 것은 옛 부족 개념으로
추장이 니루 어전이 되고 같은 부족민들이 니루를 구성하고 있어 독립성이 강했습니다.
즉 1621년 당시에 221니루가 있었는데 니루 어전인 비어관은 대부분이 옛 추장들이거나 그 후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한 예를 들면 동해여진 3대부족 중 하나인 쿠르카 추장의 후손 양구리는
이 당시 관직은 팔기군 기주급인 총병관이고 실질 통치 니루는 3.5니루 정도였습니다.
여하튼 조선에서 투항한 한윤은 단박에 유격이라는 큰 벼슬을 하게 됩니다.
누르하치의 유격 임명
만문노당 1625년 1월 4일 기사中
○ 고려 쪽으로 살피러 간 모오바리, 삼시카, 우샨 등이
한윤과 한이라는 고려인 2명을 얻어서 물어보니 고하길
<한윤의 부친 한명련은 고려 이전 임금(광해군) 시절 총병관이었다.
새로운 임금(인조)이 죄 만들어 참장으로 강등하였다.
이괄이라는 사람은 새로운 임금을 세운 공적이 컸다.
그를 새로운 임금은 그의 곁에 있게 하지 않고 바깥 지방에 총병관 임명하여 보낼 적에
이괄은 임금으로 향하여 원망하고 나의 부친 한명련과 함께 의논하고
새로운 임금으로 향하여 군대 들어가서 도중에 3곳의 군대를 모두 격파했다.
임금이 듣고서 옥좌로부터 피하고 남쪽으로 달아났다.
임금의 성(한양)을 우리 군대가 얻었다.
그로부터 임금(인조)을 찾아 죽이러 가자! 할 때에
이괄 총병관의 중군이 [(인조의) 군대 온다!] 하며 퍼트리고 어지럽히고
이괄과 나의 부친을 모두 죽였다.
우리 2명은 싸우러 나가서 갈 곳이 없게 되자
[한(누르하치)을 청하여 오자!] 하며 와서
의주의 관하 땅의 화살 장인 집에 도망가서 있었다.
나루터 얼은 후에 오자 하니 모문룡의 정탐이 빽빽하게 되어서
비로소 (이제야) 얻어서 왔다!>
하며 알렸다.
한(누르하치)이 듣고서
<(목숨을) 청하러 온 가련한!>
하며 한윤을 유격에 임명하고, 숙부의 아들 한의를 비어관에 임명하였다.
사람이 사용할 여러 물건을 가득 주었다.
요약.
1625년 1월 조선에 1년간이나 숨어 살던 한윤은 사촌동생 한의와 함께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후금에 들어온다.
당시 압록강을 순찰하던 모오바리가 이들을 발견하고 누르하치에게 보고한다.
한윤은 누르하치에게 서신을 보내 이괄의 난에 대해 설명하고 누르하치의 힘을 빌리고자 왔다고 말한다.
누르하치는 한윤을 불쌍하다 말하고 단박에 유격에 임명하고 포상한다.
요동 전쟁 당시 누르하치가 한족에게 유격을 내린 경우는 대부분이 성주들이었는데,
조선에서 온 반란군의 잔당을 유격에 임명한 것은 매우 파격적인 대우였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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