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고 도도 열전 1부-산해관을 무시하고 북경을 포위하다! 청사고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몇몇 인물들에 대한 열전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누르하치의 15남으로 입관을 성공시키고 양주에서 대학살극을 벌인 도도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인물 열전>

청사고

왕올당, 왕고, 다이샨, 태조 누르하치, 추옝, 슈르하치, 야르하치 

피옹돈, 호호리, 어이두, 안퍙구후르한푸차 군다이

잉굴다이어르더니 밬시양구리보르진특금마심, 캉카라도르곤

송사

한세충이치, 양재흥, 동관[방랍], 채경, 부언경, 곽약사, 반미, 이사사고구송강장방창, 황잠선묘부(유정언)진회

금사

명사

두송 이성량 모문룡

송서

만주팔기씨족통보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6%B8%85%E5%8F%B2%E7%A8%BF/%E5%8D%B7218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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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고 다탁(多鐸)

豫通親王多鐸,太祖第十五子。初封貝勒。 

天聰二年,從太宗伐多羅特部有功,賜號額爾克楚呼爾。

三年,從上伐明,自龍井關入,偕莽古爾泰、多爾袞以偏師降漢兒莊城。

會大軍克遵化,薄明都。

廣渠門之役,多鐸以幼留後,明潰兵來犯,擊卻之。

師還,次薊州,復擊破明援兵。

五年,從圍大凌河城,為正白旗後應,克近城臺堡。

明兵出錦州,屯小凌河岸,上率二百騎馳擊,明兵走。

多鐸逐之,薄錦州,墜馬,馬逸入敵陣,乃奪軍校馬乘以還。

六年,從伐察哈爾,將右翼兵,俘其眾千餘。

예통친왕(豫通親王) 다탁(多鐸)은, 태조(太祖)의 제 15자로, 패륵(貝勒)에 초봉(初封)하였다.

천총(天聰/후금 2대 한 홍 타이지의 #1연호) 2년(1628년)에, 

태종(太宗)을 종(從)하여 다라특부(多羅特部)를 정벌(伐)하여 유공(有功)하였고,

액이극초호이(額爾克楚呼爾)를 사호(賜號)하였다.

[천총] 3년(1629년)에, 상(上)을 따라 벌명(伐明)하였는데, 용정관(龍井關)으로부터 입(入)하였고,

망고이태(莽古爾泰), 다이곤(多爾袞)과 함께 편사(偏師)로써 한아장성(漢兒莊城)을 항(降)하게 하였다.

때마침 대군(大軍)이 준화(遵化)를 극(克)하였고, 명도(明都)에 박(薄)하였다.

광거문(廣渠門)의 전역(役)에서, 다탁(多鐸)이 유(幼)함으로써 유후(留後)하였는데,

명(明)의 궤병(潰兵)이 내범(來犯)하자 격각(擊卻)하였다.

사환(師還)하여 계주(薊州)에 차(次)하였고, 다시 명(明)의 원병(援兵)을 격파(擊破)하였다.

[천총] 5년(1631년)에, 대릉하성(大凌河城) 포위(圍)에 종(從)하였는데, 정백기(正白旗)를 후응(後應)으로 삼았고,

근성(近城)의 대보(臺堡)를 극(克)하였다.

명병(明兵)이 금주(錦州)를 출(出)하여, 소릉하(小凌河) 안(岸)에 둔(屯)하였는데,

상(上)이 200기(騎)를 인솔(率)하여 치격(馳擊)하니 명병(明兵)이 주(走)하였다.

다탁(多鐸)이 축(逐)하여, 금주(錦州)에 박(薄)하였는데, 말이 날뛰어 적진(敵陣)으로 입(入)하여 추마(墜馬)하였는데,

이에 군교(軍校)의 말(馬)을 탈(奪)하고 승(乘)하여 이로써 환(還)하였다.

[천총] 6년(1632년)에, 찰합이(察哈爾)를 종벌(從伐)하였는데, 우익병(右翼兵)을 장(將)하였고, 

그 중(眾) 천여(千餘)를 부(俘)하였다.


<1629년 1차 북경 포위전>



어르커 하푸 친왕(예통친왕) 도도는 태조의 15자로 처음에 버이러에 봉하였다.

1628년에 태종을 따라 몽고 돌로트부(다라특부)를 정벌하여 공을 세웠고

어르커 추후르(액이극 초오이)라는 칭호을 하사하였다.

1629년에 상을 따라 명을 정벌하였는데 용정관으로부터 들어가 망굴타이, 도르곤과 함께

별동부대로써 한아장성을 항복시켰다.

때마침 대군이 준화를 함락하고 명 수도에 육박하였다.

광거문의 전역에서 도도가 어려 뒤에 남게 되었는데 명의 패잔병이 침략하여 오자 공격하여 물리쳤다.

회군하여 계주에 주둔하였고 다시 명의 원군을 격파하였다.

1631년에 대릉하성 포위전에 종군하였는데 정백기가 후방을 맡아 성과 가까운 대와 보를 함락하였다.

명군이 금주를 나와 소릉하 언덕에 주둔하였는데 상이 200기를 인솔하여 돌격하니 명군이 달아났다.

도도가 쫓아 금주에 육박하였는데 말이 날뛰어 적진으로 들어가 말에서 떨어졌는데,

이에 명 장교의 말을 빼앗아 타고 이로써 돌아왔다.

1632년에 몽고 차하르(찰합이) 정벌 전에 종군하였는데 우익군을 이끌었고 차하르 무리 1천여를 사로잡았다.


*몽고를 얻어 북경으로 가는 6개의 길이 뚫리다(1629년 1차 북경 포위전)


요약.

도도는 누르하치의 15남으로 생모는 4대 푸진 우라 아바하이며 동복형제로는 아지거와 도르곤이 있었다.

누르하치 사후 아바하이가 순장되고 홍 타이지는 아바하이의 유언대로

이복형제 아지거, 도르곤, 도도를 높은 관작을 하사하고 자식처럼 돌본다.

특히 홍 타이지는 도르곤과 도도를 총애하였고 도도는 어린 나이에 버이러에 임명된다.

1628년 도도는 몽고 정벌전에 참가하여 어르커 추후르라는 칭호를 하사 받는다.

1629년 1차 북경 포위전에도 참가하여 공을 세웠고 1631년 대릉하 포위전, 1632년 몽고 차하르 정벌전에도 참가한다.

특히 1629년 1차 북경 포위전은 기존 침공 루트인 영원-산해관을 우회하여

몽고를 통해 만리장성을 넘어 직접 북경을 타격한 사건으로 원숭환이 영원과 산해관의 병력을 이끌고 급히 달려 왔으나

명 황제와 신료, 백성들까지 후금이 북경을 직접 타격하자 원숭환이 후금과 내통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는다.

이미 가도의 모문룡을 멋대로 참한 전력이 있는 데다 갑자기 후금군이 나타나

북경을 공격하자 신료들은 원숭환을 탄핵하였고 원숭환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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