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고 도도 열전 2부-조선은 화친하였으니 침공할 필요가 없나이다. 청사고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몇몇 인물들에 대한 열전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누르하치의 15남으로 입관을 성공시키고 양주에서 대학살극을 벌인 도도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1부-산해관을 무시하고 북경을 포위하다!


<인물 열전>

청사고

왕올당, 왕고, 다이샨, 태조 누르하치, 추옝, 슈르하치, 야르하치 

피옹돈, 호호리, 어이두, 안퍙구후르한푸차 군다이

잉굴다이어르더니 밬시양구리보르진특금마심, 캉카라도르곤

송사

한세충이치, 양재흥, 동관[방랍], 채경, 부언경, 곽약사, 반미, 이사사고구송강장방창, 황잠선묘부(유정언)진회

금사

명사

두송 이성량 모문룡

송서

만주팔기씨족통보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6%B8%85%E5%8F%B2%E7%A8%BF/%E5%8D%B7218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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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고 다탁(多鐸)

七年,詔問征明及朝鮮、察哈爾三者何先,多鐸言:

「我軍非怯於戰鬬,但止攻關外,豈可必得?夫攻山海關與攻燕京,等攻耳。

  臣以為宜直入關,庶饜士卒望,亦久遠計也。

  且相機審時,古今同然。

  我軍若弛而敵有備,何隙之可乘?吾何愛於明而必言和?亦念士卒勞苦,姑為委蛇。

  倘時可乘,何待再計。

  至察哈爾,且勿加兵;朝鮮已和,亦勿遽絕。

  當先圖其大者。」

八年,從上略宣府,自巴顏珠爾克進。

尋攻龍門,未下,趨保安,克之。

謁上應州。

復略朔州,經五臺山,還。

敗明兵大同。

九年,上遣諸貝勒伐明,徇山西,命多鐸率師入寧、錦綴明師。

遂自廣寧入,遣固山額真阿山、石廷柱率兵四百前驅。

祖大壽 合錦州、松山兵三千五百屯大凌河西,多鐸率所部馳擊之,大壽 兵潰。

命分道追擊,一至錦州,一至松山,斬獲無算。

翌日,克臺一,還駐廣寧。

師還,上出懷遠門五里迎勞,賜良馬五、甲五。

上嘉之曰:

「朕幼弟初專閫,即能制勝,是可嘉也!」

[천총] 7년(1633년)에, 조(詔)하여 명(明)과 더불어 조선(朝鮮), 찰합이(察哈爾) 3 곳중 
어느 곳을 먼저 정벌(征)할지를 문(問)하였는데, 다탁(多鐸)이 말하길

「아군(我軍)은 전투(戰鬬)에서 비겁(非怯/겁내지 않음)한데도, 단지(但) 관외(關外)를 공격(攻)함에 지(止)하니, 

  어찌 필득(必得)할 수 있겠습니까?

  대저(夫) 산해관(山海關)을 공(攻)함과 더불어 연경(燕京)을 공(攻)하여, 등공(等攻)해야만 합니다.

  신(臣)이 생각키로 마땅히 직접(直) 입관(入關)하자는 까닭은 

  생각건대 사졸(士卒)의 망(望)을 염(饜/만족함)하고, 역시(亦) 구원(久遠/몹시 오래 됨)의 계책(計)이나이다.

  마땅히 상기(相機/기회를 살핌)하고 심시(審時/때를 살핌)하여, 고금(古今)이 동연(同然/다름없음)하나이다.

  아군(我軍)이 만약(若) 이(弛/늦춤)하면 적(敵)이 유비(有備)하고, 어떤 틈을 타오리까?

  제가 어찌 명(明)에 애(愛)하여 필히(必) 언화(言和)하겠나이까?

  또한 사졸(士卒)의 노고(勞苦)를 염(念)하여 잠시 위사(委蛇/자유롭게 놔둠)하다가,

  갑자기 가승(可乘)할 때가 되면 어찌 재계(再計)를 대(待)하오리까?

  찰합이(察哈爾)에 이르면 또한 가병(加兵)하지 말아야 합니다.

  조선(朝鮮) 은 이미(已) 화(和)하였으니 역시(亦) 거절(遽絕/급히 끊음)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땅히 그 대(大)라는 것을 선도(先圖)해야 합니다.」

8년에, 종상(從上)하여 선부(宣府)를 공략(略)하였고, 파안주이극(巴顏珠爾克)으로부터 진(進)하였다.

잇달아 용문(龍門)을 공(攻)하였으나, 미하(未下)하였고, 보안(保安)으로 추(趨)하여, 극(克)하였다.

상(上)을 응주(應州)에서 알(謁)하였다.

다시 삭주(朔州)를 공략(略)하였고, 오대산(五臺山)을 경(經)하여 환(還)하였는데, 명병(明兵)을 대동(大同)에서 패(敗)하였다.

9년에, 상(上)이 여러 패륵(貝勒)을 보내 벌명(伐明)하였는데, 산서(山西)를 순(徇)하였고,

명(命)하여 다탁(多鐸)은 솔사(率師)하여 영(寧)과 금(錦)으로 입(入)하여 명사(明師)를 철(綴/막음)하게 하였다.

마침내 광녕(廣寧)으로부터 입(入)하였는데, 고산액진(固山額真) 아산(阿山)과 석정주(石廷柱)를 보내 

병(兵) 400을 인솔(率)하여 전구(前驅/앞서 빨리 달림)하게 하였다.

조대수(祖大壽)가 금주(錦州)와 송산(松山)의 병(兵) 3500을 합(合)하여 대릉하(大凌河) 서쪽(西)에 둔(屯)하였고,

다탁(多鐸)이 소부(所部)를 인솔(率)하여 치격(馳擊)하니, 조대수(大壽)의 병(兵)이 궤(潰)하였다.

명(命)하여 분도(分道)하고 추격(追擊)하게 하였는데, 일(一)은 금주(錦州)에 이르렀고,

일(一)은 송산(松山)에 이르렀는데, 참획(斬獲)이 무산(無算)하였다.

익일(翌日)에, 대(臺) 하나를 극(克)하였고, 광녕(廣寧)으로 환주(還駐)하였다.

사환(師還)하자 상(上)이 출(出)하여 회원문(懷遠門) 5리에서 영로(迎勞)하였고, 양마(良馬) 5, 갑(甲) 5를 사(賜)하였다.

상(上)이 희(嘉)하여 말하길

「짐(朕)의 유제(幼弟)가 처음으로 전곤(專閫/군을 통솔함)하였는데, 즉(即) 제승(制勝/승전)하였으니, 

  이는 가가(可嘉/표창할 만함)로다!」


 


1633년에 조서를 내려 명과 더불어 조선, 몽고 차하르 3곳 중 어느 곳을 먼저 정벌할지를 물었는데,

도도가 말하길

「아군은 전투에서 겁내지 않는데도 단지 산해관 바깥을 공격하는데 그치니 어찌 반드시 얻을수 있겠습니까?

  대저 산해관을 공격함과 더불어 연경(북경)을 공격하여 함께 공격해야만 합니다.

  신이 생각키로 마땅히 직접 입관하자는 까닭은 생각건대 사졸의 희망을 만족시키는 것이니 또한 몹시 오래된 계책이나이다.

  마땅히 기회를 살피고 때를 살피는 것은 고금이 다를게 없습니다.

  아군이 만약 늦추고 적이 방비를 한다면 어떤 틈을 타오리까?

  제가 어찌 명을 사랑하여 필히 화친을 이야기 하겠나이까?

  또한 사졸의 노고를 생각하여 잠시 자유롭게 놔두었다가 갑자기 틈을 탈 때가 된다면 어찌 다시 계획을 기다리겠나이까?

  차하르 또한 출병하지 말아야 합니다.

  조선은 이미 화친하였으니 또한 급히 끊지 말아야 합니다.

  마땅히 그 대국을 먼저 도모해야만 합니다.」

1634년에 상을 따라 선부를 공략하였고 파안주이극으로부터 나아갔다.

잇달아 용문을 공격하였으나 함락하지 못하였고, 보안으로 달려가 함락하고 상을 응주에서 알현하였다.

다시 삭주를 공략였고 오대산을 경유하여 돌아왔는데 명군을 대동에서 격파하였다.

1635년에 상이 여러 버이러(패륵)를 보내 명을 정벌하였는데 산서를 돌며 명을 내려 

도도는 군사를 인솔하여 영과 금으로부터 들어가 명군을 막게 하였다.

마침내 광녕으로부터 들어갔는데 구사 어전(기주/고산액진) 아산과 석정주를 보내 병력 400을 인솔하여 앞서 빨리 가게 하였다.

조대수가 금주와 송산의 병력 3500을 합하여 대릉하 서쪽에 둔을 쳤는데,

도도가 소속 부대를 인솔하여 달려가 공격하니 조대수의 군사가 흩어졌다.

명하여 길을 나눠 추격하게 하였는데 1군은 금주에 이르렀고 1군은 송산에 이르렀는데 참하고 사로잡은 게 헤아릴 수 없었다.

다음 날에 대 하나를 함락하였고 광녕으로 돌아와 주둔하였다.

회군하자 상이 나가 회원문 5리에서 노고를 위로하였고 좋은 말 5마리와 갑옷 5벌을 하사하였다.

상이 기뻐 말하길

「짐의 어린 동생이 처음으로 군을 통솔하였는데도 곧 승전하였으니 이는 표창할 만하도다!」


요약.

홍 타이지는 1633년 6월 제장들을 불러 명, 조선, 차하르 중 어느 나라를 먼저 공략해야 하는지 물었다.

도도는 조선과는 정묘화약으로 화친하였으니 침공하면 안되며 오직 명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한다고 말한다.

도도는 명을 공격할 때 양동작전으로 산해관을 공격하면서 동시에 몽고를 경유하여 북경을 직접 타격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장들의 의견을 청취한 홍 타이지 또한 명 공략에 집중하기로 결정하였고

후금은 1634년, 1635년 계속하여 몽고를 경유하여 명 본토를 침공한다.

특히 1635년 침공전에 도도는 산해관 루트 공략군 대장이 되어 대릉하를 침공하여

조대수가 이끄는 금주와 송산의 명군을 격파한다.

홍 타이지는 어린 동생이 처음으로 대장으로 군을 통솔하여 큰 공을 세웠다며 칭찬한다.

이때 도도의 나이 22세였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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