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고 도도 열전 6부-권력의 정점에서 천연두로 죽다!(연재완료) 청사고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몇몇 인물들에 대한 열전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누르하치의 15남으로 입관을 성공시키고 양주에서 대학살극을 벌인 도도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1부-산해관을 무시하고 북경을 포위하다!

2부-조선은 화친하였으니 침공할 필요가 없나이다.

3부-병자호란 광교산 전투

4부-명의 마지막 희망을 소멸시키다! 송산전투!

5부-입관 그리고 양주 대학살


<인물 열전>

청사고

왕올당, 왕고, 다이샨, 태조 누르하치, 추옝, 슈르하치, 야르하치 

피옹돈, 호호리, 어이두, 안퍙구후르한푸차 군다이

잉굴다이어르더니 밬시양구리보르진특금마심, 캉카라도르곤

송사

한세충이치, 양재흥, 동관[방랍], 채경, 부언경, 곽약사, 반미, 이사사고구송강장방창, 황잠선묘부(유정언)진회

금사

명사

두송 이성량 모문룡

송서

만주팔기씨족통보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6%B8%85%E5%8F%B2%E7%A8%BF/%E5%8D%B7218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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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고 다탁(多鐸)

多鐸至南京,承制受其降,撫輯遺民。

遣貝勒尼堪、貝子屯齊徇太平,追擊明福王。

福王復走蕪湖,圖賴等邀之江口,擊殺明將黃得功,獲福王。

捷聞,上遣侍臣慰勞。

明潞王常淓守杭州,遣貝勒博洛率師討之,潞王降。

江、浙底定。

多鐸承制改南京為江南省,疏請授江寧、安慶巡撫以下官。

別遣精奇尼哈番吳兆勝徇廬江、和州,並下。

詔遣貝勒勒克德渾代鎮江寧,召多鐸還京師。

上幸南苑行郊勞禮,進封德豫親王,賜黑狐冠、紫貂朝服、金五千、銀五萬、馬十、鞍二。

三年,命為揚威大將軍,偕承澤郡王碩塞討蘇尼特部騰機思、騰機特等。

師至盈阿爾察克山,聞騰機思方在袞噶嚕台,疾行三晝夜,敗之於諤特克山,斬台吉茂海。

渡圖拉河,追至布爾哈圖山,斬騰機特子二、騰機思孫三,盡獲其孥。

師次扎濟布喇克,喀爾喀土謝圖汗遣兵二萬,碩雷車臣汗遣兵三萬,迎戰。

我師奮擊,逐北三十餘里,先後斬級數千,俘千餘,獲駝千九百、馬二萬一千一百、牛萬六千九百、羊十三萬五千三百有奇。

師還,上出安定門迎勞,加賜王鞍馬一。

四年,進封為輔政叔德豫親王,賜金千、銀萬、鞍馬二,封冊增錄功勛。

六年三月,以痘薨,年三十六。

九年三月,睿親王既削爵,以同母弟追降郡王。

康熙十年,追諡。

乾隆四十三年正月,詔配享太廟。         

多鐸子八,有爵者四:多尼、董額、察尼、多爾博、費揚古。

費揚古自三等奉國將軍進封輔國公,坐事,奪爵。

다탁(多鐸)이 남경(南京)에 이르자, 승제(承制)하여 그 항(降)을 수(受)하였고, 유민(遺民)을 무집(撫輯/어루만지고 모음)하였다.

패륵(貝勒) 니감(尼堪)과 패자(貝子) 둔제(屯齊)를 보내 태평(太平)을 순(徇)하였고, 명(明) 복왕(福王)을 추격(追擊)하였다.

복왕(福王)이 다시 무호(蕪湖)로 주(走)하였고, 도뢰(圖賴) 등(等)이 강구(江口)에서 요지(邀之/마주침)하였고,

명장(明將) 황득공(黃得功)을 격살(擊殺)하였으며, 복왕(福王)을 획(獲)하였다.

첩문(捷聞)하자, 상(上)이 시신(侍臣)을 보내 위로(慰勞)하였다.

명(明) 노왕(潞王) 주상방(常淓)이 항주(杭州)를 수(守)하였는데,

패륵(貝勒) 박락(博洛)을 보내 솔사(率師)하고 토벌(討)하게 하니, 노왕(潞王)이 항(降)하였다.

강(江)과 절(浙)이 저정(底定/평정)하였다.

다탁(多鐸)이 승제(承制)하여 남경(南京)을 개(改)하여 강남성(江南省)으로 삼고,

소청(疏請)하여 강녕(江寧)과 안경(安慶) 순무(巡撫) 이하관(以下官)을 수(授)하게 하였다.

별도로(別) 정기니합번(精奇尼哈番/징키니 하판) 오조승(吳兆勝)을 보내 

여강(廬江)과 화주(和州)를 순(徇)하게 하였고, 병하(並下)하였다.

조(詔)하여 패륵(貝勒) 륵극덕혼(勒克德渾)을 보내 강녕(江寧)을 대진(代鎮/대신 지키게 함)하였고,

다탁(多鐸)을 소(召)하여 경사(京師)로 환(還)하게 하였다.

상(上)이 남원행(南苑行) 교(郊)로 행(幸)하여 노례(勞禮/위로하는 예)하였고, 

덕예친왕(德豫親王)으로 진봉(進封)하였으며, 흑호관(黑狐冠), 자초조복(紫貂朝服), 금 5천, 은 5만, 말 10, 안장(鞍) 2를 

사(賜)하였다.

[순치] 3년에, 명(命)하여 양위대장군(揚威大將軍)으로 삼고,

승택군왕(承澤郡王) 석새(碩塞)와 함께 소니특부(蘇尼特部) 등기사(騰機思)와 등기특(騰機特) 등(等)을 토벌(討)하였다.

사(師)가 여아이찰극산(盈阿爾察克山)에 이르렀는데, 등기사(騰機思)가 바야흐로 곤갈로태(袞噶嚕台)에 있다는 것을 듣고는,

삼주야(三晝夜)를 질행(疾行/빨리 감)하여, 악특극산(諤特克山)에서 패지(敗之)하였고, 태길무해(台吉茂海)를 참(斬)하였다.

도랍하(圖拉河)를 도(渡)하여, 포이합도산(布爾哈圖山)으로 추지(追至)하였고,

등기특(騰機特)의 아들 둘과 등기사(騰機思)의 손(孫) 셋을 참(斬)하였으며, 그 노(孥/처자)를 진획(盡獲)하였다.

사(師)가 찰제포라극(扎濟布喇克)에 차(次)하였는데, 객이객(喀爾喀) 토사도한(土謝圖汗)이 병(兵) 2만(萬)을 보냈고,

석뢰차신한(碩雷車臣汗)이 병(兵) 3만(萬)을 보내 영전(迎戰)하였다.

아사(我師)가 분격(奮擊)하여, 북(北) 30여리(里)를 축(逐)하였고, 

선후(先後)로 참급(斬級)이 수천(數千)이고, 천여(千餘)를 부(俘)하였으며, 

낙타(駝) 1900, 말 21100, 소 16900, 양 135300 남짓을 획(獲)하였다.

사환(師還)하니, 상(上)이 안정문(安定門)으로 출(出)하여 영로(迎勞)하였고, 왕(王)에게 안마(鞍馬) 1을 가사(加賜)하였다.

[순치] 4년에, 진봉(進封)하여 보정(輔政) 숙덕친왕(叔德豫親王)으로 삼았고,

금(金) 천(千), 은(銀) 만(萬), 안마(鞍馬) 2를 사(賜)하고, 봉책(封冊)하고 공훈(功勛)을 증록(增錄/더하여 기록함)하였다.

[순치] 6년 3월에, 두(痘)로써 훙(薨)하였는데 36세였다.

[순치] 9년 3월에, 예친왕(睿親王)이 이윽고 삭작(削爵)하였는데, 동모제(同母弟)로써 군왕(郡王)으로 추항(追降)하였다.

강희(康熙) 10년에, 추시(追諡)하였다.

건륭(乾隆) 43년 정월에, 조(詔)하여 태묘(太廟)에 배향(配享)하였다.

다탁(多鐸)의 아들은 8인데, 유작(有爵)한 자(者)가 4이다.

다니(多尼), 동액(董額), 찰니(察尼), 다이박(多爾博), 비양고(費揚古)이다.

비양고(費揚古)는 삼등봉국장군(三等奉國將軍)으로부터 보국공(輔國公)으로 진봉(進封)하였는데,

좌사(坐事)하여 탈작(奪爵)하였다.


*도도의 아들 중 작위가 있는 자 5명

-다니(多尼) : 화석예선화친왕(和硕豫宣和亲王)

-동액(董额) : 다라신군왕(多罗信郡王)

-다이박(多尔博) : 다라패륵(多罗贝勒)

-찰니(察尼) : 보국각희공(辅国恪僖公)

-비양고(费扬古) : 보국공(辅国公)


도도가 남경에 이르자 편의종사하여 그 (남명 관리의) 투항을 받았고 유민을 어루만지고 모으게 하였다.

버이러 니칸과 버이서 툰치(둔제)를 보내 태평을 돌아 명 복왕(주유숭)을 추격하게 하였다.

복왕이 다시 무호로 도주하였고 투라이 등이 강구에서 마주쳐 명 장수 황득공을 공격하여 죽이고 복왕을 사로잡았다.

승첩이 이르자 상이 시신을 보내 위로하였다.

명 노왕 주상방이 항주를 지켰는데 버이러 보로(박락)을 보내 군을 인솔하고 토벌하게 하니 

노왕이 항복하니 강과 절이 평정되었다.

도도가 편의종사하여 남경을 고쳐 강남성으로 삼고 상소를 올려 강녕과 안경 순무 이하의 관직을 제수하게 하였다.

별로로 징키니 하판(정기니합번) 오조승을 보내 여강과 화주를 순행하고 모두 항복시켰다.

조서를 내려 버이러 럭더훈(륵극덕혼)을 보내 강녕을 대신 지키게 하였고 도도를 소환하여 경사(북경)로 돌아오게 하였다.

상이 남원행 교외로 행차하여 위로연을 베풀고 덕예친왕(德豫親王)으로 올려 봉하였으며

흑호관, 자초조복, 금 5천, 은 5만, 말 10마리, 안장 2개를 하사하였다.

1646년에 명하여 양위대장군으로 삼고 승택군왕 쇼서(석새)와 함께 소니특부 등기사와 등기특 등을 토벌하였다.

군사가 여아이찰극산에 이르렀는데 등기사가 바야흐로 곤갈로태에 있다는 것을 듣고는

3일 밤낮을 빨리 달려 악특극산에서 격파하였고 태길 무해를 참하였다.

도랍하를 건너 포이합도산으로 추격하여 이르렀다.

등기특의 아들 둘과 등기사의 손자 셋을 참하였으며 그 처자를 모두 사로잡았다.

군사가 찰제포라극에 주둔하였는데 칼카(객이객) 투셰투 한(토사도 한)이 병력 2만을 보냈고 

석뢰차신 한이 병력 3만을 보내 맞아 싸웠다.

우리 군이 분격하여 북쪽으로 30여 리를 뒤쫓아 앞뒤로 수천의 목을 베고 천여 명을 사로잡았으며

낙타 1900, 말 21100, 소 16900, 양 135300 남짓을 획득하였다.

회군하니 상이 안정문으로 나와 노고를 위로하였고 왕에게 안장을 실은 말 1마리를 하사하였다.

1647년에 올려 봉하여 보정 숙덕친왕으로 삼았고 금 1천냥, 은 1만냥, 안장을 실은 말 2마리를 하사하였고

봉책하여 공문을 더하여 기록하였다.

1649년 3월에 천연두로 훙하니 36세였다.

1652년 3월에 호쇼이 머르건 친왕(도르곤)이 이윽고 작위를 삭제당했는데 친동생이라 군왕으로 내려 봉했다.

1671년에 시호를 내렸다.

1778년 1월에 조서를 내려 태묘에 배향하였다.

도도의 아들은 8명인데 작위가 있는자가 4명인데 다니, 동액, 찰니, 다이박, 비양고이다.

비양고는 삼등봉국장군으로부터 보국공으로 진봉하였는데 일에 연루되어 작위를 빼앗았다.



요약.

1645년 4월 양주를 도륙내고 남경을 함락한 도도에게 남명의 관리들은 관내 23만명의 한족 장정의 명부를 들고 투항한다.

도도는 이들의 투항을 받고 한족들을 위로한다.

한편 도도는 니칸과 툰치를 보내 홍광제(주유숭)을 사로잡는다.

순치제는 럭더훈을 보내 도도와 교대하라 명한다.

북경에 도착한 도도를 순치제는 직접 교회로 행차하여 노고를 위로하고 덕예친왕으로 봉한다.

도르곤은 지르가랑을 보정대신에서 해임하고 도도를 보정대신에 임명하여 두 형제가 청의 모든 인사권를 장악하게 된다.

이후 도도는 몽고를 토벌하는 등의 군공을 계속 세우다 1649년 36세에 천연두로 급사한다.

3년 후 형 도르곤이 사후 역적으로 몰리자 도도도 작위를 삭제당하고 군왕으로 강등된다.

건륭제는 도르곤은 역적질을 한 적이 없다며 신원을 회복시켰고 도도 또한 태묘에 배향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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