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고 아지거 열전 5부-내가 동생 도도보다 못한 게 뭐냐?(대동 한족을 학살하다) 청사고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몇몇 인물들에 대한 열전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누르하치의 12남으로 도르곤과 도도의 친형인 아지거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1부-4대 암바 푸진 우라 아바하이의 장남

2부-병자호란 가도점령 사령관이 되다!

3부-아버지가 함락 못한 영원성을 17년만에 함락하다!

4부-입관(feat.한족은 다 죽이는 게 후환이 없다!)


<인물 열전>

청사고

왕올당, 왕고, 다이샨, 태조 누르하치, 추옝, 슈르하치, 야르하치 

피옹돈, 호호리, 어이두, 안퍙구후르한푸차 군다이

잉굴다이어르더니 밬시양구리보르진특금마심, 캉카라도르곤도도푸헝

송사

한세충이치, 양재흥, 동관[방랍], 채경, 부언경, 곽약사, 반미, 이사사고구송강장방창, 황잠선묘부(유정언)진회

금사

명사

두송 이성량 모문룡

송서

만주팔기씨족통보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6%B8%85%E5%8F%B2%E7%A8%BF/%E5%8D%B7218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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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고 아제격(阿濟格)

五年,勦天津、曹縣土寇。

十一月,率師駐大同,姜瓖叛,督兵討之。

旋命為平西大將軍,率固山額真巴顏等討瓖。

六年,瓖將劉遷犯代州,遣博洛赴援,圍乃解。

多爾袞至大同視師,時阿濟格兩福晉病卒,命歸視,阿濟格曰:

「攝政王躬攝大政,為國不遑,吾敢以妻死廢國事?」

阿濟格自以功多,告多爾袞曰:

「輔政德豫親王征流寇至慶都,潛身僻地,破潼關、西安不殲其眾,追騰機思不取,功績未著,不當優異其子。

  鄭親王乃叔父之子,不當稱『叔王』。

  予乃太祖之子,皇帝之叔,宜稱『叔王』。」

多爾袞斥其妄,令勿預部務及交接漢官。

尋復偕鞏阿岱攻大同,會降將楊振威斬瓖降,隳其城睥睨五尺,乃還。

[순치] 5년(1648년)에, 천진(天津)과 조현(曹縣)의 토구(土寇/도적떼)를 초(勦/끊음)하였다.

11월에, 솔사(率師)하여 대동(大同)에 주(駐)하였는데, 강양(姜瓖)이 반(叛)하자,

독병(督兵)하여 토지(討之)하였다.

선명(旋命/빠르게 명함)하여 평서대장군(平西大將軍)으로 삼았고,

고산액진(固山額真) 파안(巴顏) 등(等)을 인솔(率)하여 강양(瓖)을 토벌(討)하였다.

[순치] 6년(1649년)에, 강양(瓖)의 장(將) 유천(劉遷)이 대주(代州)를 범(犯)하였는데,

박락(博洛)을 견(遣)하여 부원(赴援)하게 하니, 위(圍)가 곧 해(解)하였다.

다이곤(多爾袞)이 대동(大同)에 지(至)하여 시사(視師)하였는데,

이때 아제격(阿濟格)의 양(兩) 복진(福晉)이 병졸(病卒)하였는데, 명(命)하여 귀시(歸視/돌아가서 봄)하게 하였는데, 

아제격(阿濟格)이 말하길

「섭정왕(攝政王)이 대정(大政)을 궁섭(躬攝/몸소 다스림)하고, 나라가 불황(不遑/겨를이 없음)하니,

  내가 감히(敢) 처사(妻死)하였다 하여 국사(國事)를 폐(廢)하겠는가?」

아제격(阿濟格)이 스스로 공다(功多)하다 여겨 다이곤(多爾袞)에게 고(告)하여 말하길

「보정(輔政) 덕예친왕(德豫親王/도도)이 유구(流寇/유랑하는 도적떼)를 정(征)하여 경도(慶都)에 지(至)하였고,

  벽지(僻地/외진 곳)에 잠신(潛身/몸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음)하고는, 

  동관(潼關)과 서안(西安)을 파(破)하여 그 중(眾)을 불섬(不殲/섬멸하지 못함)하였고,

  등기사(騰機思)를 추(追)하여 불취(不取)하였으니, 공적(功績)이 미저(未著)하였는데,

  그 아들을 우이(優異/후하게 우대함)함은 부당(不當)하다.

  정친왕(鄭親王)은 곧 숙부(叔父)의 아들이니,『숙왕(叔王)』이라 칭(稱)함은 부당(不當)하다.

  나는 곧 태조(太祖)의 아들이고, 황제(皇帝)의 숙(叔)이니, 마땅히 『숙왕(叔王)』이라 칭(稱)해야 할 것이다.」

다이곤(多爾袞)이 그 망(妄)을 척(斥/물리침)하였고, 

영(令)하여 부무(部務)를 예(預/맡김, 참여함)함과 더불어 한관(漢官)과 교접(交接/교제)하지 못하게 하였다.

거듭 다시 공아대(鞏阿岱)와 함께 대동(大同)을 공(攻)하였는데,

때마침 항장(降將) 양진위(楊振威)가 강양(瓖)을 참(斬)하고 항복(降)하니,

그 성(城)의 비예(睥睨/성위에 낮게 쌓음 담) 5척(尺)을 휴(隳/무너뜨림)하고 곧 환(還)하였다.


*강양(姜瓖)

 : 섬서(陕西) 유림(榆林) 사람으로 대대로 명의 군관 가문이었다.

  형 강양(姜讓)은 섬서 유림총병, 동생 강선(姜瑄)은 산서 양화부총병이었고, 강양은 대동총병(大同總兵)이었다.

  1644년 3월 이자성이 태원을 함락하자 강양은 이자성에 투항하였는데,

  1644년 5월에 청나라 오순화(吳順華)가 대동을 공격하자 6월 6일에 대순군 장수 장천림(張天琳)을 살해하고 

  아지거에게 투항한다.

  이후 강양은 대동제진병마장군(大同諸鎮兵馬將軍)에 임명된다.

  1649년 1월 도도가 천연두에 걸리고, 도르곤 또한 전염병에 걸리자 강양은 반란을 일으켜 남명에 투항한다.

  대동에서 거병한 강양은 명나라 부흥을 명분 삼아 주변 지역을 함락하였는데,

  인근 11성이 모두 청나라를 배반하고 강양에게 투항한다.

  이에 청에서는 아지거를 대장으로 삼아 토벌하게 한다.

  1650년 6월 아지거는 대동 인근 성들을 모조리 함락시키고 홍이포를 앞세워 대동을 포위공격한다.

  마침내 대동의 군량이 모두 떨어지자 군민 대다수가 아사한다.

  1650년 10월 마침내 강양의 장수 양진위가 강양과 그 형제들을 죽이고 아지거에게 투항한다.

  아지거는 4개월 동안 포위공격에도 항복하지 않은 대동성의 군민을 도살하라 명한다.

  이에 청군은 투항한 관리와 병사 및 주민까지 모조리 학살한다.



1648년에 천진과 조현의 토착 도적을 진압하였다.

11월에 군을 인솔하여 대동에 주둔하였는데 강양이 배반하자 군을 독려하여 토벌하게 하였다.

빠르게 명하여 평서대장군으로 삼고 구사어전 바얀 등을 인솔하여 강양을 토벌하게 하였다.

1649년에 강양의 장수 유천이 대주를 침범하였는데 보로를 보내 구원하게 하니 포위가 곧 풀렸다.

도르곤이 대동에 이르러 군을 시찰하였는데 이때 아지거의 두 푸진이 병으로 사망하니

명하여 돌아가 보게 하였는데 아지거가 말하길

「섭정왕(도르곤)이 몸소 나라를 다스리고 나라가 겨를이 없는 터에 내가 감히 처가 죽었다 하여 국사를 폐하겠는가?」

아지거가 스스로 공이 많다 여겨 도르곤에게 고하여 말하길

「보정 덕예친왕(德豫親王/도도)이 도적떼를 정벌하여 경도에 이르렀는데

  벽지에 몸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았으며, 동관과 서안을 격파하였는데도 그 무리를 섬멸하지 못하였고,

  등기사를 추격하고도 잡지 못하였으니 공적이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그 아들을 후하게 우대하는 것은 부당하다.

  호쇼이 우전 친왕[정친왕鄭親王/지르가랑]은 곧 숙부(슈르가치)의 아들이니『숙왕(叔王)』이라 칭함은 부당하다.

  나는 곧 태조(누르하치)의 아들이고 황제(순치제)의 숙부이니, 마땅히 『숙왕(叔王)』이라 칭해야 할 것이다.」

도르곤이 그 망언을 물리쳤고 영하여 부의 업무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한족 관리와 교제하지 못하게 하였다.

거듭 다시 궁아다이와 함께 대동을 공격하였는데 때마침 투항 장수 양진위가 강양을 참하고 항복하니,

그 성위의 담 5척을 무너뜨리고 곧 돌아왔다.


요약.

1648년 11월 섬서 대동에서 강양이 배반하자 섭정 숙부왕 도르곤은 아지거에게 명을 내려 토벌하게 한다.

강양은 뿌리깊은 명 무신가문으로 대동총병을 역임하다 이자성의 대순군이 북상하자 투항하였고,

다시 입관에 성공한 청군이 공격해 오자 청군에 투항한다.

그러나 청의 실권자 도르곤과 도도가 모두 병에 걸리자 이를 호기로 여겨

마침내 대동을 근거로 명 부흥을 내세우며 반란을 일으키고 남명에 투항한다.

마침 1649년 3월 도르곤과 함께 보정대신이던 도도가 천연두로 죽자 아지거는 자신의 공이 친동생 도도보다 뛰어나다며 

자신이 순치제의 숙부이니 마땅히 자신이 숙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도르곤은 아지거의 말을 무시하고 오히려 아지거의 국정참여를 막아버린다.

이 와중에 아지거는 대동성을 4개월동안 포위공격하였는데 남명군은 군량이 떨어져 아사자가 속출하였고

마침내 양진위가 강양을 죽이고 아지거에게 투항한다.

대동의 강력한 저항에 분개한 아지거는 도륙령을 내리고 이에 청군은 대동성의 모든 한족을 학살한다.


-6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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