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고 아지거 열전 6부-동생 도르곤이 죽자 반역자로 몰려 처형당하다!(연재완료) 청사고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몇몇 인물들에 대한 열전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누르하치의 12남으로 도르곤과 도도의 친형인 아지거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1부-4대 암바 푸진 우라 아바하이의 장남

2부-병자호란 가도점령 사령관이 되다!

3부-아버지가 함락 못한 영원성을 17년만에 함락하다!

4부-입관(feat.한족은 다 죽이는 게 후환이 없다!)

5부-내가 동생 도도보다 못한 게 뭐냐?(대동 한족을 학살하다)


<인물 열전>

청사고

왕올당, 왕고, 다이샨, 태조 누르하치, 추옝, 슈르하치, 야르하치 

피옹돈, 호호리, 어이두, 안퍙구후르한푸차 군다이

잉굴다이어르더니 밬시양구리보르진특금마심, 캉카라도르곤도도푸헝

송사

한세충이치, 양재흥, 동관[방랍], 채경, 부언경, 곽약사, 반미, 이사사고구송강장방창, 황잠선묘부(유정언)진회

금사

명사

두송 이성량 모문룡

송서

만주팔기씨족통보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6%B8%85%E5%8F%B2%E7%A8%BF/%E5%8D%B7218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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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고 아제격(阿濟格)

八年正月,多爾袞薨于喀喇城,阿濟格赴喪次,諸王夜臨,獨不至,召其子郡王勞親以兵脅多爾袞所屬使附己。

喪還,上出迎,阿濟格不去佩刀。

勞親兵至,阿濟格張纛與合軍。

多爾袞左右訐阿濟格欲為亂,鄭親王濟爾哈朗等遣人于路監之。

還京師,議削爵,幽禁。

逾月,復議繫別室,籍其家,諸子皆黜為庶人。

十月,監守者告阿濟格將于繫所舉火,賜死。

阿濟格子十一,有爵者三:和度、傅勒赫、勞親。

和度,封貝子,先卒。

勞親與阿濟格同賜死。

傅勒赫,初封鎮國公。

坐奪爵,削宗籍。

十八年,諭傅勒赫無罪,復宗籍。

康熙元年,追封鎮國公。

子構孳、綽克都,並封輔國公。

綽克都,事聖祖。

從董額討王輔臣,守漢中,攻秦州,師無功。

授盛京將軍,又以不稱職,奪爵。

上錄阿濟格功,以其子普照仍襲輔國公,

坐事奪爵,以其弟經照仍襲輔國公。

雍正間,普照亦以軍功復爵,卒。

世宗諭曰:

「普照軍前效力,且其兄女為年羹堯 妻,故特予封爵。

  今羹堯 負恩誅死,此爵不必承襲。」

居數年,經照亦坐事,奪爵。

普照、經照皆能詩。

乾隆四十三年,命阿濟格之裔皆復宗籍。

經照子孫遞降,以奉恩將軍世襲。

[순치] 8년(1651년) 정월(正月)에, 다이곤(多爾袞)이 객라성(喀喇城)에서 훙(薨)하자, 

아제격(阿濟格)이 상차(喪次/상주가 거처하며 집상하는 처소)에 부(赴/나아감)하였는데,

제왕(諸王)이 야림(夜臨)하였는데, 홀로 부지(不至)하더니,

그 아들 군왕(郡王) 노친(勞親)을 소(召)하여 병(兵)으로써 다이곤(多爾袞) 소속(所屬)을 협(脅)하여 부기(附己)하게 하였다.

상환(喪還)하자, 상(上)이 출영(出迎)하였는데, 아제격(阿濟格)은 패도(佩刀)를 불거(不去/풀지 않음)하였다.

노친(勞親)의 병(兵)이 지(至)하자, 아제격(阿濟格)이 장독(張纛/기를 벌림)하고 함께 합군(合軍)하였다.

다이곤(多爾袞)의 좌우(左右)가 아제격(阿濟格)이 난(亂)을 일으키고자 한다 알(訐/비방함)하니,

정친왕(鄭親王) 제이합랑(濟爾哈朗) 등(等)이 견인(遣人)하여 도로(路)에서 감(監)하게 하였다.

경사(京師)로 환(還)하여, 삭작(削爵)을 의논(議)하였고, 유금(幽禁/유폐함)하였다.

유월(逾月/달을 넘김)하여, 다시 별실(別室)에 계(繫/감금)함을 의논(議)하였고,

그 가(家)를 적(籍)하고, 제자(諸子)는 모두 출(黜/떨어뜨림)하여 서인(庶人)으로 삼았다.

10월에, 감수자(監守者)가 아제격(阿濟格)이 장차(將) 계소(繫所/감금된 곳)에 거화(舉火)한다 고(告)하자, 사사(賜死)하였다.

아제격(阿濟格)의 자(子)는 11이며, 유작자(有爵者)는 3인데, 화도(和度), 부륵혁(傅勒赫), 노친(勞親)이다.

화도(和度)는 패자(貝子)를 봉(封)하였고 선졸(先卒)하였다.

노친(勞親)은 아제격(阿濟格)과 더불어 함께 사사(賜死)하였다.

부륵혁(傅勒赫)은 진국공(鎮國公)에 초봉(初封)하였는데, 연좌(坐)하여 탈작(奪爵)하였고, 종적(宗籍)에서 삭(削)하였다.

[순치] 18년(1661년)에, 부륵혁(傅勒赫)의 무죄(無罪)를 유(諭)하여, 종적(宗籍)을 복(復)하였다.

강희(康熙/청 4대 황제 성조의 #1연호) 원년(元年/1662년)에 진국공(鎮國公)을 추봉(追封)하였다.

아들 구자(構孳), 작극도(綽克都)는 아울러 보국공(輔國公)에 봉(封)하였다.

작극도(綽克都)는 성조(聖祖/강희제)에 사(事)하였고, 동액(董額)을 종(從)하여 왕보신(王輔臣)을 토(討)하였고,

한중(漢中)을 수(守)하였고, 진주(秦州)를 공(攻)하였는데, 사(師)가 무공(無功)하였다.

성경장군(盛京將軍)을 수(授)하였고, 또 칭직(稱職/직분에 맡겨진 임무를 다함)하지 않음으로써, 탈작(奪爵)하였다.

상(上)이 아제격(阿濟格)의 공(功)을 기록(錄)하여, 그 아들 보조(普照)로써 이에 보국공(輔國公)을 습(襲)하게 하였는데,

좌사(坐事)하여 탈작(奪爵)하니, 그 동생 경조(經照)로써 이에 보국공(輔國公)을 습(襲)하게 하였다.

옹정(雍正/청 5대 황제 세종의 #1연호) 간(間1723년~1735년)에, 보조(普照) 역시(亦) 군공(軍功)으로써 복작(復爵)하였고, 

졸(卒)하였다.

세종(世宗)이 유(諭)하여 말하길

「보조(普照)은 군전(軍前)에서 효력(效力/온 힘을 다함)하였고, 

  또한 그 형(兄)의 딸을 연갱요(年羹堯)의 처(妻)로 삼게 하였으니, 이런 연고(故)로 특별히(特) 봉작(封爵)을 여(予)하노라!

  지금(今) 연갱요(羹堯)가 부은(負恩)하고 주사(誅死)하였으니, 이 작(爵)은 승습(承襲)이 불필(不必)하노라!」

수년(數年)을 거(居)하였는데, 경조(經照) 역시(亦) 좌사(坐事)하여 탈작(奪爵)하였다.

보조(普照)와 경조(經照)는 모두 능시(能詩)하였다.

건륭(乾隆/청 6대 황제 고종의 #1연호) 43년(1778년)에, 

명(命)하여 아제격(阿濟格)의 후예(裔)는 모두 종적(宗籍)을 복(復)하게 하였다.

경조(經照)의 자손(子孫)은 체강(遞降/등급을 차례에 따라 내림)하였고, 봉은장군(奉恩將軍)으로써 세습(世襲)하였다.



1651년 1월에 도르곤이 객라성에서 훙하자 아지거가 초상집으로 나아갔는데 여러 왕이 야밤에 도착하였는데도 홀로 이르지 

않더니 그 아들 군왕 노친을 불러 군사를 동원해 도르곤 소속을 위협하여 자기에게 붙였다.

상여가 돌아오자 상이 나와 맞이하였는데 아지거가 검을 풀지 않았다.

노친의 병력이 이르자 아지거가 기를 벌이고 함께 군을 합쳤다.

도르곤의 좌우가 아지거가 난을 일으키고자 한다 비방하니 호쇼이 우전 친왕 지르가랑 등이 사람을 보내 도로에서 

살펴보게 하였다.

경사(북경)으로 돌아와 작위 삭탈을 의논하고는 유폐하였다.

달이 넘어가자 다시 별실에 감금하는 것을 의논하였고 그 가산을 적몰하고 여러 아들은 모두 출척하여 평민으로 삼았다.

10월에 감시하던 자가 아지거가 장차 감금된 곳을 불사르려 한다고 고발하자 죽음을 내렸다.

아지거의 아들은 11명이며 작위가 있는 자는 3명인데 화도, 부륵혁, 노친이다.

화도는 버이서에 봉하였는데 먼저 죽었다.

노친은 아지거와 함께 사사되었다.

부륵혁은 처음에 진국공(鎮國公)에 봉하였는데 연좌하여 작위를 빼앗았고 종적에서 삭제하였다.

1661년에 부륵혁은 무죄다 유지를 내려 종적을 회복하였다.

1662년에 진국공을 추봉하였다.

아들 구자, 작극도는 아울러 보국공에 봉하였다.

작극도는 성조(강희제)에 종사하였고 동액을 따라 왕보신을 토벌하였으며, 한중을 수비하였고 진주를 공격하였는데 

군공을 세우지 못하였다.

성경장군(盛京將軍)을 제수하였는데 또 임무를 다하지 못하자 작위를 빼앗았다.

상이 아지거의 공을 기록하여 그 아들 보조에게 보국공을 세습하게 하였는데

일에 연루되어 작위를 빼앗았고 그 동생 경조에게 보국공을 세습하게 하였다.

옹정조(1723년~1735년)에 보조 또한 군공을 세워 작위를 회복하였고 졸하였다.

세종(옹정제)이 유지를 내려 말하길

「보조은 군전에서 온 힘을 다하였고 또한 그 형의 딸을 연갱요의 처로 삼게 하였으니, 이런 연고로 특별히 봉작을 수여하노라!

  지금 연갱요가 은혜를 저버려 주살하였으니 이 작위의 세습은 필요치 않도다!」

수년이 지나자 경조 또한 일에 연루되어 작위를 빼앗았다.

보조와 경조는 모두 시에 능하였다.

1778년에 명을 내려 아지거의 후예는 모두 종적을 회복하게 하였다.

경조의 자손은 차례에 따라 관직을 내렸고 봉은장군을 세습하게 하였다.


요약.

1651년 1월 섭정왕 도르곤이 급사하자 아지거는 정권을 차지하고자 군을 동원한다.

그러나 보정대신에서 해임되었던 지르가랑이 황족과 대신들을 이끌고 순치제를 만나 도르곤의 역모를 고변하였고 

아지거 또한 작위가 삭탈되고 별실에 유폐된다.

별실에 유폐된 아지거는 분을 못이겨 불을 질러 자살하려고 하였고 감시하던 자가 이를 고변하니 순치제는 아지거 처형을 명한다.

아지거의 아들들은 모두 평민으로 강등되었으나 10년이 지난 이후 점차 작위를 회복한 자식들도 있었다.

아지거는 친동생인 도르곤과 도도에 비해 홍 타이지에게 인정받지 못하여 

늘 지위가 낮았으나 아지거 자체는 군사적인 능력이 있었다.

또한 3차 북경 포위전 당시에는 북경 포위 사령관으로 참전하여 뛰어난 전공을 세웠고 홍 타이지의 총애를 받기도 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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