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서열 11위였던 초품일등공 양구리는 광교산에서 전사합니다.
후금과 청초에 양구리 정도되는 인물이 전장에서 전사한 예는 사상 초유의 일이었지요.
당시 일을 각종 기록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1637년 1월 2일 : 홍 타이지 조선 근왕병 격파 명령
→ 요토 병력 1500으로 쌍령으로
→ 도도 병력 1000 + 양구리 병력 1500 으로 광교산으로
→ 김준룡 병력 2000으로 산밑과 산 정상에 병력 포진
1월 7일 새벽 도도, 양구리 광교산 밑에 도착, 눈이 많이 내림
→ 군을 나누어 조선군 수색 명령
→ 산기슭에 정렬한 조선군 발견 → 공격 → 조선군 산 위로 도주
→ 해질 무렵 도도 산 정상의 김준룡 본군을 발견하고 양구리 소환 소라고동 붊
→ 양구리 소라고동 소리를 듣고 산 정상으로 올라감
→ 산 밑에서 도주하여 언덕 틈에 숨어 있던 조선 조총병 양구리 저격, 청군 양구리 시신 수습 못함
→ 21시경 도도 산 밑으로 퇴각
→ 청군이 물러나자 김준용 횃불 키고 말 묶어놓고 야영하는 것처럼 꾸미고 수원 방면으로 하산 퇴각
→ 다음날 청군 광교산 정상으로 돌입, 조선군이 매어논 말 1천마리 회수, 양구리 시신 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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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고 양구리 열전中
내국사원당 1637년 1월 7일 기사中
○ 7일에 전라도와 충청도 2 지방의 도당이 총병관과 만나서 군대 가지고 고려왕(인조)이 포위된 남한성에 도우러 와서
영 세웠다! 하며 듣고서 성스러운 한(홍 타이지) 그 동생 호쇼이 어르커 친왕 도도와 암반 초품 1등공 양구리 어푸를
군대 가지고 가서 살펴보며 싸워라! 하며 보냈다.
호쇼이 어르커 친왕과 초품 1등공 양구리 어푸 등이 조서를 받고 가서 살피니 하늘에서 눈 내리며 어둡게 되고
적의 군대와 영을 분명히 보지 못하고 곧바로 군대를 풀어서 싸우게 하며 산기슭의 곁에 정렬한 고려 군대를 격파하며
처치하고 산 위의 큰 영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어르커 친왕은 소라고동 불며 군대 거두고 초품 1등공을 산 위에 오라!
함께 살피며 병사를 싸우게 하며 격파하자! 하며 부를 적에 초품 1등공 양구리 어푸가 호쇼이 어르커 친왕에 만나러 갈 때에
고려의 도망친 군대가 언덕의 틈에 패전병이 맞이하여 조총 쏠 때에 1등공 양구리 어푸 명중하고 상처에 죽게 되었다.
66세이었다.
대청국에 이득 만들며 어떤 곳곳의 전쟁에서도 앞장서며 앞에서 싸우며 큰 공 많이 세워 공적 많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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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
양구리를 저격한 그 저격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뭐 조선에서는 양구리를 저격한 자가 김준룡이다, 김준룡이 직접 조준을 지시한 병졸 중 한 명이다,
등등으로 알려져 있지만 모두 전공을 과장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준룡 묘비문에는 김준룡이 적장을 향해 집중 사격을 명했다고는 하나
정황상 양구리는 산 위로 올라오다 불시에 저격당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청군은 양구리가 어디서 죽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다음날 날이 밝은 후에나 시신을 수습했기 때문이지요.
여하튼 청의 기록과 이덕무의 청장관전서를 살펴보면 양구리 저격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청사고 도도 열전中
양구리(양고리)가 패잔병에 의해 전사했는데 그 사람을 사로잡아 참하고 이로써 제를 지냈다.
청장관전서 양엽기 中
양고리(楊古利) 만주 정황기 출신. 태조가 딸을 그의 아내로 주었다.
숭덕 2년에 조선에 출정하다가 어떤 패잔병이 벼랑 사이에 숨어서 쏘는 조총을 맞고 상처가 심하여 죽었다.
태종이 친히 상사(喪事)에 임해 통곡, 무훈왕(武勳王)을 추봉하였고
아들 탑첨(塔瞻)을 초품공(超品公)에 습위시켰으며, 순치(順治) 연간에 배향시켰다.
(중략)
액삼(額參) 만주 정황기 출신. 숭덕 원년에 조선에 출정하였다가
조선의 국서를 가지고 명 나라로 가는 사람을 쏘아 잡았으므로 태종이 그 능력을 가상히 여겼다.
그 이듬해에 양고리(楊古利)와 함께 조선 군사를 대파시켰는데, 양고리가 적에게 상했으므로
태종이 심히 슬퍼하는 사이에 한 졸병이 산마루를 달려 동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자가, 저자가 바로 양고리를 해친 자라고 하므로 액삼을 시켜 그를 쫓아가게 한바 그 이튿날 그 수급을 가져다 바쳤다.
즉, 양구리의 시신을 회수하고 그 소식을 들은 홍 타이지가 통곡하고 있던 그때
한 조선군 한 명이 도망가는 것이 보였고, 청군 중에서
<저자가 양구리 공을 저격한 놈입니다요!!!>
하니 홍 타이지는 액삼, 만주어로 어선[esen]에게 명을 내려
<저놈을 기필코 잡아라>하니 어선이 하루를 추격하여 다음날 그 목을 베어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뭐 양구리 저격병이 광교산에서 무슨 연유로 남한산성까지 단독으로 쫓아간 것인지도 의문이고
조선 병졸을 보고 양구리 저격병이라 지목한 이유도 의문이고
여하튼 팩트는 조선군 1명을 양구리 저격병으로 둔갑시켜 그 목을 양구리 제사상에 올렸다는 이야기네요.

*jafa[자파] : jafambi[자팜비]/잡다의 명령형 [잡아라!]
-불쌍한 저격병 그 목을 가지고 인조에게 바쳤다면 크게 출세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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