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봉실기 번역(병자호란 동선령/토산 전투 관련) 병자호란 관련 사서 번역

*추봉실기(秋峯實紀) : 1939년 최홍락(崔鴻洛)이 10대조 최신남(崔藎楠)의 상소와 가장 등을 편집, 간행한 서적

*최신남(崔藎楠) : 경주 최씨, 생몰년 1595년~1673년, 병자호란 당시 정방산성, 토산전투, 미원에 종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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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 가능성 농후

-다른 사료와 교차검증이 거의 안된다.

-심각한 오류가 너무 많다.

(글 후반부에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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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서의 가치는 차치하더라도, 추봉실기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정말 많습니다.

 특히나 병자호란 당시 조선이 최초로 청군을 타격한 전투인 동선령 전투가 너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쏘시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일단 번역하였으니 소개해 드립니다.


*영인본을 보고 번역한 것이라 오독,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수정할 부분 있으면 알려주세요.^^


추봉실기(秋峯實紀) 中

(중략)

臣上年三月領御營軍右司把摠李起男六哨官左司把摠姜杙年四哨官赴西同年十二月初十日在中和聞變卽下傳令於各司

行軍而十一日辰時馳入正方巳時敵先鋒到黃州臣所領六百名及右司把摠李起男軍四百名合御營軍一千名

中和縣監臣金述軍七百名僅得入城守其四門而已其他黃海道各官軍兵未及入城此則我國法令解弛各官不謹烽火間牒致

此顚倒可勝言哉帥臣徒守空城無如之何於是更以督令分送軍官密諭諸軍使之乗隙入城軍兵及諸將稍稍入城軍勢漸盛

同月十八日臣與黃海兵使臣李碩達謨欲遮擊下令軍中募其奮擊者前郡守臣金應得前劍使臣徐屹等應募

各將鐵騎出御營左司所管砲手四百八十名御營右司砲手九十名合五百七十名并其哨官率領出城齊肅號令

卽以砲手一百七十名設伏於蛇入巖西邊路上使哨官臣姜瑞等將之以砲手八十名設伏於大洞仙嶺底北邊

至蛇入巖東邊沿道設伏而使哨官臣成天海韓得還將之以砲手九十名設伏於蛇入巖北邊山谷而使哨官臣宋遇將之

相與約束曰李起男軍則居前後設伏之中當賊行時衝斷其腰使首尾不得相接然後臣成天海韓得還軍則遮擊前進

使不得踰洞仙嶺而設道伏兵從傍急功臣宋遇軍則俺擊後退之賊而賊若不退强突酣戰則前軍卽趍繼援事約束

卽定臣居李起男軍中申飭前後各哨官使之戒嚴以待又使中軍崔斗楠與別將崔起楠分藏鐵騎二處欲爲左衝右突之計矣

二十日黎明賊多至萬餘騎賊先知鐵騎分藏處不入蛇入巖而繞陣平原一時着甲冑於是前項分藏鐵騎不過數千衆寡不敵故卽收上而陣

賊吹角點旗緣山途戰別將臣崔起楠所騎馬中箭而蹶步而逆戰其軍着退臣別設奇兵邀擊斬先登負旗者賊還下山

如此之際賊又知蛇入巖伏兵而避行故同處伏兵砲殺只爲二十餘級而其賊於蛇入巖東南屯聚仍向洞仙嶺臣呼哨官臣姜瑞

瑞不顧而遠避開諭軍士權德男等曰城中士氣在於今日之戰而馬軍如彼我伏兵初頭所獲亦不多賊踰嶺則非徒軍心沮害

吾與汝等難免軍律也嶺下伏兵地形最要一夫當關之地不如急趍合力也卽率權德男等先趍而哨官臣李起男把摠臣崔龜楠亦率砲手

秦山朴守等追來相與趍進洞仙則同處哨官皆不得見只有軍士等因以激勵於是李起男挾銃爲士卒倡遮挾急攻

則山險路隘賊氣不能慿陵三進三北死者甚多負大旗者吹角子幷皆中丸死不能踰嶺走入西南谷中不能進退遂分屯二處迭出

死戰日至申時死者過半餘賊棄馬步出一邊則全面來突一邊則收屍身一邊則膝行由東隅潜出登山圍我之後此時東邊伏兵失守

且前約束繼援哨官臣宋遇者亦率其軍而遁臣勢最急於是臣顧見山腰有大巖險峻試問於旗摠崔彦上等曰

汝等留此?日必知地形矣要害處又有善於此巖者乎彦上答以無有臣遂與李起男勒兵退休此巖方變陣而受圍

賊從後巖上轉石前三面則矢下如雨我軍沮苶莫適所從臣與李起男邀勵諸軍曰與其走而生不若戰而死爾我同心死生共之

乃聚藏身怯弱者數十餘名于巖底而令李起男率秦山等一隊前禦崔壯楠一隊東禦朴守等一隊西禦黃福明金奉化等則率若千人

自當捍其後面之賊賊連續中丸而墜巖故於是後賊先潰下山時福明等追殺幾盡之賊三面鱗次皆敗北後則賊合勢曳出其屍然矢盡鞬空

臣軍乗勝發無不中死者相枕又馬斃者不可勝記弓矢積路臣立見城上亦出疑兵皷譟喊聲大振□□臣崔藎楠亦陣干西邊山上以助形勢

餘賊計竆力屈矢盡馬斃故乗其日暮竄走西南谷屏息不出冒夜而遁當此時宋遇若在而從前約束則餘賊無一生遁也

而逃歸其家可勝痛哉戰勝之後卽收兵點閱因令軍中曰今日雖得地形以小勝衆然彼我較之則一以當千誠近古所未有之功

願諸軍勿貪斬級勿貪寶物而速入城中可矣此賊往來如風後陣若猝至

則汝等旣疲藥丸又盡日且云暮難可枝梧矣只收賊馬斃三千餘匹甲胄若干部斬將二級負旗者二級

方受圍時巖上所斬二級其餘賊五十餘級而促令入城未及城門果有賊一陣自黃州突進此其猝至者也

臣入城城中壯士稱賀仍令曰明朝出兵收賊屍斬馘焚燒一邊收入賊軍器云云翌日未明賊大來三日不絶此其汗之來

而前日之賊及其先鋒也衆寡不敵諸軍痛哭而已計其初戰時賊生走者只數百則死者必累千計矣

卽以首功馳啓而同月二十七日勤王次行軍時以御營軍能戰故爲先鋒而正月初四日行至兎山臣陣于前中和縣監金述陣于臣之後

黃海監司李培元中軍載寧縣監安應台陣于兵使之後千摠崔藎楠別將崔智楠哨官崔泰楠軍各陣于左右初五日朝

賊衝突于後斥候未及報也臣軍失措賊盡破五陣兵馬因乗勝蹂躙臣督令麾兵移陣于右背絶險處此則臣所領步兵也

士皆死戰南面砲手文大一金大元許允希等突出諸軍砲殺賊先鋒士皆爭奮先破南面而西北面仍敗退此時從事官鄭太和爲賊所圍率牙兵

若干人依墻壁死戰方急之際千摠臣崔藎楠奔走督戰砲殺賊將卽地塹其首諸將官軍士等踊躍爭先喊聲大振

從事官從墻內以應臣等仍乗勝遂賊救活黃海敗軍一半又追奪我國被掠戰馬七百餘匹賊馬三千餘匹

斬首數百餘級顧謂諸將曰累次大捷功莫重焉若非汝等血戰一軍將士應無遣類矣嘖嘖不已明朝賊再來

又擊却之賊只得其將屍於積屍之中扶舁而退相聚燒其屍而走又將此馳啓此後則慮賊後突又獨以臣所領兵爲後捍

但此時幕下勝兵只御營軍現在七百名其他退現軍平安兵馬八百名合計一千五百名也遂遇南道軍於楊根其虚弱不可形言

而此軍及前日兎山所沒黃海軍兵矣以此軍勢赴南漢非不知以肉投餒虎而諸道援兵不前進雖欲待之君父之勢日急寧死南漢之下

不忍延時刻之意复爲約束整軍前臨當此時只有效死之志而忽聞請和之奇一軍失聲痛哭自死者亦多

遂自龍津罷遣故御營軍等爲國誓死血戰之誠竟歸於虛地矣大抵臣率敢六百名之將領也

古人有五百名制勝者則不能破賊之罪臣亦固當無辭而第伏念所領軍兵等千里戰鬪小無失律觸處先登力戰得捷

其中把摠李起男姜杙年哨官臣成天海韓得還僉使臣徐屹軍士黃福明金奉化秦山朴守徐仁

劉厘同權德男文大一崔萬翼等幾名則每當賊鋒身先諸軍冒刃開道視死如歸眞有大功勞人也



상소

(중략)

신은 지난해(1636년) 3월에 어영군 우사 파총 이기남과 6초관 및 좌사 파총 강익년과 4초관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부임했습니다.

같은 해 12월 10일에 중화에 변이 생겼다는 것을 듣고는 즉시 각사에 영을 내려 행군하라 명하였고

11일 07~09시에 질주하여 정방산성으로 들어갔습니다.

09~11시에 적 선봉이 황주에 이르렀는데 신의 소관 600명과 더불어 우사파총 이기남의 군 400을 합하여 1천을 거느렸고,

중화현감 김술의 군 700명이 겨우 성으로 들어오니 성문 4개를 지킬 뿐이었습니다.

기타 황해도의 각 관리와 군병들은 미처 성에 들어오지도 못하였으니

이는 곧 아국의 법령이 해이하여 각 관리가 삼가하여 봉화와 첩문을 올리지도 않아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나이까?

이에 다시 영을 내려 군관을 나누어 보내고 밀지를 주어 독려하니, 여러 군리들이 틈을 타고 입성하였고, 

군병과 더불어 제장들이 점점 입성하자 군세가 점차 성하여졌습니다.

이달 18일에 신이 황해병사 이석달과 함께 모의하여 적을 차단하고 공격하고자 하여 군중에 모병을 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분격한 자는 전군수 김응득, 전첨사 서흘 등이 응모하였고, 각 장수들의 철기가 나왔으며

어영좌사 소관 포수 480명과 어영우사 포수 90명, 도합 570명과 더불어 그 초관들을 인솔하고 

출성하여 가지런하게 호령하였나이다.

곧 포수 170명을 사입암 서쪽 부근 길 위에 매복시키고 초관 강서 등으로 하여금 거느리게 하였으며,

포수 80명을 대동선령 밑 북쪽 부근에 매복시키고, 사입암 동쪽 부근의 길 양쪽에 이르기까지 매복시켰고 

초관 성천해와 한득환으로 하여금 거느리게 하였으며,

포수 90명을 사입암 북쪽 부근 산곡에 매복시키고 초관 송우로 하여금 거느리게 하였나이다.

서로 간에 약속하며 말하길

   <이기남 군은 곧 전후의 매복 가운데 있다가 적이 행군하여 오면 그 허리를 공격하여 끊고

    꼬리와 머리로 하여금 서로 접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한다.

    그런 연후에 성천해와 한득환의 군은 곧 전진한 적을 차단하고 공격하여 동선령으로 오르지 못하게 하고

    길에 매복한 복병은 곁을 따라 급히 공격한다.

    송우의 군은 곧 후퇴하는 적을 기습하고 적이 만약 물러나지 않는다면 돌격하여 싸우고

    곧 전방의 군이 곧 이어서 달려가 구원하겠다!>

약속하였습니다.

이윽고 정하자 신은 이기남 군중에 있으면서 전후의 초관들을 각각 단단히 경계하고 계엄하여 이로써 대기하도록 하였습니다.

또 중군 최두남으로 하여금 별장 최기남과 함께 철기를 두 곳에 나누어 감추고 좌충우돌의 계책으로 삼고자 하였나이다.

20일 여명에 적 만여기에 이르는 많은 적을 만났는데, 적이 (조선) 철기가 나누어 숨은 곳을 먼저 알고

사입암에 들어오지 않고 평원에 요란하게 포진하여, 일시에 갑주를 착용하였습니다.

이에 전항에 나누어 숨은 철기가 수천에 불과하여 중과부적이었고 이런 연고로 곧 위로 거두어 포진하게 하였습니다.

적이 소라고둥을 불고 기를 위아래로 흔들면서 산길을 경유하여 도전하였습니다.

별장 최기남이 탄 말이 화살에 맞아 넘어졌는데 일어나 역습하여 싸웠습니다.

그 군이 퇴각하는 형상을 보이자 신이 별도로 설치한 기습병이 요격하여 먼저 오르는 기를 등에 맨 자를 참하니

적이 산을 내려가 돌아갔습니다.

이러한 즈음에 적이 또 사입암의 복병을 알아채고 이를 피하여 움직였습니다.

이런 연고로 그곳의 복병들의 사살한 것이 겨우 20여급에 불과하였고

그 적들이 사입암 동남에 모여서 둔을 치고 거듭 동선령으로 향하였습니다.

신이 초관 강서를 불렀으나 강서가 돌아보지 않고 멀리 피하였습니다.

권덕남 등이 군사들을 타일러 말하길

   <성안의 사기가 금일의 싸움에 있고 저들이 기병이라 우리 복병이 처음에 사살한 수도 많지 않았다.

    만약 적이 고개를 넘어가면 즉 군심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나와 너희들 모두 군율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니라!

    고개 아래 복병의 지형은 가장 험하여 한 명이 능히 관을 지킬 수 있는 땅이니 우리가 급히 달려가 합세하는 편이 낫다.>

이에 권덕남 등이 인솔하여 먼저 달려갔고, 초관 이기남과 파총 최귀남 또한 포수를 인솔하고

진산과 박수 등이 쫓아가 서로 함께 동선으로 달려갔고

곧 그곳의 초관을 모두 보지는 못하고 단지 있는 군사들을 격려하였습니다.

곧 이기남이 총을 휴대하고 사졸과 함께 급히 공격하였는데,

즉 산이 험하고 길이 좁으니 적이 언덕을 의지할 수 없었고 세 번 진군하였는데 세 번 패배하니 죽은 자가 심히 많았습니다.

큰 깃발을 든 자와 소라고둥을 부는 자가 모두 탄환에 명중되어 죽었고

고개를 넘어갈 수가 없게 되자 서남쪽 골짜기 사이로 도주하여 들어갔는데

진퇴가 불능하자 마침내 2곳에 나누어 둔하면서 번갈아가며 나와 죽도록 싸웠습니다.

15시~17시에 이르자 죽은 자가 과반이었으며 남은 적은 말을 버리고 걸어서 나왔는데

한쪽은 곧 전면으로 돌격하여 왔고, 한쪽은 곧 시신을 거두었으며,

한쪽은 곧 무릎으로 기어서 동쪽 모퉁이를 경유하여 은밀하게 나와 산에 올라 아군의 뒤를 포위하였습니다.

이때에 동쪽 부근의 복병이 지키지 못하였고 또한 전에 이어서 구원하겠다 약속한 초관 송우란 자 또한 

그 군을 인솔하여 달아나니 신의 세가 이에 매우 위급하였습니다.

신이 산 중턱을 돌아보니 큰 바위가 있고 험준하였습니다.

기총 최언상 등에게 물어보길

   <너희들은 이곳에 있는지 여러 날이니 지형을 필히 알 것이다.

    요해처나 좋은 바위가 있는가?>

최언상이 그런 곳은 없다 답하였습니다.

신이 마침내 이기남과 함께 대오를 정돈하고 물러나서 휴식하게 하였습니다.

적이 이 바위로 올라와 바야흐로 우리를 포위하였습니다.

적이 뒤쪽 바위로 올라가 위에서 돌을 굴리고 앞의 삼면으로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니

아군이 원기를 잃고 적을 대적하지 못하였는데 신과 더불어 이기남이 군사들에게 힘쓰길 요구하며 말하길

   <달아나 사는 것이 싸우다 죽느니만 못하다! 너희와 내가 동심으로 사생을 함께 하자!>

이에 겁약자 수십여 명을 바위 밑에 모아서 숨겨놓고 이기남과 진산 등이 1대를 인솔하여 앞을 방어하게 하였고,

최장남은 1대로 동쪽을 방어하게 하였고, 박수 등은 1대로 서쪽을 방어하게 하였고

황복명과 김봉화 등은 몇 명을 인솔하여 스스로 후면의 적을 방어하였습니다.

적이 연속하여 탄환에 명중되어 바위에서 떨어지니 이런 연고로 뒤의 적이 먼저 흩어져 산을 내려갔습니다.

이때 황복명 등이 추격하여 거의 죽였습니다.

적이 3면으로 비늘같이 늘어서 모두 패하여 달아났습니다.

후에 적들이 합세하여 그 시신을 끌어냈는데 화살이 떨어져 화살통이 비니

신의 군이 승세를 타고 발사하여 명중되어 죽지 않는 자가 없었고 적들이 서로 포개어 죽었습니다.

또 적의 말이 죽은 것들이 이루다 기록할 수 없었고 궁시는 길에 쌓였습니다.
신이 성위를 서서 바라보니 또한 의병(적을 꾀는 가짜 군사)들이 나와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니 □□이 크게 진동하였습니다.
신 최신남 또한 서쪽 부근 상 정상에 포진하여 이로써 형세를 도왔는데
남은 적들이 계책이 궁하고 힘이 다하였으며, 화살은 떨어지고 말이 죽으니
이런 연고로 해가 진 틈을 타고 서남쪽 골자끼로 몰래 달아나 숨을 죽이고 나오지 않았는데 밤을 틈타 달아났습니다.
이 당시 송우가 만약 종전의 약속대로 있었다면 즉 남은 적이 하나도 살아서 도망가지 못하였을 것이옵니다.
그런데도 그 집으로 도망쳐 돌아갔으니 통탄스럽기 그지없나이다.
승전한 이후에 즉각 병력을 모으고 점고하고 군중에 영을 내려 말하길
   <금일 비록 지형의 유리함을 얻어 작은 승리를 거두니 무리가 저쪽과 우리를 비교하면서
    곧 일당천이라 여기며 진실로 근래에 있지 않은 공이다 여기고 있다.
    그러나 병사들은 적의 수급을 탐하지 말라! 보물을 탐하지 말라!

    속히 성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옳도다!

    이 적이 바람과 같이 오고 가는데 후진이 만약 졸지에 이르게 된다면

    곧 너희들은 이미 피곤하고 탄환 또한 떨어졌다.

    날 또한 저물어 곤란하니 어찌 서로 어긋나겠는가?>

이에 단지 적의 죽은 말 3천여필과 갑주 약간과, 적장의 수급 2, 깃발을 매단 자 2급, 그 나머지 적 50여급을 모으고

영을 내려 입성을 재촉하여 성문에 미처 이르지 못하였는데

과연 적의 1진이 황주로부터 돌진하여 갑자기 이른 것이었습니다.

신이 입성하였는데 성중의 장졸들이 칭하하니 이에 영을 내려 말하길

   <내일 아침 출병하면 적의 시신과 수급을 한 곳에 모아 불태우고 적의 갑주와 무기를 거두어들이겠다!>

운운하였나이다.

다음날 미명에 적이 크게 왔는데 3일간 끊이지 않으니 이는 그 한(汗)이 온 것으로, 전일의 적은 그 선봉에 그칠 뿐이었습니다.

중과부적하니 제군들이 통곡할 뿐이었습니다.

그 처음 싸울 때 적으로 살아서 도주한 자를 헤아리니 단지 수백에 불과하였고 그 죽은 자는 필히 수천을 헤아릴 것이옵니다.

이에 수공(적의 목을 벤 공로)으로써 치계하였나이다.

그리고 같은 달 27일에 근왕차 행군시에 어영군이 전투에 능하니 이런 연고로 선봉으로 삼았으며

정월 4일에 토산으로 행군하여 이르렀습니다.

신은 앞에 포진하고, 중화현감 김술은 신의 뒤에 포진하고, 

황해감사 이배원과 중군 재녕현감 안응태는 병사(兵使)의 뒤에 포진하였습니다.

천총 최신남, 별장 최지남, 초관 최태남 군은 각각 좌우에 포진하였습니다.

5일 아침에 적이 후방에서 공격하였는데 척후가 미처 보고하지 못하였습니다.

신의 군이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고 적이 5진의 병마를 모조리 격파하고 이로 인하여 승세를 타고 유린하였습니다.

신은 휘하 병력을 독령하여 우측 뒤에 진을 옮겨 험한 곳을 막았습니다.

이때 신의 휘하는 보병이었나이다.

군사가 모두 남면에서 죽도록 싸웠는데, 포수 문대일, 김대원, 허윤희 등이 돌격하여 나가니

여러 군이 적의 선봉을 사살하였고 군사들이 모두 분격하여 남면을 먼저 격파하니 적이 서북면으로 곧 패퇴하였습니다.

이때에 종사관 정태화가 적에게 포위를 당했는데 아병(牙兵) 몇 명을 데리고 장벽에 의지하여 죽도록 싸웠습니다.

바야흐로 급할 즈음에 천총 신 최신남이 달려 나가 싸움을 독려하여 적장을 사살하였고 즉시 그 땅에서 그 머리를 참하니

여러 장관과 군사들이 뛸듯이 환호하며 선두를 다퉜고 함성이 크게 진동하였습니다.

종사관이 담장 안을 따라 신들과 호응하니 이에 승기를 타고 마침내 적으로부터 황해의 패잔병 반을 구출하였습니다.

또 노략질당한 나라의 전마 700여필과 적의 말 3천여필을 빼앗았고 수백여급을 참수하였습니다.

제장들을 돌아보며 말하길

   <누차 대첩의 공이 막중하다!

    만약 너희들이 혈전하지 않았다면 한 명의 장졸도 살아서 돌아가는 자가 없었을 것이로다!>

크게 외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적이 다시 왔는데 또 공격하여 물리쳤고

적이 단지 쌓인 시신 가운데 그 장수의 시신을 얻어 떠받치고 서로 물러나서 그 시신을 불사르고 도주하였습니다.

또 장차 이 치계 이후에 곧 오랑캐가 후방을 공격하니 오직 신의 소속병력을 후군으로 삼았나이다.

단지 이때에 막하 승전한 병력이 단지 어영군 700명에 불과하였고 그 나머지는 퇴각하였습니다.

당시 군은 평안병마 800명을 합하여 1500명이었습니다.

마침내 남도군을 양근에서 만났는데 그 허약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그 군과 더불어 전일 토산에서 패전한 황해의 군병 뿐이었습니다.

이 군세로써 남한에 다다르는 것은 굶주린 호랑이에게 고기를 던지는 것임을 알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으나

여러 도의 원병이 전진하지 않고 오직 대기하기만 하고, 군부의 세가 하루가 급하니,

차라리 남한산성의 아래에서 죽고자 하였습니다.

때를 지체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마침내 시일을 정하고 다시 약속하여 군을 정돈하여 전진하는 것이 마땅하였나이다.

이때에는 단지 죽고자 하는 뜻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화친의 소식을 홀연히 듣게 되자 일군이 실성하여 통곡하였고 스스로 죽는 자 또한 많았습니다.

하여 마침내 용진으로부터 군사를 파하여 돌려보냈나이다.

이런 연고로 어영군 등이 나라를 위하여 죽기를 맹세하고 혈전한 성심이 마침내 헛되이 돌아갈 뿐이었나이다.

대저 신은 감히 600명을 인솔하는 장령이었는데, 고인은 500명을 통솔하는 자가 곧 적을 격파하지 못함에는 죄라 하였으니

신 또한 어떤 할 말도 없으나 다만 엎드려 생각건대 거느린 군병 등은 천리를 혈투하며 군율을 어긴 것이 하나도 없었으며

가는 곳마다 먼저 오르고 힘껏 싸워 승리를 얻었나이다.

그중 파총 이기남, 강익년, 초관 성천해, 한득환, 첨사 서흘, 군사 황복명, 김봉화, 진산, 박수, 서인, 유리동, 권덕남, 문대일, 

최만익 등의 몇 명은 매번 적의 선봉을 감당하였으며 여러 군사들에 앞서 칼날을 무릅쓰고 길을 열고 죽는 것을 

돌아가는 것과 같이 여겼으니 진실로 노력하여 대공을 세운 사람들이나이다.



해서(海西) 동고록(同苦錄)

황해감사(黃海監司) 이배원(李培元) -종2품

풍천부사(豐川府使) 최유장(崔有章) -종3품

황해병사(黃海兵使) 이석달(李碩達)-동선령

토산현감(兔山縣監) 김익재(金益載) -종6품

황주군수(黃州郡守) 김응득(金應得)-동선령 -종4품

평산현감(平山縣監) 이재희(李材禧) -종6품

재령현감(載寧縣監) 안응태(安應台) -종6품

파총(把摠) 최만익(崔萬翼) -종4품(1사 640명 통솔)

중화현감(中和縣監) 김술(金述)-동선령 -종6품

중군(中軍) 최두남(崔斗楠)-동선령 -정3품

강음현감(江陰縣監) 변사기(邊士紀) -종6품

별장(別將) 안철(安澈) -종9품

도호사(都護使) 최사박(崔嗣朴) -정3품

도호사(都護使) 최지남(崔智楠) -정3품

황해중군(黃海中軍) 박세복(朴世福) -정3품

황해중군(黃海中軍) 최기남(崔起楠)-동선령 -정3품

종사관(從事官) 정태화(鄭太和) -종6품

호군(護軍) 최태남(崔泰楠) -정4품

총관(摠管) 최신남(崔藎楠)-동선령 -종2품

초관(硝官) 강서(姜瑞)-동선령 -종9품(1초 100명 통솔)(재직기간 600일후 종6품 승급)

첨사(僉使) 서흘(徐屹)-동선령 -종3품

첨사(僉使) 이익룡(李翼龍) -종3품

파총(把摠) 이기남(李起男)-동선령 -종4품(1사 640명 통솔)

파총(把摠) 성천해(成天海)-동선령 -종4품(1사 640명 통솔)

파총(把摠) 강익년(姜杙年)-동선령 -종4품(1사 640명 통솔)

파총(把摠) 한득환(韓得還)-동선령 -종4품(1사 640명 통솔)

초관(硝官) 송우(宋遇)-동선령 -종9품(1초 100명 통솔)(재직기간 600일후 종6품 승급)

초관(硝官) 서인(徐仁) -종9품(1초 100명 통솔)(재직기간 600일후 종6품 승급)

사과(司果) 최귀남(崔龜楠)-동선령

파총(把摠) 유리동(劉厘同) -종4품(1사 640명 통솔)

초관(硝官) 권덕남(權德男)-동선령 -종9품(1초 100명 통솔)(재직기간 600일후 종6품 승급)

사과(司果) 최장남(崔壯楠)-동선령 -정6품

사과(司果) 진산(秦山)-동선령 -정6품

기총(旗摠) 최언상(崔彦上)-동선령 -정8품(1기 50명 통솔)

기총(旗摠) 박수(朴守)-동선령 -정8품(1기 50명 통솔)

기총(旗摠) 황복명(黃福明)-동선령 -정8품(1기 50명 통솔)

기총(旗摠) 김봉화(金奉化)-동선령 -정8품(1기 50명 통솔)

기총(旗摠) 김대원(金大元) -정8품(1기 50명 통솔)

부위(副慰) 문대일(文大一)

부위(副慰) 허윤희(許允希)



*추봉실기 문제점

1. 1644년 심기원의 옥사에 연루된 최신남의 종제 최사박(崔嗣朴)의 무고를 청원하는 상소


2. 최사박은 압슬형을 받고 그해 사망.


3. 1939년에 후손이 간행, 이전의 어떤 사료(실록등등)에도 최신남이나 추봉실기 인용, 언급 없음


4. 추봉실기에는 최신남이 1624년 형제 및 종제들과 함께 무과 합격했다고 하나

   실제 1624년 무과 합격 원본 기록엔 최사박만 있음

http://people.aks.ac.kr/front/imageView/imageViewer.aks?exmId=EXM_MU_6JOb_1624_001386


5. 추봉실기에는 최신남이 병자호란 당시 정3품 통정대부, 병자호란 당시에는 정2품 총관이다고 기록

  그러나 1624년 무과에 50명등 30등한 최사박은 13년 동안 관직이 없다가 1636년에나 관직을 제수받음

http://db.itkc.or.kr/dir/item?itemId=ST#/dir/node?dataId=ITKC_ST_P0_A14_07A_15A_00210&solrQ=query%E2%80%A0%EC%B5%9C%EC%82%AC%EB%B0%95$solr_sortField%E2%80%A0%EA%B7%B8%EB%A3%B9%EC%A0%95%EB%A0%AC_s%20%EC%9E%90%EB%A3%8CID_s$solr_sortOrder%E2%80%A0$solr_secId%E2%80%A0ST_AA$solr_toalCount%E2%80%A03$solr_curPos%E2%80%A00$solr_solrId%E2%80%A0BD_ITKC_ST_P0_A14_07A_15A_00210


6. 1624년 무과 급제 기록 원본엔 최사박 형제의 돌림자가 남(男)인데, 추봉실기에는 모두 남(楠)으로 

되어 있음.

http://people.aks.ac.kr/front/imageView/imageViewer.aks?exmId=EXM_MU_6JOb_1624_001386


7. 추봉실기에는 최신남의 직급을 해서어영총관이라고 하였으나, 토산전투 부분에서는 천총(정3품)이라고 언급,

또한 해당글의 주체가 최신남이 아닌 다른 사람임

<추봉실기 토산전투 부분中>

1월 4일에 행군하여 토산에 이르러 신은 앞에 진을 치고 중화현감 김술은 신의 후방에 진을 쳤습니다.

황해현감 이배원과 중군 재령현감 안응태는 병사의 후방에 진을 쳤습니다.

천총 최신남과 초관 최태남의 군은 각각 좌우에 진을 쳤습니다.


8. 무과 급제 문서에는 최사박의 거주지가 경주로 되어 있음.

   만약 1624년에 추봉실기대로 최신남, 최사박, 최구남, 최두남, 최기남, 최지남, 최태남, 최장남 등이

   한꺼번에 무과에 합격했다 치더라도, 병자란에 모두 정방산성 인근에 배치되어 있을 수 있는지???



*바다루님 추봉실기 사료 부적절 판단

https://blog.naver.com/demon_illu/221683929599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당시 실존인물과 추봉실기에 언급한 인물이 완전히 다름

2. 정방산성 어영군 주둔 기록 실록과 불일치

3. 동선령 전투 청과 조선군 규모 10배~30배이상 차이남

4. 추봉실기에 언급한 3남 근왕병의 양근 도착 기록 사실이 아님

5. 추봉실기 작중 주체에 대한 스스로의 혼란

   -최신남이 글을 쓴 것처럼 나열하다, 갑자기 최신남이 제3자가 되어버림

6. 사용 문법, 사용례, 어휘 등이 20세기에나 쓰는 것들임



*가정

1. 위서다!

  최사박이 역모죄로 죽은 것에 대해서 최익현, 최병호, 최희범, 최홍락 中

  무고로 인한 죽음으로 하기 위해 최신남의 상소를 만들어냈다!

2. 진실도 있다!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며 현지 지명과 지형 등에 대해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실제 전투에 참가한 사람과 혹은 그러한 기록이 있을 수 있다!

3. 사실이다!

  만의 하나 위에 언급한 위서의 의혹을 모두 깨부술 새로운 확실한 사료나 정황이 드러난다면

  동선령 전투의 정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사료의 등장이다!


아쉽게도 가능성은 1번이 제일 높은거 같습니다.

혹은 사실과 거짓을 버무린 것일 수도 있고요.


몇칠 동안 추봉실기를 함께 연구하여 주신 바다루님께 깊은 고마움을 표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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