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관 1년 후 1645년 4월 청군이 10일간 80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진 양주십일기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7부-함락2일차(1) 젖먹이들이 길가에 간과 뇌를 흩뿌리다!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8F%9A%E5%B7%9E%E5%8D%81%E6%97%A5%E8%A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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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門,已有一卒拘數美婦在內簡檢筐篚彩緞如山,見三卒至,大笑,即驅予輩數十人至後廳,留諸婦女置旁室;
中列二方幾,三衣匠一中年婦人製衣。
婦揚人,濃抹麗妝,鮮衣華飾,指揮言笑。
欣然有得色,每遇好物,即向卒乞取,曲盡媚態,不以為恥;
予恨不能奪卒之刀,斷此淫孽。
卒嘗謂人曰:
「我輩征高麗,擄婦女數萬人,無一失節者,何堂堂中國,無恥至此?」
嗚呼,此中國之所以亂也。
三卒隨令諸婦女盡解濕衣,自表至裏,自頂至踵,並令製衣婦人相修短,量寬窄,易以鮮新;
諸婦女因威逼不已,遂至裸體相向,隱私盡露,羞澀欲死之狀,難以言喻。
易衣畢,乃擁之飲酒,嘩笑不已;
一卒忽橫刀躍起向後疾呼曰:
「蠻子來,蠻子來!」
近前數人已被縛,吾伯兄在焉。
仲兄曰:
「勢已至此,夫復何言?」
急持予手前,予弟亦隨之,是時男子被執者共五十餘人,提刀一呼,魂魄已飛,無一人不至前者;
予隨仲兄出廳,見外面殺人,眾皆次第待命,予初念亦甘就縛,忽心動若有神助,潛身一遁,復至後廳,而五十餘人不知也。
廳後宅西房尚存諸老婦,不能躲避,由中堂穿至後室,中盡牧駝馬,復不能逾走;
心愈急,遂俯就駝馬腹下,歷數駝馬腹匍匐而出;
若驚駝馬,稍一舉足,即成泥矣。
又歷宅數層,皆無走路,惟旁有弄可通後門,而弄門已為卒加長錐釘固;
予復由後弄至前,聞前堂殺人聲,愈惶怖無策,回顧左側有廚,中四人蓋亦被執治庖者也,予求收入,
使得參司火掌汲之役,或可倖免。
四人峻拒曰:
「我四人點而役者也,使再點而增人,必疑有詐,禍且及我!」
予哀吁不已,乃更大怒,欲執予赴外,予乃出,心益急,視階前有架,架上有瓮,去屋不甚遠,乃援架而上,
手方及瓮,身已傾仆,蓋瓮中虛而用力猛故也。
無可奈何,仍急趨旁弄門,兩手棒錐搖撼百度,終莫能動,擊以石,則響達外庭,恐覺;
不得已復竭力搖撼之,指裂血流,淋漏兩肘,錐忽動,儘力拔之,錐已在握,急掣門㧀,㧀木槿也,濡雨而漲,
其堅澀倍於錐,予迫甚,但力取㧀,㧀不能出而門樞忽折,扉傾垣頹,聲如雷震,予急聳身飛越,亦不知力之何來也。
疾趨後門出,即為城腳。
時兵騎充斥,觸處皆是,前進不能,即於喬宅之左鄰後門挨身而入;
입문(入門)하니, 이미(已) 1졸(卒)이 있어 수(數)명의 미부(美婦/아름다운 부인)를 구(拘/체포함)하였고
내(內)안에 있으면서 산(山)과 같은 광비(筐篚/대광주리)의 채단(彩緞/고운 빛깔 비단)을 간검(簡檢/분간하여 검사함)하였고,
3졸(卒)이 지(至)함을 견(見)하고는, 대소(大笑/크게 웃음)하였고,
즉(即) 여배(予輩) 수십인(數十人)을 구(驅/몰아냄)하여 후청(後廳/뒷마루)에 지(至)하였고,
여러 부녀(婦女)를 유(留)하여 방실(旁室/옆방)에 치(置)하였으며,
중(中)에는 2 방기(方幾)가 열(列)하였고, 3 의장(衣匠)과 1 중년(中年) 부인(婦人)이 제의(製衣/옷을 만듦)하였다.
부(婦)는 양인(揚人)으로, 농말(濃抹/짙게 화장함)하고 여장(麗妝/곱게 단장함)하였으며,
선의(鮮衣/고운 옷)가 화식(華飾/화려하게 장식함)하였고, 언소(言笑/웃으며 말함)하며 지휘(指揮)하였다.
흔연(欣然/기분이 좋은 모양)하여 득색(得色/득의한 기색)이 있었고, 매번(每) 호물(好物)을 우(遇)하면,
즉(即) 졸(卒)로 향(向)하여 걸취(乞取/취하길 애걸함)하였고, 곡진(曲盡/간곡하게 정성을 다함)하게
미태(媚態/아양을 부림)하였는데, 수치(恥)로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졸(卒)의 도(刀)를 탈(奪)하여 이 음얼(淫孽/음란한 천민)을 단(斷)하지 못함을 한(恨)하였다.
졸(卒)이 일찍이 위인(謂人)하여 말하길
「아배(我輩)가 고려(高麗)를 정(征)하여, 부녀(婦女) 수만인(數萬人)을 노략(擄)하였는데,
1 실절(失節/절개를 잃음)한 자(者)가 없었는데,
어찌 당당(堂堂)한 중국(中國)은 무치(無恥/부끄러움이 없음)이 이에 이르렀는가?」
오호라(嗚呼)! 이것이 중국(中國)의 난(亂)이 일어난 소이(所以)로다!
3졸(卒)은 곧바로 여러 부녀(婦女)로 하여금 습의(濕衣)를 진해(盡解)하게 하였는데,
표(表/겉)로부터 리(裏/속)에 이르렀고, 정수리(頂)로부터 종(踵/발뒤꿈치)까지 이르렀고,
아울러 제의(製衣) 부인(婦人)으로 하여금 수단(修短/길이)을 상(相/자세히 봄)하게 하였고,
관착(寬窄/넓고 좁음)을 양(量/헤아림)하게 하였고, 선신(鮮新/깨끗하고 새로움)으로써 역(易)하게 하였다.
여러 부녀(婦女)가 위핍(威逼/위협)으로 인(因)하여 부기(不已/멈추지 못함)하였으며,
마침내 나체(裸體)로 상향(相向/서로 마주함)에 이르렀는데, 은사(隱私/은밀하고 사사로움)가 진로(盡露/모두 드러남)하였으며,
수삽(羞澀/부끄러워 머뭇머뭇함)하여 욕사(欲死)의 상(狀)이 언유(言喻/말로 설명함)로써 난(難)하였다.
역이(易衣)가 필(畢)하자, 이내 옹지(擁之)하여 음주(飲酒)하였으며, 화소(嘩笑/시끄럽게 웃음)해 마지않았다.
1 졸(卒)이 홀연히(忽) 횡도(橫刀/칼을 옆으로 듦)하여 약기(躍起/뛰어 일어남)하고
향후(向後)하여 질호(疾呼/급하게 부름)하여 말하길
「만자(蠻子/오랑캐)는 래(來)하라, 만자(蠻子)는 래(來)하라!」
근전(近前)의 수인(數人)이 이미(已) 피박(被縛/잡히어 묶임)하였는데, 내 백형(伯兄/큰형)도 있었다.
중형(仲兄/둘째형)이 말하길
「세(勢)가 이미(已) 이에 이르렀으니, 대저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급히(急) 여수(予手)를 지(持)하여 전(前)하였고, 여제(予弟) 역시(亦) 수지(隨之)하였는데,
이때 남자(男子)로 피집(被執)한 자(者)가 모두 오십여인(五十餘人)이었는데,
제도(提刀)하고 일호(一呼)하니, 혼백(魂魄)이 이미(已) 비(飛/날아감)하여, 1인(人)도 지전(至前)하지 않는 자(者)가 없었다.
나는 중형(仲兄)을 수(隨)하여 출청(出廳/마루에서 나감)하였는데, 외면(外面)의 살인(殺人)을 견(見)하였고,
중(眾)이 모두 차제(次第/차례)로 대명(待命)하였는데,
나의 초념(初念/처음 먹은 생각) 역시(亦) 취박(就縛/잡혀서 묶임)을 감수(甘)하였으나,
홀연히(忽) 심동(心動)하여 만약(若) 신조(神助/신의 도움)이 있다면, 일도(一遁)하여 잠신(潛身/몸을 숨김)한다 하였고,
다시 후청(後廳)에 이르렀는데, 오십여인(五十餘人)이 부지(不知)하였다.
청후(廳後)의 댁(宅) 서방(西房)에는 여러 노부(老婦)가 상존(尚存/아직 존재함)하였는데,
타피(躲避/피하여 숨음)할 수가 없었고, 중당(中堂/중간 채)를 경유(由)하고 천(穿/통과함)하여 후실(後室/뒷집)에 이르렀는데,
중(中)이 모두 타마(駝馬/낙타와 말)를 목(牧/기름)하였고, 다시 유주(逾走/넘어서 달아남)할 수가 없었다.
심유(心愈/근심하는 마음)이 급(急)하였고, 마침내 타마(駝馬)의 복하(腹下)를 부취(俯就/고개를 숙이고 나아감)하였고,
수(數)마리 타마(駝馬)의 복(腹)을 역(歷/지남)하여 포복(匍匐/엎드려 기어감)하여 출(出)하였다.
만약(若) 타마(駝馬)를 경(驚/놀람)하면, 바야흐로 한 번 거족(舉足/발을 듦)한다면, 즉(即) 성니(成泥/진흙이 됨)할 뿐이었다.
또 수층(數層/몇겹)을 역댁(歷宅)하였는데, 모두 주로(走路)가 없었고,
오직 옆에 후문(後門)과 가통(可通)하는 농(弄/골목 거리)이 있었는데,
농문(弄門)은 이미(已) 졸(卒)이 장추정(長錐釘/긴 송곳 못)을 가(加)하여 고(固/가둚)하였다.
나는 다시 후농(後弄)을 경유(由)하여 지전(至前)하였는데,
전당(前堂/여러 채로 된 한 집 가운데서 앞채)의 살인(殺人)하는 성(聲)을 문(聞)하였고,
더욱 황포(惶怖/매우 두려움)하여 무책(無策)하였고, 좌측(左側)을 회고(回顧/돌아다봄)하니 주(廚/부엌)이 있었고,
중(中)의 4인(人)이 모두 또한 피집(被執)하여 치포(治庖/부엌을 다스림)하는 자(者)였다.
내가 수입(收入/거둬들임)을 구(求)하였고, 사화(司火/불을 맡음)와 장급(掌汲/물 긷는 걸 맡음)의
역(役)을 득참(得參/참여할 수 있게 됨)하게 해 준다면, 혹(或) 행면(倖免/요행으로 화를 면함)할 수 있었다.
4인(人)이 준거(峻拒/엄하게 거절함)하며 말하길
「우리 4인(人)은 점고(點)하여 역(役)하는 자(者)들이다.
만일 재점(再點)하였는데 증인(增人)한다면, 필히(必) 유사(有詐/속임이 있음)을 의심(疑)할 것이니,
화(禍)가 또 우리에게 이를 것이다!」
나는 애우(哀吁/애타게 청함)하여 마지 않았으나, 이에 대노(大怒)로 경(更)하였고,
집여(執予)하여 부외(赴外)하고자 하니, 나는 이에 출(出)하였고, 심(心)이 익급(益急)하였으며,
계전(階前/계단 앞)에 가(架/시렁, 선반)가 있는 것을 시(視)하였고, 가상(架上)은 옹(瓮/항아리)이 있었는데,
거옥(去屋/지붕으로 감)이 심원(甚遠)하지는 않았다.
이에 가(架)를 원(援/잡음)하고 상(上)하였는데, 수(手)가 바야흐로 옹(瓮)에 미치었는데,
신(身)이 이미(已) 경복(傾仆/기울어 넘어짐)하였는데,
대개(蓋) 옹중(瓮中)이 허(虛)하고 용력(用力)이 맹(猛/강함)한 연고(故)였다.
가히(可) 내하(奈何/어찌함)함이 없었고, 이에 급히(急) 옆의 농문(弄門)으로 추(趨)하였는데,
봉추(棒錐/막대 송곳)를 양수(兩手)로 백도(百度/온갖 방법)하여 요감(搖撼/흔듦)하였으나,
결국 능동(能動)할 수 없었고, 석(石)으로써 격(擊)하면, 즉(則) 외정(外庭)에 향달(響達/울려 도달함)하여,
각(覺)할까 공(恐)하였다.
부득이(不得已) 다시 갈력(竭力/있은 힘을 다함)하여 요감(搖撼)하게 하였는데,
지열(指裂/손가락이 찢어짐)하여 혈류(血流)하였고, 양주(兩肘/양 팔꿈치)를 임질(淋漏/젖음)하였는데,
추(錐)가 홀동(忽動)하였고, 진력(儘力)하여 발지(拔之)하였는데, 추(錐)가 이윽고 재악(在握)하였고,
급히(急) 문급(門㧀/문빗장)을 체(掣/잡아당김)하였는데, 급목(㧀木)이 근(槿/무궁화나무)이었다.
유우(濡雨/비에젖음)하고 창(漲/물에 불음)하니, 그 견(堅)이 추(錐)에 삽배(澀倍/배나 힘듦)하였고,
나는 박심(迫甚/다급함이 심함)하여, 단지(但) 힘으로 취급(取㧀/문빗장을 손에 듦)할 뿐이었는데,
급(㧀)은 출(出)할 수가 없었는데, 문추(門樞/문지도리)가 홀절(忽折/홀연히 부러짐)하였고,
비(扉/사릿문) 경(傾/기울어짐)하여 원퇴(垣頹/담이 무너짐)하였고, 성(聲)이 뢰진(雷震/천둥이 진동함)과 같았다.
나는 급히(急) 용신(聳身/몸을 솟구쳐 세움)하여 비월(飛越/높이 올라 지나감)하였는데,
역시(亦) 하래(何來)한 힘인지 부지(不知)하였다.
질추(疾趨/질주함)하여 후문(後門)으로 출(出)하였는데, 즉(即) 성각(城腳/성밑)이었다.
이때 병기(兵騎)가 충척(充斥/가득참)하였는데, 촉처(觸處/도처)가 개시(皆是/모두)하여, 전진(前進)이 불능(不能)하니,
즉(即) 교댁(喬宅)의 좌린(左鄰) 후문(後門)에 애신(挨身/몸을 밀침)하여 입(入)하였다.
문으로 들어가니 이미 병졸 한 명이 있어 몇 명의 아름다운 부인을 체포하여 있었고
안에 있으면서 산과 같이 쌓인 대광주리의 고운 빛깔 비단을 분간하여 검사하다가,
병졸 세명이 이른 것을 보더니 크게 웃었고 곧 우리 무리 수십 인을 몰아내 뒷마루에 이르렀다.
여러 부녀자를 남겨 옆방에 두었으며 그 안에는 2개의 방직 기계가 있었는데
세명의 옷 장인과 한 명의 중년 부인이 옷을 만들고 있었다.
부인은 양주 사람으로 짙게 화장하고 곱게 단장하였으며 고운 옷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고 웃으며 말하여 (일을) 지휘하였다.
기분이 좋은 모양으로 득의한 기색이 있었으며 매번 좋은 물건을 보면
곧 병졸로 향하여 (자기가) 가지길 애걸하였고 간곡하게 정성을 다해 아양을 부리는데 수치로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병졸의 칼을 빼앗아 이 음란한 천민을 베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하였다.
병졸이 일찍이 사람에게 일컬어 말하길
「우리 무리가 고려(조선)를 정벌하여 부녀자 수만 인을 노략하였는데
한 명도 절개를 잃은 자가 없었는데, 어찌 당당한 중국은 수치를 모름이 이에 이르렀는가?」
오호라! 이것이 중국의 난이 일어난 까닭이로다!
3병의 병졸이 곧바로 여러 부녀로 하여금 젖은 옷을 모두 벗게 하였는데 겉옷에서 속옷까지, 정수리에서 발뒤꿈치까지 이르렀고,
아울러 옷을 만드는 부인으로 하여금 길이를 자세히 보게 하고 넓고 좁음을 헤아리게 하여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게 하였다.
여러 부녀가 위협으로 인하여 멈추지 못하였으며 마침내 나체로 서로 마주하게 되었는데
은밀하고 사사로운 곳까지 모두 드러나니 부끄러워 머뭇머뭇하여 죽고자 하는 형상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옷 갈아입기를 마치자 이내 이들을 끼고 술을 마시며 시끄럽게 웃어댔다.
병졸 하나가 홀연히 칼을 들고 뛰듯이 일어나 뒤를 향하여 급하게 부르며 말하길
「오랑캐들은 오라! 오랑캐들은 오라!(만쯔라이!)」
근처에 여러 명이 이미 묶여 있었는데 내 큰형도 있었다.
둘째형이 말하길
「형세가 이미 이에 이르렀으니 대저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급히 내손을 쥐고 앞으로 나아갔는데 내 동생 또한 따라왔고,
이때 남자로 사로잡힌 자가 모두 50여 인이었는데 칼을 들고 한 번 외치니 혼백이 이미 날아간 듯하여
한 사람도 (병졸의 명령에 앞으로) 나서지 않는 자가 없었다.
나는 둘째형을 따라 마루에 나갔는데 바깥에서 벌어지는 살인을 보았고 무리가 모두 차례대로 (죽을)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처음 먹은 생각 또한 잡혀서 묶인 것을 감수하였으나 홀연히 마음이 움직여
만약 신의 도움이 있다면 한번 도망가 몸을 숨기겠다 하였고 다시 뒷마루에 (몰래 돌아) 갔는데 50여 인이 알지 못하였다.
마루 뒷댁의 서쪽 방은 여러 노부인들이 아직 있으니 피하여 숨을 수가 없었고
중간 채를 통과하여 뒷집에 이르렀는데 그 가운데에 모두 낙타와 말을 기르고 있었고 다시 넘어서 달아날 수가 없었다.
근심하는 마음이 급하니 마침내 낙타와 말의 배 밑으로 고개를 숙이고 나아갔고
몇 마리 낙타와 말의 배를 지나가 엎드려 기어 나오게 되었다.
만약 낙타와 말이 놀라 바야흐로 한 번 발을 들게 되면 즉시 진흙이 될 뿐이었다.
또 몇 겹의 집을 지나갔는데 모두 도망칠 길이 없었고 오직 옆에 후문과 통하는 골목길이 있었는데,
골목문은 이미 병졸이 긴 송곳 못을 박아 막아놨다.
나는 다시 뒷골목을 경유하여 앞으로 이르렀는데 앞채에서 살인하는 소리가 들리니 더욱 두려워 계책이 없었다.
좌측을 돌아다보니 부엌이 있었고 그 안에 사로잡힌 4명이 있었는데 부엌일을 하는 자들이었다.
내가 거둬 달라 요구하였는데, 불이나 물 긷는 것을 맡는 잡일에 참여하게 해 준다면 혹 요행으로 화를 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4인이 엄하게 거절하며 말하길
「우리 4인은 점고하여 역을 맡는 자들이다.
만일 다시 점고하여 사람이 늘었다면 필히 속였다 의심할 것이니 화가 또 우리에게 이를 것이다!」
나는 애타게 청하여 마지않았으나 이에 (그들은) 다시 크게 역정을 내며
나를 붙잡아 밖으로 끌고 나가니 곧 나는 나가게 되었는데 마음이 더욱 급하였다.
계단 앞에 선반이 보였는데 그 선반 위에 항아리가 있었고 거기에서 지붕으로 올라가기는 심히 멀지는 않았다.
이에 선반을 잡고 올라가서 손이 바야흐로 항아리에 닿았는데 몸이 이윽고 기울어져 넘어졌다.
대개 항아리 속이 비고 힘을 강하게 준 연고였다.
가히 어찌할 바가 없었고 이에 급히 옆의 골목문으로 달려가서 송곳 못을 양손으로 온갖 방법으로 흔들었으나
결국 움직일 수가 없었고 돌로 때리면 즉 바깥뜰에 울려 퍼져 깨달을까 두려웠다.
부득이 다시 있는 힘을 다해 흔들었는데 손가락이 찢어져 피가 흘러 양 팔꿈치가 젖었다.
못이 홀연히 움직였고 있는 힘을 다해 뽑았는데, 못이 이윽고 손에 쥐어졌다.
급히 문빗장을 잡아당겼는데 빗장 나무가 무궁화나무였다.
비에 젖고 물에 불어 그 단단함이 못에 비해 배나 힘들었고
나는 다급함이 심해 단지 힘으로 빗장을 당길 뿐 빗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 문지도리가 홀연히 부러져 사리문이 기울어지고 담이 무너지니 소리가 천둥이 진동하는 것 같았다.
나는 급히 몸을 솟구쳐 세우고 높이 올라 지나갓는데 또한 어디서 오는 힘인지 알지 못하였다.
질주하여 후문으로 나갔는데 곧 성밑이었다.
이때 기병들이 가득 찼는데 도처가 모두 앞으로 갈 수가 없었고 곧 교씨 집 좌측 옆 후문을 몸으로 밀치고 들어갔다.
덧글
왕조가 외교를 잘못한 결과인데 잘못도 없는 여자들이 왜 죽어야 할까요?
남들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