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봉실기에 의한 황주 동선령 전투 재구성 병자호란 이야기

추봉실기 번역(병자호란 동선령/토산 전투 관련)


*추봉실기 자체가 사료로 택하기엔 심각한 문제점이 있으나 

 일단은 추봉실기에 나온 내용과 기타 사료 등으로 동선령 전투를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추봉실기의 문제점은 바다루님의 글 < 추봉실기는 사료로서 부적격 >를 참고하세요.



1. 프리패스 정방산성

- 1636년 12월 8일 청 1차 선봉대 마푸타의 선봉대 300이 압록강을 도강한 이후

  전방의 급보가 속속 황주 정방산성에 있는 도원수 김자점에게 보고됨

- 김자점 사태 파악 후 12월 9일 한양에 보고, 관내 24개 현에 속오군 동원명령 하달

  12월 10일 부터 관내 속오군 5천은 정방산성으로, 속오군 7천은 장수산성으로 이동

- 11일 10시경 마푸타 1차 선봉대 장수산성 앞을 지나감

  이때 장수산성 입보군 1700여명, 전황 파악 못하고 입성에 주력

- 청 2차, 3차 선봉대 정방산성 앞을 지나감

 



2. 타격 결정

-12월 18일 김자점, 이석달 청군 타격 결정

-12월 18일 청 4차 본군(홍 타이지) 1만 7천 숙천에서 숙박

 본군의 선발대 300~400 순안에서 숙박

 

 


3. 동선령 및 사입암 위치 비정

<일제시대 조선오만분일지형도황주(朝鮮五万分一地形圖黃州)>


<現지도와 결합하여 동선령 위치 추정>
 


4. 타격 작전 수립

-12월 18일 작전계획 수립

 적이 사입암으로 들어서면 동선령까지 3km에 좌우 매복을 설치함

-지금은 길이 좋으나, 당시 사입암에서 동선령까지 산길은 매우 좁고 경사가 있으며 험함.

 사인암성(舍仁巖城)이라 하며 돌이 공중에 우뚝 솟아 있어 적암(積巖)이라 이름하고, 

 사인암(舍人巖)이라고 부른다. 고갯길이 좁고 매우 비탈져 말과 같이 걸어갈 수가 없다.


 동선령은 비록 높고 깊거나 중첩(重疊)된 막힘은 없더라도 곧 이는 협착 험조하고 높게 경사(傾斜)가 져서 

 기병(騎兵)ㆍ보병(步兵)이 대열(隊列)을 이룰 수가 없으니, 만약 수천의 정졸(精卒)을 그 가운데에 배치하면, 

 십만의 군사로서도 쓸모가 없을 것이니, 이는 진실로 우리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땅이옵니다. 


-부대 배치

 a. 1군

   -기병 소수를 사입암 양쪽에 매복 (최두남+최기남)

   -동북쪽 포수90 매복(송우)

   -남서쪽 포수170 매복(강서)

 b. 2군

   -양쪽에 포수 230 매복(이기남, 최신남, 이완, 김응해)

 c. 3군

   - 동선령 언덕위에 포수 80 매복(성천해, 한득환)


 a. 적이 사입암으로 들어와 중간까지 이동하길 기다림

 b. 중군이 적 중앙을 사격하여 허리 끊음

 c. 동선령으로 달아난 적은 3군이 격멸

 d. 사입암으로 달아난 적은 1군과 2군이 협공




5. 1차 동선령 전투

-12월 20일 여명(07:40분경) 청태종의 본군 선발대 300~400명 사입암 앞 평원에 당도

 



-청군 매복군 발견하고 사입암으로 진입하지 않고 전투태세 돌입

-청군 산길로 올라가 매복군을 공격하며 전진함

-청군 20명 사망하고 전열 재정비

-2군 지형 험한 동선령으로 이동 결정, 1군 강서와 송우는 응하지 않음.

-조선군 300여명 동선령에 포진


<동선령>

해발 200미터, 산 밑은 해발 120미터


-청군 동선령의 조선군 발견하고 포진하며 번갈아 가며 돌파 시도 → 실패

-16시경 청군 하마하여 시신 수급

-청 후미대 은밀히 동선령 우회하여 조선군 후미로 돌아감

-청군 전후좌우 4면 공격함 → 조선국 격퇴

-청군 34 명 정도 전사 추정

-청군 서남쪽 골짜기로 숨어서 밤이 되자 봉산으로 이동



6. 작은 승전

-12월 20일 밤 수급54급(장수2, 기 매단자2, 사입암 초입 20, 동선령 30) 수습 후 정방산성 입성

-조선군 피해 거의 없음.

-승전원인 : 길이 험해 기병의 기동이 어려움, 조총 사격의 위력 배가.

-20일 밤 다시 청 선발대가 도착하였으나 피로하고 탄환이 떨어져 공격 못함



7. 중과부적

-12월 21일 김자점은 다시 매복을 지시하였으나

 황색 기치를 내세운 청태종의 본군 1만7천여가 정방산성 앞을 통과하고 사입암~동선령을 통과하자

 위세에 눌린 조선군은 일체 공격하지 못함


8. 황주의 매복군을 조심하라!

-청태종은 6차 부대인 두두에게 우다리와 4명을 보내 동선령 양쪽길의 매복군을 경계하라 지시

-병력 200을 전면 배치하여 처치하라 지시

-보낸 4명이 조선군의 매복지를 안다며 이들에게 길 안내하게 하라 지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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