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수<나를 다시는 조선사람으로 부르....시오!> 병자호란 이야기


사르후 전투의 포로, 조선의 노비 정명수 옛상관에게 절하다!

정명수<저야말로 애국자 아닙니꺼억~>

도르곤<소현세자 아들이 세자가 되어서는 좀 곤란한데...>


<영화 남한산성 中>

<나는 부모가 노비라 태어날 때부터 노비였소!

 조선에서 노비는 사람이 아니오!

 다시는 나를 조선사람이라 부르지 마시오!>



승정원일기 1636년 12월 20일일 기사中

사시(巳時)에 이경직(李景稷)이 노적(奴賊)의 진영에서 돌아오니 상이 인견하였다. 가주서 이석, 기사관 유철(兪㯙)이 

입시하였다. 이경직이 아뢰기를,

“마호(馬胡)는 다른 곳에 있었고 정명수(鄭命壽)가 다른 한 명의 호인과 함께 나왔습니다. 구굉(具宏)의 군관 가운데

 글을 아는 자를 시켜서 물으니 말하기를, ‘우리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너희 나라 스스로 잘못한 것이다. 

당초에 박인범(朴仁範)이 귀국할 때에 매우 자세히 말해 주었고, 12월 25일에 맞추어 사신을 보내도록 하였으나 

기한에 맞추어 사신을 보내지 않았다. 비록 박로(朴)를 보냈지만, 이는 의례적으로 보내는 사신이었다. 

이 때문에 부득이하게 내륙 깊숙이 들어와 많은 군마가 얼고 굶주림이 아주 심하다. 그런데도 너희 나라에서는 

돌아보지 않고 전일에 대신에게 전한 말에 대해서도 회보가 없다. 이번에도 우리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으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내일 모레 사이에 한(汗)이 대군을 이끌고 송경(松京)에 당도할 텐데 너희 나라에서 

돌아보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찌 너희 백성들을 아끼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명수가 말하기를 ‘나도 조선인이다. 머리는 깎았지만 마음만은 조선 사람이다. 

앞에 가까이 가서 말하고 싶지만 마호가 틀림없이 은밀한 말을 한다고 의심할 것이니, 할 수가 없다.……’ 하였습니다. 

이 오랑캐가 예전에는 공손한 언사가 전혀 없다가 이번에는 이와 같으니 심히 흉악합니다.”


조선왕조실록 1637년 2월 3일 기사中

용골대ㆍ마부대 두 장수가 대궐에 왔으므로 상이 불러서 보니, 용골대가 정명수(鄭命壽)로 하여금 말을 전하게 
하였다. 정명수는 평안도 은산(殷山)의 천례(賤隷)로서 젊어서 노적(奴賊)에게 사로잡혔는데, 성질이 본래 교활하여 
본국의 사정을 몰래 고해 바쳤으므로 한(汗)이 신임하고 아꼈다.


조선왕조실록 1637년 2월 5일 기사中

왕세자가 오랑캐 진영에서 와서 하직을 고하고 떠나니, 신하들이 길 가에서 통곡하며 전송하였는데, 
혹 재갈을 잡고 당기며 울부짖자 세자가 말을 멈추고 한참동안 그대로 있었다
이에 정명수(鄭命壽)가 채찍을 휘두르며 모욕적인 말로 재촉하였으므로 이를 보고 경악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병자록 1637년 2월 3일 기록中
三日 龍馬 兩胡率 鄭譯來闕下 領左相 出待 金瑬 謂 龍馬 曰今則吾兩國已爲父
子之國何言不從此後攻椵島擊南朝惟命是從云 洪瑞鳳
曰黃金非國所産轉奏汗前使之減除此與國之望也 命
壽 曰本國初不定奪於條目講定之日我何敢言於 龍將
龍將 亦何敢言於汗前乎台監何不念體面乎
3일에 용(龍)과 마(馬) 양호(兩胡)가 정역(鄭譯)을 솔(率)하여 궐하(闕下)에 래(來)하니,
좌상(左相)을 거느리고 출대(出待)하게 하였는데, 김류(金瑬)가 용(龍)과 마(馬)에게 위(謂)하여 말하길
<지금(今)은 즉(則) 우리 양국(兩國)이 이미(已) 부자지국(父子之國)이 되었으니 어찌 부종(不從)한다 말하리오?
 이후(此後) 가도(椵島)를 공(攻)하거나, 남조(南朝)를 공(擊)하거나, 오직 명(命)에 따를 뿐이오!> 운(云)하였다.
홍서봉(洪瑞鳳)이 말하길
<황금(黃金)은 나라의 소산(所産)이 아니니 한전(汗前)에 전주(轉奏/다른 사람을 거쳐 상주함)하여
  감제(減除/수량을 줄임)하게 해 준다면, 이는 여국(與國/화친을 맺은 나라)의 망(望)이 될것이오!>
정명수(命壽)가 말하길
<본국(本國)의 초(初)에 조목(條目)에 대해서 정탈(定奪/임금이 가부를 재결함)하지 않았고,
 강정(講定/의논하여 결정함)의 날에 내가 어찌 감히(敢) 용장(龍將)에게 말할 것이며,
 용장(龍將) 역시(亦) 어찌 감히(敢) 한전(汗前)에 말할 수 있으리오?
 태감(台監)은 어찌 체면(體面)을 불념(不念)하시오?>

3일에 잉굴다이와 마푸타가 역관 정명수를 데리고 궐 아래에 오니 좌상을 거느리고 나아가 대접하게 하였는데,
김류가 잉굴다이와 마푸타에게 일컬어 말하길
<지금 우리 양국이 이미 부자지간이 되었는데 어찌 따르지 않겠다 말하리오?
 이후 가도를 공격하거나 남조(명)을 공격하거나 오직 명에 따를 뿐이오!>하였다.
홍서봉이 말하길
<황금은 나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한께 전주하여 줄여 주신다면 이는 화친을 맺은 나라의 희망이 될 것이오!>
정명수가 말하길
<본국이 처음에는 (조공할) 조목에 대해서 이의를 달지 않더니, 이미 정해진 것에 대해
 내가 어찌 감히 잉굴다이 장군에게 말할 것이며, 잉굴다이 장군 또한 어찌 감히 한께 말할 수 있으리오?
 대감은 어찌 체면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오?>


승정원일기 1637년 3월 3일 기사中
다만 황주 판관(黃州判官) 이곽제(李郭齊)가 이미 
정명수(鄭明守)와 문답하며 미끼 삼아 은자를 내보이니, 정명수가 쉽게 응낙하고 은자를 만지다가 갔다고 합니다. 

승정원일기 1637년 11월 22일 기사 中
(정명수가 말하길) 소인이 살덩이는 청나라 것이지만 뼈는 본국 것이니 어찌 감히 잠시라도 잊겠습니까.
(인조가) 전교하기를, “알았다. 그 뜻이 절은(折銀)에 있는 듯하다.” 하였다.


정명수 : 

            고조 내 살덩이는 청나라디만 뼈는 조선 아니겠슴둥?? 

            고로타고 조공품 감해 달라 말하기는 참말로 어렵습네다!

            대감은 체면이란 것을 모른단 말입네

            체! 면! [쇼! 미! 더! 머! 니!]

            내래 조선을 위해 참말로 고생 많이 하는데 말입네다?

            고조 알아서들 합세다!



어쩌나 저쩌나 정명수를 통해 조공을 감해달라는 청은 홍 타이지에게 전해졌고,

홍 타이지는 2년간 조공 면제를 허락한다.

뭐 뒤로 오간 것은 역시 뇌물...



덧글

  • 남중생 2020/02/12 22:12 #

    글이 중간에 끊겼나봐요.ㅠㅠ
  • 길공구 2020/02/12 22:21 #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남중생 2020/02/13 01:28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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