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막기문 국역 6부-발해국 금사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북송의 마지막 두 황제 휘종과 흠종이 금으로 끌려간 후, 북송은 멸망하였는데요.
남송의 홍호(洪皓)가 금에 파견되어 휘종과 흠종의 반환을 교섭하였는데,
일이 틀어져 금에서 15년간 유배생활을 하며 겪고 들은 것을 <송막기문>이라는 견문록 형식으로 집필하였습니다.
<송막기문>은 후에 홍호가 죽은 후 아들 홍적(洪適)이 교간(校刊)하고 
홍준(洪遵)이 보유(補遺/보태어 채움)하여 1156년 간행하였습니다.
송사/요사/거란국지 연재가 끝나 틈틈이 송막기문도 국역해 보고자 합니다.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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渤海國,去燕京、女真所都皆千五百里,以石累城足,東並海。
其王舊以大為姓,右姓曰高、張、楊、竇、烏、李,不過數種。
部曲、奴婢無姓者皆從其主。
婦人皆悍妒,大氐與他姓相結為十姊妹,迭稽察其夫,不容側室及他游,聞則必謀置毒死其所愛。
一夫有所犯而妻不之覺者,九人則羣聚而詬之。
爭以忌嫉相夸,故契丹、女真諸國皆有女倡,而其良人皆有小婦、侍婢,唯渤海無之。
男子多智謀,驍勇出他國右,至有「三人渤海當一虎」之語。
契丹阿保機滅其王大諲譔,徙其各帳千餘戶于燕,給以田疇,捐其賦入,往來貿易,關市皆不征,有戰則用為前驅。
天祚之亂,其聚族立姓大者於舊國為王,金人討之,軍未至,其貴族高氏棄家來降,言其虛實,城後陷。
契丹所遷民益蕃,至五千餘戶,勝兵可三萬。
金人慮其難制,頻年轉戍山東,每徙不過數百家,至辛酉歲盡驅以行。
其人大多富室,安居踰二百年,往往為圍池,植牡丹多至三二百本,有數十幹叢生者,皆燕地所無,纔以十數千或五千賤貿而去。
其居故地者令歸契丹,舊為東京,置留守,有蘇、扶等州。
蘇與中國登州青州相直,每大風順,隱隱聞鷄犬聲。
阿保機長子東丹王贊華封於此,謂之人皇。
王不得立,鞅鞅,嘗賦詩曰:
「小山壓大山,大山全無力,羞見當鄉人,從此投外國。」
遂自蘇乘筏浮海歸唐明宗。
善畫馬,好經籍,猶以筏載行。
其國初倣唐置官司,國少浮圖氏,有趙崇德者為燕都運,未六十餘,休致為僧,自為大院,
請燕竹林寺慧日師住持,約供眾僧三年費。
竹林乃四明人,趙與予相識頗久。
발해국(渤海國)은, 연경(燕京)과 여진(女真)의 소도(所都)와 거(去)가 모두 1500리(里)이고,
석(石)으로써 누차(累) 성족(城足/성을 이룸)하는데, 동(東)으로는 병해(並海)한다.
그 왕(王)은 구(舊)로부터 대(大)를 성씨(姓)로 삼았으며, 
우성(右姓/세력 있고 훌륭한 가문)으로는 말하길 고(高), 장(張), 양(楊), 두(竇), 오(烏), 이(李) 불과(不過) 수종(數種)이다.
부곡(部曲)과 노비(奴婢)의 무성자(無姓者)는 모두 그 주(主)를 종(從)한다.
부인(婦人)은 모두 한투(悍妒/사납고 투기함)하는데, 
대저(大氐) 타성(他姓)과 더불어 상결(相結)하고 10 자매(姊妹)로 삼는데,
질(迭)하여 그 부(夫)를 계찰(稽察/검사함)하고, 측실(側室)을 불용(不容)한다.
타유(他游)에 이르러, 문즉(聞則) 치독(置毒/독약을 음식에 넣음)을 필모(必謀)하여 그 소애(所愛)를 사(死)한다.
일부(一夫)로 소범(所犯)이 있는데 처(妻)로 각(覺)하지 못하는 자(者)는, 9인(人)이 즉(則) 군취(羣聚)하여 구(詬/꾸짖음)한다.
기질(忌嫉/시기하고 투기함)으로써 쟁(爭)함을 상과(相夸/서로 자랑함)하는데,
이런 연고(故)로 글단(契丹)과 여진(女真)의 제국(諸國)은 모두 여창(女倡)이 있으며,
그 양인(良人)은 모두 소부(小婦), 시비(侍婢)가 있는데, 오직 발해(渤海)는 없다.
남자(男子)는 지모(智謀)를 다(多)하고, 효용(驍勇/날래고 용맹함)이 타국(他國)의 우(右)를 출(出)하는데,
「3인(人)의 발해(渤海)는 1호(虎)를 당(當)한다」는 말에 이름이 있다.
글단(契丹)의 아보기(阿保機)가 그 왕(王) 대인선(大諲譔)을 멸(滅)하였고,
그 각장(各帳)의 천여호(千餘戶)를 연(燕)에 사(徙)하였으며, 전주(田疇/밭두둑)로써 급(給)하였고,
그 부입(賦入)을 연(捐/없앰)하였고, 무역(貿易)을 왕래(往來)하였는데, 관시(關市)가 모두 부징(不征)하였고,
유전(有戰)하면 즉(則) 전구(前驅)로써 용(用)하였다.
천조(天祚)의 난(亂)에, 그 취족(聚族)하여 대(大) 성(姓)인 자(者)를 립(立)하고 구국(舊國)에 왕(王)으로 삼았는데,
금인(金人)이 토지(討之)하였고, 군(軍)이 미지(未至)하였는데, 그 귀족(貴族) 고씨(高氏)가 기가(棄家)하고 내항(來降)하여,
그 허실(虛實)을 언(言)하니, 성(城)이 후함(後陷)하였다.
글단(契丹)의 소천(所遷)한 민(民)이 익번(益蕃)하여, 5천여호(戶)에 지(至)하였고, 승병(勝兵)이 가히(可) 3만(萬)이었다.
금인(金人)이 그 난제(難制)를 여(慮)하여, 빈년(頻年/해마다) 산동(山東)으로 전수(轉戍/숫자리를 살게 함)하게 하였는데,
매사(每徙)는 수백가(數百家)에 불과(不過)하였고, 신유세(辛酉歲)에 지(至)하여 진구(盡驅)하여 이행(以行)하였다.
그 인(人)이 대노(大多/大怨의 오기)하였다.
부실(富室)은 안거(安居)하며 200년(年)을 유(踰)하여, 왕왕(往往) 위지(圍池/園池의 오기)로 삼았는데,
모란(牡丹)을 많이 식(植)하였는데 3~2백 본(本)에 지(至)하였고, 
수십(數十) 간(幹/줄기) 총생(叢生/떼 지어서 자람)한 자(者)도 있었는데, 모두 연지(燕地)에는 소무(所無)하니, 
겨우 십수천(十數千) 혹(或) 5천(千) 천(賤)으로써 무(貿)하고는 거(去)하였다.
그 거고지(居故地)란 곳은 글단(契丹)에 귀(歸)하게 하였으며, 
구(舊)를 동경(東京)으로 삼아, 유수(留守)를 치(置)하였는데, 소주(蘇)와 부주(扶) 등(等)의 주(州)가 있다.
소주(蘇)는 중국(中國) 등주(登州)와 청주(青州)와 더불어 상직(相直)하는데,
매번(每) 대풍(大風)이 순(順/따름)하면, 은은히(隱隱) 계견(鷄犬)의 성(聲)이 문(聞)한다.
아보기(阿保機)의 장자(長子) 동단왕(東丹王) 찬화(贊華)가 이에 봉(封)하였는데, 사람들은 황(皇)이라 위지(謂之)하였다.
왕(王)이 입(立)을 부득(不得)하니, 앙앙(鞅鞅/매우 원망함)하였는데, 일찍이 부시(賦詩)하여 말하길
「소산(小山)이 대산(大山)을 압(壓)하니, 대산(大山)은 전무력(全無力)하도다.
  향인(鄉人)을 보기가 치(羞)하노니, 이를 종(從)하여 외국(外國)에 투(投)하노라!
마침내 소주(蘇)로부터 승벌(乘筏)하여 부해(浮海)하고 당(唐) 명종(明宗)에게 귀(歸)하였다.
획마(畫馬)를 선(善)하고, 경적(經籍/경서)을 호(好)하였는데, 다만 벌(筏)로써 재행(載行)하였다.
그 국초(國初)에 당(唐)을 방(倣)하여 관사(官司)를 치(置)하였고,
국(國)에는 부도씨(浮圖氏)를 소(少)하였고, 조숭덕(趙崇德)이란 자(者)가 있었는데 연도(燕都)로 운(運)하였는데,
60여(餘)가 되지 않아, 휴치(休致/벼슬을 퇴직함)하고 승(僧)이 되었으며 스스로 대원(大院)을 삼았고,
연(燕) 죽림사(竹林寺) 혜일(慧日)을 사주지(師住持)로 청(請)하였는데, 중승(眾僧)의 3년 비(費)를 약공(約供)하였다.
죽림(竹林)은 곧 4 명인(明人)이다.
조(趙)와 더불어 나는 상식(相識/서로 안면이 있음)이 파구(頗久)하였다.

발해국은 연경(북경)과 여진의 도읍에서 거리가 모두 1500리이고 돌로써 누차 성을 쌓았는데 동으로는 바다를 아우른다.
그 왕은 예부터 대씨를 성으로 삼았으며 세력이 있는 성씨로는 고, 장, 양, 두, 오, 이 불과 몇 종이다.
부곡과 노비로 성씨가 없는 자는 모두 그 주인을 따른다.
부인은 모두 사납고 투기하는데 대저 다른 성씨와 더불어 서로 결탁하여 10 자매로 삼는데 번갈아가며 그 남편을 조사하고 
측실을 허용하지 않는다.
다른 곳에 유람하였다는 것을 들으면 즉 독약을 음식에 넣어 반드시 그 사랑하는 여자를 죽이길 도모한다.
한 남편이 잘못하는 바가 있는데 처가 깨닫지 못하면 9명이 곧 무리를 이뤄 꾸짖는다.
시기와 투기를 서로 다투고 자랑하는데 이런 연고로 거란과 여진의 여러 나라에는 모두 창녀가 있고,
그 백성들도 모두 작은 부인과 시비가 있는데도 오직 발해만 없다.
남자는 지모가 많고 날래고 용맹함이 타국의 우위를 내보이는데 
「발해인 3인이 호랑이 1마리를 당한다」는 말에 이른다.
거란의 아보기가 그 왕 대인선을 멸하고 그 여러 호적에 있는 1천여 호를 연으로 이주시켰으며
밭두둑을 공급하고 그 부세를 없애고 무역을 왕래하게 하였는데 관문의 세금도 모두 징수하지 않았다.
전쟁이 있으면 곧 선봉으로 써먹었다.
천조제의 난에 그 종족이 모여 대씨 성인 자를 옹립하고 옛 나라에 왕으로 삼았는데
금인이 토벌하였고, 군이 미처 이르지 않았는데 그 귀족 고씨가 집을 버리고 와서 항복하여 
그 허실을 말하니 후에 성이 함락되었다.
거란이 옮긴 백성이 더욱 번창하여 5천여 호에 이르렀고, 강병은 가히 3만이었다.
금나라 사람이 그 통제가 어려울 것을 생각하여 해마다 산동으로 숫자리를 살게 하였는데
매번 수백 집을 옮기는데 불과하였는데, 신유년(1141년)에 이르러 모두 몰아 행하게 하니 그 사람들이 크게 분노하였다.
부잣집은 편안히 거주하며 200년이 지나갔는데 왕왕 못과 연못을 만들어 모란을 많이 심었는데
2~3백 본에 이르렀고 수십 줄기가 떼 지어서 자란 것들도 있었는데
모두 연지(북경)에는 없는 것으로 겨우 십수천 혹은 5천 전으로 바꾸고 가버렸다.
그 거주하던 옛 땅은 거란으로 돌아갔는데 그 옛 땅을 동경으로 삼아 유수를 두었고 소주와 부주 등의 주가 있다.
소주는 중국 등주, 청주와 더불어 서로 마주 보는데 매번 큰 바람을 타고 은은히 닭과 개소리가 들린다.
아보기의 장자 동단왕 찬화를 동경유수로 봉하였는데, 사람들은 황제가 될 것이라 일컬었다.
왕이 제위에 오르지 못하게 되자 매우 원망하고 일찍이 시를 지어 말하길
「작은 산이 큰 산을 핍박하니 큰산은 완전히 무력하도다!
  고향 사람을 보기가 수치스러우니 이를 따라 외국에 투신하겠노라!」
마침내 소주로부터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 당 명종에게 귀부하였다.
말 그리기를 잘하고 경서를 좋아하였는데 뗏목에 다만 이를 실어 왔다.
그 발해국의 초기에 당을 모방하여 관사를 두었고, 나라에는 승녀가 적은데, 조숭덕이란 자가 있어 연도(북경)으로 옮겼는데
60여 세가 되지 않아 벼슬을 그만두고 승려가 되었으며 스스로 큰 절을 세웠으며
연 죽림사 혜일을 주지스님으로 청하였는데 승려 무리의 3년 치 비용을 공양하기로 약조하였다.
죽림사는 곧 4곳의 유명한 절 중 하나이다.
조숭덕과 더불어 나는 서로 안면이 있은지 자못 오래되었다.


요약.
발해는 대씨가 왕이고, 귀족은 고, 장, 양, 두, 오, 이씨다.
거란(치단) 태조 아보기(아보오지)에 의해 멸망하고 동경(요양)으로 1천호를 이주시켰다.
거란말 요동에 사는 발해인은 5천 호에 병력이 3만에 이르렀다.
금나라가 요 천조제에게 반기를 들자 동경에서 고영창이 반란을 일으키고 발해 황제를 자칭한다.
아골타는 한집안 운운하며 고영창을 회유하였으나 발해인들은 코웃음을 친다.
발해군은 몇 배나 많은 요군을 격파하였으나 결국 금의 공격에 도주하고 고영창은 살해된다.
이후 금은 발해인을 맹안모극에 편입하여 전쟁에 선봉으로 써먹는다.
그러나 희종 이후 발해인을 맹안모극에서 박탈하고 모조리 산동으로 강제 이주한다.
결국 발해인은 이후 한족과 동화되어 종족이 사라졌다.
발해 남자 3명이 호랑이 1마리를 당해낸다 할 만큼 용맹하였으며
발해 여자는 투기하고 사나워 발해 남자들도 감히 첩을 들이지 못한다.
또한 발해 여자들은 이웃 여자들과 무리를 이뤄 남편을 번갈아 가며 감시하고 
남편이 다른 여자에 눈을 돌리면 그 여자를 독살한다.
당시 거란, 여진에 모두 창녀, 첩, 시중드는 여자가 있었으나 오직 발해에는 없었다.

*발해의 언어는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으나, 금사 등에 언급된 호사보의 언급을 참고하면 
 여진족과 말이 어느 정도 통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골타의 여진, 발해 한 집안 운운에 발해인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비웃었다.
 즉 당시 발해인들에게는 여진족과 동족이라는 의식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7부에서 계속-

덧글

  • 김대중협정 개정 2020/02/16 08:59 #

    발해가 망하자 왕씨고려, 거란 그리고 여진이 모두 숟가락을 얹었죠. 속일본기에 나오는 '고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습속을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 발해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여진과 동질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발해는 고려의 옛 땅이고 발해의 옛 땅은 금나라로 들어갔죠.
  • 김대중협정 개정 2020/02/16 09:11 #

    발해의 행정구역을 보면 왕고의 주장이 허구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죠.

    고려(高麗)의 옛 땅으로 서경(西京)을 삼으니 압록부(鴨淥府)이며 신(神)·환(桓)·풍(豊)·정(正)의 4주를 통치한다. 장령부(長嶺府)는 하(瑕)·하(河)의 2주를 통치한다.
    http://qindex.info/i.php?h=4634#4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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