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사 칭기스 카안 4부-치라군과 제베가 휘하로 들어오다! 원사 태조 테무진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틈틈이 주원장의 명으로 편찬된 원사 태조 테무진 본기를 연재하겠습니다.


1부-시조 사생아 멍청이<부단차르>

2부-피의 복수

3부-몽고 최강부족 타이초트

4부-치라군과 제베가 휘하로 들어오다!

5부-이기적인 왕 카안을 용서하고 나이만을 격파하다!

6부-알쿠이 맹약 자무카 구르 카안에 옹립되다!

7부-피어나는 케레이트의 음모

8부-칼랄진 엘레트 전투! 5가지 대공(大功)

9부-발주나 맹약과 케레이트 멸망!


원사 칭기스 카안

만주어 원사 칭기스 한

신원사 칭기스 칸

성무친정록 칭기스 가한

만주어 몽고원류 칭기스 카간

원조비사 칭기스 카한

신원사 본기 서기


만주어 요나라 태조 아보오지

만주어 금나라 태조 아구다

만주어 청나라 태조 누르가치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5%85%83%E5%8F%B2/%E5%8D%B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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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帝功德日盛,泰赤烏諸部多苦其主非法,見帝寬仁,時賜人以裘馬,心悅之。

若赤老溫、若哲別、若失力哥也不干諸人,若朵郎吉、若札剌兒、若忙兀諸部,皆慕義來降。

帝會諸族薛徹、大丑(及薛徹別吉)等,各以旄車載湩酪,宴于斡難河上。

帝與諸族及薛徹別吉之母忽兒真之前,共置馬湩一革囊;薛徹別吉次母野別該之前,獨置一革囊。

忽兒真怒曰:

「今不尊我,而貴野別該乎?」

疑帝之主饍者失丘兒所為,遂笞之。

於是頗有隙。

時皇弟別里古台掌帝乞列思事,乞列思,華言禁外繫馬所也。

播里掌薛徹別吉乞列思事。

播里從者因盜去馬靷,別里古台執之。

播里怒斫別里古台,傷其背。

左右欲鬭,別里古台止之,曰:

「汝等欲即復讎乎?我傷幸未甚,姑待之。」

不聽,各持馬乳橦疾鬭,奪忽兒真、火里真二哈敦以歸。

薛徹別吉遣使請和,因令二哈敦還。

會塔塔兒部長蔑兀真笑里徒背金約,金主遣丞相完顏襄帥兵逐之北走。

帝聞之,發近兵自斡難河迎擊,仍諭薛徹別吉帥部人來助。

候六日不至,帝自與戰,殺蔑兀真笑里徒,盡虜其輜重。

帝之麾下有為乃蠻部人所掠者,帝欲討之,復遣六十人徵兵於薛徹別吉。

薛徹別吉以舊怨之故,殺其十人,去五十人衣而歸之。

帝怒曰:

「薛徹別吉曩笞我失丘兒,斫傷我別里古台,今又敢乘敵勢以陵我耶!」

因帥兵踰沙磧攻之,殺虜其部眾,唯薛徹、大丑僅以妻孥免。

越數月,帝復伐薛徹、大丑,追至帖烈徒之隘,滅之。

克烈部札阿紺孛來歸。

札阿紺孛者,部長汪罕之弟也。

汪罕名脫里,受金封爵為王,番言音重,故稱王為汪罕。

初,汪罕之父忽兒札胡思盃祿既卒,汪罕嗣位,多殺戮昆弟。

其叔父菊兒〔罕〕帥兵與汪罕戰,逼於哈剌溫隘敗之;僅以百餘騎脫走,奔于烈祖。

烈祖親將兵逐菊兒〔罕〕走西夏,復奪部眾歸汪罕。

汪罕德之,遂相與盟,稱為按答。

按答,華言交物之友也。

烈祖崩,汪罕之弟也力可哈剌,怨汪罕多殺之故,復叛歸乃蠻部。

乃蠻部長亦難赤為發兵伐汪罕,盡奪其部眾與之。

汪罕走河西、回鶻、回回三國,奔契丹。

既而復叛歸,中道糧絕,捋羊乳為飲,刺橐駝血為食,困乏之甚。

帝以其與烈祖交好,遣近侍往招之。

帝親迎撫勞,安置軍中振給之。

遂會于土兀剌河上,尊汪罕為父。

未幾,帝伐蔑里乞部,與其部長脫脫戰于莫那察山,遂掠其資財、田禾,以遺汪罕。

汪罕因此部眾稍集。

居亡何,汪罕自以其勢足以有為,不告於帝,獨率兵復攻蔑里乞部。

部人敗走,脫脫奔八兒忽真之隘。

汪罕大掠而還,於帝一無所遺,帝不以屑意。

이때 제(帝)의 공덕(功德)이 일성(日盛)하자, 태적오(泰赤烏)의 제부(諸部)가 그 주(主)의 비법(非法)을 다고(多苦)하였는데,

제(帝)의 관인(寬仁)을 견(見)하니, 이때 사람에게 구마(裘馬/의복과 말)로써 사(賜)하니, 심열(心悅)하였다.

적로온(赤老溫), 철별(哲別), 실력가야부간(失力哥也不干)의 제인(諸人)과,

타랑길(朵郎吉), 찰랄아(札剌兒), 망올(忙兀)의 제부(諸部)가 모두 모의(慕義/의를 우러러봄)하여 내항(來降)하였다.

제(帝)가 제족(諸族/일족) 설철대축(薛徹大丑)과 더불어 설철별길(薛徹別吉) 등(等)과 회(會)하여,

각각(各) 모거(旄車/소 수레)로써 동락(湩酪/젖과 타락)을 재(載)하였고, 알난하(斡難河) 상(上)에서 연(宴)하였다.

제(帝)가 제족(諸族)과 함께 설철별지(薛徹別吉)의 모(母) 홀아진(忽兒真)의 앞에 이르러

마동(馬湩/말젖) 1 혁낭(革囊/가죽 주머니)을 공치(共置)하였다.

설철별길(薛徹別吉)의 차모(次母) 야별해(野別該)의 앞에는, 1 혁낭(革囊)을 독치(獨置)하였다.

홀아진(忽兒真)이 노(怒)하여 말하길

「지금(今) 존아(尊我)하지 않는데, 야별해(野別該)를 귀(貴)하느냐?」

제(帝)의 주선자(主饍者) 실구아(失丘兒)의 소위(所為)를 의(疑)하여, 마침내 태지(笞之)하였다.

이에 자못 유극(有隙)하였다.

이때 황제(皇弟) 별리고태(別里古台)가 제(帝)의 걸렬사(乞列思)의 일을 장(掌)하였고,

[걸렬사(乞列思)는, 화언(華言)으로 외(外)의 계마(繫馬/말을 붙들어 냄)를 금(禁)하는 장소(所)이다]

파리(播里)는 설철별길(薛徹別吉)의 걸렬사(乞列思)의 일을 장(掌)하였다.

파리(播里)의 종자(從者)가 마인(馬靷/말 가슴걸이)을 도거(盜去)함으로 인(因)하여, 별리고태(別里古台)가 집지(執之)하였다.

파리(播里)가 노(怒)하여 별리고태(別里古台)를 작(斫/벰)하였는데, 그 배(背)를 상(傷)하였다.

좌우(左右)가 욕투(欲鬭)하니, 별리고태(別里古台)가 지지(止之)하며 말하길

「여등(汝等)은 즉(即) 복수(復讎)하고자 하느냐?

  아상(我傷)은 다행히(幸) 미심(未甚)하니, 고대(姑待/잠시 기다림)하라!」

불청(不聽)하였고, 마유동(馬乳橦/말젖을 젖는 나무)을 각지(各持)하고 질투(疾鬭)하여,

홀아진(忽兒真)과 화리진(火里真) 2 합동(哈敦)을 탈(奪)하여 이로써 귀(歸)하였다.

설철별길(薛徹別吉)이 견사(遣使)하여 청화(請和)하니, 이로 인(因)하여 영(令)을 내려 2 합돈(哈敦)을 환(還)하게 하였다.

이때 탑탑아(塔塔兒) 부장(部長) 멸올진(蔑兀真) 소리도(笑里徒)가 금약(金約)을 배(背)하였고,

금주(金主)가 승상(丞相) 완안량(完顏襄)을 견(遣)하여 수병(帥兵)하고 축지(逐之)하니 북주(北走)하였다.

제(帝)가 문지(聞之)하고는, 근병(近兵)을 발(發)하여 알난하(斡難河)로부터 영격(迎擊)하였고,

이로 인하여 설철별길(薛徹別吉)은 부인(部人)을 수(帥)하여 내조(來助)하라 유(諭)하였다.

6일을 후(候/살핌)하였으나 부지(不至)하였고, 제(帝)가 스스로 여전(與戰)하여,

멸올진(蔑兀真) 소리도(笑里徒)를 살(殺)하였고, 그 치중(輜重)을 진로(盡虜)하였다.

제(帝)의 휘하(麾下)에 내만부인(乃蠻部人)으로 소략(所掠)한 자(者)가 있었는데,

제(帝)가 토지(討之)하고자 하였고, 다시 60인을 견(遣)하여 설철별길(薛徹別吉)에게 징병(徵兵)하게 하였다.

설철별길(薛徹別吉)이 구원(舊怨)한 연고(故)로써, 그 10인을 살(殺)하였고, 50인의 의(衣)를 거(去)하고 귀지(歸之)하였다.

제(帝)가 노(怒)하여 말하길

「설철별길(薛徹別吉)은 낭(曩/이전)에 아(我)의 실구아(失丘兒)를 태(笞)하였고, 

  아(我)의 별리고태(別里古台)를 작상(斫傷)하였는데,

  지금(今) 또 감히(敢) 적세(敵勢)를 승(乘)하여 이로써 나를 능(陵)하느냐?」

이로 인(因)하여 수병(帥兵)하고 사적(沙磧)을 유(踰)하여 공지(攻之)하였고, 그 부중(部眾)을 살노(殺虜)하였는데,

오직 설철대축(薛徹大丑)만 겨우 처노(妻孥/처와 종)로써 면(免)하였다.

수월(數月)을 월(越)하여, 제(帝)가 설철대축(薛徹大丑)을 복벌(復伐)하였는데,

추(追)하여 첩렬도(帖烈徒)의 애(隘/요해처)에 지(至)하여, 멸지(滅之)하였다.

극렬부(克烈部) 찰아감패(札阿紺孛)가 내귀(來歸)하였다.

[찰아감패(札阿紺孛)란 자(者)는, 부장(部長) 왕한(汪罕)의 제(弟)이다.]

왕한(汪罕)의 명(名)은 탈리(脫里)인데, 금(金)의 봉작(封爵)을 수(受)하여 왕(王)이 되었는데,

번언(番言)이 음중(音重/소리를 중시함)하니, 이런 연고(故)로 왕(王)을 왕한(汪罕)이라 칭(稱)하였다.

초(初)에, 왕한(汪罕)의 부(父) 홀아찰호사(忽兒札胡思) 배록(盃祿)이 이윽고 졸(卒)하자,

왕한(汪罕)이 사위(嗣位)하였는데, 곤제(昆弟/형제)를 다살륙(多殺戮)하였다.

그 숙부(叔父) 국아(菊兒)〔한(罕)〕가 수병(帥兵)하여 왕한(汪罕)과 더불어 전(戰)하였는데,

합랄온(哈剌溫)의 애(隘)에서 핍(逼)하여 패지(敗之)하였다.

겨우 백여기(百餘騎)로써 탈주(脫走)하여, 열조(烈祖/예수게이)에 분(奔)하였다.

열조(烈祖)가 친히(親) 장병(將兵)하고 국아(菊兒)〔한(罕)〕을 서하(西夏)로 축주(逐走)하였고,

부중(部眾)을 복탈(復奪)하여 왕한(汪罕)에게 귀(歸)하였다.

왕한(汪罕)이 덕지(德之)하였고, 마침내 서로 여맹(與盟)하였고, 안답(按答)이라 칭(稱)하였다.

[안답(按答)은, 화언(華言)의 교물지우(交物之友)다]

열조(烈祖)가 붕(崩)하자, 왕한(汪罕)의 동생(弟) 야력가합랄(也力可哈剌)은 왕한(汪罕)의 다살(多殺)을 원(怨)한 연고(故)로,

복반(復叛)하여 내만부(乃蠻部)에 귀(歸)하였다.

내만부장(乃蠻部長) 역난적(亦難赤)이 발병(發兵)하여 왕한(汪罕)을 벌(伐)하였는데,

그 부중(部眾)을 진탈(盡奪)하여 여지(與之)하였다.

왕한(汪罕)이 하서(河西), 회골(回鶻), 회회(回回) 삼국(三國)으로 주(走)하였고, 글단(契丹)에 분(奔)하였다.

얼마 안 있어 복반(復叛)하고 귀(歸)하였는데, 중도(中道)에 양절(糧絕)하니,

양유(羊乳)를 랄(捋/짜냄)하여 음(飲)하였고, 탁타(橐駝)를 자(刺)하여 혈(血)을 식(食)하니, 곤핍(困乏)이 심(甚)하였다.

제(帝)가 그가 열조(烈祖)와 더불어 교호(交好)함으로써, 근시(近侍)를 견(遣)하여 왕초지(往招之)하였다.

제(帝)가 친영(親迎)하고 무로(撫勞)하였으며, 군중(軍中)을 안치(安置)하여 진급(振給/구휼하여 줌)하게 하였다.

마침내 토올랄하(土兀剌河) 상(上)에서 회(會)하였고, 왕한(汪罕)을 존(尊)하여 부(父)로 삼았다.

미기(未幾)에, 제(帝)가 멸리걸부(蔑里乞部)를 벌(伐)하였는데,

그 부장(部長) 탈탈(脫脫)과 더불어 막나찰산(莫那察山)에서 전(戰)하였고,

마침내 그 자재(資財)와 전화(田禾)를 약(掠)하여, 이로써 왕한(汪罕)에게 유(遺/남김)하였다.

왕한(汪罕)이 이로 인(因)하여 부중(部眾)이 초집(稍集)하였다.

망하(亡何)에 거(居)하였는데, 왕한(汪罕)이 스스로 그 세(勢)가 족(足)하니 이로써 유위(有為)하다 여겼고,

제(帝)에게 불고(不告)하였으며, 

홀로 솔병(率兵)하여 멸리걸부(蔑里乞部)를 복공(復攻)하였다.

부인(部人)이 패주(敗走)하였고, 탈탈(脫脫)은 팔아홀진(八兒忽真)의 애(隘)로 분(奔)하였다.

왕한(汪罕)이 대략(大掠)하고는 환(還)하였는데, 제(帝)에게는 소무(所遺)를 일무(一無)하였으나,

제(帝)는 설(屑/편하지 않음)로써 의(意)하지 않았다.


이때 황제의 공덕이 나날이 성해지자 타이초트의 여러 부족이 그 주인의 무법함에 많이 고생하였는데 

황제의 관대함을 보았으며 이때 의복과 말을 하사하니 마음으로 좋게 생각하였다.

치라군(적로온), 제볘이(철별), 시리꾸예부런(실력가야부간)의 여러 사람과

도랑지(타랑길), 사라얼(찰랄아), 멍우(망올)의 여러 부족이 모두 의를 우러러보고 와서 항복하였다.

황제가 일족 세천 다이체오(설철대축)과 더불어 세천 부쿠(설철별길) 등과 만나

각각 소수레에 젖과 타락을 싣고 오논강(알난하) 상류에서 연회하였다.

황제가 일족과 함께 세첸 부쿠의 모친 쿠왁친(홀아진)의 앞에 이르러 말젖 한 주머니를 다른 사람과 함께 두었다.

세첸 부쿠의 계모 예볘이(야별해)의 앞에는 한 주머니를 단독으로 두었다.

쿠왘친이 노하여 말하길

「지금 나를 존중하지 않는데 예볘이는 귀하냐?」

황제의 음식을 당당한 시구리(실구아) 때문이라 의심하여 마침내 매질하니 이에 자못 틈이 생겼다.

이때 황제의 동생 벨구테이(별리고태)가 황제의 키레스(걸렬사)의 일을 관장하였고

[키레스(걸렬사)는 중국 말로 바깥의 말을 붙들어 매는 장소이다]

보리(파리)는 세첸 부쿠의 키레스의 일을 관장하였다.

보리의 종자가 말 가슴걸이를 훔쳐 감으로 인하여 벨리구테가 사로잡았다.

보리가 노하여 벨리구테를 베었는데 그 등을 상하였다.

좌우가 싸우고자 하니 벨리구테가 저지하며 말하길

「너희들은 즉 복수하고자 하느냐?

  나의 상처는 다행히 심하지 않으니 잠시 기다리라!」

듣지 않았고 말젖을 젖는 나무를 각각 쥐고는 번갈아가며 싸웠고 쿠왁진과 화리진 2 하툰(합동)을 빼앗아 이로써 돌아왔다.

세첸 부쿠가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니 이로 인하여 영을 내려 2 하툰을 돌려보냈다.

이때 타타르(탑탑아) 부족장 머구진 서굴(멸올진소리도)이 금과의 약조를 배신하니

금주(희종)가 승상 완안량을 보내 군을 통솔하여 추격하니 북으로 달아났다.

황제가 듣고는 근처의 병력을 소집하여 오논강으로부터 맞아 싸우고자 하였고

이로 인하여 세첸 부쿠은 부족민을 거느리고 원조하라 설득했다.

6일을 살폈으나 이르지 않았고 황제가 스스로 더불어 싸워 머구진 서굴을 죽이고 그 치중을 모조리 노략하였다.

황제의 휘하로 나이만(내만) 부족에 의해 약탈당한 곳이 있었는데 

황제가 토벌하고자 하여 다시 60명을 보내 세첸 부쿠에게 징병하게 하였다.

세첸 부쿠가 예전 원한으로 인하여 그 10인을 살해하고 50인의 옷을 벗겨 돌려보냈다.

황제가 노하여 말하길 사지(사적)를 경유하여 공격하였고 그 부족 무리를 죽이고 약탈하였는데

오직 세첸 다이체오만 겨우 처와 종을 데리고 도망갔다.

몇달이 지나자 황제가 다시 세첸 다이체오를 정벌하였는데 추격하여 톄이례이투(첩렬도)의 요해처에 이르러 섬멸하였다.

케레디(극렬부) 사오한보(찰아감패)가 귀부하였다.

[사오한보란 자는 부족장 왕 카안(왕한)의 동생이다.]

왕 카안의 이름은 토리(탈리)인데, 금의 봉작을 받아 왕(王)이 되었는데 오랑캐의 말이 소리를 중시하니

이런 연고로 왕을 왕 카안이라 칭하였다.

처음에 왕 카안의 부친 훌사후스(홀아찰오사) 버이러(배록)이 이윽고 졸하자 왕 카안이 계승하였는데 형제를 많이 살육하였다.

그 숙부 죠이엘(국아) 카안이 군을 통솔하여 왕 카안과 더불어 싸웠는데 하라원(합랄온)의 요해처에서 핍박당하여 패하였다.

겨우 100여기를 데리고 탈주하여 열조(예수게이)에게 달아났다.

열조가 친히 군사를 인솔하고 죠이엘 카안을 서하로 축출하였고 부족 무리를 다시 빼앗아 왕 카안에게 돌려줬다.

왕 카안이 덕이 있다 여겼고 마침내 서로 맹세하여 안다(안답)라 칭하였다.

[안다(안답)은 중국 말의 교물지우(交物之友)다]

열조가 붕어하자 왕 카안의 동생 예리꾸 하라(야력가합랄)가 왕 카안의 많은 살륙에 원한을 품은 연고로

다시 배반하여 나이만 부족에 귀부하였다.

나이만 부족장 이난치(역난적)이 군사를 동원하여 왕 카안을 정벌하고는 그 부족 무리를 모조리 빼앗아 예리꾸 하라에게 주었다.

왕 카안이 서하, 회골, 회회 3국으로 갔다가 글단(거란/치단)으로 달아났다.

얼마 안 있어 다시 배반하고 돌아왔는데 도중에 식량이 떨어지니 양젖을 짜내 마시고 낙타를 찔러 피를 먹으니 곤핍이 심하였다.

황제가 그가 열조와 더불어 우호를 나눈 것을 생각하여 근시를 보내 불러 오도록 하였다.

황제가 친히 영접하여 노고를 위무하였으며 군중을 안치하여 구휼하도록 하였다.

마침내 투우라(토올랄) 강 상류에서 회합하였고 왕 카안을 높여 부친으로 삼았다.

얼마 안 있어 황제가 몌이리치(멸리걸) 부족을 정벌하였는데, 그 부족장 토토(탈탈)과 더불어 모나사(막나찰) 산에서 싸웠고

마침내 그 재물과 식량을 약탈하여 이로써 왕 카안에게 보냈다.

왕 카안이 이로 인하여 부족 무리를 점차 모집하였다.

왕호(망하)에 거주하면서 왕 카안이 스스로 그 세력이 풍족하다 생각하였고

황제에게 고하지도 않고서 홀로 군을 인솔하여 몌이리치 부족을 다시 공격하였다.

몌이리치 부족인은 패하여 달아났고 토토는 바르구진(팔아홀진)의 요해처로 달아났다.

왕 카안이 크게 약탈하고는 돌아왔는데 황제에게 하나도 보내지 않았으나 황제는 서운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요약.

테무진과 적대적인 타이초트 부족장 탈부타이의 폭정에 많은 사람들이 테무진에 귀부해왔다.

이중에는 치라군과 제베(제볘이) 등도 있었다.

한편 테무진은 일족 세첸부쿠와 연회를 베풀다 세첸부쿠의 부하 보리가 테무진의 이복형제 벨구테이를 베는 일이 벌어진다.

이에 벨구테이의 부하들이 세첸부쿠의 모친 쿠왁친을 납치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후 세첸부쿠가 화친의 사자를 보내 양측은 화해한다.

그러나 그 이후 타타르와 나이만 원정 당시 세첸부쿠는 테무진의 원군 요청 사신 10명을 죽여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이에 테무진은 세첸부쿠 부족을 공격하여 멸한다.

한편 예수게이와 안다를 맺었던 케레디(케레이트) 부족장 왕 카안은 일족을 많이 살해하여 원망을 샀고

결국 동생 예리꾸 하라가 나이만 부족장 이난치의 도움으로 형을 축출한다.

왕 카안이 각국을 떠돌며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테무진은 

부친과의 인연을 생각하여 왕 카안을 받아들이고 아버지라 부른다.

테무진이 몌리이치 부족장 탈탈을 공격하고 얻은 약탈품을 모두 왕 카안에게 보냈고 이를 바탕으로 왕 카안은 부족민을 모은다.

신원사에는 당초 궁핍한 생활을 하던 테무진이 아내 부르테마저 메르키트에게 약탈당했을 당시

케레드 부족 왕 카안과 자드란 부족 자무카의 도움으로 아내를 구했다고 나와 있다.

원조비사에서는 테무진은 처가에서 보내온 검은 담비 외투를 가지고 왕 카안을 찾아가 바쳤고,

이에 왕 카안은 안다의 아들이라 하여 흩어진 부족민을 모아주겠다 약속한다.

이후 메르키트가 부르테를 약탈했고 테무진은 다시 왕 카안을 찾아가 아내를 구출해 달라 청하였고 

왕 카안은 자무카에게 2만을 동원하라 요청하고 자신 또한 2만을 동원하여 메르키트를 공격하여

부르테를 찾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5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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