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사 칭기스 카안 11부-북부 나이만 멸망/자무카처형/초원 통일!/즉위 원사 태조 테무진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틈틈이 주원장의 명으로 편찬된 원사 태조 테무진 본기를 연재하겠습니다.


1부-시조 사생아 멍청이<부단차르>

2부-피의 복수

3부-몽고 최강부족 타이초트

4부-치라군과 제베가 휘하로 들어오다!

5부-이기적인 왕 카안을 용서하고 나이만을 격파하다!

6부-알쿠이 맹약 자무카 구르 카안에 옹립되다!

7부-피어나는 케레이트의 음모

8부-칼랄진 엘레트 전투! 5가지 대공(大功)

9부-발주나 맹약과 케레이트 멸망!

10부-참수작전(카라가나 전술)으로 남부 나이만을 멸하다!


원사 칭기스 카안

만주어 원사 칭기스 한

신원사 칭기스 칸

성무친정록 칭기스 가한

만주어 몽고원류 칭기스 카간

원조비사 칭기스 카한

신원사 본기 서기


만주어 요나라 태조 아보오지

만주어 금나라 태조 아구다

만주어 청나라 태조 누르가치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5%85%83%E5%8F%B2/%E5%8D%B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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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乙丑,帝征西夏,拔力吉里寨,經落思城,大掠人民及其橐駝而還。

元年丙寅,帝大會諸王羣臣,建九游白旗,即皇帝位於斡難河之源。

諸王羣臣共上尊號曰成吉思皇帝。

是歲實金泰和之六年也。

帝既即位,遂發兵復征乃蠻。

時卜魯欲罕獵於兀魯塔山,擒之以歸。

太陽罕子屈出律罕與脫脫奔也兒的石河上。

帝始議伐金。

初,金殺帝宗親咸補海罕,帝欲復讐。

會金降俘等具言金璟肆行暴虐,帝乃定議致討,然未敢輕動也。

二年丁卯秋,再征西夏,克斡羅孩城。

是歲,遣按彈、不兀剌二人使乞力吉思。

既而野牒亦納里部、阿里替也兒部,皆遣使來獻名鷹。

三年戊辰春,帝至自西夏。

夏,避暑龍庭。

冬,再征脫脫及屈出律罕。

時斡亦剌部等遇我前鋒,不戰而降,因用為向導。

至也兒的石河,討蔑里乞部,滅之。

脫脫中流矢死。

屈出律奔契丹。

四年己巳春,畏吾兒國來歸。

帝入河西。

夏主李安全遣其世子率師來戰,敗之,獲其副元帥高令公。

克兀剌海城,俘其太傅西壁氏。

進至克夷門,復敗夏師,獲其將嵬名令公。

薄中興府,引河水灌之。

堤決,水外潰,遂撤圍還。

遣太傅訛答入中興,招諭夏主,夏主納女請和。

을출년(乙丑/1205년), 제(帝)가 서하(西夏)를 정(征)하여, 역길리채(力吉里寨)를 발(拔)하였고,

경락사성(落思城)의 인민(人民)과 더불어 그 탁타(橐駝)를 대략(大掠)하고는 환(還)하였다.

원년(元年)인 병인년(丙寅/1206년)에, 제(帝)가 제왕(諸王) 및 신(臣)과 대회(大會)하였고,

구유백기(九游白旗)를 건(建)하고, 알난하(斡難河)의 원(源)에서 황제(皇帝)에 즉위(即位)하였다.

제왕(諸王) 및 신(臣)이 존호(尊號)를 공상(共上)하여 왈(曰) 성길사황제(成吉思皇帝)라 하였다.

이해는 실로(實) 금(金) 태화(泰和)의 6년(年)이었다.

제(帝)가 이윽고 즉위(即位)하자, 마침내 발병(發兵)하고 내만(乃蠻)을 복정(復征)하였다.

이때 복로욕한(卜魯欲罕)은 올로탑산(兀魯塔山)에서 엽(獵)하였는데, 금지(擒之)하여 이귀(以歸)하였다.

태양한(太陽罕)의 자(子) 굴출률한(屈出律罕)은 탈탈(脫脫)과 함께 야아적석하(也兒的石河) 상(上)으로 분(奔)하였다.

제(帝)가 비로소 벌금(伐金)을 의(議)하였다.

초(初)에, 금(金)이 제(帝)의 종친(宗親) 함보해한(咸補海罕)을 살(殺)하였는데, 제(帝)가 복수(復讐)하고자 하였다.

때마침 금(金) 항부(降俘) 등(等)이 구언(具言)하길 금(金) 완안경(璟/금 6대 황제 장종)이 폭학(暴虐)을 사행(肆行)한다 하니,

제(帝)가 이에 의정(定議)하여 치토(致討)하였으나, 그러나 감히(敢) 경동(輕動)하지는 못하였다.

2년 정묘년(丁卯/1207년) 추(秋)에, 서하(西夏)를 재정(再征)하였고, 알라해성(斡羅孩城)을 극(克)하였다.

이해에, 안탄(按彈)과 부올랄(不兀剌) 2인(人)을 사신(使)으로 걸력길사(乞力吉思)에게 견(遣)하였다.

기이(既而)에 야첩역납리부(野牒亦納里部)와 아리체야아부(阿里替也兒部)가 모두 견사(遣使)하고 명응(名鷹)을 

내헌(來獻)하였다.

3년 무진년(戊辰/1208년) 춘(春)에, 제(帝)가 서하(西夏)로부터 지(至)하였다.

하(夏)에, 용정(龍庭)으로 피서(避暑)하였다.

동(冬)에, 탈탈(脫脫)과 더불어 굴출률한(屈出律罕)을 재정(再征)하였다.

이때 알역랄부(斡亦剌部) 등(等)이 아(我)의 전봉(前鋒)을 우(遇)하였는데, 부전(不戰)하고 항(降)하였으며,

이로 인(因)하여 용(用)하여 향도(向導)로 삼았다.

야아적석하(也兒的石河)에 지(至)하여, 멸리걸부(蔑里乞部)를 토(討)하였고, 멸지(滅之)하였다.

탈탈(脫脫)은 유시(流矢)에 중(中)하여 사(死)하였고, 굴출률(屈出律)은 글단(契丹)에 분(奔)하였다.

4년 기사년(己巳/1209년) 춘(春)에, 외오아국(畏吾兒國)이 내귀(來歸)하였다.

제(帝)가 하서(河西)에 입(入)하였다.

하주(夏主) 이안전(李安全)이 그 세자(世子)를 견(遣)하여 솔사(率師)하고 내전(來戰)하였는데, 패지(敗之)하였고,

그 부원수(副元帥) 고령공(高令公)을 획(獲)하였다.

올랄해성(兀剌海城)을 극(克)하였고, 그 태부(太傅) 서벽씨(西壁氏)를 부(俘)하였다.

진(進)하여 극이문(克夷門)에 지(至)하여, 하사(夏師)를 복패(復敗)하였고, 그 장(將) 외명령공(嵬名令公)을 획(獲)하였다.

중흥부(中興府)에 박(薄)하여, 하수(河水)를 인(引)하여 관지(灌之/물을 대게 함)하였다.

제결(堤決/둑이 터짐)하자, 수외(水外)가 궤(潰)하였고, 마침내 철위(撤圍)하고 환(還)하였다.

태부(太傅)를 견(遣)하여 중흥(中興)에 입(入)하게 하고 와답(訛答/거짓으로 답함)하게 하였고,

하주(夏主)를 초유(招諭)하였는데, 하주(夏主)가 납녀(納女)하고 청화(請和)하였다.



1205년에 황제가 서하(카신)를 정벌하여 리킬리(역길리) 산채를 함락하였고

킹로스(경락사) 성의 인민과 더불어 그 낙타를 크게 약탈하고는 돌아왔다.

[칭기스 카안] 원년인 1206년에 황제가 여러 왕 및 신하들과 쿠릴타이(대회)를 열어

구유백기(9개의 다리를 지닌 흰 깃발/예순 쿨투 차가안 토르)을 세우고 오논강(알난하)의 발원지에서 황제에 즉위하였다.

여러 왕과 신하가 상에게 존호를 올려 말하길 칭기스 카안(성길사 황제)이라 하였다.

이해는 실로 금 태화(금 6대 황제 장종의 #3연호) 6년(1206년)이었다.

황제가 이윽고 즉위하자 마침내 출병하여 다시 나이만(내만)을 정벌하였다.

이때 부이룩 카안(복로욕 한)은 울룩 탁(올로 탑) 산에서 사냥하였는데 사로잡아 이로써 돌아왔다.

타양 카안의 아들 쿠쉴룩 카안(굴출률 한/구출룩 카안)은 톡타이(탈탈/톡토아)와 함께 

에르디시(야아적석/이르티슈) 강 상류로 달아났다.

황제가 비로소 금 정벌을 의논하였다.

처음에 금이 황제의 종친 암바가이 카안(함보해 한)을 살해하였는데 황제가 복수하고자 하였다.

때마침 금 포로들이 모두 말하길 금 완안경(장종)이 폭정을 자행한다고 하니 황제가 이에 의논을 정하여 토벌에 이르게 하였으나

그러나 감히 가볍게 움직이지는 못하였다.

[칭기스 카안] 2년 1207년 가을에 서하를 다시 정벌하였고 에리카이(알라해) 성을 함락하였다.

이해에 알탄(안탄)과 부라(부올랄/보오라) 2인을 사신으로 킬리기스(걸력길사)에 보냈다.

얼마 안 있어 이티 오론(야첩역납리) 부족과 알 디에르(아리 체야아/우루스 이날/오로스 이날) 부족이 모두 사신을 보내 

흰색 매를 헌상하여 왔다.

[칭기스 카안] 3년 1208년 봄에 황제가 서하로부터 이르렀다.

여름에 용정에서 더위를 피하였다.

겨울에 다시 톡타이와 더불어 쿠쉴룩 카안을 정벌하였다.

이때 오이라트(알역랄) 부족 등이 우리의 선봉과 조우하였는데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였으며 

이에 이들을 이용하여 향도로 삼았다.

에르디시 강에 이르러 메르키트(멸리걸) 부족을 토벌하여 멸망시켰다.

톡타이는 유시에 명중하여 죽었고 쿠쉴룩은 치단(글단/서요)으로 달아났다.

[칭기스 카안] 4년 1209년 봄에 오이오드(외오아/위구르) 국이 귀부하여 왔다.

황제가 서하에 들어갔다.

서하 주인 이안전이 그 세자를 보내 군을 인솔하고 싸우러 왔는데 격파당했고 그 부원수 고령공을 사로잡았다.

올랄해성을 함락하였고 그 태부 서벽씨를 사로잡았다.

진군하여 극이문에 이르러 다시 서하의 군대를 격파하였고 그 장수 외명령공을 사로잡았다.

중흥부에 육박하여 강물을 끌어와 물을 대게 하였는데, 둑이 터져 물이 밖으로 허물어지니 마침내 포위를 풀고 돌아왔다.

태부를 보내 중흥에 들어가게 하고는 거짓으로 답하게 하여 서하 주인을 초유하였는데 서하 주인이 딸을 바치고 화친을 청했다.


요약.

1205년 남부 나이만 타양 카안을 멸한 테무진은 서하가 케레이트 잔당 셍군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서하를 침공하여 리킬리 성을 함락하고 킹로스 인근을 약탈하고 돌아온다.

1206년 테무진은 오논강 상류에서 쿠릴타이를 열어 무당 텝 텡게리 쿠쿠추의 건의를 받아들여 칭기스 카안에 즉위한다.

테무진은 곧장 출병하여 울룩탁산에서 사냥하고 있던 부이룩 카안을 생포하여 북부 나이만을 멸하였고,

마침내 몽고 초원을 통일한다.

이때 타양카안의 아들 쿠쉴룩 카안과 메르키트 톡타아는 에르디시 강으로 달아났고,

자무카는 부하 5명과 달아났다가 탕노 산맥에서 부하들의 배신으로 테무진에게 끌려온다.

테무진은 주인을 배신한 부하들을 즉각 처형하였고, 자무카는 피를 보이지 않게 살해한다.

몽골비사에는 테무진이 자무카를 안다로써 회유하려 하였으나 자무카는 이를 거부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해 테무진은 암바가이 카안의 복수를 위해 금 정벌을 결의하였으나 

섣불리 출병하지 않고 1207년 다시 서하를 침공했다가 회군한다.

1208년 테무진은 달아났던 톡타이를 에르디시 강에서 살해하였고, 쿠쉴룩 카안은 서요로 달아난다.

1209년 다시 서하 수도 중흥부를 포위한 테무진은 수공을 계획했으나 실패하고 회군하였고,

서하 임금 이안전은 공주를 바치고 화친을 청한다.

1209년에 위그루가 몽고에 자진하여 투항했다.


-1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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