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사 칭기스 카안 12부-조공을 끊고 마침내 금을 침공하다! 원사 태조 테무진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틈틈이 주원장의 명으로 편찬된 원사 태조 테무진 본기를 연재하겠습니다.


1부-시조 사생아 멍청이<부단차르>

2부-피의 복수

3부-몽고 최강부족 타이초트

4부-치라군과 제베가 휘하로 들어오다!

5부-이기적인 왕 카안을 용서하고 나이만을 격파하다!

6부-알쿠이 맹약 자무카 구르 카안에 옹립되다!

7부-피어나는 케레이트의 음모

8부-칼랄진 엘레트 전투! 5가지 대공(大功)

9부-발주나 맹약과 케레이트 멸망!

10부-참수작전(카라가나 전술)으로 남부 나이만을 멸하다!

11부-북부 나이만 멸망/자무카처형/초원 통일! 즉위


원사 칭기스 카안

만주어 원사 칭기스 한

신원사 칭기스 칸

성무친정록 칭기스 가한

만주어 몽고원류 칭기스 카간

원조비사 칭기스 칸

신원사 본기 서기


만주어 요나라 태조 아보오지

만주어 금나라 태조 아구다

만주어 청나라 태조 누르가치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5%85%83%E5%8F%B2/%E5%8D%B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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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年庚午春,金謀來伐,築烏沙堡。

帝命遮別襲殺其眾,遂略地而東。

初,帝貢歲幣于金,金主使衞王允濟貢於靜州。

帝見允濟不為禮。

允濟歸,欲請兵攻之。

會金主璟殂,允濟嗣位,有詔至國,傳言當拜受。

帝問金使曰:

「新君為誰?」

金使曰:

「衞王也。」

帝遽南面唾曰:

「我謂中原皇帝是天上人做,此等庸懦亦為之耶,何以拜為!」

即乘馬北去。

金使還言,允濟益怒,欲俟帝再入貢,就進場害之。

帝知之,遂與金絕,益嚴兵為備。

六年辛未春,帝居怯綠連河。

西域哈剌魯部主阿昔蘭罕來降。

畏吾兒國主亦都護來覲。

二月,帝自將南伐,敗金將定薛於野狐嶺,取大水濼、豐利等縣。

金復築烏沙堡。

秋七月,命遮別攻烏沙堡及烏月營,拔之。

八月,帝及金師戰于宣平之會河川,敗之。

九月,拔德興府,居庸關守將遁去。

遮別遂入關,抵中都。

冬十月,襲金群牧監,驅其馬而還。

耶律阿海降,入見帝于行在所。

皇子朮赤、察合台、窩闊台分徇雲內、東勝、武、朔等州,下之。

是冬,駐蹕金之北境。劉伯林、夾谷長哥等來降。

七年壬申春正月,耶律留哥聚眾于隆安,自為都元帥,遣使來附。

帝破昌、桓、撫等州。

金將紇石烈九斤等率兵三十萬來援,帝與戰于獾兒觜,大敗之。

秋,圍西京。

金元帥左都監奧屯襄率師來援,帝遣兵誘至密谷口逆擊之,盡殪。

復攻西京,帝中流矢,遂撤圍。

九月,察罕克奉聖州。

冬十二月甲申,遮別攻東京不拔,即引去,夜馳還,襲克之。

5년 경오년(庚午) 춘(春)에, 금(金)이 내벌(來伐)을 모(謀)하였고, 오사보(烏沙堡)를 축(築)하였다.

제(帝)가 명(命)하여 차별(遮別)은 그 중(眾)을 습살(襲殺)하게 하였고, 마침내 약지(略地)하고 이동(而東)하였다.

초(初)에, 제(帝)가 금(金)에 세폐(歲幣)를 공(貢)하였는데, 금주(金主)가 위왕(衞王) 완안윤제(允濟)로 하여금 정주(靜州)에서 

공(貢)하게 하였다.

제(帝)가 윤제(允濟)를 보고도 예(禮)를 행하지 않았는데, 윤제(允濟)가 귀(歸)하여, 청병(請兵)하여 공지(攻之)하고자 하였다.

때마침 금주(金主) 경(璟)이 조(殂)하자, 윤제(允濟)가 사위(嗣位)하였고, 유조(有詔)하여 지국(至國)하였는데, 

마땅히 배수(拜受)하라 전언(傳言)하였다.

제(帝)가 금사(金使)에게 문(問)하여 말하길

「신군(新君)은 누구인가?」

금사(金使)가 말하길

「위왕(衞王)이다!」

제(帝)가 급히 남면(南面)으로 타(唾)하며 말하길

「아(我)는 중원황제(中原皇帝)를 위(謂)하길 이는 천상인(天上人)이다 주(做/만듦)하였는데,

  차등(此等)이 용나(庸懦/어리석고 나약함)한데 역시(亦) 위지(為之)하였구나!

  어찌 이로써 배(拜)하겠는가!」

즉(即) 승마(乘馬)하고 북거(北去)하였다.

금사(金使)가 환언(還言)하니, 윤제(允濟)가 익노(益怒)하였고, 제(帝)가 재차(再) 입공(入貢)함을 사(俟)하여, 

취장(就進)할 때에 해지(害之)하고자 하였다.

제(帝)가 지지(知之)하였고, 마침내 금(金)과 더불어 절(絕)하였고, 엄병(嚴兵)을 익(益)하여 비(備)하였다.

6년 신미년(辛未/1211년) 춘(春)에, 제(帝)가 겁록련하(怯綠連河)에 거(居)하였다.

서역(西域) 합랄로(哈剌魯/카를룩) 부주(部主) 아석란한(阿昔蘭罕/아르슬란 카안)이 내항(來降)하였다.

외오아(畏吾兒/위구르) 국주(國主) 역도호(亦都護/이디쿠트)가 내근(來覲/와서 알현함)하였다.

2월에, 제(帝)가 자장(自將)하여 남벌(南伐)하였고, 금(金) 장(將) 정설(定薛)을 야호령(野狐嶺)에서 패(敗)하였고,

대수락(大水濼)과 풍리(豐利) 등(等)의 현(縣)을 취(取)하였다.

금(金)이 오사보(烏沙堡)를 복축(復築)하였다.

추(秋) 7월에, 명(命)하여 차별(遮別)은 오사보(烏沙堡)와 더불어 오월영(烏月營)을 공(攻)하게 하였고, 발지(拔之)하였다.

8월에, 제(帝)가 금사(金師)와 더불어 선평(宣平)의 회하천(會河川)에서 전(戰)하였는데, 패지(敗之)하였다.

9월에, 덕흥부(德興府)를 발(拔)하였고, 거용관(居庸關) 수장(守將)은 둔거(遁去)하였다.

차별(遮別)이 마침내 입관(入關)하였고, 중도(中都)에 저(抵/이름)하였다.

동(冬) 10월에, 금(金)의 군목감(群牧監)을 습(襲)하였고, 그 마(馬)를 구(驅)하여 환(還)하였다.

야율아해(耶律阿海)가 항(降)하였는데, 행재소(行在所)에서 제(帝)를 입현(入見)하였다.

황자(皇子) 출적(朮赤), 찰합태(察合台), 와할태(窩闊台)가 운내(雲內), 동승(東勝), 무(武), 삭(朔) 등(等)의 주(州)를 

분순(分徇)하였고, 하지(下之)하였다.

이 동(冬)에, 금(金)의 북경(北境)에 주필(駐蹕)하였다.

유백림(劉伯林)과 협곡장가(夾谷長哥) 등(等)이 내항(來降)하였다.

7년 임신년(壬申/1212년) 춘(春) 정월(正月)에, 야율유가(耶律留哥)가 륭안(隆安)에서 취중(聚眾)하여, 스스로 도원수(都元帥)라

하였고, 견사(遣使)하여 내부(來附)하였다.

제(帝)가 창주(昌), 환주(桓), 무주(撫) 등(等)의 주(州)를 파(破)하였다.

금(金) 장(將) 흘석렬구근(紇石烈九斤) 등(等)이 병(兵) 30만(萬)을 솔(率)하여 내원(來援)하였고, 제(帝)와 더불어 

환아자(獾兒觜)에서 전(戰)하였는데, 대패지(大敗之)하였다.

추(秋)에, 서경(西京)을 위(圍)하였다.

금(金) 원수(元帥) 좌도감(左都監) 오둔양(奧屯襄)이 솔사(率師)하여 내원(來援)하였는데, 제(帝)가 견병(遣兵)하고 

유(誘)하여 밀곡구(密谷口)에 지(至)하여 역격지(逆擊之)하여, 진에(盡殪)하였다.

서경(西京)을 복공(復攻)하였는데, 제(帝)가 유시(流矢)에 중(中)하니, 마침내 철위(撤圍)하였다.

9월에, 찰한(察罕)이 봉성주(奉聖州)를 극(克)하였다.

동(冬) 12월 갑신일(甲申)에, 차별(遮別)이 동경(東京)을 공(攻)하였는데 불발(不拔)하자, 즉(即) 인거(引去)하였고, 

야(夜)에 치환(馳還)하여, 습(襲)하여 극지(克之)하였다.



[칭기스 카안] 5년 1210년 봄에 금이 정벌하여 오는 것을 모의하고 오사보를 쌓았다.

황제가 명을 내려 제베(차별)을 그 무리를 기습하여 죽이게 하였고 마침내 땅을 약탈하고 동진하였다.

처음에 황제가 금에게 세폐를 조공하였는데 금 황제가 위왕 완안윤제로 하여금 정주에게 조공을 받게 하였다.

황제가 윤제가 만나 예를 행하지 않았는데 윤제가 돌아가 군사를 청하여 공격하고자 하였다.

때마침 금 황제 완안경(장종)이 붕어하자 윤제가 제위를 이어받았다.

조서를 내려 나라에 이르러 마땅히 절하여 받으라 전하여 말하였다.

황제가 금 사신에게 물어 말하길

「신 황제는 누구인가?」

금 사신이 말하길

「위왕이다!」

황제가 급히 남쪽을 향해 침 뱉으며 말하길

「나는 중원의 황제를 천상의 사람이라 일컬었는데 너희들이 이렇게 어리석고 나약한 자를 세웠구나!

  어찌 이로써 절하겠는가!」

즉시 말을 타고 북쪽으로 가버렸다.

금 사신이 돌아와 말하니 윤제가 더욱 분노하였고 황제가 재차 들어와 조공하여 올 때를 기다려 살해하고자 하였다.

황제가 알고는 마침내 금과 더불어 관계를 끊었고 군을 더욱 엄하게 방비하게 하였다.

[칭기스 카안] 6년 1211년 봄에 황제가 켈루렌(겁록련) 강에서 거주하였다.

서역 카를룩 부족 주인 아르슬란 칸(아석란 한)이 와서 항복하였다.

위구르(외오아) 국주 이디쿠트(역도호)가 와서 알현하였다.

2월에 황제가 스스로 군을 이끌고 남벌하였으며 금 장수 정설을 야호령(후네겐 고개)에서 격파하였고 대수락(타이수)현과 

풍리(바우티)현 등의 현을 취하였다.

금이 오사보를 다시 쌓았다.

가을 7월에 제베(차별)에게 오사보와 더불어 오월영을 공격하게 하여 함락시켰다.

8월에 황제가 금군과 더불어 선평의 회하천에서 싸워 격파하였다.

9월에 덕흥부를 함락하였고 거용관(차브치얄 고개)를 함락하였는데 거용관 수장은 달아났다.

제베가 마침내 입관하였고 중도(북경)에 이르렀다.

겨울 10월에 금의 방목장을 기습하여 그 말을 몰아서 돌아왔다.

야율아해가 항복하였는데 행재소에서 황제를 알현하였다.

황자 주치(출적), 차가타이(찰합태), 우구데이(와할태)가 운내주(운 나우이), 동승주(퉁징), 무주, 삭주 등의 주를 나누어 

돌면서 함락시켰다.

이 겨울에 금의 북쪽 변경에 황제가 주둔하였다.

유백림과 협곡장가 등이 항복하여 왔다.

[칭기스 카안] 7년 1212년 봄 1월에 야율유가가 륭안에서 무리를 모아 스스로 도원수라 칭하고 사신을 보내 귀부하여 왔다.

황제가 창주, 환주, 무주 등의 주를 격파하였다.

금 장수 흘석렬구근 등이 병력 30만을 인솔하여 구원하여 왔는데 황제와 더불어 환아자에서 싸워 대파되었다.

가을에 서경을 포위하였다.

금 원수 좌도감 오둔양이 군을 인솔하여 구원하여 왔는데 황제가 군사를 보내 밀곡구로 유인하여 이른 뒤에 역습하여 모조리 

죽였다.

다시 서경을 공격하였는데 황제가 유시에 명중하니 마침내 포위를 풀었다.

9월에 차칸(찰한)이 봉성주를 함락하였다.

겨울 12월 12일에 제베(차별)가 동경을 공격하였는데 함락하지 못하자 즉시 군을 이끌고 가버렸다가 야밤에 치달려 돌아와 

기습하여 함락시켰다.


요약.

1209년 7대 폐황제 위소왕이 즉위하자 칭기스 카안은 마침내 조공을 거부한다.

1210년 금은 몽고를 방어하기 위해 오사보를 축성하는데 칭기스 카안은 제베를 보내 함락한다.

1211년 카를룩의 아르슬란 칸과 위그루 이디쿠트가 입조한다.

2월 금 정벌에 나선 몽고군은 야호령을 돌파하고 대수락/풍리현/오사보/오월영/선평/덕흥부를 공격한 후 

마침내 거용관을 함락한다.

선봉 제베는 중경(북경)에 이르렀고, 황자군은 운내주/동승주/무주/삭주를 함락한다.

1212년 몽고군은 창주/환주/무주를 공격하고 금 흘석렬구근의 30만군을 환아자에서 격파한다.

가을 서경을 포위하고 구원군을 밀곡구에서 섬멸한다.

칭기스 카안은 서경을 다시 포위하다 유시에 맞아 부상을 입는다.

12월 제베가 동경(요양)을 계략으로 함락한다.


-1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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