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사 칭기스 카안 13부-거짓 화친/거란군 배반/개봉 천도 원사 태조 테무진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틈틈이 주원장의 명으로 편찬된 원사 태조 테무진 본기를 연재하겠습니다.


1부-시조 사생아 멍청이<부단차르>

2부-피의 복수

3부-몽고 최강부족 타이초트

4부-치라군과 제베가 휘하로 들어오다!

5부-이기적인 왕 카안을 용서하고 나이만을 격파하다!

6부-알쿠이 맹약 자무카 구르 카안에 옹립되다!

7부-피어나는 케레이트의 음모

8부-칼랄진 엘레트 전투! 5가지 대공(大功)

9부-발주나 맹약과 케레이트 멸망!

10부-참수작전(카라가나 전술)으로 남부 나이만을 멸하다!

11부-북부 나이만 멸망/자무카처형/초원 통일! 즉위

12부-조공을 끊고 마침내 금을 침공하다!


원사 칭기스 카안

만주어 원사 칭기스 한

신원사 칭기스 칸

성무친정록 칭기스 가한

만주어 몽고원류 칭기스 카간

원조비사 칭기스 칸

신원사 본기 서기


만주어 요나라 태조 아보오지

만주어 금나라 태조 아구다

만주어 청나라 태조 누르가치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5%85%83%E5%8F%B2/%E5%8D%B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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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年癸酉春,耶律留哥自立為遼王,改元元統。

秋七月,克宣德府,遂攻德興府。

皇子拖雷、駙馬赤駒先登,拔之。

帝進至懷來。

及金行省完顏綱、元帥高琪戰,敗之,追至北口。

金兵保居庸,詔可忒、薄剎守之。

遂趨涿鹿。

金西京留守忽沙虎遁去。

帝出紫荊關,敗金師于五回嶺,拔涿、易二州。

契丹訛魯不兒等獻北口,遮別遂取居庸,與可忒、薄剎會。

八月,金忽沙虎弒其主允濟,迎豐王珣立之。

是秋,分兵三道:

命皇子朮赤、察合台、窩闊台為右軍,循太行而南,取保、遂、安肅、安定、邢、洺、磁、相、衞、輝、懷、孟,掠澤、潞、

遼、沁、平陽、太原、吉、隰,拔汾、石、嵐、忻、代、武等州而還;

皇弟哈撒兒及斡陳那顏、拙赤角、薄剎為左軍,遵海而東,取薊州、平、灤、遼西諸郡而還;

帝與皇子拖雷為中軍,取雄、霸、莫、安、河間、滄、景、獻、深、祁、蠡、冀、恩、濮、開、滑、博、濟、泰安、濟南、

濱、棣、益都、淄、濰、登、萊、沂等郡。

復命木華黎攻密州,屠之。

史天倪、蕭勃迭率眾來降,木華黎承制並以為萬戶。

帝至中都,三道兵還,合屯大口。

是歲,河北郡縣盡拔,唯中都、通、順、真定、清、沃、大名、東平、德、邳、海州十一城不下。

九年甲戌春三月,駐蹕中都北郊。

諸將請乘勝破燕,帝不從。

乃遣使諭金主曰:

「汝山東、河北郡縣悉為我有,汝所守惟燕京耳。

天既弱汝,我復迫汝於險,天其謂我何。

我今還軍,汝不能犒師以弭我諸將之怒耶?」

金主遂遣使求和,奉衞紹王女岐國公主及金帛、童男女五百、馬三千以獻,仍遣其丞相完顏福興送帝出居庸。

夏五月,金主遷汴,以完顏福興及參政抹撚盡忠輔其太子守忠,留守中都。

六月,金乣軍斫答等殺其主帥,率眾來降。

詔三摸合、石抹明安與斫答等圍中都。

帝避暑魚兒濼。

秋七月,金太子守忠走汴。

冬十月,木華黎征遼東,高州盧琮、金(扑)〔朴〕等降。

錦州張鯨殺其節度使,自立為臨海王,遣使來降。

8년 계유년(癸酉/1213년) 춘(春)에, 야율유가(耶律留哥)가 자립(自立)하여 요왕(遼王)이라 하였고, 

원통(元統)이라 개원(改元)하였다.

추(秋) 7월에, 선덕부(宣德府)를 극(克)하였고, 마침내 덕흥부(德興府)를 공(攻)하였다.

황자(皇子) 타뢰(拖雷)와 부마(駙馬) 적구(赤駒)가 선등(先登)하여, 발지(拔之)하였다.

제(帝)가 진(進)하여 회래(懷來)에 지(至)하여, 금(金) 행성(行省) 완안강(完顏綱)과 원수(元帥) 고기(高琪)와 더불어 

전(戰)하였고, 패지(敗之)하였으며, 북구(北口)로 추지(追至)하였다.

금병(金兵)이 거용(居庸)을 보(保)하니, 조(詔)하여 가특(可忒)과 박찰(薄剎)에게 수지(守之)하였다.

마침내 탁록(涿鹿)으로 추(趨)하였다.

금(金) 서경유수(西京留守) 홀사호(忽沙虎)가 둔거(遁去)하였다.

제(帝)가 자형관(紫荊關)을 출(出)하였고, 금사(金師)를 오회령(五回嶺)에서 패(敗)하였고, 탁주(涿)와 역주(易) 2주(州)를 

발(拔)하였다.

글단(契丹) 와로부아(訛魯不兒) 등(等)이 북구(北口)를 헌(獻)하였는데, 차별(遮別)이 마침내 거용(居庸)을 취(取)하였고,

가특(可忒)과 박찰(薄剎)과 함께 회(會)하였다.。

8월에, 금(金) 홀사호(忽沙虎)가 그 주(主) 윤제(允濟)를 시(弒)하고, 풍왕(豐王) 완안순(珣)을 영(迎)하여 입지(立之)하였다.

이 추(秋)에, 3도(道)에 분병(分兵)하였다.

명(命)하여 황자(皇子) 출적(朮赤), 찰합태(察合台), 와할태(窩闊台)를 우군(右軍)으로 삼고, 태행(太行)을 순(循)하여 

이남(而南)하여, 보주(保), 수주(遂), 안숙주(安肅), 안정주(安定), 형주(邢), 명주(洺), 자주(磁), 상주(相), 위주(衞), 휘주(輝), 

회주(懷), 맹주(孟)를 취(取)하고, 택주(澤), 로주(潞), 요주(遼), 심주(沁), 평양(平陽), 태원(太原), 길주(吉), 습주(隰)를 

약(掠)하였고, 분주(汾), 석주(石), 람주(嵐), 흔주(忻), 대주(代), 무주(武) 등(等)의 주(州)를 발(拔)하고 환(還)하였다.

황제(皇弟) 합살아(哈撒兒)와 더불어 알진나안(斡陳那顏), 졸적가(拙赤角), 박찰(薄剎)을 좌군(左軍)으로 삼아, 

해(海)를 준(遵/따라감)하여 이동(而東)하고, 계주(薊州), 평주(平), 란주(灤), 요서(遼西)의 제군(諸郡)을 취(取)하고 

환(還)하였다.

제(帝)가 황자(皇子) 타뢰(拖雷)와 함께 중군(中軍)으로 삼아, 웅주(雄), 패주(霸), 막주(莫), 안주(安), 하간주(河間), 창주(滄), 

경주(景), 헌주(獻), 심주(深), 기주(祁), 려주(蠡), 기주(冀), 은주(恩), 복주(濮), 개주(開), 활주(滑), 박주(博), 제주(濟), 

태안주(泰安), 제남(濟南), 빈주(濱), 체주(棣), 익도(益都), 치주(淄), 유주(濰), 등주(登), 래주(萊), 기주(沂) 등(等)의 

군(郡)을 취(取)하였다.

복명(復命)하여 목화려(木華黎)는 밀주(密州)를 공(攻)하여 도지(屠之)하였다.

사천예(史天倪)와 소발질(蕭勃迭)이 솔중(率眾)하여 내항(來降)하였고, 목화려(木華黎)는 승제(承制)하여 아울러 이로써 

만호(萬戶)로 삼았다.

제(帝)가 중도(中都)에 지(至)하였고, 삼도(三道)의 병(兵)이 환(還)하여, 대구(大口)에 합둔(合屯)하였다.

이 해에, 하북(河北)의 군현(郡縣)이 진발(盡拔)하였고, 오직 중도(中都), 통주(通), 순주(順), 진정(真定), 청주(清), 옥주(沃), 

대명(大名), 동평(東平), 덕주(德), 비주(邳), 해주(海州) 11성(城)만 불하(不下)하였다.

9년 갑술년(甲戌/1214년) 춘(春) 3월에, 중도(中都) 북교(北郊)에 주필(駐蹕)하였다.

제장(諸將)이 승승(乘勝)하여 파연(破燕)하자 청(請)하였으나, 제(帝)가 불종(不從)하였다.

이에 견사(遣使)하여 금주(金主)를 유(諭)하여 말하길

「너의 산동(山東)과 하북(河北)의 군현(郡縣)이 모조리 아유(我有)가 되었고,

  너의 소수(所守)는 오직 연경(燕京)뿐이노라!

  천(天)이 이윽고 약여(弱汝)하였으니, 내가 다시 너를 험(險)에 박(迫)하면, 천(天)이 나를 무엇이라 위(謂)하겠는가?

  아(我)는 지금(今) 환군(還軍)하니, 네가 호사(犒師)하여 이로써 아(我)의 제장(諸將)의 노(怒)를 미(弭/그침/잊음)하게 

  할 수 있겠는가?」

금주(金主)가 마침내 견사(遣使)하여 구화(求和)하였고, 위소왕(衞紹王)의 녀(女) 기국공주(岐國公主)와 더불어 금백(金帛), 

동남녀(童男女) 5백, 마(馬) 3천(千)을 봉(奉)하여 이헌(以獻)하였고, 이에 그 승상(丞相) 완안복흥(完顏福興)을 견(遣)하여 

송제(送帝)하고 거용(居庸)을 출(出)하였다.

하(夏) 5월에, 금주(金主)가 변(汴)으로 천(遷)하였고, 완안복흥(完顏福興)과 참정(參政) 말년진충보(抹撚盡忠輔)와 더불어 

그 태자(太子) 수충(守忠)으로써, 중도(中都)를 유수(留守)하였다.

6월에, 금(金) 규군(乣軍) 작답(斫答) 등(等)이 그 주수(主帥)를 살(殺)하고, 솔중(率眾)하여 내항(來降)하였다.

조(詔)하여 삼모합(三摸合)과 석말명안(石抹明安)이 작답(斫答) 등(等)과 함께 중도(中都)를 위(圍)하였다.

제(帝)가 어아락(魚兒濼)으로 피서(避暑)하였다.

가을 7월에, 금(金) 태자(太子) 수충(守忠)이 변(汴)으로 주(走)하였다.

동(冬) 10월에, 목화려(木華黎)가 요동(遼東)을 정(征)하였고, 고주(高州)의 노종(盧琮)과 금복(金扑) 등(等)이 항(降)하였다.

금주(錦州) 장경(張鯨)이 그 절도사(節度使)를 살(殺)하고는, 자립(自立)하여 임해왕(臨海王)이라 하였으며, 견사(遣使)하여 

내항(來降)하였다.



[칭기스 카안] 8년 1213년 봄에 야율유가가 스스로 요왕에 오르고 연호를 원통이라 하였다.

가을 7월에 선덕부를 함락하였고 마침내 덕흥부를 공격하였다.

황자 톨로이(타뢰)와 부마 치쿠 쿠레겐(적구)가 먼저 올라가 함락하였다.

황제가 진군하여 회래에 이르러 금 행성 완안강과 원수 고기와 더불어 싸웠고 격파하였으며 추격하여 북구에 이르렀다.

금군이 거용을 지키니 조서를 내려 카타이(가특)와 부차(박찰)에게 지키게 하였다.

마침내 탁록으로 달려가니, 금 서경유수 홀사호가 도망쳤다.

황제가 자형관을 나와 금군을 오회령에서 격파하였고 탁주와 역주 2주를 함락하였다.

치단(글단/거란) 와로부아 등이 북구를 바쳤고 제베(차별)가 마침내 거용을 취하였고 카타이와 부차와 함께 만났다.

8월에 금 홀사호가 그 임금 윤제를 시해하고 풍왕 완안순을 맞이하여 옹립하였다.

이 가을에 병력을 3길로 나누었다.

명하여 황자 주치(출적), 차카타이(찰합태), 우구데이(와할태)를 우군으로 삼아 태행산을 돌며 남진하게 하며,

보주, 수주, 안숙주, 안정주, 형주, 명주, 자주, 상주, 위주, 휘주, 회주, 맹주를 취하고 택주, 로주, 요주, 심주, 평양, 태원, 

길주, 습주를 약탈하였으며 분주, 석주, 람주, 흔주, 대주, 무주 등의 주를 함락하고 돌아왔다.

황제의 동생 카사르(합살아)와 더불어 알치 노얀(알진 나안), 주르체데이(졸적가), 부차(박찰)을 좌군으로 삼아 

바다를 따라가며 동진하게 하였고 계주, 평주, 란주, 요서의 여러 군을 취하고 돌아왔다.

황제는 황자 톨로이와 함께 중군으로 삼고 옹주, 패주, 막주, 안주, 하간주, 창주, 경주, 헌주, 심주, 기주, 려주, 기주, 은주, 복주,

개주, 활주, 박주, 제주, 태안주, 제남, 빈주, 체주, 익도, 치주, 유주, 등주, 래주, 기주 등의 군을 취하였다.

다시 명하여 무칼리(목화려)는 밀주(미주)를 공격하여 도륙하게 하였다.

사천예와 소발질이 무리를 인솔하여 항복하여 왔고 무칼리는 편의종사하여 이들을 모두 만호로 삼았다.

황제가 중도(북경)에 이르렀고 3길의 병력이 돌아와 대구에서 합하여 주둔하였다.

이 해에 하북의 군현이 모조리 함락되었고 오직 중도, 통주, 순주, 진정, 청주, 옥주, 대명, 동평, 덕주, 비주, 해주 11성만 

함락되지 않았다.

[칭기스 카안] 9년 1214년 봄 3월에 중도(북경) 북쪽 교외에 황제가 주둔하였다.

여러 장수가 승세를 틈타 연경(북경)을 격파하자 청하였으나 황제가 따르지 않았다.

이에 사진을 보내 금 임금을 회유하며 말하길

「너의 산동과 하북의 군현이 모조리 우리 소유가 되었고 네가 지키는 곳은 오직 연경 뿐이노라!

  하늘이 이윽고 너를 약하게 하였으니 내가 다시 너를 궁지로 몰게 되면 하늘이 나를 무어라 일컫겠느냐?

  나는 지금 회군할 터인데 네가 군을 호궤하고 이로써 내 제장들의 분노를 잊게 할 수 있겠는가?」

금 임금이 마침내 사신을 보내 화친을 구하였고 위소왕의 딸 기국공주와 더불어 금과 비단, 남녀 어린이 5백, 말 3천필을 받쳐 

이로써 헌상하였고, 이에 그 승상 완안복흥을 보내 황제를 전송하고 거용관을 나왔다.

여름 5월에 금 임금이 변경(개봉)으로 천도하였고 완안복흥과 참정 말년진충보와 더불어 그 태자 완안수충으로써 

중도를 남아 지키게 하였다.

6월에 금 규군 진다(작답) 등이 그 주장을 살해하고 무리를 인솔하여 항복하여 왔다.

조서를 내려 사무카(삼모합)와 석말명안은 진다 등과 함께 중도를 포위하게 하였다.

황제가 쿠아울(어아락)에서 더위를 피하였다.

가을 7월에 금 태자 완안수충이 변경(개봉)으로 도주하였다.

겨울 10월에 무칼리가 요동을 정벌하였고 고주의 노종과 금복 등이 항복하였다.

금주 장경(친기)이 그 절도사를 살해하고 스스로 임해왕에 올라 사신을 보내 항복하여 왔다.


요약.

1213년 몽골군은 재차 금을 공격하여 거용관을 함락한다.

금은 내분이 발생해 홀사호가 위소왕을 살해하고 선종(완안순)을 세운다.

칭기스 카안은 역주와 탁주를 함락하여 수도 북경(중도)을 견제하고 마침내 군을 셋으로 나눠 북중국을 유린한다.

1214년 칭기스 카안은 금에 사신을 보내 화친할 요량이면 세폐를 바치라 말한다.

이에 선종은 위소왕의 딸 기국공주 및 막대한 세폐를 바친다.

이에 몽골군은 회군을 시작하였고 이틈을 타 선종은 개봉으로 천도한다.

이때 호위하던 거란군(규군)이 배신하여 칭기스 카안에 투항하였고,

선종의 천도를 맹약 철회로 여긴 칭기스 카안도 북경을 포위하라 명한다.


-1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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