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사 칭기스 카안 14부-아비규환 수도 북경 지옥도가 펼쳐지다. 원사 태조 테무진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틈틈이 주원장의 명으로 편찬된 원사 태조 테무진 본기를 연재하겠습니다.


1부-시조 사생아 멍청이<부단차르>

2부-피의 복수

3부-몽고 최강부족 타이초트

4부-치라군과 제베가 휘하로 들어오다!

5부-이기적인 왕 카안을 용서하고 나이만을 격파하다!

6부-알쿠이 맹약 자무카 구르 카안에 옹립되다!

7부-피어나는 케레이트의 음모

8부-칼랄진 엘레트 전투! 5가지 대공(大功)

9부-발주나 맹약과 케레이트 멸망!

10부-참수작전(카라가나 전술)으로 남부 나이만을 멸하다!

11부-북부 나이만 멸망/자무카처형/초원 통일! 즉위

12부-조공을 끊고 마침내 금을 침공하다!

13부-거짓 화친/거란군 배반/개봉 천도


원사 칭기스 카안

만주어 원사 칭기스 한

신원사 칭기스 칸

성무친정록 칭기스 가한

만주어 몽고원류 칭기스 카간

원조비사 칭기스 칸

신원사 본기 서기


만주어 요나라 태조 아보오지

만주어 금나라 태조 아구다

만주어 청나라 태조 누르가치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5%85%83%E5%8F%B2/%E5%8D%B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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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年乙亥春正月,金右副元帥蒲察七斤以通州降,以七斤為元帥。

二月,木華黎攻北京,金元帥寅答虎、烏古倫以城降,以寅答虎為留守,吾也而權兵馬都元帥鎮之。

興中府元帥石天應來降,以天應為興中府尹。

三月,金御史中丞李英等率師援中都,戰于霸州,敗之。

夏四月,克清、順二州。

詔張鯨總北京十提控兵從南征。

鯨謀叛伏誅。

鯨弟致遂據錦州,僭號漢興皇帝,改元興龍。

五月庚申,金中都留守完顏福興仰藥死,抹撚盡忠棄城走,明安入守之。

是月,避暑桓州涼涇。

遣忽都忽等籍中都帑藏。

秋七月,紅羅山寨主杜秀降,以秀為錦州節度使。

遣乙職里往諭金主以河北、山東未下諸城來獻,及去帝號為河南王,當為罷兵。

不從。

詔史天倪南征,授右副都元帥,賜金虎符。

八月,天倪取平州,金經略使乞住降。

木華黎遣史進道等攻廣寧府,降之。

是秋,取城邑凡八百六十有二。

冬十月,金宣撫蒲鮮萬奴據遼東,僭稱天王,國號大真,改元天泰。

十一月,耶律留哥來朝,以其子斜闍入侍。

史天祥討興州,擒其節度使趙守玉。

十一年丙子春,還廬朐河行宮。

張致陷興中府,木華黎討平之。

秋,撒里知兀角三摸合拔都魯率師由西夏趨關中,遂越潼關,獲金西安軍節度使尼龐古蒲魯虎,拔汝州等郡,抵汴京而還。

冬十月,蒲鮮萬奴降,以其子帖哥入侍。

既而復叛,僭稱東夏。

十二年丁丑夏,盜祁和尚據武平,史天祥討平之,遂擒金將巢元帥以獻。

察罕破金監軍夾谷於霸州,金求和,察罕乃還。

秋八月,以木華黎為太師,封國王,將蒙古、乣、漢諸軍南征,拔遂城、蠡州。

冬,克大名府,遂東定益都、淄、登、萊、濰、密等州。

是歲,禿滿部民叛,命鉢魯完、朵魯伯討平之。

10년 을해년(乙亥/1215년) 춘(春) 정월(正月)에, 금(金) 우부원수(右副元帥) 포찰칠근(蒲察七斤)이 통주(通州)로써 항(降)하니,

칠근(七斤)을 원수(元帥)로 삼았다.

2월에, 목화려(木華黎)가 북경(北京)을 공(攻)하니, 금(金) 원수(元帥) 인답호(寅答虎)와 오고륜(烏古倫)이 성(城)으로써 

항(降)하였고, 인답호(寅答虎)를 유수(留守)로 삼았으며, 오야이(吾也而)는 권병마도원수(權兵馬都元帥)로 진지(鎮之)하였다.

흥중부(興中府) 원수(元帥) 석천응(石天應)이 내항(來降)하니, 석천응(天應)을 흥중부윤(興中府尹)으로 삼았다.

3월에, 금(金) 어사중승(御史中丞) 이영(李英) 등(等)이 솔사(率師)하여 중도(中都)를 원(援)하였고, 패주(霸州)에서 

전(戰)하였는데, 패지(敗之)하였다.

하(夏) 4월에, 청주(清)와 순주(順) 2주(州)를 극(克)하였다.

조(詔)하여 장경(張鯨)은 북경(北京) 십제공병(十提控兵)을 총(總)하여 남정(南征)을 종(從)하였다.

장경(鯨)이 모반(謀叛)하니 복주(伏誅)하였다.

장경(鯨)의 제(弟)가 장치(致)가 마침내 금주(錦州)를 거((據)하여, 한흥황제(漢興皇帝)를 참호(僭號)하고, 

흥룡(興龍)이라 개원(改元)하였다.

5월 경신일(庚申)에, 금(金) 중도유수(中都留守) 완안복흥(完顏福興)이 앙약(仰藥/독약을 먹음)하여 사(死)하였고,

말년진충(抹撚盡忠)은 기성(棄城)하여 주(走)하니, 명안(明安)이 입(入)하여 수지(守之)하였다.

이 달에, 환주(桓州)의 양경(涼涇)에 피서(避暑)하였다.

홀도홀(忽都忽) 등(等)을 견(遣)하여 중도(中都)의 탕장(帑藏/내탕고에 보관한 재물)을 적(籍)하게 하였다.

가을 7월에, 홍라산채(紅羅山寨) 주(主) 두수(杜秀)가 항(降)하니, 두수(秀)를 금주절도사(錦州節度使)로 삼았다.

을직리(乙職里)를 견(遣)하여 금주(金主)에게 하북(河北)과 산동(山東)의 미하(未下)한 제성(諸城)으로써 내헌(來獻)하게 하였고,

더불어 제호(帝號)를 거(去)하여 하남왕(河南王)으로 삼으면 마땅히 파병(罷兵)하겠다 왕유(往諭)하였는데, 불종(不從)하였다.

조(詔)하여 사천예(史天倪)는 남정(南征)하게 하였고, 우부도원수(右副都元帥)를 수(授)하고, 금호부(金虎符)를 사(賜)하였다.

8월에, 사천예(天倪)가 평주(平州)를 취(取)하였고, 금(金) 경략사(經略使) 걸주(乞住)가 항(降)하였다.

목화려(木華黎)가 사진도(史進道) 등(等)을 견(遣)하여 광녕부(廣寧府)를 공(攻)하고, 항지(降之)하였다.

이 추(秋)에, 성읍(城邑) 무릇 862를 취(取)하였다.

동(冬) 10월에, 금(金) 선무(宣撫) 포선만노(蒲鮮萬奴)가 요동(遼東)에 거(據)하며, 천왕(天王)을 참칭(僭稱)하고, 

대진(大真)이라 국호(國號)하였으며, 천태(天泰)라 개원(改元)하였다.

11월에, 야율유가(耶律留哥)가 내조(來朝)하였고, 그 자(子) 사도(斜闍)로써 입시(入侍)하게 하였다.

사천상(史天祥)이 흥주(興州)를 토(討)하여, 그 절도사(節度使) 조수옥(趙守玉)을 금(擒)하였다.

11년 병자년(丙子/1216년) 춘(春)에, 여구하(廬朐河) 행궁(行宮)으로 환(還)하였다.

장치(張致)가 흥중부(興中府)를 함(陷)하였는데, 목화려(木華黎)가 토평지(討平之)하였다.

추(秋)에, 살리지올각(撒里知兀角), 삼모합(三摸合) 발도로(拔都魯)가 솔사(率師)하여 서하(西夏)를 유(由)하여 

관중(關中)을 추(趨)하였고, 마침내 동관(潼關)을 월(越)하여, 금(金) 서안군(西安軍) 절도사(節度使) 니방고포로호

(尼龐古蒲魯虎)를 획(獲)하였고, 여주(汝州) 등(等)의 군(郡)을 발(拔)하였고, 변경(汴京)을 저(抵)하고 환(還)하였다.

동(冬) 10월에, 포선만노(蒲鮮萬奴)가 항(降)하였고, 그 자(子) 첩가(帖哥)로써 입시(入侍)하게 하였다.

기이(既而)에 복반(復叛)하고는, 동하(東夏)를 참칭(僭稱)하였다.

12년 정축년(丁丑/1217년) 하(夏)에, 도기화상(盜祁和尚)이 무평(武平)에 거(據)하니, 사천상(史天祥)이 토평지(討平之)하였고, 

마침내 금(金) 장(將) 소원수(巢元帥)를 금(擒)하여 이헌(以獻)하였다.

찰한(察罕)이 금(金) 감군(監軍) 협곡(夾谷)을 패주(霸州)에서 파(破)하였는데, 금(金)이 구화(求和)하였고, 

찰한(察罕)은 곧 환(還)하였다.

추(秋) 8월에, 목화려(木華黎)를 태사(太師)로 삼았으며, 국왕(國王)에 봉(封)하였고, 몽고(蒙古), 규(乣), 한(漢)의 제군(諸軍)을

장(將)하여 남정(南征)하였고, 수성(遂城)과 여주(蠡州)를 발(拔)하였다.

동(冬)에, 대명부(大名府)를 극(克)하였고, 마침내 익도(益都), 치주(淄), 등주(登), 래주(萊), 유주(濰), 밀주(密) 등(等)의 

주(州)를 동정(東定)하였다.

이해에, 독만부(禿滿部)의 민(民)이 반(叛)하니, 명(命)하여 발로완(鉢魯完)과 타로백(朵魯伯)에게 토평지(討平之)하였다.



[칭기스 카안] 10년 1215년 봄 1월에 금 우부원수 포찰칠근이 통주를 바치고 항복하니, 포찰칠근을 원수로 삼았다.

2월에 무칼리(목화려)가 북경(대정)을 공격하니 금 원수 인답호와 오고륜이 성을 바치고 항복하였고,

인답호를 유수로 삼았으며, 우야르(오야이)는 권병마도원수로 지키게 하였다.

흥중부 원수 석천응이 항복하여 오니 석천응을 흥중부윤으로 삼았다.

3월에 금 어사중승 이영 등이 군을 인솔하여 중도(북경)를 구원하니, 패주에서 싸워 깨트렸다.

여름 4월에 청주와 순주 2주를 함락하였다.

조서를 내려 장경은 북경(대정) 십제공병을 통솔하여 남정에 종군하게 하였다.

장경이 모반하니 주살하였다.

장경의 동생 장치가 마침내 금주를 근거로 하여 한흥황제를 참칭하고 연호를 흑룡이라 하였다.

5월 2일에 금 중도(북경) 유수 완안복흥이 독약을 마시고 죽었고 말년진충은 성을 버리고 도주하니 명안이 입성하여 지켰다.

이 달에 환주의 양경에서 피서하였다.

쿠투쿠(홀도홀) 등을 보내 중도(북경)의 내탕고의 재물을 조사하게 하였다.

가을 7월에 홍라산채 주인 두수가 항복하니 두수를 금주절도사로 삼았다.

아랄치엔(을직리)를 보내 금 임금에게 하북과 산동의 함락되지 못한 여러 성을 바치게 하였고 더불어 황제의 칭호를 

제거하여 하남왕으로 삼으면 마땅히 철군하겠다 회유하였는데 따르지 않았다.

조서를 내려 사천예는 남정하게 하였고 우부도원수를 제수하고 금호부를 하사하였다.

8월에 사천예가 평주를 취하였고 금 경략사 걸주가 항복하였다.

무칼리가 사진도 등을 보내 광녕부를 공격하고 항복하게 하였다.

이 가을에 무릇 성읍 862를 취하였다.

겨울 10월에 금 선무 포선만노(호카노)가 요동에 근거하며 천왕을 참칭하고 국호를 대진이라 하였으며 연호를 천태로 하였다.

11월에 야율유가가 내조하였고 그 아들 야율사도로써 근시로 삼게 하였다.

사천상이 흥주를 토벌하여 그 절도사 조수옥을 사로잡았다.

[칭기스 카안] 11년 1216년 봄에 여구하의 행궁으로 돌아갔다.

장치가 흥중부를 함락하였는데 무칼리가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가을에 살지우트(살리지올각) 사무카 바하두르(삼모합 발도로)가 군을 인솔하여 서하를 경유하여 관중으로 달려갔고 마침내 

동관(퉁칸)을 넘어 금 서안군 절도사 니방고포로호를 사로잡았고 여주 등의 군을 함락하고 변경(개봉)에 이르러 돌아왔다.

겨울 10월에 포선만노가 항복하였고 그 아들 첩가를 시위로 삼게 하였다.

얼마 안 있어 다시 배반하고는 동하를 참칭하였다.

[칭기스 카안] 12년 1217년 여름에 도기화상이 무평에 근거하니 사천상이 토벌하여 평정하였고 마침내 금 장수 소원수를 

사로잡아 바쳤다.

차칸(찰한/차간)이 금 감군 협곡을 패주에서 격파하였는데 금이 화친을 구하였고 차칸은 곧 돌아왔다.

가을 8월에 무칼리(목화려)를 태사로 삼았으며 국왕에 봉하였고 몽고군, 규군, 한군의 여러 군을 거느리고 남정하게 하였는데 

수성과 여주를 함락하였다.

겨울에 대명부를 함락하였고 마침내 동진하여 익도, 치주, 등주, 래주, 유주, 밀주 등의 주를 평정하였다.

이해에 투마트(독만) 부족의 백성이 배반하니 명을 내려 보로굴(발로완)과 두르베이(타로백)에게 토벌하여 평정하게 하였다.


요약.

1215년 2월 무칼리는 요서 북경(대정)을 공격한다.

칭기스 가한은 금 황제에게 사신을 보내 투항하면 하남왕으로 삼겠다 말하지만 금 선종은 이를 거부한다.

한편 수도(중도)를 구원하기 위해 출병한 경수와 이영은 모두 몽골군에 격파당하고 중도는 식량이 떨어져 아비규환이 벌어진다.

5월 마침내 중도유수 완안복흥이 자살하고 말년진충은 포위를 뚫고 달아난다.

칭기스 가한은 중도를 접수하라 지시한다.

이해 가을 몽골군은 금의 성읍 862개소를 점령한다.

한편 요동에 근거한 포선만노가 천왕을 참칭했다가 1216년 투항했다가 다시 반란을 일으키고 동하국을 세운다.

1217년 8월 사신단을 죽인 호라즘을 정벌하기 위해 칭기스 가한은 무칼리를 국왕에 봉하고

몽골군2만+거란군1만+한군1만을 주어 금 정벌을 지속하게 한다.


-15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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