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사 칭기스 카안 16부-무칼리의 죽음과 호라즘 철군 결정 원사 태조 테무진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틈틈이 주원장의 명으로 편찬된 원사 태조 테무진 본기를 연재하겠습니다.


1부-시조 사생아 멍청이<부단차르>

2부-피의 복수

3부-몽고 최강부족 타이초트

4부-치라군과 제베가 휘하로 들어오다!

5부-이기적인 왕 카안을 용서하고 나이만을 격파하다!

6부-알쿠이 맹약 자무카 구르 카안에 옹립되다!

7부-피어나는 케레이트의 음모

8부-칼랄진 엘레트 전투! 5가지 대공(大功)

9부-발주나 맹약과 케레이트 멸망!

10부-참수작전(카라가나 전술)으로 남부 나이만을 멸하다!

11부-북부 나이만 멸망/자무카처형/초원 통일! 즉위

12부-조공을 끊고 마침내 금을 침공하다!

13부-거짓 화친/거란군 배반/개봉 천도

14부-아비규환 수도 북경 지옥도가 펼쳐지다.

15부-고려군과 연합하여 거란 잔당을 섬멸하다


원사 칭기스 카안

만주어 원사 칭기스 한

신원사 칭기스 칸

성무친정록 칭기스 가한

만주어 몽고원류 칭기스 카간

원조비사 칭기스 칸

신원사 본기 서기


만주어 요나라 태조 아보오지

만주어 금나라 태조 아구다

만주어 청나라 태조 누르가치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5%85%83%E5%8F%B2/%E5%8D%B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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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七年壬午春,皇子拖雷克徒思、匿察兀兒等城。

還經木剌夷國,大掠之。

渡搠搠闌河,克也里等城。

遂與帝會,合兵攻塔里寒寨,拔之。

木華黎軍克乾、涇、邠、原等州,攻鳳翔不下。

夏,避暑塔里寒寨。

西域主札闌丁出奔,與滅里可汗合,忽都忽與戰不利。

帝自將擊之,擒滅里可汗;札闌丁遁去,遣八剌追之,不獲。

秋,金復遣烏古孫仲端來請和,見帝于回鶻國。

帝謂曰:

「我向欲汝主授我河朔地,令汝主為河南王,彼此罷兵,汝主不從。

  今木華黎已盡取之,乃始來請耶?」

仲端乞哀,帝曰:

「念汝遠來,河朔既為我有,關西數城未下者,其割付我。

  令汝主為河南王,勿復違也。」

仲端乃歸。

金平陽公胡天(祚)〔作〕以青龍堡降。

冬十月,金河中府來附,以石天應為兵馬都元帥守之。

十八年癸未春三月,太師國王木華黎薨。

夏,避暑八魯彎川。

皇子朮赤、察合台、窩闊台及八剌之兵來會,遂定西域諸城,置達魯花赤監治之。

冬十月,金主珣殂,子守緒立。

是歲,宋復遣苟夢玉來。

十九年甲申夏,宋大名總管彭義斌侵河北。

史天倪與戰於恩州,敗之。

是歲,帝至東印度國,角端見,班師。

17년 임오년(壬午/1222년) 춘(春)에, 황자(皇子) 타뢰(拖雷)가 도사(徒思)와 닉찰올아(匿察兀兒) 등(等)의 성(城)을 극(克)하였다.

환(還)하여 목랄이국(木剌夷國)을 경(經)하였고, 대략지(大掠之)하였다.

삭삭란하(搠搠闌河)를 도(渡)하였고, 야리(也里) 등(等)의 성(城)을 극(克)하였다.

마침내 제(帝)와 함께 회(會)하여, 합병(合兵)하고 탑리한채(塔里寒寨)를 공(攻)하였고, 발지(拔之)하였다.

목화려(木華黎)의 군(軍)이 건주(乾), 경주(涇), 빈주(邠), 원주(原) 등(等)의 주(州)를 극(克)하였고,

봉상(鳳翔)을 공(攻)하였는데 불하(不下)하였다.

하(夏)에, 탑리한채(塔里寒寨)에 피서(避暑)하였다.

서역(西域) 주(主) 찰란정(札闌丁)이 출분(出奔)하였고, 멸리가한(滅里可汗)과 함께 합(合)하였고, 홀도홀(忽都忽)이 

여전(與戰)하였으나 불리(不利)하였다.

제(帝)가 자장(自將)으로 격지(擊之)하였고, 멸리가한(滅里可汗)을 금(擒)하였다.

찰란정(札闌丁)은 둔거(遁去)하였고, 팔랄(八剌)을 견(遣)하여 추지(追之)하였으나, 불획(不獲)하였다.

추(秋)에, 금(金)이 오고손중단(烏古孫仲端)을 복견(復遣)하여 내청화(來請和)하였고, 

회골국(回鶻國)에서 제(帝)를 현(見)하였다.

제(帝)가 위(謂)하여 말하길

「내가 지난 번 여주(汝主)를 아(我) 하삭지(河朔地)를 수(授)하고,

  여주(汝主)로 하여금 하남왕(河南王)으로 삼아, 피차(彼此) 파병(罷兵)하고자 하였는데, 여주(汝主)는 불종(不從)하였다.

  지금(今) 목화려(木華黎)가 이미(已) 진취지(盡取之)하였는데, 이에 비로소 내청(來請)하느냐?」

중단(仲端)이 걸애(乞哀)하니, 제(帝)가 말하길

「여(汝)의 원래(遠來)를 념(念)하니, 하삭(河朔)은 이미 아유(我有)가 되었고, 관서(關西)의 수성(數城)으로 미하(未下)한 것은,

  그를 아(我)에게 할부(割付)하라!

  여주(汝主)로 하여금 하남왕(河南王)으로 삼으니, 복위(復違)하지 말라!」

중단(仲端)이 이에 귀(歸)하였다.

금(金) 평양공(平陽公) 호천조(胡天祚)가 청룡보(青龍堡)로써 항(降)하였다.

동(冬) 10월에, 금(金) 하중부(河中府)가 내부(來附)하니, 석천응(石天應)을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로 삼아 수지(守之)하였다.

18년 계미년(癸未/1223년) 춘(春) 3월에, 태사국왕(太師國王) 목화려(木華黎)가 훙(薨)하였다.

하(夏)에, 팔로만천(八魯彎川)으로 피서(避暑)하였다.

황자(皇子) 출적(朮赤), 찰합태(察合台), 와할태(窩闊台)가 팔랄(八剌)의 병(兵)과 더불어 내회(來會)하였고,

마침내 서역(西域)의 제성(諸城)을 정(定)하였으며, 달로화적(達魯花赤)을 치(置)하여 감치지(監治之)하였다.

동(冬) 10월에, 금주(金主) 순(珣)이 조(殂)하였고, 자(子) 수서(守緒)가 입(立)하였다.

이해에, 송(宋)이 다시 구몽옥(苟夢玉)을 보내 왔다.

19년 갑신년(甲申/1224년) 하(夏)에, 송(宋) 대명총관(大名總管) 팽의빈(彭義斌)이 하북(河北)을 침(侵)하였다.

사천예(史天倪)가 은주(恩州)에서 여전(與戰)하여 패지(敗之)하였다.

이해에, 제(帝)가 동인도국(東印度國)에 지(至)하였고, 각단(角端/기린)이 견(見)하자, 반사(班師)하였다.



<인더스 강 전투 잘랄 앗 딘 술탄 v s칭기스 칸>







[칭기스 카안] 17년 1222년 봄에 황자 톨루이(타뢰)가 두즈(도사)와 니샤푸르(닉찰올아) 등의 성을 함락하였다.

돌아와 쿠히스탄(목랄이국)을 경유하여 크게 약탈하였다.

축추란(삭삭란) 강을 건너 해라트(야리) 등의 성을 함락하였다.

마침내 황제와 함께 만나 합병하고 탈리칸(탑리한) 채를 공격하여 함락하였다.

무칼리(목화려)의 군이 건주, 경주, 빈주, 원주 등의 주를 함락하였고 봉상을 공격하였는데 함락하지 못하였다.

여름에 탈리칸 채에서 피서하였다.

서역(호라즘) 임금 잘랄 앗 딘(찰란정)이 성을 나와 달아났고 말릭 칸(멸리 가한)과 함께 합병하니, 쿠투쿠(홀도홀)가 더불어 

싸웠으나 불리하였다.

황제가 친정하여 공격하게 하였고 말릭 칸을 사로잡았다.

잘랄 앗 딘은 달아났고 발라(팔랄)를 보내 추격하게 하였으나 사로잡지 못하였다.

가을에 금이 다시 오고손중단을 보내와 화친을 청하였는데 회골국에서 황제를 알현하였다.

황제가 일컬어 말하길

「내가 지난 번 너의 주인을 나의 하삭 땅을 주고 너의 주인으로 하여금 하남왕으로 삼아 피차 철군하고자 하였는데 

  너의 주인은 따르지 않았다.

  지금 무칼리가 이미 모조리 취하였는데 이에 비로소 화친하여 오느냐?」

오고손중단이 슬프게 애걸하니 황제가 말하길

「네가 멀리 온 것을 생각하니 하삭은 이미 나의 소유가 되었고 관서의 몇몇 성으로 함락되지 않은 곳을 나에게 할양하여 바치라!

  너의 주인으로 하여금 하남왕으로 삼을 테이니 다시는 어기지 말라!」

오고손중단이 이에 돌아갔다.

금 평양공 호천조가 청룡보를 바치고 항복하였다.

겨울 10월에 금 하중부가 귀부하여 오니 석천응을 병마도원수로 삼아 지키게 하였다.

[칭기스 카안] 18년 1223년 봄 3월에 태사 국왕 무칼리가 훙하였다.

여름에 파르반(팔로만) 하천에서 피서하였다.

황자 주치(출적), 차카타이(찰합태), 우구데이(와할태)가 발라의 군사와 더불어 와서 만났고,

마침내 서역(호라즘)의 여러 성을 평정하였으며 다루가치(달로화적)을 설치하여 감독하고 다스리게 하였다.

겨울 10월에 금 임금 완안순이 죽었고 아들 완안수서가 옹립되었다.

이해에 송이 다시 구몽옥을 보내 왔다.

[칭기스 카안] 19년 1224년 여름에 송 대명총관 팽의빈이 하북을 침략하였다.

사천예가 은주에서 더불어 싸워 깨트렸다.

이해에 황제가 동 인도국에 이르러 기린을 발견하자 회군하였다.


디스 이즈 호라즘!!! 몽골군을 몰살하고 100배의 적을 격파한 일기토 술탄 잘랄 앗 딘!


요약.

1222년 호라즘을 침공한 몽골군은 두즈, 니샤푸르/쿠히스탄/해라트/탈리칸를 공격했고,

술탄 잘랄 앗 딘은 쿠투쿠가 이끄는 몽골군을 대파한다.

이에 칭기스 카안은 전군을 이끌고 잘랄 앗 딘을 공격하였고, 잘랄 앗 딘은 인더스 강을 건너 인도로 달아난다.

한편 금나라를 정벌중인 무칼리는 건주/경주/빈주/원주를 함락하여 개봉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금나라를 손에 넣는다.

이에 금 선종은 오고손중단을 위그루에 있던 칭기스 카안을 만나 화친을 애걸한다.

이에 칭기스 카안은 무칼리가 이미 금나라를 대부분 장악하였는데 이제와 화친할 수 있겠냐며 거절하지만 

만약 모든 땅을 바치면 하남왕으로 삼아 살려주겠다 약속한다.

1223년 3월 무칼리가 봉상 공략 중에 과로로 사망한다.

칭기스 카안은 1224년 호라즘에서 철군하기로 결정하고 호라즘에 다루가치들을 두어 통치하게 한다.

1224년 인도를 거쳐 회군하던 칭기스 카안은 기린을 발견하고 페샤와르로 되돌아와 원래 몽골에서 호라즘으로 오던 길을 따라 

되돌아 간다.


-17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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