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사 칭기스 카안 17부-칸 초원에 묻히다!(연재종료) 원사 태조 테무진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틈틈이 주원장의 명으로 편찬된 원사 태조 테무진 본기를 연재하겠습니다.


1부-시조 사생아 멍청이<부단차르>

2부-피의 복수

3부-몽고 최강부족 타이초트

4부-치라군과 제베가 휘하로 들어오다!

5부-이기적인 왕 카안을 용서하고 나이만을 격파하다!

6부-알쿠이 맹약 자무카 구르 카안에 옹립되다!

7부-피어나는 케레이트의 음모

8부-칼랄진 엘레트 전투! 5가지 대공(大功)

9부-발주나 맹약과 케레이트 멸망!

10부-참수작전(카라가나 전술)으로 남부 나이만을 멸하다!

11부-북부 나이만 멸망/자무카처형/초원 통일! 즉위

12부-조공을 끊고 마침내 금을 침공하다!

13부-거짓 화친/거란군 배반/개봉 천도

14부-아비규환 수도 북경 지옥도가 펼쳐지다.

15부-고려군과 연합하여 거란 잔당을 섬멸하다

16부-무칼리의 죽음과 호라즘 철군 결정


원사 칭기스 카안

만주어 원사 칭기스 한

신원사 칭기스 칸

성무친정록 칭기스 가한

만주어 몽고원류 칭기스 카간

원조비사 칭기스 칸

신원사 본기 서기


만주어 요나라 태조 아보오지

만주어 금나라 태조 아구다

만주어 청나라 태조 누르가치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5%85%83%E5%8F%B2/%E5%8D%B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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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年乙酉春正月,還行宮。

二月,武仙以真定叛,殺史天倪。

董俊判官李全亦以中山叛。

三月,史天澤擊仙走之,復真定。

夏六月,彭義斌以兵應仙,天澤禦於贊皇,擒斬之。

二十一年〔丙戌〕春正月,帝以西夏納仇人(赤)〔亦〕臘喝翔昆及不遣質子,自將伐之。

二月,取黑水等城。

夏,避暑於渾垂山。取甘、肅等州。

秋,取西涼府搠羅、河羅等縣,遂踰沙陀,至黃河九渡,取應里等縣。

九月,李全執張琳,郡王帶孫進兵圍全於益都。

冬十一月庚申,帝攻靈州,夏遣嵬名令公來援。

丙寅,帝渡河擊夏師,敗之。

丁丑,五星聚見於西南。

駐蹕鹽州川。

十二月,李全降。

授張柔行軍千戶、保州等處都元帥。

是歲,皇子窩闊台及察罕之師圍金南京。

遣唐慶責歲幣于金。

二十二年丁亥春,帝留兵攻夏王城,自率師渡河攻積石州。

二月,破臨洮府。

三月,破洮、河、西寧二州。

遣斡陳那顏攻信都府,拔之。

夏四月,帝次龍德,拔德順等州,德順節度使愛申、進士馬肩龍死焉。

五月,遣唐慶等使金。

閏月,避暑六盤山。

六月,金遣完顏合周、奧屯阿虎來請和。

帝謂群臣曰:

「朕自去冬五星聚時,已嘗許不殺掠,遽忘下詔耶。

  今可布告中外,令彼行人亦知朕意。」

是月,夏主李晛降。

帝次清水縣西江。

秋七月壬午,不豫。

己丑,崩于薩里川哈老徒之行宮。

臨崩謂左右曰:

「金精兵在潼關,南據連山,北限大河,難以遽破。

  若假道于宋,宋、金世讎,必能許我,則下兵唐、鄧,直擣大梁。

  金急,必徵兵潼關。

  然以數萬之眾,千里赴援,人馬疲弊,雖至弗能戰,破之必矣。」

言訖而崩,壽六十六。

葬起輦谷。

至元三年冬十月,追諡聖武皇帝。

至大二年冬十一月庚辰,加諡法天啟運聖武皇帝。

廟號太祖。

在位二十二年。

帝深沉有大略,用兵如神,故能滅國四十,遂平西夏。

其奇勳偉跡甚眾,惜乎當時史官不備,或多失於紀載云。

戊子年。

是歲,皇子拖雷監國。

20년 을유년(乙酉/1225년) 춘(春) 정월(正月)에, 행궁(行宮)으로 환(還)하였다.

2월에, 무선(武仙)이 진정(真定)으로써 반(叛)하였고, 사천예(史天倪)를 살(殺)하였다.

동준(董俊)의 판관(判官) 이전(李全) 역시(亦) 중산(中山)으로써 반(叛)하였다.

3월에, 사천택(史天澤)이 무선(仙)을 격(擊)하여 주지(走之)하여, 진정(真定)을 복(復)하였다.

하(夏) 6월에, 팽의빈(彭義斌)이 병(兵)으로써 무선(仙)을 응(應)하니, 사천택(天澤)이 찬황(贊皇)에서 어(禦)하였고, 

금참지(擒斬之)하였다.

21년 병술년(丙戌/1226년) 춘(春) 정월(正月)에, 제(帝)가 서하(西夏)가 구인(仇人) 적랍갈상곤(赤臘喝翔昆)을 납(納)하고,

더불어 질자(質子)를 불견(不遣)하니, 자장(自將)하여 벌지(伐之)하였다.

2월에, 흑수(黑水) 등(等)의 성(城)을 취(取)하였다.

하(夏)에, 혼수산(渾垂山)에서 피서(避暑)하였고, 감주(甘)와 숙주(肅) 등(等)의 주(州)를 취(取)하였다.

추(秋)에, 서량부(西涼府) 삭라(搠羅)와 하라(河羅) 등(等)의 현(縣)을 취(取)하였고, 마침내 사타(沙陀)를 유(踰)하여, 

황하구도(黃河九渡)에 지(至)하였고, 응리(應里) 등(等)의 현(縣)을 취(取)하였다.

9월에, 이전(李全)이 장림(張琳)을 집(執)하였고, 군왕(郡王) 대손(帶孫)이 진병(進兵)하여 익도(益都)에서 이전(全)을 

위(圍)하였다.

동(冬) 11월 경신일(庚申)에, 제(帝)가 영주(靈州)를 공(攻)하였는데, 하(夏)가 외명령공(嵬名令公)을 견(遣)하여 

내원(來援)하였다.

병인일(丙寅)에, 제(帝)가 도하(渡河)하여 하사(夏師)를 격(擊)하여, 패지(敗之)하였다.

정축일(丁丑)에, 오성(五星)이 서남(西南)에 취견(聚見/함께 보임)하니, 염주천(鹽州川)에 주필(駐蹕)하였다.

12월에, 이전(李全)이 항(降)하였다.

장유(張柔)에게 행군천호(行軍千戶)와 보주(保州) 등처(等處) 도원수(都元帥)를 수(授)하였다.

이해에, 황자(皇子) 와할태(窩闊台)가 찰한(察罕)의 사(師)와 더불어 금(金) 남경(南京)을 위(圍)하였다.

당경(唐慶)을 견(遣)하여 금(金)에 세폐(歲幣)를 책(責/요구함)하였다.

22년 정해년(丁亥/1227년) 춘(春)에, 제(帝)의 유병(留兵)이 하(夏)의 왕성(王城)을 공(攻)하였고, 스스로 솔사(率師)하고 

도하(渡河)하여 적석주(積石州)를 공(攻)하였다.

2월에, 임도부(臨洮府)를 파(破)하였다.

3월에, 도주(洮), 하주(河), 서녕(西寧)의 2주(州)를 파(破)하였다.

알진나안(斡陳那顏)을 견(遣)하여 신도부(信都府)를 공(攻)하였고, 발지(拔之)하였다.

하(夏) 4월에, 제(帝)가 용덕(龍德)에 차(次)하였고, 덕순(德順) 등(等)의 주(州)를 발(拔)하였으며, 덕순(德順) 절도사(節度使) 

애신(愛申)과 진사마견룡(進士馬肩龍)이 사(死)하였다.

5월에, 당경(唐慶) 등(等)을 금(金)에 사(使)로 견(遣)하였다.

윤월(閏月)에, 육반산(六盤山)으로 피서(避暑)하였다.

6월에, 금(金)이 완안합주(完顏合周)와 오둔아호(奧屯阿虎)를 견(遣)하여 내청화(來請和)하였다.

제(帝)가 군신(群臣)에게 위(謂)하여 말하길

「짐(朕)이 거동(去冬/지난 겨울) 오성(五星)이 취(聚)할 때로부터,   이미(已) 일찍이 살략(殺掠)하지 말 것을 허(許)하였는데,

  어찌 하조(下詔)를 망(忘)한 것이더냐?

  지금(今) 가히(可) 중외(中外)에 포고(布告)하여, 저쪽 행인(行人)으로 하여금 역시(亦) 짐의(朕意)를 지(知)하게 하라!」

이 달에, 하주(夏主) 이현(李晛)이 항(降)하였다.

제(帝)가 청수현(清水縣) 서강(西江)에 차(次)하였다.

추(秋) 7월 임오일(壬午)에, 불예(不豫/임금이 편치 않음)하였다.

기축일(己丑)에, 살리천합로도(薩里川哈老徒)의 행궁(行宮)에서 붕(崩)하였다.

붕(崩)에 임(臨)하여 좌우(左右)에게 위(謂)하여 말하길

「금(金)의 정병(精兵)이 동관(潼關)에 재(在)하고, 남(南)은 연산(連山)에 거(據)하며,

  북(北)은 대하(大河)를 한(限/경계로 삼음)하니, 이로써 거파(遽破)하기는 난(難)하도다.

  만약(若) 송(宋)에 가도(假道)한다면, 송(宋)과 금(金)은 세수(世讎)이니, 필히(必) 허아(許我)할 수 있으며, 

  즉(則) 당(唐)과 등(鄧)으로 하병(下兵)하여, 대량(大梁)을 직도(直擣)하라!

  금(金)이 급(急)하면, 필히(必) 동관(潼關)을 징병(徵兵)하리라!

  그리하면 수만(數萬)의 중(眾)으로써, 천리(千里)를 부원(赴援)할 것이니, 인마(人馬)는 피폐(疲弊)하여, 

  비록 이른다 할지라도 능전(能戰)하지 못하니, 필(必)히 파지(破之)하리라!」

언흘(言訖)하자 붕(崩)하였고, 수(壽)는 66이었다.

기련곡(起輦谷)에 장(葬)하였다.

지원(至元/원 1대 황제 세조의 #2연호) 3년(1266년) 동(冬) 10월에, 성무황제(聖武皇帝)로 추시(追諡)하였다.

지대(至大/원 3대 황제 무종의 #1연호) 2년(1309년) 동(冬) 11월 경진일(庚辰)에, 법천계운(法天啟運) 성무황제(聖武皇帝)로 

가시(加諡)하였다.

묘호(廟號)는 태조(太祖)이고, 재위(在位)는 22년이었다.

제(帝)는 심침(深沉/매우 침착함)하고 대략(大略)이 있었으며, 용병(用兵)은 신(神)과 같았고, 이런 연고(故)로 능히(能) 

40을 멸국(滅國)하였고, 마침내 서하(西夏)를 평(平)하였다.

그 기훈(奇勳/뛰어난 공훈)과 위적(偉跡/위대한 업적)이 심중(甚眾)하였는데, 애석(惜)하도다! 

당시(當時) 사관(史官) 불비(不備)하여, 혹(或) 기재(紀載)에 다실(多失)하였다 한다.

무자년(戊子年), 이해에, 황자(皇子) 타뢰(拖雷)가 감국(監國)하였다.



[칭기스 카안] 20년 1225년 봄 1월에 행궁으로 돌아왔다.

2월에 무선이 진정으로써 배반하였고 사천예를 살해하였다.

동준의 판관 이전이 또한 중산으로써 배반하였다.

3월에 사천택이 무선을 공격하여 도주하게 하였고 진정을 수복하였다.

여름 6월에 팽의빈이 군사로써 무선을 응원하니 사천택이 찬황에서 막고는 사로잡아 참하였다.

[칭기스 카안] 21년 1226년 봄 1월에 황제가 서하가 원수 일카 셍군(적랍갈 상곤)을 받아들이고, 더불어 인질을 보내지 않으니

친정하여 정벌하였다.

2월에 흑수 등의 성을 취하였다.

여름에 혼수산(차소토 산)에서 피서하였고, 감주와 숙주 등의 주를 취하였다.

가을에 서량부(에리 제우) 삭라현과 하라현 등의 현을 취하였고, 마침내 사타를 경유하여 황하 구도에 이르러 응리 등의 현을

취하였다.

9월에 이전이 장림을 사로잡았고, 군왕 다이순(대손)이 진군하여 익도에서 이전을 포위하였다.

겨울 11월 9일에 황제가 영주를 공격하였는데, 서하가 외명령공을 보내 구원하게 하였다.

11월 15일에 황제가 강을 건너 서하의 군대를 공격하여 깨트렸다.

11월 26일에 별 5개가 서남쪽에 함께 보이니 염주천(두르메게이)에 주둔하였다.

12월에 이전이 항복하였다.

장유에게 행군천호와 보주 등처 도원수를 제수하였다.

이해에 황자 우구데이(와할태)가 차칸(찰한/차간)의 군사와 더불어 금 남경(개봉)을 포위하였다.

당경을 보내 금에 세폐를 요구하였다.

[칭기스 카안] 22년 1227년 봄에 황제가 병력을 남겨 서하의 왕성을 공격하였고 스스로 군을 인솔하고 강을 건너 적석주를 

공격하였다.

2월에 임도부를 격파하였다.

3월에 도주, 하주, 서녕의 2주를 격파하였다.

알치 노얀(알진 나안)을 보내 신도부를 공격하였고 함락하였다.

여름 4월에 황제가 용덕에 머물렀고 덕순 등의 주를 함락하였으며, 덕순 절도사 애신과 진사 마견룡이 전사하였다.

5월에 당경 등을 금에 사신으로 파견하였다.

윤 5월에 육반산(류판샨)으로 피서하였다.

6월에 금이 완안합주와 오둔아호를 보내와 화친을 청하였다.

황제가 뭇신하들에게 일컬어 말하길

「짐이 지난 겨울 5성이 모일때 부터 이미 일찍이 살략하지 말 것을 허락하였는데 어찌 내린 조서를 잊은 것이더냐?

  지금 가희 중외에 포고하여 저쪽의 행인들로 하여금 또한 짐의 뜻을 알게 하라!」

이 달에 서하 주인 이현이 항복하였다.

황제가 청수현 서쪽 강에 머물렀다.

가을 7월 5일에 몸이 편치 않았다.

7월 12일에 사리 케헤르(살리천) 하라오투(합로도)의 행궁에서 붕어하였다.

붕어에 임하여 좌우에게 일컬어 말하길

「금의 정예병이 동관에 있고 남쪽은 연산에 근거하며, 북쪽은 큰 강을 경계로 삼으니 이로써 급히 격파하기는 어렵도다!

  만약 송에 길을 빌린다면 송과 금은 대대로 원수이니 필히 우리를 허용할 수 있으며

  즉시 당과 등으로 군사를 내려보내 대량으로 직도하라!

  금이 급하면 반드시 동관을 징병하리라!

  그리하면 수만의 무리로써 천리를 구원하여 이를 것이니 인마가 피폐하여

  비록 이른다 할지라도 싸우지 못할 것이고 필히 격파되리라!

말을 마치자 붕어하였고 수는 66세였다.

부르칸 칼둔(기련곡)에 매장하였다.

지원(원 1대 황제 세조의 #2연호) 3년(1266년) 겨울 10월에 성무황제(聖武皇帝)로 추시하였다.

지대(원 3대 황제 무종의 #1연호) 2년(1309년) 겨울 11월 1일에 법천계운(法天啟運) 성무황제(聖武皇帝)로 가시하였다.

묘호는 태조이고 재위는 22년이었다.

황제는 매우 침착하고 뛰어난 지략이 있었으며 용병은 신과 같았고 이런 연고로 능히 40개국을 멸하였고 

마침내 서하를 평정하였다.

그 뛰어난 공훈과 위대한 업적이 심히 많았는데 애석하도다!

당시 사관이 갖추지 못하였고 혹 기재에 많이 빼먹었다 한다.

1228년 이해에 황자 톨루이(타뢰)가 감국하였다.


요약.

1225년 1월 칭기스칸은 7년간의 원정을 마치고 마침내 몽골 초원으로 돌아온다.

어린 손자 쿠빌라이와 훌레구가 마중을 나왔고 이들은 직접 사냥한 토끼와 양을 바친다.

1226년 서하가 케레이트의 잔당 셍군을 받아들이고, 인질을 보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침공을 감행한다.

한편 금나라 공략은 무칼리의 동생 다이순이 이어받아 재개한다.

칭기스 카안은 우구데이와 차간을 보내 개봉을 포위하고 세폐를 요구하게 한다.

1227년 마침내 서하 황제 이현이 항복을 결정하였는데, 칭기스 카안은 이미 병세가 위중하였다.

칭기스 카안은 유언으로 서하 황제의 투항을 받아들이고 난후 모조리 죽이라 말하고

금나라의 경우 남송과 연합하여 공격할 것을 명령한다.

1227년 7월 12일 칭기스칸은 케헤르 하라오투에서 사망하였고 몽골 초원 부르칸 칼둔(기련곡)에 매장하였다.

당시 칭기스 카안의 관을 운반하던 몽골군은 조우하는 모든 사람을 모조리 죽여 카안의 매장지를 아무도 모르게 하였다.

1266년 원 세조 쿠빌라이는 칭기스 카안을 성무황제라 추시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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