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틈틈이 원나라 태조 칭기스칸의 일대기를 연재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원나라 역사의 집대성이라 칭송받는 신원사 태조 본기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4부-등 돌린 옹칸을 다시 돕고 나이만군의 시체로 경관을 쌓다!
14부-수도함락, 여진족 영원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다!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96%B0%E5%85%83%E5%8F%B2/%E5%8D%B7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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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子春,獵於帖蔑延河,與諸將會議討乃蠻。
獵畢,駐兵於哈勒哈河建忒垓山。
宣佈札薩克,以令於衆。
立千戶、百戶、牌子頭,設六等扯克必官。
選宿衛士八十人,散班七十人,又命阿兒孩選護衛千人,臨敵則爲前鋒。
夏四月,禡牙伐乃蠻。
師至乃蠻境外客勒忒該哈答,濱哈利河。
乃蠻按兵不動,帝引還。
秋,再議進兵,以忽以來、哲別爲前鋒。
時太陽罕己至杭海山之哈兒只兀孫河,與朵兒奔、塔塔兒、合答斤、撒兒助特諸部,及蔑兒乞酋托黑托阿、客烈亦酋納鄰大石、
衛拉特酋忽都哈別乞、札只剌酋札木合等連兵而進,陣於納忽東崖察兒乞馬兀惕之地。
帝自臨前敵,指揮諸將大破乃蠻兵,擒太陽罕,殺之,乃蠻將火力罕速八赤等鋒力戰,帝欲降之,不從,皆戰死。
帝獎歎久之,曰:
「使我麾下諸將皆如此,我復何憂。」
是日,朵兒奔、塔塔兒、哈答斤、撒兒助特諸部皆降,札木合、托黑托阿遁去,太陽罕子古出魯克奔於不亦魯黑。
乃蠻南部亡。
冬,再伐蔑兒乞,至塔兒河。
其別部酋帶亦兒兀孫來獻女,後復叛去托黑托阿奔於不亦魯黑。
帶亦兒兀孫遁至呼魯哈察卜,築壘自守。
遣博兒忽、沈伯率右翼兵,討平之。
乙丑春,襲不亦魯黑於兀魯塔山莎合水上,禽之。
乃蠻北部亡。
帝以西夏納我仇人桑昆,自將伐之。
圍力吉里城,又進攻乞鄰古撒城,俱克之,大掠而還。
갑자년(甲子/1204년) 춘(春)에, 첩멸연하(帖蔑延河)에서 엽(獵)하였고,
제장(諸將)과 함께 회의(會議)하여 내만(乃蠻)을 토(討)하였다.
엽필(獵畢)하자, 합륵합하(哈勒哈河) 건특해산(建忒垓山)에서 주필(駐兵)하였다.
찰살극(札薩克/자사그)을 선포(宣佈)하였고, 이로써 중(衆)에 영(令)하게 하였다.
천호(千戶), 백호(百戶), 패자두(牌子頭)를 입(立)하였고, 육등(六等) 차극필관(扯克必官/체르비)을 설(設)하였다.
숙위사(宿衛士) 80인(人)과 산반(散班) 70인(人)을 선(選)하였고,
또 명(命)하여 아아해(阿兒孩)는 호위(護衛) 천인(千人)을 선(選)하게 하여, 임적(臨敵)하면 즉(則) 전봉(前鋒)으로 삼았다.
하(夏) 4월에, 마아(禡牙/군기에 제사함)하고 내만(乃蠻)을 벌(伐)하였다.
사(師)가 내만(乃蠻)의 경외(境外) 객륵특해합답(客勒忒該哈答)에 지(至)하여, 합리하(哈利河)를 빈(濱/근접함)하였다.
내만(乃蠻)이 안병(按兵/진군하는 군대를 멈추게 함)하고 부동(不動)하니, 제(帝)가 인환(引還)하였다.
추(秋)에, 재의(再議)하고 진병(進兵)하였고, 홀이래(忽以來)와 철별(哲別)로써 전봉(前鋒)으로 삼았다.
이때 태양한(太陽罕)이 이미(己) 항해산(杭海山)의 합아지올손하(哈兒只兀孫河)에 지(至)하여,
타아분(朵兒奔), 탑탑아(塔塔兒), 합답근(合答斤), 살아조특(撒兒助特)의 제부(諸部)와 더불어 멸아걸(蔑兒乞) 추(酋)
탁흑탁아(托黑托阿), 객렬역(客烈亦) 추(酋) 납린태석(納鄰大石), 위랍특(衛拉特) 추(酋) 홀도합별걸(忽都哈別乞),
찰지랄(札只剌) 추(酋) 찰목합(札木合) 등(等)과 함께 연병(連兵)하여 진(進)하였고,
납홀동애(納忽東崖) 찰아걸마올척(察兒乞馬兀惕)의 지(地)에 진(陣)하였다.
제(帝)가 전적(前敵)을 자림(自臨)하였고, 제장(諸將)을 지휘(指揮)하여 내만병(乃蠻兵)을 대파(大破)하였으며,
태양한(太陽罕)을 금(擒)하여, 살지(殺之)하였고, 내만(乃蠻) 장(將) 화력한속팔적(火力罕速八赤) 등(等)의 봉(鋒)이
역전(力戰)하였는데, 제(帝)가 항지(降之)하고자 하였으나, 불종(不從)하였고, 모두 전사(戰死)하였다.
제(帝)의 장탄(獎歎/칭찬하고 한탄함)이 구지(久之)하여 말하길
「아(我) 휘하(麾下)의 제장(諸將)으로 하여금 모두 이와 같다면, 내가 다시 하우(何憂)하리!」
이날에, 타아분(朵兒奔), 탑탑아(塔塔兒), 합답근(哈答斤), 살아조특(撒兒助特)의 제부(諸部)가 개항(皆降)하였고,
찰목합(札木合)과 탁흑탁아(托黑托阿)는 둔거(遁去)하였고,
태양한(太陽罕)의 자(子) 고출로극(古出魯克)은 부역로흑(不亦魯黑)에게 분(奔)하니, 내만(乃蠻) 남부(南部)가 망(亡)하였다.
동(冬)에, 멸아걸(蔑兒乞)을 재벌(再伐)하여, 탑아하(塔兒河)에 지(至)하였다.
그 별부추(別部酋) 대역아올손(帶亦兒兀孫)이 내헌녀(來獻女)하였는데, 후(後)에 복반(復叛)하여 거(去)하였고,
탁흑탁아(托黑托阿)는 부역로흑(不亦魯黑)에게 분(奔)하였다.
대역아올손(帶亦兒兀孫)이 둔(遁)하여 호로합찰복(呼魯哈察卜)에 지(至)하였고, 축루(築壘)하여 자수(自守)하였다.
박아홀(博兒忽)과 침백(沈伯)을 견(遣)하여 우익병(右翼兵)을 솔(率)하고, 토평지(討平之)하였다.
을축년(乙丑/1205년) 춘(春)에, 부역로흑(不亦魯黑)을 올로탑산(兀魯塔山) 사합수상(莎合水上)에서 습(襲)하여, 금지(禽之)하니,
내만북부(乃蠻北部)가 망(亡)하였다.
제(帝)가 서하(西夏)가 아(我)의 구인(仇人) 상곤(桑昆)을 납(納)함으로써, 자장(自將)하여 벌지(伐之)하였다.
역길리성(力吉里城)을 위(圍)하였고, 또 진(進)하여 걸린고살성(乞鄰古撒城)을 공(攻)하였고, 구극지(俱克之)하여,
대략(大掠)하고는 환(還)하였다.
이해에, 찰목합(札木合)이 당노령(唐努嶺)에 지(至)하였는데, 그 가노(家奴) 5인(人)이 집지(執之)하여 내항(來降)하였다.
제(帝)가 말하길
「노(奴)로써 매주(賣主)하였으니, 불충(不忠)이 막심(莫甚)하도다!」
찰목합(札木合)과 더불어 5인(人)을 모두 복주(伏誅)하였다.
1204년 봄에 테메엔(첩멸연/테메게인) 강에서 사냥하였고 여러 장수들과 함께 쿠릴타이(회의)를 열어
나이만(내만)을 토벌하였다.
사냥을 마치자 칼카(합륵합) 강 켈테게이(건특해) 산에서 주둔하였다.
자사그(찰살극/법령)를 선포하였고 이로써 무리가 따르게 하였다.
천호(민간오 노얀), 백호(자온오 노얀), 십호(하르반오 노얀/패자두)를 세웠고 6등 체르비(차극필) 관리를 설치하였다.
숙위사 80인과 산반(위사) 70인을 선발하였고
또 명하여 아르카이(아아해)는 호위 1천명을 선발하게 하여 적을 만나면 즉시 선봉으로 삼았다.
여름 4월에 군기에 제사하고 나이만을 정벌하였다.
군대가 나이만 변경 밖 켈테게이 카다(객륵특해 합답)에 이르렀고 합리하에 근접하였다.
나이만이 군대를 멈추게 하고 움직이지 않으니 황제가 이끌고 돌아왔다.
가을에 재차 의논하여 진군하였고 쿠빌라이(홀이래)와 제베(철별)로써 선봉으로 삼았다.
이때 타양 칸이 이미 캉가이(항해) 산의 카지르 오손(합아지 올손) 강에 이르렀고
두르벤(타아분), 타타르(탑탑아), 카타킨(합답근), 살지우트(살아조특)의 여러 부족과 더불어
메르키트(멸아걸) 추장 톡타아(탁흑탁아), 케레이트(객렬역) 추장 알린 타이시(납린 태석),
오이라트(위랍특) 추장 코도카 베키(홀도합 별걸), 자다란(찰지랄) 추장 자무카(찰목합) 등과 함께 연합하여 진군하였고
나코 협곡(납홀동애) 차키르 마오드(찰아걸 마올척)의 땅에 진을 차렸다.
황제가 적 앞으로 스스로 임하였고 제장을 지휘하여 나이만 군을 대파하였으며 타양 칸을 사로잡아 죽이게 하였는데,
나이만 장군 코리 수바추(화력한 속팔적) 등이 앞장서서 힘껏 싸웠는데,
황제가 투항시키고자 하였으나 따르지 않았고 모두 전사하였다.
황제가 오랫동안 칭찬하고 한탄하며 말하길
「내 휘하의 제장들이 모두 이와 같다면 내가 다시 무슨 근심이 있으랴!」
이 날에 두르벤, 타타르, 카타킨, 살지우트의 여러 부족이 모두 항복하였고
자무카와 톡타아는 달아났으며, 타양 칸의 아들 구출룩(고출로극/쿠실룩)은 부이룩(부역로흑)에게 달아나니
나이만 남부가 망하였다.
겨울에 다시 메르키트를 정벌하여 탑아하에 이르렀다.
그 다른 메르키트 추장 다이르 오손(대역아 올손)이 와서 딸을 바쳤는데 후에 다시 배반하여 가버렸고
톡타아는 부이룩에게 달아났다.
다이르 오손이 달아나 쿠루 캅찰(호로 합찰복)에 이르러 성루를 쌓고 스스로 지켰다.
보로굴(박아홀)과 침바이(침백)을 보내 우익을 인솔하고 토벌하여 평정하게 하였다.
황제가 서하가 우리의 원수 셍군(상곤)을 받아들임으로써 친정하여 정벌하였다.
리킬리(역길리) 성을 포위하였고 또 진군하여 킹로스(걸린고살) 성을 공격하여 모두 함락하고는 크게 약탈하고 돌아왔다.
이해에 자무카(찰목합)이 탕노 산맥(당노령)에 이르렀는데 그 가노 5인이 사로잡아 항복하여 왔다.
황제가 말하길
「노비로서 주인을 팔았으니 불충이 막심하도다!」
자무카와 더불어 5인을 모두 처형하였다.
<남부 나이만 타양칸 토벌전>
<북부 나이만 부이룩칸 토벌전>
<서하 1차 침공전>
*1204년 제정된 자사그, 천호제, 체르비 제도
-자사그[jasaγ] : 법령
-천호제
천호 : 민간-오 노얀[minγan-u noyan]
백호 : 자온-오 노얀[jaun-u noyan]
십호 : 하르반-오 노얀[harban-u noyan]
-친위대(숙위+위사+전통사)
대장 : 6체르비
도다이 체르비[dodai cerbi]
도콜코 체르비[doqolqu cerbi]
우겔레 체르비[ögele cerbi]
톨론 체르비[tolun cerbi]
보차란 체르비[bucaran cerbi]
수위게투 체르비[söyiketü cerbi]
80명 숙위 : 켑테울[kebteül]
70명 위사 : 케식텐[kesigten]
호위대 : 대장 아르카이 + 1000명
*자무카 처형
몽골비사에 따르면 당시 부하 5명에게 끌려온 자무카를 테무진은 살려주고자 하였으나
자무카는 자신을 피가 나오지 않고 죽여준다면 죽어서도 안다와 그 후손을 가호할 것이라 말한다.
이에 테무진은 시신을 잘 수습해 주라 말하며 처형을 명했다.
요약.
1204년 테무진은 테메엔에서 쿠릴타이를 열어 자사그(법령)와 천호제 및 친위대를 정립한다.
친위대는 6명의 체르비를 임명하여 숙위와 위사를 담당하게 하였고, 아르카이에게 1천명을 주어 호위를 맡긴다.
가을 남부 나이만 타양칸을 나코 협곡에서 격파하고 타양칸을 죽인다.
자무카는 달아났다가 부하들의 배신으로 테무진에게 끌려와 죽임을 당한다.
1205년 봄 북부 나이만 부이룩칸을 수자우 강에서 사로잡고 마침내 초원을 통일한다.
몽고 초원을 통일한 테무진은 눈을 외국으로 돌려 서하가 케레이트 셍군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침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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