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무친정록 칭기스 가한 4부-의부 왕 가한의 세력을 회복시키다! 성무친정록 칭기스 가한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오늘은 13세기에 원나라에서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원태조 칭기스칸의 일대기를 기록한 

성무친정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1부-13쿠리엔, 자무카 치노스(늑대)를 삶다!

2부-타이치오트를 배반한 주리야트가 멸망하다!

3부-원수 타타르를 멸하고 보르지긴 적통 주르킨을 섬멸하다!


만주어 원사 태조

만주어 몽고원류 칭기스 카간

원사 태조 테무진

신원사 태조 칭기스칸

원조비사 칭기스 카간

신원사 본기 서기


원문 출처 : https://ctext.org/wiki.pl?if=gb&chapter=734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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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時居塔朵速之野,有克烈部汪可汗弟劄阿紺孛來歸。

適蔑裏乞部與我會戰,上與劄阿紺孛迎敵之,其眾敗走。

是時,有土滿土伯夷、董哀諸部,乃克烈敗散之眾,亦來降。

汪罕可汗始與葉速該可汗和好,相稱按答。

所以然者,由初汪可汗之父忽兒劄胡思杯祿可汗既卒,汪可汗殺戮昆弟。

其叔父菊兒可汗率兵與汪可汗戰,逼汪可汗於哈剌溫隘敗之,僅以百餘騎,奔葉速該可汗。

葉速該可汗親將兵逐菊兒可汗走西夏,復奪部眾歸之。

汪可汗感德,遂盟按答。

後汪可汗弟也力可哈剌者,以其多殺昆弟,叛歸乃蠻部亦難赤可汗。

亦難赤可汗發兵伐汪可汗,盡奪克烈部眾與也力可哈剌。

汪可汗脫身,歷走三城,奔赴契丹主菊兒可汗。

既而復叛之,涉畏吾兒、西夏諸城邑,中道糧絕,遺乳羊五頭,以繩禁羊口,奪其乳為飲,刺橐駝血煮為食,困甚,

僅至曲薛兀兒澤。

上聞之,以其初與先君按答之故,乃遣近侍塔海、雪也垓二人往招之來。

上自怯綠連河親迎撫勞,安置軍中,大賑給之。

秋,上同汪可汗會於土兀剌河上黑林間,結為父子禮。

是年冬,月兒斤部先脫走者薛徹、大醜,追至帖列徒之隘,滅之。

次年秋,上發兵於哈剌哈河,伐蔑裏乞部主脫脫,戰於莫察那山,遂掠兀都夷、蔑裏乞二部,收其眾,盡以其所獲給汪可汗。

其後部眾稍集,不約我軍,自侵蔑裏乞,至捕兀剌川,殺脫脫之子土居思別吉,虜忽都臺、察勒渾二哈敦,

及招脫脫次子和都、赤剌溫二人領部眾而來所奪不以秋豪與我。脫脫奔巴兒忽真之隘。

後上與汪可汗征杯祿可汗,至黑辛八石之野,盡虜其民。杯祿可汗先遣也的脫孛魯領百騎為前鋒,我軍逼之,走據高山,

其馬鞍轉墜,擒之。

상(上)이 이때 탑타속(塔朵速)의 야(野)에 거(居)하였는데, 극렬부(克烈部) 왕가한(汪可汗)의 제(弟) 차아감패(劄阿紺孛)가 

있었는데 내귀(來歸)하였다.

마침 멸리걸부(蔑裏乞部)가 여아(與我)하여 회전(會戰)하였는데, 상(上)이 차아감패(劄阿紺孛)와 함께 영적지(迎敵之)하였고, 

그 중(眾)이 패주(敗走)하였다.

이때, 토만토백이(土滿土伯夷)와 동애(董哀)의 제부(諸部)가 있었는데, 곧 극렬(克烈)의 패산(敗散)의 중(眾)이 역시(亦) 

내항(來降)하였다.

왕한(汪罕) 가한(可汗)이 일찍이 엽속해가한(葉速該可汗)과 더불어 화호(和好)하였는데, 안답(按答)이라 상칭(相稱)하였다.

그러한 까닭은, 초(初)에 왕가한(汪可汗)의 부(父) 홀아차호사배록가한(忽兒劄胡思杯祿可汗)이 이윽고 졸(卒)하자,

왕가한(汪可汗)이 곤제(昆弟)를 살륙(殺戮)함에 연유(由)한다.

그 숙부(叔父) 국아가한(菊兒可汗)이 솔병(率兵)하여 왕가한(汪可汗)과 더불어 전(戰)하였는데,

왕가한(汪可汗)을 합랄온애(哈剌溫隘)에서 핍(逼)하여 패지(敗之)하였고,

겨우 백여기(百餘騎)로써, 엽속해가한(葉速該可汗)에게 분(奔)하였다.

엽속해가한(葉速該可汗)이 친히(親) 장병(將兵)하여 국아가한(菊兒可汗)을 축(逐)하여 서하(西夏)로 주(走)하였으며,

다시 부중(部眾)을 탈(奪)하여 귀지(歸之)하였다.

왕가한(汪可汗)이 감덕(感德)하였고, 마침내 안답(按答)을 맹(盟)하였다.

후(後)에 왕가한(汪可汗)의 제(弟) 야력가합랄(也力可哈剌)이란 자(者)가 그 곤제(昆弟)를 다살(多殺)함으로써, 

내만부(乃蠻部) 역난적가한(亦難赤可汗)에게 반귀(叛歸)하였다.

역난적가한(亦難赤可汗)이 발병(發兵)하여 왕가한(汪可汗)을 벌(伐)하였고,

극렬부중(克烈部眾)을 진탈(盡奪)하여 야력가합랄(也力可哈剌)에게 여(與)하였다.

왕가한(汪可汗)이 탈신(脫身)하여, 삼성(三城)을 역주(歷走)하였으며, 

글단주(契丹主) 국아가한(菊兒可汗)에게 분부(奔赴)하였다.

얼마 안 있어 다시 반지(叛之)하였고, 외오아(畏吾兒)와 서하(西夏)의 제성읍(諸城邑)을 섭(涉/지남)하였는데,

중도(中道)에 양절(糧絕)하였고, 유양(乳羊) 5두(頭)를 유(遺)하였는데,

승(繩/노끈)으로써 양구(羊口)를 금(禁)하고, 그 유(乳)를 탈(奪)하여 음(飲)하였으며,

탁타(橐駝)를 자(刺)하여 혈자(血煮/피를 끓임)하여 식(食)하니, 곤심(困甚)하였으며,

겨우 곡설올아택(曲薛兀兒澤)에 지(至)하였다.

상(上)이 문지(聞之)하였는데, 그 처음에 선군(先君)과 더불어 안답(按答)한 연고(故)로써,

이에 근시(近侍) 탑해(塔海)와 설야해(雪也垓) 2인(人)을 견(遣)하여 왕초(往招)하여 내(來)하였다.

상(上)이 겁록련하(怯綠連河)로부터 친영(親迎)하여 무노(撫勞)하였으며,

군중(軍中)을 안치(安置)하고, 대진급지(大賑給之)하였다.

추(秋)에, 상(上)이 왕가한(汪可汗)과 같이 토올랄하(土兀剌河) 상(上) 흑림간(黑林間)에서 회(會)하였고,

결(結)하여 부자(父子)의 예(禮)로 하였다.

이해 동(冬)에, 월아근부(月兒斤部)의 선탈주자(先脫走者)인 설철(薛徹)과 대추(大醜)를 첩렬도(帖列徒)의 애(隘)로 

추지(追至)하였고, 멸지(滅之)하였다.

차년(次年) 추(秋)에, 상(上)이 합랄합하(哈剌哈河)에서 발병(發兵)하여, 멸리걸부(蔑裏乞部) 주(主) 탈탈(脫脫)을 벌(伐)하여, 

막찰나산(莫察那山)에서 전(戰)하였고, 마침내 올도이(兀都夷)와 멸리걸(蔑裏乞) 2부(部)를 약(掠)하였고, 

그 중(眾)을 수(收)하였는데, 그 소획(所獲)으로써 모두 왕가한(汪可汗)에게 급(給)하였다.

그 후(後) 부중(部眾)이 초집(稍集)하자, 아군(我軍)과 불약(不約)하더니, 멸리걸(蔑裏乞)을 자침(自侵)하였고,

포올랄천(捕兀剌川)에 지(至)하여, 탈탈(脫脫)의 자(子) 토거사별길(土居思別吉)을 살(殺)하였고,

홀도대(忽都臺)와 찰륵혼(察勒渾) 2합돈(哈敦)을 노(虜)하였으며,

더불어 탈탈(脫脫)의 차자(次子) 화도(和都)와 적랄온(赤剌溫) 2인(人)을 초(招)하니 부중(部眾)을 영(領)하여 래(來)하였는데,

소탈(所奪)한 추호(秋豪)로써도 여아(與我)하지 않았다.

탈탈(脫脫)이 파아홀진(巴兒忽真)의 애(隘)로 분(奔)하였다.

후(後)에 상(上)이 왕가한(汪可汗)과 함께 배록가한(杯祿可汗)을 정(征)하였는데, 흑신팔석(黑辛八石)의 야(野)에 지(至)하여, 

그 민(民)을 진노(盡虜)하였다.

배록가한(杯祿可汗)이 야적탈패로(也的脫孛魯)를 선견(先遣)하여 백기(百騎)를 영(領)하여 전봉(前鋒)으로 삼았으며,

아군(我軍)이 핍지(逼之)하자, 주(走)하여 고산(高山)에 거(據)하였는데, 그 마안(馬鞍)이 전추(轉墜)하자, 금지(擒之)하였다.



상이 이때 테르수드(탑타속)의 들판에 거주하였는데 케레이트 왕 가한의 동생 자아감보(차아감패/자카감보)가 귀부하여 왔다.

마침 우리가 메르키트(멸리걸) 부족과 더불어 회전하였는데 상이 자아감보와 함께 대적하였고 그 무리가 패하여 달아났다.

이때 투멘 투베겐(토만토백이)과 동카이드(동애)의 여러 부족이 있었는데 

곧 케레이트의 패하여 흩어진 무리와 또한 항복하여 왔다.

왕칸 가한(왕한 가한)이 일찍이 예수게이 가한(엽속해 가한)과 더불어 사이좋게 지내며 안다(안답)라 서로 칭하였다.

그러한 까닭은 처음에 왕 가한의 부친 코르차코스 보이록 가한(홀아차호사 배록 가한)이 이윽고 졸하자 

왕 가한이 형제를 살륙함에 연유한다.

그 숙부 구르 가한(국아가한)이 군을 인솔하여 왕 가한과 더불어 싸웠는데 카라온(합랄온) 협곡에서 핍박당하여 패배하였고

겨우 100여기로써 예수게이 가한에게 달아났다.

예수게이 가한이 친히 병력을 인솔하고 구르 가한을 축출하니 서하로 달아나게 하였고 

다시 부족 무리를 빼앗아 (왕 가한에게) 돌려보냈다.

왕 가한이 덕에 감동하여 마침내 안다를 맹세하였다.

후에 왕 가한의 동생 에르케 카라(야력 가합랄)이란 자가 (왕 가한이) 그 형제를 많이 죽임으로써

나이만(내만) 부족 이난차(역난적) 가한에게 배반하여 귀부하였다.

이난차 가한이 군사를 일으켜 왕 가한을 정벌하였고 케레이트 부족 무리를 모조리 빼앗아 에르케 카라에게 주었다.

왕 가한이 몸을 빼내어 3성을 지나 도주하였고 글단(서요/거란/카라 키다이) 임금 구르 가한(국아 가한)에게 달아났다.

얼마 안 있어 다시 배반하여 오이고드(외오아/위그루)와 서하(탕구트)의 여러 성읍을 지났는데

중도에 식량이 끊기고 젖먹이 양 5마리만 남았는데 노끈으로 양 입을 막고 그 젖을 빼앗아 마셨으며

낙타를 찔러 피를 끊여 먹으니 심히 곤란하였는데 겨우 구세우르(곡설올아) 호수에 이르렀다.

상이 듣고는, 그 처음에 선군(예수게이)과 더불어 안다를 맺은 연고로 

이에 근시 타카이(탑해)와 설야해(수케케) 2사람을 보내 불러 오게 하였다.

상이 켈루렌(겁록련) 강으로부터 친히 맞이하여 노고를 위로하였으며 군중을 편안히 있게 하고 크게 진휼하여 공급하였다.

가을에 상이 왕 가한과 함께 토올라(토올랄) 강 상류 카라툰(흑림) 사이에서 만났고 부자의 예를 맺었다.

이해 (1196년) 겨울에 먼저 달아난 주르킨 부족 사차와 타이초를 추격하여 

텔레투(첩렬도/탈라두인/텔레게투)의 협곡에 이르러 섬멸하였다.

다음해 (1197년) 가을에 상이 합랄합 강에서 군을 일으켜 메르키트(멸리걸) 부족장 토토(탈탈/토타이)를 정벌하였고

모나차(막찰나) 산에서 싸워 마침내 우두이트(올도이)와 메르키트 2부족을 약탈하였고 그 무리를 거두어 

그 포획을 모조리 왕 가한에게 주었다.

그후 (1198년에) 부족 무리가 점차 모이자 아군과 약조하지도 않고 스스로 메르키트를 침략하였고

부쿠라 케헤르(포올랄 개천)에 이르러 토토의 아들 투구즈 베키(토거사 별길)을 죽이고 

쿠툭타이(홀도대)와 찰라운(찰륵혼) 2 카툰을 사로잡았으며 더불어 토토의 차자 쿠두(화도)와 칠라운(적랄온) 2인을 불러 

부족 무리를 거느리고 왔는데 포획한 것을 추호도 우리에게 주지 않았다.

토토가 바르쿠진(파아홀진)의 협곡으로 달아났다.

후에 (1199년) 상이 왕 가한과 함께 (나이만의) 부이룩 가한(배록 가한)을 정벌하였는데

키질 바시(흑신팔석)의 들판에 이르러 그 백성을 모조리 노략하였다.

부이룩 가한이 이디 투클룩(야적 탈패로)를 먼저 보냈는데 100기를 거느리고 선봉으로 삼았으며

아군이 들이닥치자 달아나 높은 산에 의지하였는데 그 말의 안장이 굴러 떨어지자 사로잡혔다.


요약.

타타르 정벌 직후 케레이트는 나이만 이난차 가한의 후원을 받은 왕 가한의 동생 에르케 카라의 공격을 받아 대패하고

왕 가한은 서요, 위구르, 서하를 거쳐 온갖 고생을 하며 테무진에게 돌아온다.

한편 이 당시 왕 가한의 동생 자아감보는 금나라로 도망쳤는데 테무진이 사신을 보내 데려온다.

1196년 테무진은 메르키트를 공격해 약탈품을 모조리 왕 가한에게 주었고, 

왕 가한은 점차 흩어진 부족을 규합하여 세력을 회복한다.

1197년 왕 가한은 독단으로 메르키트를 정벌해 세력을 크게 늘린다.

1199년 테무진은 왕 가한과 함께 나이만 부이룩 가한의 땅을 침략하여 그 선봉장 이디 투클룩을 격파한다.

당시 나이만은 이난차 가한 사후 아들들인 타양 가한과 부이룩 가한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한편 왕 가한의 셋째 동생 자아감보는 본래 이름이 케레이테이였는데 테무진과는 안다를 맺은 사이였다.

테무진은 자아감보의 딸 이바카 베키를 아내로 맞아들였고, 또다른 딸 베투트미시 푸진을 큰 아들 주치의 아내로 맞아들였다.

이당시 자아감보는 부족민들과 왕 가한을 비난하는 말을 하였는데 왕 가한의 체포령이 떨어지자 

자아감보는 나이만으로 도망갔다가 다시 테무진에게 의탁하여 온 것이었다.

테무진은 자아감보를 다시 왕 가한에게 돌려보낸다.

한편 1196년 테무진은 도망쳤던 일족 주르킨 사차 베키와 타이초를 추격하여 모조리 살해한다.

이로써 테무진의 키요트 부족은 일명 황금씨족인 보르지긴의 적통으로 우뚝 서게 된다.


-5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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