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사 태조 칭기스칸 9부-진정한 몽골군의 탄생! 신원사 태조 칭기스칸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틈틈이 원나라 태조 칭기스칸의 일대기를 연재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원나라 역사의 집대성이라 칭송받는 신원사 태조 본기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1부-의부 옹칸, 안다 자무카

2부-13쿠리엔 전투 자무카에게 대패하다!

3부-금나라의 백호장(자오드 코리)에 임명되다!

4부-등 돌린 옹칸을 다시 돕고 나이만군의 시체로 경관을 쌓다!

5부-타이치오트 멸망/자무카 구르 칸에 옹립되다!

6부-쿠이텐 전투!

7부-칼라칼지드 사막 전투! 그리고 옹칸의 패망!

8부-초원통일! 눈을 외국으로 돌리다!


원사 칭기스 카안

만주어 원사 칭기스 한

신원사 칭기스 칸

성무친정록 칭기스 가한

만주어 몽고원류 칭기스 카간

원조비사 칭기스 칸

신원사 본기 서기


만주어 요나라 태조 아보오지

만주어 금나라 태조 아구다

만주어 청나라 태조 누르가치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96%B0%E5%85%83%E5%8F%B2/%E5%8D%B7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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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年丙寅,帝大會部眾於斡難河之源,建九斿白纛,即皇帝位。

羣臣共上尊號曰成吉思合罕。

先是,有巫者闊闊出,蒙力克之子也,自詭聞神語,畀帖木真以天下,其號曰成吉思。

羣臣以劄木合僭號古兒罕,旋敗,乃廢古兒罕不稱,而從闊闊出之言,尊帝爲成吉思合罕。

國語「成」爲氣力強固,「吉思」爲多數也。

帝大封功臣,以博爾術爲右翼萬戶,木華黎爲左翼萬戶,納牙阿爲中軍萬戶。

豁兒赤以言符命,亦封爲萬戶,以博爾忽爲第一千戶功。

功臣封萬戶、千戶者共八十五人。

以忽都虎爲劄忽,譯言斷事官也。

以也客捏兀鄰,領宿衛千人,也孫帖額領箭筒士千人,斡哥連、不合、阿勒赤歹、朵歹、朵豁勒忽、察乃、阿忽台、

阿兒孩分領護衛散班八千人,分番入直,是爲四怯薛。

是年,命忽必來徵合兒魯,者別追古出魯克。

二年丁卯秋,帝親下西夏,入兀剌海城。

遣阿勒壇、而剌二人往諭乞兒吉思部。

是年,皇子術赤領右翼軍,征和林西北部族。

斡亦剌部長忽都哈別乞迎降。

進討禿馬、斡亦剌於失黑失特之地,於是斡亦剌、不里牙特、巴兒渾、兀兒速特、哈卜哈納思、康哈思、禿巴思諸部悉降。

乞兒吉思部長也迪亦納勒、阿勒迪額兒、斡列別克的斤亦望風納款,獻白海青、白馬、黑貂等方物。

林木中部族失必兒、客思的音、巴亦特、禿哈思、田列克、脫額列思、塔思、巴只吉等亦降。

三年戊辰春,帝至自西夏。

冬十月,金主璟卒,其叔衛王永濟嗣位。

帝再討古出魯克、托黑托阿,以斡亦剌部長忽都哈別乞爲嚮導,至也兒的石河。

托黑托阿中濟矢死,蔑兒乞部亡。

古出魯克奔西遼,其後篡西遼主直魯古而自立。

四年己巳春,畏兀兒部亦都護來降。

先是,托黑托阿死,其子忽都等將奔畏兀兒。

亦都護不納,與忽都等戰於真河,敗之,以蔑兒乞爲帝世仇,遣使來告戰事,帝命阿惕乞剌黑、答兒伯前後再使其國,且片貢獻。

亦都護遂遣使貢方物,帝悅,賜大紅衣、金帶以寵之。

원년(元年) 병인년(丙寅/1206년), 제(帝)가 부중(部眾)을 알난하(斡難河)의 원(源)에서 대회(大會)하였고,

구유백독(九斿白纛)을 건(建)하고, 황제(皇帝)의 위(位)에 즉(即)하였다.

군신(羣臣)이 존호(尊號)를 공상(共上)하여 말하길 성길사합한(成吉思合罕)이라 하였다.

이에 앞서, 무자(巫者) 활활출(闊闊出)이 있었는데, 몽력극(蒙力克)의 자(子)였고, 신어(神語)를 문(聞)한다 자궤(自詭)하였는데,

첩목진(帖木真)에게 천하(天下)로써 비(畀/줌)한다 하였고, 그 호(號)를 말하길 성길사(成吉思)라 하였다.

군신(羣臣)이 차목합(劄木合)이 고아한(古兒罕)을 참호(僭號)함으로써, 선패(旋敗)하니, 이에 고아한(古兒罕)을 폐(廢)하고 

불칭(不稱)하였고, 활활출(闊闊出)의 언(言)을 종(從)하여, 존제(尊帝)하여 성길사합한(成吉思合罕)이라 하였다.

국어(國語)에 「성(成)」은 기력(氣力)이 강고(強固)함을 뜻하고, 「길사(吉思)」는 다수(多數)를 뜻한다.

제(帝)가 공신(功臣)을 대봉(大封)하여, 박이술(博爾術)을 우익만호(右翼萬戶)로 삼고, 목화려(木華黎)를 좌익만호(左翼萬戶)로

삼고, 납아아(納牙阿)를 중군만호(中軍萬戶)로 삼았다.

활아적(豁兒赤)이 부명(符命)을 언(言)함으로써, 역시(亦) 봉(封)하여 만호(萬戶)로 삼았고, 박이홀(博爾忽)을 제(第) 1천 

호공(戶功)으로 삼았다.

공신(功臣)을 만호(萬戶)와 천호(千戶)로 봉(封)한 자(者)가 공(共) 85인(人)이었다.

홀도호(忽都虎)를 차홀(劄忽)로 삼았는데, 역언(譯言)하면 단사관(斷事官)이다.

야객날올린(也客捏兀鄰)을 숙위(宿衛) 천인(千人)을 영(領)하게 하였고, 야손첩액(也孫帖額)은 전통사(箭筒士) 천인(千人)을 

영(領)하게 하였고, 알가련(斡哥連), 부합(不合), 아륵적알(阿勒赤歹), 타알(朵歹), 타활륵홀(朵豁勒忽), 찰내(察乃), 

아홀태(阿忽台), 아아해(阿兒孩)는 호위(護衛)와 산반(散班) 8천인(八千人)을 분령(分領)하게 하였고, 분번(分番)하여 

입직(入直)하게 하고, 이에 사겁설(四怯薛)로 삼았다.

이해에, 명(命)하여 홀필래(忽必來)는 합아로(合兒魯)를 징(徵)하고, 자별(者別)은 고출로극(古出魯克)을 추(追)하게 하였다.

2년 정묘년(丁卯/1207년) 추(秋)에, 제(帝)가 서하(西夏)를 친하(親下)하였고, 올랄해성(兀剌海城)에 입(入)하였다.

아륵단(阿勒壇)과 이랄(而剌) 2인(人)을 견(遣)하여 걸아길사부(乞兒吉思部)를 왕유(往諭)하였다.

이해에, 황자(皇子) 술적(術赤)이 우익군(右翼軍)을 영(領)하여, 화림(和林) 서북(西北) 부족(部族)을 정(征)하였다.

알역랄부장(斡亦剌部長) 홀도합별걸(忽都哈別乞)이 영항(迎降)하였다.

독마(禿馬)와 알역랄(斡亦剌)을 실흑실특(失黑失特)의 지(地)에서 진토(進討)하였고, 이 알역랄(斡亦剌), 부리아특(不里牙特), 

파아혼(巴兒渾), 올아속특(兀兒速特), 합복합납사(哈卜哈納思), 강합사(康哈思), 독파사(禿巴思)의 제부(諸部)가 

실항(悉降)하였다.

걸아길사(乞兒吉思) 부장(部長) 야적역납륵(也迪亦納勒), 아륵적액아(阿勒迪額兒), 알렬별극적근(斡列別克的斤) 역시(亦) 

망풍(望風)하고 납관(納款/성심으로 복종함)하였고, 백해청(白海青/흰 매), 백마(白馬), 흑초(黑貂) 등(等)의 방물(方物)을 

헌(獻)하였다.

임목중(林木中) 부족(部族) 실필아(失必兒), 객사적음(客思的音), 파역특(巴亦特), 독합사(禿哈思), 전렬극(田列克), 

탈액렬사(脫額列思), 탑사(塔思), 파지길(巴只吉) 등(等)이 역시(亦) 항(降)하였다.

3년 무진년(戊辰/1208년) 춘(春)에, 제(帝)가 서하(西夏)로부터 지(至)하였다.

동(冬) 10월에, 금주(金主) 완안경(璟)이 졸(卒)하였는데, 그 숙(叔) 위왕(衛王) 완안영제(永濟)가 사위(嗣位)하였다.

제(帝)가 고출로극(古出魯克)과 탁흑탁아(托黑托阿)를 재토(再討)하였고, 알역랄(斡亦剌) 부장(部長) 홀도합별걸(忽都哈別乞)을

향도(嚮導)로 삼아, 야아적석하(也兒的石河)에 지(至)하였다.

탁흑탁아(托黑托阿)가 유시(濟矢/流의 오기)에 중(中)하여 사(死)하니, 멸아걸부(蔑兒乞部)가 망(亡)하였다.

고출로극(古出魯克)은 서요(西遼)로 분(奔)하였고, 그 후(後) 서요주(西遼主) 직로고(直魯古)를 찬(篡)하고는 자립(自立)하였다.

4년 기사년(己巳/1209년) 춘(春)에, 외올아부(畏兀兒部) 역도호래(亦都護來)가 항(降)하였다.

이에 앞서, 탁흑탁아(托黑托阿)가 사(死)하자, 그 자(子) 홀도(忽都) 등(等)이 장차(將) 외올아(畏兀兒)로 분(奔)하고자 하였다.

역도호(亦都護)가 부납(不納)하였고, 홀도(忽都) 등(等)과 더불어 진하(真河)에서 전(戰)하여, 패지(敗之)하였고,

멸아걸(蔑兒乞)이 제(帝)의 세구(世仇)이니, 견사(遣使)하여 전사(戰事)를 내고(來告)하니, 제(帝)가 명(命)하여 

아척걸랄흑(阿惕乞剌黑)과 답아백(答兒伯)을 전후(前後)로 그 국(國)에 재사(再使)하였으며, 또한 반(片)만 공헌(貢獻)하게 

하였다.

역도호(亦都護)가 마침내 견사(遣使)하여 방물(方物)을 공(貢)하니, 제(帝)가 열(悅)하였고, 대홍의(大紅衣)와 

금대(金帶)를 사(賜)하여 이로써 총지(寵之)하였다.
















[칭기스 칸] 원년 1206년에 황제가 부족 무리와 오논강(알난하) 발원지에서 쿠릴타이(대회)를 열었고

구유백기(9개의 다리를 지닌 흰 깃발/예순 쿨투 차가안 토르)를 세우고 황제에 즉위하였다.

신하 무리들이 함께 존호를 올려 말하길 칭기스 카한(성길사 합한)이라 하였다.

이에 앞서 무당 쿠쿠추(활활출/쿠케추/텝 텡그리/텝 텡게리)가 있었는데 뭉릭(몽력극)의 아들이었고

스스로 신의 말을 듣는다 속이고는 

   <테무진(첩목진)에게 천하를 준다!>

고 하였고 그 칭호를 칭기스라 하였다.

뭇 신하들이 자무카가 구르칸(고아한)을 참호함으로써 빠르게 패하니 이에 구르칸을 폐하고 칭하지 않았는데

쿠쿠추의 말을 따라 황제를 높여 칭기스 카한이라 하였다.

몽고어에 「칭(성)」은 기력이 강고함을 뜻하고 「기스(길사)」는 다수를 뜻한다.

황제가 공신을 크게 봉하여 보오르초(박이술)을 우익 만호로 삼고, 무칼리를 좌익 만호로 삼고,

냐아아(납아아)를 중군 만호로 삼았다.

코르치(활아적)은 천명을 받을 것이라 말함으로써 또한 봉하여 만호로 삼았고, 보로올(박이홀)을 공으로써 제1 천호로 삼았다.

공신으로 만호와 천호로 봉한 자가 모두 합쳐 85인이었다.

쿠투쿠(홀도호)를 차르(차홀)로 삼았는데 번역하면 단사관이다.

예케 네우린(야객 날올린)을 숙위(켑테울) 1천인을 거느리게 하였고, 예순테에(야손첩액)은 전통사(코르치) 1천인을 

거느리게 하였고, 우겔레(알가련), 부카(부합), 알치다이(아륵적알), 도다이(타알), 도콜고(타활륵홀), 차나이(찰내), 

아코타이(아홀태), 아르카이(아아해)는 호위(케식텐)와 산반 8천인을 나누어 거느리게 하였고,

번을 나누어 입직하게 하고 이에 4 케식(겁설)으로로 삼았다.

이해에 명을 내려 쿠빌라이(홀필래)는 카를룩(합아로/카를로오드)을 정벌하고, 제베(자별)는 구출룩(고출로극)을 추격하게 

하였다.

[칭기스 칸] 2년 1207년 가을에 황제가 서하를 친히 정벌하여 에리카이(올랄해) 성에 들어갔다.

알탄과 보오라(이랄) 2인을 보내 키르키즈(걸아길사) 부족을 회유하게 하였다.

이해에 황자 주치(술적)이 우익군을 거느리고 카라코룸(화림) 서북쪽 부족을 정벌하였다.

오이라트(알역랄) 부족장 쿠투카 베키(홀도합 별걸)이 맞이하여 항복하였다.

투마(독마)와 오이라트(알역랄)를 시쿠시트(실흑실특)의 땅으로 진군하여 토벌하게 하였고 이 오이라트, 부리야트(부리아특), 

바르쿤(파아혼), 우르수트(올아속특), 캅카나스(합복합납사), 캉카스(강합사), 투바스(독파사)의 여러 부족이 모조리 항복하였다.

키르키즈 부족장 이티 오론(야적 역납륵), 알 디에르(아륵 적액아), 오로스 이날(알렬별극적근) 또한 멀리 바라보고서 

성심으로 복종하였고, 흰 송골매, 검음 담비 갖구 등을 방물로 바쳤다.

삼림 부족 시비르(실필아), 케스딤(객사적음), 바위트(파역특), 투카스(독합사), 텐레크(전렬극), 투엘레스(탈액렬사), 

타스(탑사), 바지기트(파지길) 등이 또한 항복하였다.

[칭기스 칸] 3년 1208년 봄에, 황제가 서하로부터 이르렀다.

겨울 10월에 금 임금 완안경이 졸하였는데 그 숙부 위왕 완안영제가 위를 이었다.

황제가 다시 구출룩(고출로극)과 톡타아를 토벌하였고 오이라트 부족장 쿠투카 베키를 향도로 삼아 

에르디시 강(야아적석하)에 이르렀다.

톡타아가 유시에 명중하여 죽으니, 메르키트 부족이 망하였다.

구출룩은 서요로 달아났고 그후 서요 임금 야율직로고를 찬탈하여 스스로 위에 올랐다.

[칭기스 칸] 4년 1209년 봄에 위그루(외올아/오이오드) 부족 

이디쿠트(역도호래/이도오드/이디쿠트는 국왕의 칭호 이름 바르축)가 항복하였다.

이에 앞서 톡타아가 죽자 그 아들 쿠두(홀도) 등이 장차 위그루로 달아나고자 하였다.

이디쿠트가 받아들이지 않았고 쿠두 등과 더불어 잠 무렌(진하)에서 싸워 격파하였고, 메르키트가 황제 선대의 원수이니 

사신을 보내 싸운 일을 고하였고 제가 명하여 알프 우누크(아척걸랄흑/아드키락)와 다르바이(답아백/다르바이)를 전후로 

다시 그 나라에 사신으로 보냈으며, 또한 반만 조공하게 하였다.

이디쿠트가 마침내 사신을 보내 방물을 조공하니 황제가 기뻐하였고 큰 홍의와 금 허리띠를 하사하여 이로써 총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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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년 칭기스칸의 1만 친위대(본래 숙위80 + 위사70에서 증원)>


※ 숙위(켑테울) 1천 + 전통사(코르치) 1천 + 위사(케식텐) 8천

-구성 : 천호장+백호장+십호장의 아들 및 평민 중에 능력있는 자들 선발

1. 천호장의 아들 2명 + 자체적으로 10명 선발

2. 백호장의 아들 2명 + 자체적으로 5명 선발

3. 십호장의 아들 2명 + 자체적으로 3명 선발

4. 평민 중 능력있는자 1명(+동생1명) + 자체적으로 3명 선발


1. 1천 숙위(켑테울) : 예케 네우린


2. 1천 전통사(코르치) : 예순테에(젤메 아들)

→전통사 4조 근무

-1대 : 예순테에

-1대 : 부기데이

-1대 : 호르코닥

-1대 : 라블라카


3. 8천 위사(케식텐)

-1천 : 우겔레 체르비(보오르초 친족)

-1천 : 보카(모칼리 친족)

-1천 : 알치다이(일루게이 친족)

-1천 : 도다이 체르비

-1천 : 도콜코 체르비

-1천 : 차나이(주르체데이 친족)

-1천 : 아코타이(알치 친족)

-1천 : 아르카이 카사르 → 전시 선봉대


→위사 4조 근무

-1대 : 보카

-1대 : 알치다이

-1대 : 도다이 체르비

-1대 : 도콜코 체르비


-도다이 체르비[dodai cerbi]

-도콜코 체르비[doqolqu cerbi]

-우겔레 체르비[ögele cerbi]

-톨론 체르비[tolun cerbi]

-보차란 체르비[bucaran cerbi]

-수위게투 체르비[söyiketü cerbi]


★ 근무형태

3일간 근무에 들어온 전통사+위사

-주간 정위치 근무

-야간에는 숙위에게 무기 인계하고 취침/휴식


숙위

-주간 휴식

-야간 칸 주변 근무/취침조는 칸 게르 인근에서 취침

-야간에 허락없이 칸 게르 근처로 오는 자는 어떤 자라도 죽일 수 있음

-눈비에도 자리 이탈 금지


친위대 숙영지

-우익 : 예순테에, 부키데이(부기데이) 전통사 + 알치다이, 우굴레, 아코타이 위사

-좌익 : 보카, 도다이 체르비, 도콜코 체르비, 차나이 위사

-숙위대는 궁 바로 좌측


시기 코토코 : 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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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칸의 부대 편성(약 13만명) 및 부하 서열


요약.

1206년 몽골 초원을 통일한 테무진은 마침내 오논강에서 쿠릴타이를 열어 칭기스칸에 즉위한다.

이 칭호는 무당(캄) 쿠쿠추 텝 텡게리가 정해준 것이었다.

칭기스칸은 천호제를 완전히 정립시켜 기존 부족제 중심의 군편제를

유능한 부하 85명들을 천호장으로 삼아 일사분란한 군조직으로 탈바꿈한다.

또한 보오르초를 우익 만호, 무칼리를 좌익 만호, 냐아아를 중군 만호로 삼아 천호들을 통솔하게 한다.

또한 기존 테무진을 호위하던 친위대를 숙위 1천, 전통사 1천, 위사 8천 총 1만으로 대폭 강화한다.

또한 강력한 법령인 자사그를 선포하여 몽골군은 1206년을 기점으로 이전의 조직과는 완전히 다른 군대가 된다.

칭기스칸은 곧장 쿠빌라이와 제베를 보내 나이만 잔당을 토벌하게 하였고 

1207년 서하 정벌전을 시작하여 서하의 성들을 파죽지세로 함락한다.

1208년 금 6대 황제 장종이 죽고 위소왕 완안영제(윤제)가 등극한다.

1209년 위구르 군주 이디쿠트가 메르키트의 잔당 쿠두를 공격하고 칭기스칸에게 귀부한다.



-10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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