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무친정록 칭기스 가한 15부-초원통일, 서하 침공, 위그루가 복속하다. 성무친정록 칭기스 가한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오늘은 13세기에 원나라에서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원태조 칭기스칸의 일대기를 기록한 

성무친정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1부-13쿠리엔, 자무카 치노스(늑대)를 삶다!

2부-타이치오트를 배반한 주리야트가 멸망하다!

3부-원수 타타르를 멸하고 보르지긴 적통 주르킨을 섬멸하다!

4부-의부 왕 가한의 세력을 회복시키다!

5부-변심한 왕 가한에게 4장군을 보내 구원하다!

6부-왕 가한 동생 자아감보에게 침을 뱉고 모욕하다!

7부-자무카를 추대한 부족 연맹군을 격파하다!

8부-쿠이텐 대승 후 혼사 문제로 왕 가한과 틀어지다!

9부-칼라지트 전투!

10부-배신한 왕 가한을 꾸짖다!

11부-나를 배신한 일족들이여! 땅을 다른 씨족에게 뺏기지 말라!

12부-발주나 맹약

13부-제지르 운두르를 기습하여 왕 가한을 멸하다!

14부-남부 나이만 타양 가한을 멸하다!


원사 칭기스 카안

만주어 원사 칭기스 한

신원사 칭기스 칸

성무친정록 칭기스 가한

만주어 몽고원류 칭기스 카간

원조비사 칭기스 카한

신원사 본기 서기


만주어 요나라 태조 아보오지

만주어 금나라 태조 아구다

만주어 청나라 태조 누르가치


원문 출처 : https://ctext.org/wiki.pl?if=gb&chapter=734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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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丑,征西夏,攻破力吉裏寨,經落思城,大掠人民,多獲橐駝而還。

丙寅,大會諸王百官於斡難河之源,建九遊之白旗。

共上尊號曰成吉思皇帝。

復發兵征乃蠻杯祿可汗,獵於兀魯塔山莎合水上,擒之。

是時,太陽可汗子屈出律可汗與脫脫遁走,奔也兒的石河。

丁卯夏,頓兵。

秋,再征西夏。

冬,克斡羅孩城。

先遣按彈、不兀剌二人使乞力吉思部。

其長斡羅思亦難及阿裏替也兒、野牒亦納裏部,亦遣亦力哥帖木兒、阿忒黑拉二人偕我使來獻白海青為好也。

戊辰春,班師至自西夏,避暑於龍庭。

冬,再征脫脫及曲出律可汗。

時斡亦剌部長忽都花別吉不戰而降,因用為鄉導。

至也兒的石河,盡討蔑裏乞部。

脫脫中流矢而死。

曲出律可汗僅以數人脫走,奔契丹主菊兒可汗。

己巳春,畏吾兒國王亦都護聞上威名,遂殺契丹所置監國少監,欲求議和。

上先遣按力不也奴、答兒拜二人使其國。

亦都護大喜,待我禮甚厚,即遣其官別吉思、阿鄰帖木兒二人入奏曰:

「臣竊聞皇帝威名, 故棄契丹舊好,方將遣使來通誠意,躬自效順,豈料遠辱天使降臨下國,譬雲開見日、冰泮得水,喜不勝矣。

  而今而後,當盡率部眾,為仆為子,竭犬馬之勞也。」

當是時,蔑力乞脫脫子火都、赤剌溫、馬劄兒、禿薛幹以脫脫中流矢死,不能歸全屍,遂取其頭涉也兒的石河,將奔畏吾兒國,

先遣別幹者使亦都護。

亦都護殺之。

四人至,與畏吾兒大戰於嶄河。

亦都護先遣其官阿思蘭斡乞、孛羅的斤、亦難海牙、倉赤四人來告蔑力乞事。

上曰:

「亦都護果誠心戮力於我。」

以其已有來獻,尋遣安魯不也奴、答兒班二人復使其國。

亦都護遣使奉珍寶方物為貢。

을축년(乙丑/1205년)에, 서하(西夏)를 정(征)하여, 역길리채(力吉裏寨)를 공파(攻破)하였고,

락사성(落思城)을 경(經)하여, 인민(人民)을 대략(大掠)하였고, 탁타(橐駝)를 다획(多獲)하고는 환(還)하였다.

병인년(丙寅/1206년)에, 제왕(諸王)과 백관(百官)을 알난하(斡難河)의 원(源)에서 대회(大會)하였고,

구유(九遊)의 백기(白旗)를 건(建)하였다.

상(上)의 존호(尊號)를 공(共)하여 성길사황제(成吉思皇帝)라 말하였다.

다시 발병(發兵)하여 내만(乃蠻) 배록가한(杯祿可汗)을 정(征)하였고, 올로탑산(兀魯塔山) 사합수상(莎合水上)에서 

엽(獵)하였는데, 금지(擒之)하였다.

이때에, 태양가한(太陽可汗)의 자(子) 굴출률가한(屈出律可汗)이 탈탈(脫脫)과 함께 둔주(遁走)하여,

야아적석하(也兒的石河)로 분(奔)하였다.

정묘년(丁卯/1207년) 하(夏)에, 돈병(頓兵)하였다.

추(秋)에, 서하(西夏)를 재정(再征)하였다.

동(冬)에, 알라해성(斡羅孩城)을 극(克)하였다.

먼저 안탄(按彈)과 부올랄(不兀剌) 2인(人)을 걸렬길사부(乞力吉思部)에 사신(使)으로 보냈다.

그 장(長) 알라사역난(斡羅思亦難)과 더불어 아리체야아(阿裏替也兒)와 야첩역납리부(野牒亦納裏部)가 역시(亦) 

역력가첩목아(亦力哥帖木兒)와 아특흑랍(阿忒黑拉) 2인(人)을 견(遣)하여, 아사(我使)와 함께 백해청(白海青)을 

내헌(來獻)하여 호(好)로 삼았다.

무진년(戊辰/1208년) 춘(春)에, 반사(班師)하여 서하(西夏)에서부터 용정(龍庭)에 지(至)하여 피서(避暑)하였다.

동(冬)에, 탈탈(脫脫)과 더불어 곡출률가한(曲出律可汗)을 재정(再征)하였다.

이때 알역랄부장(斡亦剌部長) 홀도화별길(忽都花別吉)이 부전(不戰)하고 항(降)하였는데, 이로 인(因)하여 용(用)하여 

향도(鄉導)로 삼았다.

야아적석하(也兒的石河)에 지(至)하여, 멸리걸부(蔑裏乞部)를 진토(盡討)하였다.

탈탈(脫脫)은 유시(流矢)에 중(中)하여 사(死)하였다.

곡출률가한(曲出律可汗)은 겨우 수인(數人)으로써 탈주(脫走)하였고, 글단주(契丹主) 국아가한(菊兒可汗)에게 분(奔)하였다.

기사년(己巳/1209년) 춘(春)에, 외오아국주(畏吾兒國王) 역도호(亦都護)가 상(上)의 위명(威名)을 문(聞)하여,

마침내 글단(契丹)이 소치(所置)한 감국(監國) 소감(少監)을 살(殺)하고, 의화(議和)를 청(求)하고자 하였다.

상(上)이 안력부야노(按力不也奴)와 답아배(答兒拜) 2인(人)을 사신(使)으로 그 국(國)에 선견(先遣)하였다.

역도호(亦都護)가 대희(大喜)하였고, 대아(待我)의 예(禮)가 심후(甚厚)하였고, 즉(即) 그 관(官) 별길사(別吉思)와 

아린첩목아(阿鄰帖木兒) 2인(人)을 견(遣)하여 입주(入奏)하여 말하길

「신(臣)이 황제(皇帝)의 위명(威名)을 절문(竊聞/남몰래 들음)하였고, 이런 연고(故)로 글단(契丹)의 구호(舊好)를 

  기(棄)하고, 바야흐로 장차(將) 견사(遣使)하여 성의(誠意)를 내통(來通)하여, 몸소 스스로 효순(效順/귀순)하고자 하였는데,

  어찌 멀리서 황공하게 천사(天使)가 하국(下國)에 강림(降臨)할 것이라고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비유(譬)하자면 운개견일(雲開見日/구름이 열려 해를 봄)하고, 빙반득수(冰泮得水/얼음이 풀려 물이 됨)한 것과 같으니, 

  희(喜)가 불승(不勝)할 뿐이옵니다.

  이금이후(而今而後)로, 마땅히 부중(部眾)을 진솔(盡率)하여, 부(仆/종)가 되고 자(子)가 되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갈(竭/다함)하겠나이다!」

이당시에, 멸력걸(蔑力乞) 탈탈(脫脫)의 자(子) 화도(火都), 적랄온(赤剌溫), 마차아(馬劄兒), 독설간(禿薛幹)은

탈탈(脫脫)이 유시(流矢)에 중(中)하여 사(死)함으로써, 시(屍)를 온전히(全) 귀(歸)할 수가 없게되자,

마침내 그 두(頭)를 취(取)하여 야아적석하(也兒的石河)를 섭(涉)하였고, 장차(將) 외오아국(畏吾兒國)으로 분(奔)하고자, 

별간자(別幹者)를 사신(使)으로 역도호(亦都護)에 선견(先遣)하였는데, 역도호(亦都護)가 살지(殺之)하였다.

4인(人)이 지(至)하자, 외오아(畏吾兒)와 더불어 참하(嶄河)에서 대전(大戰)하였다.

역도호(亦都護)가 그 관(官) 아사란알걸(阿思蘭斡乞), 패라적근(孛羅的斤), 역난해아(亦難海牙), 창적(倉赤) 4인(人)을 

선견(先遣)하여 멸력걸(蔑力乞)의 사(事)를 내고(來告)하였다.

상(上)이 말하길

「역도호(亦都護)과 과연(果) 아(我)에게 성심(誠心)으로 육력(戮力/서로 힘을 모음)하는 구나!」

이로써 그가 이미(已) 내헌(來獻)함이 있자, 거듭 안로부야노(安魯不也奴)와 답아반(答兒班) 2인(人)을 다시 

그 국(國)에 사신(使)으로 보냈다.

역도호(亦都護)가 견사(遣使)하고 진보(珍寶)와 방물(方物)을 봉(奉)하여 공(貢)하였다.


<1205년 서하 정벌>


<1206년 칭기스 가한 즉위>


<1206년 북부 나이만 부이룩 가한 정벌전>


<1207년 칭기스 가한에게 흰 송골매를 헌상한 키르키즈 부족>

<1209년 서하 3차 정벌전>

<1208년 구출룩 칸 추격전>


1205년에 서하를 정벌하여 리킬리(역길리) 산채를 공격하여 깨트렸고

킹로스(락사) 성을 넘어 인민을 크게 약탈하였고 낙타를 많이 획득하고는 돌아왔다.

1206년에 여러 왕과 백관을 오논강(알난하) 발원지에서 모이게 하고 쿠릴타이(대회)를 열어 

구유백기(9개의 다리를 지닌 흰 깃발/예순 쿨투 차가안 토르)를 세웠으며,

함께 상에게 존호를 올려 칭기스 황제(성길사 황제)라 말하였다.

다시 출병하여 나이만(내만) 부이룩 가한을 정벌하였는데, 울룩 탁(올로 탑) 산 소코크(사합/수자우) 강위에서 사냥하는 것을 

사로잡았다.

이때에 타양 가한의 아들 구출룩 가한(굴출률 가한/쿠쉴룩)이 톡타이(탈탈)와 함께 도주하여 에르디시(야아적석/이르티슈) 

강으로 달아났다.

1207년 여름에 군을 정돈하였고, 가을에 다시 서하를 정벌하였으며, 겨울에 에리카이(알라해) 성을 함락하였다.

먼저 알탄(안탄)과 보오라(부올랄/부라) 2인을 키르키즈(걸렬길사/킬리기스) 부족에 사신으로 보냈다.

그 추장 오로스 이날(알라사역난)과 더불어 알 디에르(아리 체야아), 이티 오론(야첩 역납리) 부족이 또 일릭 테무르

(역력가 첩목아/일릭 티무르)와 아트 키라(아특 흑랍/아트 키락) 2인을 보내 우리 사신과 함께 흰색 송골매를 헌상하여 와서 

우호로 삼았다.

1208년 봄에 회군하여 서하로부터 용정에 이르러 피서하였다.

겨울에 다시 톡타이(탈탈)와 더불어 구출룩 가한을 정벌하였다.

이때 오이라트(알역랄) 부족장 쿠투카 베키(홀도화 별길)이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향도로 이용하였다.

에르디시(야아적석) 강에 이르러 메르키트(멸리걸) 부족을 모조리 토벌하였다.

톡타이는 유시에 명중하여 죽었고, 구출룩 가한은 겨우 몇 명을 데리고 탈주하였고 카라키타이(거란/서요/치단) 주인 

구르 가한(국아 가한)에게 달아났다.

1209년 봄에 위그루(외오아) 국주 이디쿠트(역도호)가 상의 위명을 듣더니 마침내 카라키타이가 배치한 감국 샤우감(소감)을 

살해하고 화친의 의논을 청하고자 하였다.

상이 먼저 알프 우누크(안력 부야노)와 다르바이(답아배) 2인을 사신으로 그 나라에 보냈다.

이디쿠트가 크게 기뻐하였고 우리를 대접하는 예가 심히 후하였으며 즉시 그 관리 부쿠시 이시 아이구치(별길사)와 

알긴 티무르 투툭(아린 첩목아) 2인을 보내 들어와 아뢰게 하며 말하길

「신이 황제의 위명을 남몰래 듣고 이런 연고로 카라키타이와의 옛 우호를 버리고

  바야흐로 장차 사신을 보내 성의를 통하고 몸소 귀순하고자 하였는데

  어찌 멀리서 황공하게 천자의 사신이 하국에 강림할 것이라고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비유하자면 구름이 열려 해를 본 것과 같고, 얼음이 풀려 물이 된 것과 같으니 기쁨을 이길 수 없을 뿐이옵니다.

  지금 이후로 마땅히 부족 무리를 모조리 인솔하여 종이 되고 아들이 되어 견마지로를 다하겠나이다!」

이 당시에 메르키트(멸력걸) 톡타이의 아들 쿠두(화도), 칠라운(적랄온), 마자르(마차아), 쿨투칸 메르겐(독설간)는

톡타이가 유시에 명중하여 죽고 시신을 온전히 수습할 수가 없게 되자 마침내 그 머리를 취하여 에르디시(야아적석) 강을 건너 

장차 위그루 국으로 달아나고자 별도로 주관하는 자(에부겐)를 사신으로 이디쿠트에게 먼저 보냈는데 이디쿠트가 살해하였다.

4인이 이르자 위그루와 더불어 잠 무렌(참하)에서 크게 싸웠다.

이디쿠트가 그 관리 아르슬란 우게(아사란 알걸), 볼라드 치긴(패라 적근/풀라드 티긴), 이난치 카야(역난 해아/카야 숭치), 

창치(창적/차룩 우게) 4인을 먼저 보내 메르키트의 일을 고하였다.

상이 말하길

「이드쿠트가 과연 나에게 성심으로 힘을 주고자 하는구나!」

이로써 그가 이미 와서 바치자 거듭 알프 우누크와 다르바이 2인을 다시 그 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이디쿠트가 사신을 보내 진귀한 보물과 방물을 바쳐 조공하였다.



요약.

1205년 몽골군은 마침내 서하를 침공한다.

직접적인 원인은 신원사에 따르면 케레이트 잔당 셍군을 서하가 받아들였다는 이유였다.

몽골군은 리킬리성과 킹로스성을 함락하고 약탈한다.

1206년 마침내 테무진은 오논강에서 쿠릴타이를 열어 칭기스 가한에 즉위한다.

이후 몽골군은 부이룩이 울룩탁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급습하여 살해하여 북 나이만을 멸하고

마침내 몽골리아 초원을 모조리 통일한다.

1207년 몽골군은 다시 서하를 침공하여 에리카이성을 함락한다.

1208년 칭기스 가한은 나이만 잔당 구출룩과 메르키트 잔당 톡토아를 정벌한다.

톡토아는 전사했고, 구출룩은 서요로 달아난다.

1209년 서요의 간섭을 받고 있던 위그루 군주 이디쿠트가 서요의 소감을 살해하고 몽골에 투항한다.

칭기스 가한은 이디쿠트에 딸을 주고 5번째 아들로 삼는다.


-16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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