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무친정록 칭기스 가한 20부-칭기스 가한 죽다! 성무친정록 칭기스 가한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오늘은 13세기에 원나라에서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원태조 칭기스칸의 일대기를 기록한 

성무친정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1부-13쿠리엔, 자무카 치노스(늑대)를 삶다!

2부-타이치오트를 배반한 주리야트가 멸망하다!

3부-원수 타타르를 멸하고 보르지긴 적통 주르킨을 섬멸하다!

4부-의부 왕 가한의 세력을 회복시키다!

5부-변심한 왕 가한에게 4장군을 보내 구원하다!

6부-왕 가한 동생 자아감보에게 침을 뱉고 모욕하다!

7부-자무카를 추대한 부족 연맹군을 격파하다!

8부-쿠이텐 대승 후 혼사 문제로 왕 가한과 틀어지다!

9부-칼라지트 전투!

10부-배신한 왕 가한을 꾸짖다!

11부-나를 배신한 일족들이여! 땅을 다른 씨족에게 뺏기지 말라!

12부-발주나 맹약

13부-제지르 운두르를 기습하여 왕 가한을 멸하다!

14부-남부 나이만 타양 가한을 멸하다!

15부-초원통일, 서하 침공, 위그루가 복속하다.

16부-야호령에서 금 정예병을 몰살시키다

17부-거용관 돌파/북중국 초토화!

18부-금 93년 만에 북경을 잃다!!!

19부-무칼리를 국왕으로 삼고 금 정벌 사령관에 임명하다!


원사 칭기스 카안

만주어 원사 칭기스 한

신원사 칭기스 칸

성무친정록 칭기스 가한

만주어 몽고원류 칭기스 카간

원조비사 칭기스 칸

신원사 본기 서기


만주어 요나라 태조 아보오지

만주어 금나라 태조 아구다

만주어 청나라 태조 누르가치


원문 출처 : https://ctext.org/wiki.pl?if=gb&chapter=734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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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卯,上總兵征西域。

庚辰,至也兒的石河住夏。

秋,進兵,所過城皆克。

至斡脫羅兒城,上留二太子、三太子攻守,尋克之。

辛巳,上與四太子進攻卜哈兒、薛迷思幹等城,皆克之。

大太子又克養吉幹、八兒真等城。

夏,上避暑於西域速裏壇避暑之地,命忽都忽那顏為前鋒。

秋,分遣大太子、三太子率右軍攻玉龍傑赤城,以軍集奏聞,上有旨曰:

「軍既集,可聽三太子節制也。」

於是上進兵,過鐵門關,命四太子攻也裏、泥沙兀兒等城。

上親克叠兒密城。

又破班勒紇城,圍守塔裏寒寨。

冬,四太子又克馬魯察葉可、馬盧、昔剌思等城,復進兵。

壬午春,又克徒思、匿察兀兒等城。

上以暑氣方隆,遣使招四太子速還,因經木剌奚國,大掠之。

渡搠搠蘭河,克野裏等城。

上方攻塔裏寒寨,朝覲畢,並兵克之。

三太子克玉龍傑赤城,大太子還營所。

寨破後,二太子、三太子始來相覲。

是夏,避暑於塔裏寒寨高原。

時西域速裏壇劄蘭丁遁去,遂命哲別為先鋒迫之,再遣速不臺拔都為繼,又遣脫忽察兒殿其後。

哲別至蔑裏可汗城,不犯而過。

速不臺拔都亦如之。

脫忽察兒至,與其外軍戰。

蔑裏可汗懼,棄城走。

忽都忽那顏聞之,率兵進襲。

時蔑裏可汗與劄闌丁合,就戰,我不利,遂遣使以聞。

上自塔裏寒寨率精銳親擊之,追及辛口連河,獲蔑裏可汗,屠其眾。

劄闌丁脫身入河,泳水而遁。

遂遣八剌那顏將兵急迫之,不獲。

因大虜忻都人民之半而還。

癸未春,上兵循辛目連河而上,命三太子循河而下,至昔思丹城,欲攻之,遣使來稟命。

上曰:

「隆暑將及,宜別遣將攻之。」

夏,上避暑於八魯灣川,候八剌那顏,因討近敵,悉平之。

八剌那顏軍至,遂行至可溫寨,三太子亦至。

上既定西域,置達魯花赤於各城,監治之。

甲申,旋師住冬,避暑,且止且行。

乙酉春,上歸國,自出師凡七年。

是夏,避暑。

秋,復總兵征西夏。

丙戌春,至西夏。

一歲間盡克其城,時上年六十五。

丁亥,滅其國以還。

太祖聖武皇帝升遐之後,太宗皇帝即大位以前,太皇帝時為太子。

기묘년(己卯/1219년)에, 상(上)이 총병(總兵)하여 서역(西域)을 정(征)하였다.

경진년(庚辰/1220년)에, 상(上)이 야아적석하(也兒的石河)에 지(至)하여 하(夏)에 주(住)하였다.

추(秋)에, 진병(進兵)하였는데, 소과(所過)하는 성(城)이 모두 극(克)하였다.

알탈라아성(斡脫羅兒城)에 지(至)하여, 상(上)이 이태자(二太子)와 삼태자(三太子)를 유(留)하여 공수(攻守)하게 하였는데, 

잇달아 극지(克之)하였다.

신사년(辛巳/1221년)에, 상(上)이 사태자(四太子)와 함께 복합아(卜哈兒)와 설미사간(薛迷思幹) 등(等)의 성(城)을 

진공(進攻)하여, 모두 극지(克之)하였다.

대태자(大太子)가 또 양길간(養吉幹)과 팔아진(八兒真) 등(等)의 성(城)을 극(克)하였다.

하(夏)에, 상(上)이 서역(西域) 속리단(速裏壇) 피서(避暑)의 지(地)에서 피서(避暑)하였고, 명(命)하여 홀도홀(忽都忽) 

나안(那顏)을 전봉(前鋒)으로 삼았다.

추(秋)에, 대태자(大太子)와 삼태자(三太子)를 분견(分遣)하여 우군(右軍)을 솔(率)하고 옥룡걸적성(玉龍傑赤城)을 

공(攻)하게 하였고, 군집(軍集)으로써 주문(奏聞)하니, 상(上)이 유지(有旨)하여 말하길

「군(軍)이 이윽고 집(集)하였으니, 가히(可) 삼태자(三太子)의 절제(節制)를 청(聽)할만 하다!

이에 상(上)이 진병(進兵)하였고, 철문관(鐵門關)을 과(過)하였으며,

명(命)하여 사태자(四太子)는 야리(也裏)와 니사올아(泥沙兀兒) 등(等)의 성(城)을 공(攻)하게 하였다.

상(上)이 첩아밀성(叠兒密城)을 친극(親克)하였다.

또 반륵흘성(班勒紇城)을 파(破)하였고, 탑리한채(塔裏寒寨)를 위수(圍守)하였다.

동(冬)에, 사태자(四太子)가 또 마로찰엽가(馬魯察葉可), 마로(馬盧), 석랄사(昔剌思) 등(等)의 성(城)을 극(克)하였고, 

다시 진병(進兵)하였다.

임오년(壬午/1222년) 춘(春)에, 또 도사(徒思)와 닉찰올아(匿察兀兒) 등(等)의 성(城)을 극(克)하였다.

상(上)이 서기(暑氣/무더위)가 바야흐로 융(隆)함으로써, 견사(遣使)하여 사태자(四太子)를 초(招)하여 속환(速還)하게 하였는데,

이로 인(因)하여 목랄해국(木剌奚國)을 경(經)하며, 대략지(大掠之)하였다.

삭삭란하(搠搠蘭河)를 도(渡)하여, 야리(野裏) 등(等)의 성(城)을 극(克)하였다.

상(上)이 바야흐로 탑리한채(塔裏寒寨)를 공(攻)하였는데, 조근(朝覲/알현)을 필(畢)하자, 병병(並兵)하여 극지(克之)하였다.

삼태자(三太子)가 옥룡걸적성(玉龍傑赤城)을 극(克)하였고, 대태자(大太子)는 영소(營所)에 환(還)하였다.

채(寨)가 파(破)한 후(後)에, 이태자(二太子)와 삼태자(三太子)가 비로소 래(來)하여 상근(相覲)하였다.

이 하(夏)에, 탑리한채(塔裏寒寨) 고원(高原)에서 피서(避暑)하였다.

이때 서역(西域) 속리단(速裏壇) 차란정(劄蘭丁)이 둔거(遁去)하였는데, 마침내 명(命)하여 철별(哲別)을 선봉(先鋒)으로 

삼아 박지(迫之)하였고, 속부대(速不臺) 발도(拔都)를 재견(再遣)하여 계(繼)하게 하였고, 또 탈홀찰아(脫忽察兒)를 

견(遣)하여 그 후(後)를 전(殿/진무함)하였다.

철별(哲別)이 멸리가한성(蔑裏可汗城)에 지(至)하였는데, 불범(不犯)하고는 과(過)하였다.

속부대(速不臺) 발도(拔都) 역시(亦) 그와 같았다.

탈홀찰아(脫忽察兒)가 지(至)하여, 그 외군(外軍)과 더불어 전(戰)하였다.

멸리가한(蔑裏可汗)이 구(懼)하여, 기성(棄城)하고는 주(走)하였다.

홀도홀(忽都忽) 나안(那顏)이 문지(聞之)하더니, 솔병(率兵)하여 진습(進襲)하였다.

이때 멸리가한(蔑裏可汗)이 차란정(劄闌丁)과 더불어 합(合)하여 취전(就戰/나아가 싸움)하였는데, 아(我)가 불리(不利)하였고,

마침내 견사(遣使)하여 이문(以聞)하였다.

상(上)이 탑리한채(塔裏寒寨)로부터 정예(精銳)를 솔(率)하여 친격지(親擊之)하였고, 신구련하(辛口連河)에 추급(追及)하여, 

멸리가한(蔑裏可汗)을 획(獲)하였으며, 그 중(眾)을 도(屠)하였다.

차란정(劄闌丁)이 탈신(脫身)하여 입하(入河)하였고, 영수(泳水)하여 둔(遁)하였다.

마침내 팔랄(八剌) 나안(那顏)을 견(遣)하여 장병(將兵)하고 급박지(急迫之)하였으나, 불획(不獲)하였다.

이로 인(因)하여 흔도(忻都)의 인민(人民)의 반(半)을 대노(大虜)하고는 환(還)하였다.

계미년(癸未/1223년) 춘(春)에, 상(上)의 병(兵)이 신목련하(辛目連河)를 순(循)하며 이상(而上)하였고,

명(命)하여 삼태자(三太子)는 순하(循河)하며 이하(而下)하게 하였는데, 석사단성(昔思丹城)에 지(至)하여,

공지(攻之)하고자 하였는데, 견사(遣使)하여 품명(稟命/명령을 받음)하여 왔다.

상(上)이 말하길

「융서(隆暑/무더위)가 장급(將及)하니, 마땅히 장(將)을 별견(別遣)하여 공지(攻之)하라!」

하(夏)에, 상(上)이 팔로만천(八魯灣川)에 피서(避暑)하였고, 팔랄나안(八剌那顏)을 후(候/염탐함)하였는데,

이로 인(因)하여 근적(近敵)을 토(討)하였고, 실평지(悉平之)하였다.

팔랄나안(八剌那顏)의 군(軍)이 지(至)하자, 마침내 행(行)하여 가온채(可溫寨)에 지(至)하였고, 삼태자(三太子) 역시(亦) 

지(至)하였다.

상(上)이 이윽고 서역(西域)을 정(定)하고, 각성(各城)에 달로화적(達魯花赤)를 치(置)하여, 감치지(監治之)하였다.

갑신년(甲申/1224년)에, 선사(旋師/승전하고 회군함)하여 주동(住冬/겨울을 보냄)하고 피서(避暑)하였으며,

또 지(止)하고 또 행(行)하였다.

을유년(乙酉/1225년) 춘(春)에, 상(上)이 귀국(歸國)하였는데, 출사(出師)함으로부터 무릇 7년이었다.

이 하(夏)에 피서(避暑)하였다.

추(秋)에 다시 총병(總兵)하고 서하(西夏)를 정(征)하였다.

병술년(丙戌/1226년) 춘(春)에, 서하(西夏)에 지(至)하였다.

일세간(一歲間)에 그 성(城)을 진극(盡克)하였는데, 이때 상(上)의 년(年) 65였다.

정해년(丁亥/1227년)에, 그 국(國)을 멸(滅)하고 이로써 환(還)하였다.

태조(太祖) 성무황제(聖武皇帝)의 승하(升遐)한 후(後)에, 

태종(太宗/우구데이) 황제(皇帝)가 대위(大位)에 즉위(即)하기 이전(以前)이었는데, 태상황제(太上皇帝/톨루이)가 

이때 태자(太子)가 되었다.




1219년에 상이 군을 통솔하여 서역을 정벌하였다.

1220년에 상이 에르디쉬(야아적석) 강에 이르러 여름동안 머물렀다.

가을에 진군하여 지나는 성마다 모두 함락하였다.

오트라르(알탈라아/오다라르) 성에 이르렀는데 상이 이태자(차카타이)와 삼태자(우구데이)를 남겨 공격하여 지키게 하였는데 

잇달아 함락하였다.

1221년에 상이 사태자(톨루이)와 함께 부하라(복합아/보카르)와 사마르칸트(설미사간/세미스갑) 등의 성을 진군하여 

공격하여 모두 함락하였다.

대태자(주치)가 또 양기켄트(양길간)와 바르진(팔아진/바르친/바르치칸/바르칠릭켄트) 등의 성을 함락하였다.

여름에 상이 서역 술탄(속리단)의 피서지에서 피서하였고 명하여 쿠투쿠 노얀(홀도홀 나안)을 선봉으로 삼았다.

가을에 대태자(주치)와 삼태자(우구데이)를 나누어 보내 우군을 인솔하고 우룽게치(옥룡걸적/우르겐치) 성을 공격하게 하였고

군이 모였다 보고하니 상이 유지를 내려 말하길

「군이 이윽고 모였으니 가히 삼태자(우구데이)의 절제를 들어줄만 하다!」

이에 상이 진군하였고 티무르 카할카(철문관)을 지나 명을 내려 사태자(톨로이)는 해라트(야리/이로/헤라트)와 

나흐샤브(니사올아/이세부르/니샤푸르) 등의 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상이 티르미드(첩아밀) 성을 친히 함락하였다.

또 발흐(반륵흘)성을 격파하였고 탈리칸 성채(탑리한채)를 포위하여 지켰다.

겨울에 사태자(톨로이)가 또 마루축(마로찰엽가), 메르브(마로), 사락스(석랄사) 등의 성을 함락하였고 다시 진군하였다.

1222년 봄에 또 두즈(도사)와 니샤푸르(닉찰올아) 등의 성을 함락하였다.

상이 바야흐로 무더위가 기승하니 사신을 보내 사태자(톨로이)를 불러 속히 돌아오게 하였고 이로 인하여 

쿠히스탄(목랄해국)을 경유하여 크게 약탈하였다.

축추란(삭삭란/촉체렌) 강을 건너 해라트(야리) 등의 성을 함락하였다.

상이 바야흐로 탈리칸 성채(탑리한 채)를 공격하였는데 알현을 마치자 군을 합하여 함락하게 하였다.

삼태자(우구데이)가 우룽게치(옥룡걸적/우르겐치) 성을 함락하였고 대태자(주치)는 자신의 군영으로 돌아갔다.

성채가 격파된 뒤에 이태자(차카타이)와 삼태자가 비로소 와서 서로 알현하였다.

이 여름에 탈리칸 성채의 고원에서 피서하였다.

이때 서역 술탄(속리단) 잘랄 앗 딘(차란정/잘랄딩/망구베르티/밍부르누)가 도망쳤는데 마침내 명하여 제베(철별)를 

선봉으로 삼아 추격하게 하였고 수부타이 바하두르(속부대 발도)를 다시 보내 이어가게 하였고 

또 토쿠차르(탈홀찰아/토코차르)를 보내 그 후미를 진무하게 하였다.

제베가 말릭 칸(멸리가한/멜릭 칸/말릭 칸 아민 알 물크)의 성에 이르렀는데 범하지 않고 지나갔다.

수부타이 바하두르 또한 그와 같았다.

토쿠차르가 이르러 그 외군과 더불어 싸웠다. 말릭 칸이 두려워하여 성을 버리도 달아났다.

쿠투쿠 노얀(홀도홀 나안)이 듣고는 군을 인솔하여 진군하여 기습하였다.

이때 말릭 칸이 잘랄 앗 딘과 더불어 합병하고 나아가 싸웠는데 아군이 불리하였고 마침내 사신을 보내 보고하였다.

상이 탈리칸 성채로부터 정예를 인솔하고 친히 공격하였고 추격하여 인더스강(신구련하/신강)에 이르러 말릭 칸을 사로잡았고

그 무리를 도륙하였다.

잘랄 앗 딘은 몸을 빼내 물에 들어가 수영하여 달아났다.

마침내 발라 노얀(팔랄 나안)을 보내 군을 거느리고 급히 추격하게 하였으나 사로잡지 못하였다.

이로 인하여 힌두(흔도/인도 지역) 인민의 반을 크게 사로잡고는 돌아왔다.


1223년 봄에 상의 군이 인더스강(신목련하)를 돌며 위로 올라갔고 명을 내려 삼태자(우구데이)는 하천을 돌며 아래로 

내려가게 하였는데 시스탄(석사단/시스텐) 성에 이르러 공격하고자 하였고 사신을 보내 명을 받고자 하여 왔다.

상이 말하길

「장차 무더위가 이를 것이니 마땅히 별도로 장군을 보내 공격하게 하라!」

여름에 상이 파르반(팔로만천/바로안)에서 피서하였고 발라 노얀(팔랄 나안)을 염탐하게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근방의 적을 

토벌하여 모조리 평정하였다.

발라 노얀의 군이 이르자 마침내 행군하여 코나온 성채(가온채/쿠나운 쿠르간)에 이르렀고 삼태자 또한 이르렀다.

상이 이윽고 서역을 정벌하고 각성에 다루가치(달로화적/다로가치)를 배치하여 감독하여 다스리게 하였다.

1224년에 승전하고 회군하여 겨울을 보냈고, 여름엔 피서하였는데 또 멈추고 또 행군하였다.

1225년 봄에 상이 귀국하였는데 출병함으로부터 무릇 7년이었다.

이 여름에 피서하였다.

가을에 다시 군을 통솔하고 서하를 정벌하였다.

1226년 봄에 서하에 이르렀다.

1년도 안돼 그 성들을 모조리 함락하였는데 이때 상의 춘추 65세였다.

1227년에 그 나라를 멸하고 이로써 돌아왔다.

태조 성무황제의 승하가 승하한 후에 태종황제(우구데이)가 대위에 즉위하기 전에 태상황제(톨루이)가 이때 태자가 되었다.


*잘랄 앗 딘/차란정(劄闌丁)

 : 호라즘 8대 술탄으로 7대 술탄 알라 앗 딘 무함마드의 아들이다.

   1220년 부친 무함마드 술탄이 몽골군을 피해 도주하다 카스피 해 아바스쿤 섬에서 병사하자 1221년 우르겐치에서 술탄으로 등극했다.

   1222년 말릭 칸을 추격하던 몽골 쿠투쿠 노얀을 파르반에서 싸워 대승한다.

   쿠투쿠 패전을 들은 칭기스칸은 곧바로 정예를 인솔하여 추격하였고

   인더스 강에서 잘랄 앗 딘과 말릭 칸의 연합군을 격파하고 말릭 칸을 사로잡는다.

   잘랄 앗 딘은 정예 700명과 끝까지 싸우다 세가 불리하자 인더스 강을 헤엄쳐 건너 달아난다.

   칭기스칸은 잘랄 앗 딘의 용맹과 용기를 칭찬하고 발라와 두르베이에게 추격을 명한다.

   잘랄 앗 딘은 인도, 이란을 거쳐 아제르바이잔에 이르러 세를 회복한다.

   그러나 1231년 디야르바르크에서 쿠르드족에게 살해당하고 호라즘은 멸망한다.


디스 이즈 호라즘!!! 몽골군을 몰살하고 100배의 적을 격파한 일기토 술탄 잘랄 앗 딘!


*칭기스칸 사후 톨루이가 임시 감국하였다가 태종에게 제위를 양보한다.

 후에 톨루이의 아들들인 뭉케, 쿠빌라이 등이 대칸이 되자 톨루이를 태상황제에 추존한다.

 즉 성무친정록은 태조와 태종의 일대기를 그린 사서이며, 편찬시기는 뭉케나 쿠빌라이 시대로 추정된다.


요약.

1219년 칭기스 가한은 호라즘(서역)을 정벌한다.

1220년 여름에 에르디시에서 피서하고 가을에 다시 호라즘 정벌전을 재개하여 오트라르를 함락한다.

1221년 부하라/사마르칸트/양키켄트/바르진를 거쳐 마침내 수도 우르겐치를 공격한다.

몽골군은 다시 티무르 카할카를 거쳐 해라트/나흐샤브/티르미드/발흐/탈리칸/마루축/메르브/사락스 등을 공격한다.

1222년 몽골군은 두즈/니샤푸르/쿠히스탄/축추란/해라트/탈리칸을 공격하고 마침내 7개월간 버틴 수도 우르겐치를 함락한다.

호라즘 8대 술탄 잘랄 앗 딘은 세를 규합하여 몽골 쿠투쿠를 격파한다.

패전 소식을 들은 칭기스 가한은 본군을 이끌고 잘랄 앗 딘을 공격하였고 잘랄 앗 딘은 인더스 강을 도강하여 인도로 도주한다.

1223년 몽골군은 시스탄을 공격하고 코나온 성채를 거쳐 호라즘 전역에 다루가치를 배치하고 마침내 1224년 몽골로 회군한다.

전에 투항했던 서하가 징병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1225년에 7년 만에 몽골 초원으로 돌아온 칭기스 가한은 곧장 서하 정벌에 나섰고, 

1226년 서하의 성을 모조리 함락하고 수도를 포위하였다.

1227년 마침내 서하 10대 황제 이현이 항복을 청하였고 칭기스 가한은 이를 허락한다.

그러나 이현이 출성하기 전에 칭기스 가한은 사망한다.

칭기스 가한은 자신의 죽음을 발표하지 말며 이현이 출성하면 즉각 죽이라 유명을 남긴다.

이현이 출성하자 유언대로 모조리 죽였고 이로써 서하는 멸망한다.

4남 톨루이가 임시 감국하였고 3남 우구데이가 가한에 즉위한다.


-21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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