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틈틈이 원나라 태조 칭기스칸의 일대기를 연재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원나라 역사의 집대성이라 칭송받는 신원사 태조 본기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4부-등 돌린 옹칸을 다시 돕고 나이만군의 시체로 경관을 쌓다!
14부-수도함락, 여진족 영원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다!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96%B0%E5%85%83%E5%8F%B2/%E5%8D%B7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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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一年丙子春,帝自魚兒濼還盧朐河行宮,脫侖扯兒必克真定府。
夏四月,金將張開復取河間府、滄、獻、邢、清等州。
六月,張致陷興中府。
秋七月,木華黎敗張致於神木縣,進圍錦州。
八月,木華黎克錦州,張致伏誅。
進拔蘇、復、海等州,獲金將完顏眾家奴。
帝命撒木合率萬騎,假途西夏,以趨關中。
冬十月,撒木合攻潼關,間道出禁坑。
金兵潰走,獲其將尼蘭古蒲魯虎。
進略汝州,直抵南京之杏花營。
金花帽軍人援,撒木合戰不利。
引還。
花帽軍者,金蔚州人郭忠所將之義兵也。
十一月,撒木合敗金將蒲察阿里不孫干澠池,渡河,圍平陽府。
金主遣使乞和,帝欲許之,詔撒木合曰:
「譬圍場中,獐鹿吾已盡取,只餘一兔,盍舍之。」
撒木合請使金主去帝號,金主不從。
是冬,蒲鮮萬奴遣使來降。
已而復叛,自稱大真國。
十二年丁丑春,木華黎覲帝於土拉河。
夏,史天祥擊斬武平賊祁和尚及興州叛將重兒。
察罕敗金將夾谷監軍於霸州。
帝聞蔑兒乞餘眾入乃蠻境,問:
「諸將誰能爲我討蔑兒乞者?」
速不台請行,帝許之,命脫忽察兒率二千騎同往。
速不台至垂河,大敗蔑兒乞,盡殲其眾。
托黑托阿子忽都、赤剌溫二人,奔奇卜察克。
秋八月,封木華黎爲國王,賜九斿旗,諸將咸聽節制。
詔曰:
「太行以北,朕自製之;
太行以南,悉以付卿。」
於是木華黎專征河北,連拔遂城、蠡州。
冬,進克大名府金中山府、趙、邢、威、磁、洺等州守將俱以城降,遂東取淄、濰、登、萊、沂等州。
是年,禿馬特叛。
禿馬特酋歹都禿勒死,其妻脫灰塔兒渾率部眾以叛。
帝遣博爾忽討之,戰沒。
帝怒,議親征。
博爾術等諫,乃使朵兒伯朵黑申往。
朵兒伯朵黑申槎山通道,一戰平之,獲脫灰塔兒渾。
是年,帝將徵貨勒自彌,徵兵於西夏,不應,遂伐之。
11년 병자년(丙子/1216년) 춘(春)에, 제(帝)가 어아락(魚兒濼)으로부터 노구하(盧朐河) 행궁(行宮)으로 환(還)하였고,
탈륜차아필(脫侖扯兒必)은 진정부(真定府)를 극(克)하였다.
하(夏) 4월에, 금장(金將) 장개(張開)가 하간부(河間府), 창주(滄), 헌주(獻), 형주(邢), 청주(清) 등(等)의 주(州)를
복취(復取)하였다.
6월에, 장치(張致)가 흥중부(興中府)를 함(陷)하였다.
추(秋) 7월에, 목화려(木華黎)가 장치(張致)를 신목현(神木縣)에서 패(敗)하였고, 금주(錦州)를 진위(進圍)하였다.
8월에, 목화려(木華黎)가 금주(錦州)를 극(克)하였고, 장치(張致)는 복주(伏誅)하였다.
진(進)하여 소주(蘇), 복주(復), 해주(海) 등(等)의 주(州)를 발(拔)하였고, 금장(金將) 완안중가노(完顏眾家奴)를 획(獲)하였다.
제(帝)가 명(命)하여 살목합(撒木合)은 만기(萬騎)를 솔(率)하여, 서하(西夏)에게 가도(假途)하게 하였고,
이로써 관중(關中)에 추(趨)하게 하였다.
동(冬) 10월에, 살목합(撒木合)이 동관(潼關)을 공(攻)하였고, 간도(間道)하여 금갱(禁坑)으로 출(出)하였다.
금병(金兵)이 궤주(潰走)하였고, 그 장(將) 니란고포로호(尼蘭古蒲魯虎)를 획(獲)하였다.
진(進)하여 여주(汝州)를 약(略)하였고, 남경(南京)의 행화영(杏花營)에 직저(直抵)하였다.
금(金) 화모군인(花帽軍人)이 원(援)하였는데, 살목합(撒木合)의 전(戰)이 불리(不利)하니, 인환(引還)하였다.
화모군(花帽軍)이란 자(者)들은, 금(金) 울주인(蔚州人) 곽충(郭忠)이 소장(所將)한 의병(義兵)이었다.
11월에, 살목합(撒木合)이 금장(金將) 포찰아리부손(蒲察阿里不孫)을 민지(澠池)에서 패(敗)하였고, 도하(渡河)하여
평양부(平陽府)를 위(圍)하였다.
금주(金主)가 견사(遣使)하여 걸화(乞和)하였는데, 제(帝)가 허지(許之)하고자 하였고, 살목합(撒木合)에게 조(詔)하여 말하길
「비유(譬)하자면 장중(場中)을 위(圍)하면, 장록(獐鹿/노루와 사슴)은 내가 이미(已) 진취(盡取)하였고,
단지(只) 1토(兔)만 여(餘)하였는데, 어찌 사지(舍之/내버려 둠)하지 않겠는가?」
살목합(撒木合)이 금주(金主)로 하여금 제호(帝號)를 거(去)하길 청(請)하였는데, 금주(金主)가 불종(不從)하였다.
이 동(冬)에, 포선만노(蒲鮮萬奴)가 견사(遣使)하여 내항(來降)하였다.
이이(已而)에 복반(復叛)하고는, 대진국(大真國)을 자칭(自稱)하였다.
12년 정축년(丁丑/1217년) 춘(春)에, 목화려(木華黎)가 제(帝)를 토랍하(土拉河)에서 근(覲/알현함)하였다.
하(夏)에, 사천상(史天祥)이 무평(武平)의 적(賊) 기화상(祁和尚)과 더불어 흥주(興州)의 반장(叛將) 중아(重兒)를
격참(擊斬)하였다.
찰한(察罕)이 금장(金將) 협곡(夾谷) 감군(監軍)을 패주(霸州)에서 패(敗)하였다.
제(帝)가 멸아걸(蔑兒乞)의 여중(餘眾)이 내만(乃蠻)의 경(境)으로 입(入)하였다는 것을 문(聞)하니, 문(問)하길
「제장(諸將)으로 능히(能)히 위아(爲我)하여 멸아걸(蔑兒乞)을 토(討)할 자(者)가 누구인가?」
속부태(速不台)가 청행(請行)하니, 제(帝)가 허지(許之)하였고, 명(命)하여 탈홀찰아(脫忽察兒)는 2천기(騎)를 솔(率)하여
동왕(同往)하게 하였다.
속부태(速不台)가 수하(垂河)에 지(至)하여, 멸아걸(蔑兒乞)을 대패(大敗)하고, 그 중(眾)을 진섬(盡殲)하였다.
탁흑탁아(托黑托阿)의 자(子) 홀도(忽都)와 적랄온(赤剌溫) 2인은, 기복찰극(奇卜察克)으로 분(奔)하였다.
추(秋) 8월에, 목화려(木華黎)를 봉(封)하여 국왕(國王)으로 삼고, 구유기(九斿旗)를 사(賜)하였으며, 제장(諸將)은
절제(節制)를 함청(咸聽/모두 받아들임)하게 하였다.
조(詔)하여 말하길
「태행이북(太行以北)은, 짐(朕)이 자제지(自製之)하겠노라!
태행이남(太行以南)은, 모조리 이로써 경(卿)에게 부(付)하노라!」
이에 목화려(木華黎)가 하북(河北)을 전정(專征)하였고, 수성(遂城)과 여주(蠡州)를 연발(連拔)하였다.
동(冬)에, 진(進)하여 대명부(大名府)를 극(克)하였고, 금(金) 중산부(中山府), 조주(趙), 형주(邢), 위주(威), 자주(磁),
명주(洺) 등(等)의 주(州)의 수장(守將)이 모두 성(城)으로써 항(降)하니, 마침내 동(東)으로 치주(淄), 유주(濰), 등주(登),
래주(萊), 기주(沂) 등(等)의 주(州)를 취(取)하였다.
이해에, 독마특(禿馬特)이 반(叛)하였다.
독마특(禿馬特) 추(酋) 알도독륵(歹都禿勒)이 사(死)하자, 그 처(妻) 탈회탑아혼(脫灰塔兒渾)이 부중(部眾)을 솔(率)하여
이로써 반(叛)하였다.
제(帝)가 박이홀(博爾忽)을 견(遣)하여 토지(討之)하였는데, 전몰(戰沒)하였다.
제(帝)가 노(怒)하여, 친정(親征)을 의(議)하였다.
박이술(博爾術) 등(等)이 간(諫)하여, 이에 타아백타흑신(朵兒伯朵黑申)으로 하여금 왕(往)하게 하였다.
타아백타흑신(朵兒伯朵黑申)이 차산(槎山/산의 나무를 벰)하고 통도(通道)하여, 일전(一戰)하여 평지(平之)하였고,
탈회탑아혼(脫灰塔兒渾)을 획(獲)하였다.
이해에, 제(帝)가 장차(將) 화륵자미(貨勒自彌)를 징(徵)하고자 하여, 서하(西夏)에 징병(徵兵)하였는데, 불응(不應)하자,
마침내 벌지(伐之)하였다.





[칭기스 칸] 11년 1216년 봄에 황제가 어아락(쿠아울)으로부터 노구하 행궁으로 돌아왔고, 톨론 체르비(탈륜 차아필)는
진정부를 함락하였다.
여름 4월에 금 장수 장개가 하간부, 창주, 헌주, 형주, 청주 등의 주를 다시 취하였다.
6월에 장치가 흥중부를 함락하였다.
가을 7월에 무칼리가 장치를 신목현에서 깨트렸고 진군하여 금주를 포위하였다.
8월에 무칼리가 금주를 함락하였고 장치를 주살하였다.
진군하여 소주, 복주, 해주 등의 주를 함락하고 금 장수 완안중가노를 사로잡았다.
황제가 명하여 사무카(살목합)은 1만기를 인솔하여 서하에게 길을 빌려 이로써 관중으로 달려가게 하였다.
겨울 10월에 사무카가 동관(퉁간)을 공격하였고 사잇길로 가서 금갱으로 나왔다.
금군이 궤멸하여 도주하였고 그 장수 니란고포로호를 사로잡았다.
진군하여 여주를 약탈하였고 남경(개봉)의 행화영에 곧장 이르렀다.
금 화모군이 구원하였는데 사무카가 싸움이 불리하니 퇴각하였다.
화모군이란 자들은 금 울주인 곽충이 거느린 의병이었다.
11월에 사무카가 금 장수 포찰아리부손을 민지에서 깨트렸고, 강을 건너 평양부를 포위하였다.
금 임금이 사신을 보내 화친을 애걸하였는데 황제가 허락하고자 하였고, 사무카에게 조서를 내려 말하길
「비유하자면 사냥터를 포위하면 노루와 사슴은 내가 이미 모조리 취하였고 단지 토끼 한 마리만 남았는데
어찌 내버려 두지 않겠느냐?」
사무카가 금 임금으로 하여금 황제의 칭호를 제거하길 청하였는데 금 임금이 따르지 않았다.
이 겨울에 포선만노가 사신을 보내 항복하였다.
얼마 안 있어 다시 배반하였고 대진국(大真國)을 자칭하였다.
[칭기스 칸] 12년 1217년 봄에 무칼리가 황제를 토라강(토랍하)에서 알현하였다.
여름에 사천상이 무평의 도적 기화상과 더불어 흥주의 반란 장수 중아를 공격하여 참하였다.
차칸(찰한/차간)이 금 장수 협곡 감군을 패주에서 깨트렸다.
황제가 메르키트의 남은 무리가 나이만의 경계로 들어왔다는 것을 듣고는 묻길
「여러 장수 가운데 능히 나를 위하여 메르키트를 토벌할 자가 누구인가?」
수부타이(속부태)가 가기를 청하였는데 황제가 허락하였고 명하여 토쿠차르(탈홀찰아)는 2천기를 인솔하여 함께 가게 하였다.
수부타이가 잠 무렌(수하/추이강)에 이르러 메르키트를 대파하였고 그 무리를 모조리 섬멸하였다.
톡타아(탁흑탁아)의 아들 쿠두(홀도)와 칠라운(적랄온) 2인은 킵착(기복찰극)으로 달아났다.
가을 8월에 무칼리를 봉하여 국왕으로 삼고 구유기를 하사하였으며 여러 장수는 절제를 모두 받아들이게 하였다.
조서를 내려 말하길
「태행 이북은 짐이 스스로 통제하겠노라!
태행 이남은 모조리 이로써 경에게 주겠노라!」
이에 무칼리가 하북을 전적으로 정벌하였고 수성과 여주를 잇달아 함락하였다.
겨울에 진군하여 대명부를 함락하였고 금 중산부, 조주, 형주, 위주, 자주, 명주 등의 주의 수장이 모두 성을 바치고 항복하였고,
마침내 동으로 치주, 유주, 등주, 래주, 기주 등의 주를 취하였다.
이해에 투마트(독마특)이 배반하였다.
투마트 추장 다이도콜 소코르(알도독륵/타이툴라 소카르)이 죽자 그 처 보토코이 타르곤(탈회탑아혼)가 부족 무리를 인솔하여
이로써 배반하였다.
황제가 보로굴(박이홀)을 보내 토벌하게 하였는데 전사하였다.
황제가 노하여 친정을 의논하였다.
보오르초(박이술) 등이 간하여 이에 두르베이 독신(타아백 타흑신)으로 하여금 가게 하였다.
두르베이 독신이 산의 나무를 베고 길을 통하여 한 번 싸워 평정하였고 보토코이 타르곤을 사로잡았다.
이해에 황제가 장차 호라즘(화륵자미)를 정벌하고자 하여 서하에 징병을 요구하였는데 불응하자 마침내 정벌하였다.
요약.
1216년 봄 칭기스칸이 초원으로 돌아간 사이 금군은 북진하여 중도(북경) 남부 6개 성을 수복한다.
또한 요서에서는 장치가 반란을 일으키고 요동에서는 포선만노가 대진국 왕을 선포한다.
이에 무칼리는 남진을 중단하고 요서 정벌에 나서 장치를 토벌한다.
장치가 토벌당하자 포선만노는 무칼리에게 투항한다.
한편 사무카는 1만기를 이끌고 서쪽으로 우회하여 관동으로 들어가 곧장 개봉으로 직도한다.
1217년 칭기스칸은 수부타이와 토쿠차르를 보내 메르키트 잔당을 토벌하게 하였고 보로굴을 보내 투마트를 정벌하게 하였는데
보로굴이 전사한다.
8월 칭기스칸은 사신단을 죽인 호라즘 원정을 결심하고 무칼리를 국왕으로 삼아 2만 몽골군과 1만 거란군, 1만 한족군을 주어
중원을 계속 정벌하게 한다.
칭기스칸은 서하에 호라즘 원정에 참전하라 요구하였으나 서하가 거부하자 서하 재침공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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