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사 태조 칭기스칸 16부-호라즘 침공과 고려 강동성 신원사 태조 칭기스칸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틈틈이 원나라 태조 칭기스칸의 일대기를 연재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원나라 역사의 집대성이라 칭송받는 신원사 태조 본기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1부-의부 옹칸, 안다 자무카

2부-13쿠리엔 전투 자무카에게 대패하다!

3부-금나라의 백호장(자오드 코리)에 임명되다!

4부-등 돌린 옹칸을 다시 돕고 나이만군의 시체로 경관을 쌓다!

5부-타이치오트 멸망/자무카 구르 칸에 옹립되다!

6부-쿠이텐 전투!

7부-칼라칼지드 사막 전투! 그리고 옹칸의 패망!

8부-초원통일! 눈을 외국으로 돌리다!

9부-진정한 몽골군의 탄생!

10부-칸 금에 조공하러 갔다가 침을 뱉고 돌아오다!

11부-야호령에서 금 정예군을 몰살하다!

12부-삼로 진군으로 북중국을 초토화하다

13부-금황제 개봉으로 달아나다!(맹약 파기)

14부-수도함락, 여진족 영원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다!

15부-무칼리 요서 정벌, 금이 북진을 개시하다!


원사 칭기스 카안

만주어 원사 칭기스 한

신원사 칭기스 칸

성무친정록 칭기스 가한

만주어 몽고원류 칭기스 카간

원조비사 칭기스 칸

신원사 본기 서기


만주어 요나라 태조 아보오지

만주어 금나라 태조 아구다

만주어 청나라 태조 누르가치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96%B0%E5%85%83%E5%8F%B2/%E5%8D%B7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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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三年戊春正月,圍中興府,西夏主李遵頊出走西涼,師還。

遣者別討古出魯克。

古出魯克篡西遼王直魯古,部眾不服。

者別至,遠近回應,古出魯克奔巴達克山,者別獲而殺之。

三月,木華黎克新城、霸州。

秋八月,石抹明安出紫荊關,獲金經略使行元師事張柔。

柔不屈,明安壯而釋之。

詔還柔舊職,得以便宜行事。

木華黎自太和嶺徇河東,克代、隰二州。

九月,進克太原府。

冬十月,克平陽府。

遂定忻、澤、絳、潞、汾、霍等州。

是年,契丹人耶律喊舍等據高麗江東城,遣元帥哈真、副元帥劄剌討之。

高麗王㬚使其僕射趙沖等以兵來會。

十二月,克江東城,喊舍自縊死,斬其偽丞相以下百餘人。

高麗王㬚來貢方物。

十四年己卯春,帝親征貨勒自彌,以皇弟斡赤斤留守和林。

五月,遣劉仲祿佩金虎符,徵道士邱處機於登州。

六月,帝會諸皇子、大將於也兒的失河,議分兵討貨勒自彌。

禡牙之日,雪深三尺。

九月,皇子察合台、窩闊台圍訛剌脫兒城;

術赤西北攻氈的城;

諸將阿剌黑等東南攻伯訥特克城;

帝與拖雷徑渡錫爾河趨布哈爾。

帝至賽爾奴克城,遣丹尼世們諭降之;

從間道襲努爾城,遣前鋒將岱爾巴圖諭降之;

遂圍布哈爾城。

是年,張柔克金雄、昌、保諸州,敗賈瑀於孔山臺,擒斬之。

覆敗金恆山公武仙於滿城,拔完城、曲陽、中山諸州縣。

於是,深、冀以北,鎮定以東三十餘城悉降。

冬十一月,木華黎克晉安府屠之。

金丞相高琪用事;聚精兵於河南,而置河北不問。

金主殺高琪。

13년 무인년(戊寅/1218년) 춘(春) 정월(正月)에, 중흥부(中興府)를 위(圍)하니, 서하주(西夏主) 이준욱(李遵頊)이 출(出)하여 

서량(西涼)으로 주(走)하였고, 사환(師還)하였다.

자별(者別)을 견(遣)하여 고출로극(古出魯克)을 토(討)하였다.

고출로극(古出魯克)이 서요왕(西遼王) 야율직로고(直魯古)를 찬(篡)하였는데, 부중(部眾)이 불복(不服)하였다.

자별(者別)이 지(至)하자, 원근(遠近)이 회응(回應)하였고, 고출로극(古出魯克)은 파달극산(巴達克山)으로 분(奔)하였고, 

자별(者別)이 획(獲)하여 살지(殺之)하였다.

3월에, 목화려(木華黎)가 신성(新城)과 패주(霸州)를 극(克)하였다.

추(秋) 8월에, 석말명안(石抹明安)이 자형관(紫荊關)을 출(出)하였고, 금(金) 경략사(經略使) 행원사사(行元師事) 

장유(張柔)를 획(獲)하였다.

장유(柔)가 불굴(不屈)하니, 석말명안(明安)이 장(壯)하여 석지(釋之)하였다.

조(詔)하여 구직(舊職)을 환유(還柔)하게 하였고, 이로써 편의행사(便宜行事)를 득(得)하게 하였다.

목화려(木華黎)가 태화령(太和嶺)으로부터 하동(河東)을 순(徇)하였고, 대주(代)와 습주(隰) 2주(州)를 극(克)하였다.

9월에, 진(進)하여 태원부(太原府)를 극(克)하였다.

동(冬) 10월에, 평양부(平陽府)를 극(克)하였다.

마침내 흔주(忻), 택주(澤), 강주(絳), 로주(潞), 분주(汾), 곽주(霍) 등(等)의 주(州)를 정(定)하였다.

이해에, 글단인(契丹人) 야율함사(耶律喊舍) 등(等)이 고려(高麗) 강동성(江東城)에 거(據)하니, 원수(元帥) 합진(哈真)과 

부원수(副元帥) 차랄(劄剌)을 견(遣)하여 토지(討之)하였다.

고려왕(高麗王) 왕철(㬚)이 그 복사(僕射) 조충(趙沖) 등(等)으로 하여금 병(兵)으로써 내회(來會)하게 하였다.

12월에, 강동성(江東城)을 극(克)하였고, 야율함사(喊舍)는 자액사(自縊死)하였으며, 그 위승상(偽丞相) 이하(以下) 

백여인(百餘人)을 참(斬)하였다.

고려왕(高麗王) 왕철(㬚)이 방물(方物)을 내공(來貢)하였다.

14년 기묘년(己卯/1218년) 춘(春)에, 제(帝)가 화륵자미(貨勒自彌)를 친정(親征)하였고, 황제(皇弟) 알적근(斡赤斤)으로써 

화림(和林)을 유수(留守)하게 하였다.

5월에, 유중록(劉仲祿)을 견(遣)하여 금호부(金虎符/금패)를 패(佩/휴대함)하고, 도사(道士) 구처기(邱處機)를 등주(登州)에서

징(徵/부름)하게 하였다.

6월에, 제(帝)가 제황자(諸皇子)와 대장(大將)을 야아적실하(也兒的失河)에서 회(會)하였고, 분병(分兵)하여 

화륵자미(貨勒自彌)를 토(討)하기로 의(議)하였다.

마아(禡牙/대장기에 제사함)의 날에, 설(雪)이 3척(尺)으로 심(深)하였다.

9월에, 황자(皇子) 찰합태(察合台)와 와할태(窩闊台)가 와랄탈아성(訛剌脫兒城)을 위(圍)하였다.

술적(術赤)은 서북(西北)하여 전적성(氈的城)을 공(攻)하였다.

제장(諸將) 아랄흑(阿剌黑) 등(等)은 동남(東南)하여 백눌특극성(伯訥特克城)을 공(攻)하였다.

제(帝)는 타뢰(拖雷)와 함께 석이하(錫爾河)를 경도(徑渡)하여 포합이(布哈爾)로 촉(趨)하였다.

제(帝)가 새이노극성(賽爾奴克城)에 지(至)하여, 단니세문(丹尼世們)을 견(遣)하여 유항지(諭降之)하였다.

간도(間道)를 종(從)하여 노이성(努爾城)을 습(襲)하였고, 전봉장(前鋒將) 대이파도(岱爾巴圖)를 견(遣)하여 

유항지(諭降之)하였다.

마침내 포합이성(布哈爾城)을 위(圍)하였다.

이해에, 장유(張柔)가 금(金) 웅주(雄), 창주(昌), 보주(保) 제주(諸州)를 극(克)하였고, 가우(賈瑀)를 공산대(孔山臺)에서 

패(敗)하고는, 금참지(擒斬之)하였다.

다시 금(金) 항산공(恆山公) 무선(武仙)을 만성(滿城)에서 패(敗)하였고, 완성(完城), 곡양(曲陽), 중산(中山)의 

제주현(諸州縣)을 발(拔)하였다.

이에, 심주(深)와 기주(冀) 이북(以北), 진정(鎮定) 이동(以東) 30여성(餘城)이 실항(悉降)하였다.

동(冬) 11월에, 목화려(木華黎)가 진안부(晉安府)를 극(克)하여 도지(屠之)하였다.

금(金) 승상(丞相) 고기(高琪)가 용사(用事)하여, 하남(河南)에 정병(精兵)을 취(聚)하였고, 하북(河北)을 불문(不問)에 

치(置)하니, 금주(金主)가 고기(高琪)를 살(殺)하였다.



[칭기스 칸] 13년 1218년 봄 1월에 중흥부를 포위하니 서하 임금 이준욱이 나와 서량(에리 제우)으로 도주하였고 

이에 회군하였다.

제베(자별)을 보내 구출룩(고출로극)을 토벌하게 하였다.

구출룩이 서요왕 야율직로고를 찬탈하였는데 부족 무리가 복종하지 않았다.

제베가 이르자 원근이 회응하였고 구출룩은 사릭 쿤(파달극산/사릭 벼랑)으로 달아났는데 제베가 사로잡아 죽였다.

3월에 무칼리가 신성과 패주를 함락하였다.

가을 8월에 석말명안이 자형관을 나와 금 경략사 행원사사 장유를 사로잡았다.

장유가 굴하지 않으니 석명명안이 장하게 여겨 풀어주었다.

조서를 내려 돌아와 옛 관직을 받게 하였고 이로써 편의행사를 하게 하였다.

무칼리가 태화령으로부터 하동을 돌며 대주와 습주 2주를 함락하였다.

9월에 진군하여 태원부를 함락하였다.

겨울 10월에 평양부를 함락하였다.

마침내 흔주, 택주, 강주, 로주, 분주, 곽주 등의 주를 평정하였다.

이해에 거란인 야율함사 등이 고려 강동성에 근거하니 원수 카친(합진)과 부원수 자라(차랄)를 보내 토벌하게 하였다.

고려왕 왕철이 그 복사 조충 등으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만나게 하였다.

12월에 강동성을 함락하였고 야율함사는 스스로 목매어 죽었고 그 가짜 승상 이하 100여인을 참하였다.

고려왕 왕철이 방물을 조공하였다.

[칭기스 칸] 14년 1219년 봄에 황제가 호라즘(화륵자미)를 친정하였고 황제의 동생 옷치긴(알적근/테무게)는 

카라코룸(화림)에 남아 지키게 하였다.

5월에 유중록을 보내 금패를 휴대하고 도사 구처기를 등주에서 부르게 하였다.

6월에 황제가 여러 황자와 대장을 에르디쉬 강(야아적실하)에서 만났고 군을 나누어 호라즘을 토벌을 의논하였다.

대장기에 제사하는 날에 눈이 3척이나 깊게 쌓였다.

9월에 황자 차카타이(찰합태)와 우구데이(와할태)가 오트라르(와랄탈아/오다라르) 성을 포위하였다.

주치(술적)는 서북으로 가서 잔드(전적) 성을 공격하였다.

여러 장수 알락(아랄흑) (+식투르+타가이) 등은 동남으로 가서 파나카트(백눌특극) 성을 공격하였다.

황제는 톨루이(타뢰)와 함께 티르미드강(석이하)을 건너 부하라(포합이)로 달려갔다.

황제가 자르누크(새이노극) 성에 이르러 다니시만드 하집(단니세문)을 보내 투항하라 회유하였다.

샛길을 따라 누르(노이) 성을 기습하였고 선봉장 다이르 바하두르(대이 파도)를 보내 투항하라 회유하였다.

마침내 부하라을 포위하였다.

이해에 장유가 금 웅주, 창주, 보주 여러 주를 함락하였고, 가우를 공산대에서 깨트리고는 사로잡아 참하였다.

다시 금 항산공 무선을 만성에서 깨트렸고 완성, 곡양, 중산의 여러 주현을 함락하였다.

이에 심주와 기주 이북, 진정 이동 30여성이 모조리 항복하였다.

겨울 11월에 무칼리가 진안부를 함락하여 도륙하였다.

금 승상 고기가 일을 부려 하남에 정예병을 모으고는 하북을 불문에 두니 금 임금이 고기를 살해하였다.


<호라즘 관련 글 모음>

호라즘이 칭기스 칸의 사신단을 죽인 이야기

칭기스칸의 호라즘 원정의 또 다른 이면(영토분쟁)

테무진<나는 너희 알라신이 보낸 징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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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 이즈 호라즘!!! 몽골군을 몰살하고 100배의 적을 격파한 일기토 술탄 잘랄 앗 딘!

120만명?이 학살된 호라즘 수도 우르겐치(구르간지)

몽골군의 호라즘 학살 기록 모음

호라즘<어? 왜 살려주지?> ☞ 몽고<응 너흰 고기방.....>

<칸> 팩트 확인/1225년 칭기스 칸 비문 해석



요약.
1218년 칭기스칸은 호라즘 원정에 파병을 거부한 서하를 침공한다.
수도 중흥부를 포위하였고 서하 8대 국왕 신종(이준욱)은 서량으로 도주한다.
한편 나이만 잔당 구출룩은 서요 국왕 야율직로고의 사위가 되었다가 호라즘과 밀약을 맺고 왕위를 찬탈한다.
구출룩은 서요 무슬림들을 약탈하고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강요한다.
칭기스칸은 제베를 보내 구출룩을 살해하고 서요에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다.
한편 중원에 남은 무칼리는 본격적인 중원 공략을 개시한다.
한편 거란족 야율함사는 고려를 침공하여 강동성에 있었는데 무칼리는 카친과 자라에게 1만군을 주고 투항한 포선만노군 2만과
함께 거란 잔당을 토벌하게 한다.
이에 카친은 고려에 원군을 요구하였고 고종은 조충과 김취려에게 10명의 장군을 주어 토벌하게 한다.
1219년 몽골군은 마침내 호라즘을 침공하여 오트라르/잔드/파나카트/부하라/자르누크/누르를 공략한다.
이해 무칼리는 웅주/창주/보주/만성/완성/곡양/중산/심주/기주/진정/진안부를 공략한다.
금 선종은 군권을 장악한 술호고기를 처형한다.

-17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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