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사 태조 칭기스칸 17부-호라즘 무함마드 술탄 비탄에 빠져 죽다! 신원사 태조 칭기스칸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틈틈이 원나라 태조 칭기스칸의 일대기를 연재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원나라 역사의 집대성이라 칭송받는 신원사 태조 본기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1부-의부 옹칸, 안다 자무카

2부-13쿠리엔 전투 자무카에게 대패하다!

3부-금나라의 백호장(자오드 코리)에 임명되다!

4부-등 돌린 옹칸을 다시 돕고 나이만군의 시체로 경관을 쌓다!

5부-타이치오트 멸망/자무카 구르 칸에 옹립되다!

6부-쿠이텐 전투!

7부-칼라칼지드 사막 전투! 그리고 옹칸의 패망!

8부-초원통일! 눈을 외국으로 돌리다!

9부-진정한 몽골군의 탄생!

10부-칸 금에 조공하러 갔다가 침을 뱉고 돌아오다!

11부-야호령에서 금 정예군을 몰살하다!

12부-삼로 진군으로 북중국을 초토화하다

13부-금황제 개봉으로 달아나다!(맹약 파기)

14부-수도함락, 여진족 영원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다!

15부-무칼리 요서 정벌, 금이 북진을 개시하다!

16부-호라즘 침공과 고려 강동성


원사 칭기스 카안

만주어 원사 칭기스 한

신원사 칭기스 칸

성무친정록 칭기스 가한

만주어 몽고원류 칭기스 카간

원조비사 칭기스 칸

신원사 본기 서기


만주어 요나라 태조 아보오지

만주어 금나라 태조 아구다

만주어 청나라 태조 누르가치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96%B0%E5%85%83%E5%8F%B2/%E5%8D%B7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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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五年庚辰春,帝親攻布哈爾。

其酋率所部二萬餘人突圍走,追及於阿母河,盡殺之,城民出降。

是時,察合台、窩闊台已拔訛剌脫兒,獲其守將伊那克只克,檻送行在誅之。

術赤先攻下八兒真等城,阿剌黑等攻下忽氈等城。

夏五月,進至撒瑪律干城,術赤等三路之師亦傅城下。

貨勒自稱彌蘇爾灘先居撒瑪律干,聞大兵至,遁走,使其將阿爾潑汗嬰城固守。

帝遣者別、速不台各率輕騎追蘇爾灘,又使脫所察兒爲二將後援。

帝自率諸皇子圍撒瑪律干,阿兒潑汗以波斯兵出戰,中伏大敗。

康里兵開門出降。

阿兒潑汗引親兵突圍走。

帝恐康里兵反覆,仍盡誅之,以降將巴克曷勒蔑里克、哀密兒阿米守撒瑪律干。

夏,帝避署於渴石。

帝以蘇爾灘母土而堪哈敦在烏爾鞬赤,遣丹尼世們往諭之。

土而堪不答,奔馬三德蘭,與蘇爾灘妻俱爲者別、速不台所獲。

秋,命術赤、察合台、窩闊台攻烏爾鞬赤。

帝自率大軍攻忒耳迷城,克之。

進至賽蠻,分軍略巴達克山,以阿母河北之地悉定,遂渡河,攻克巴而黑城。

見其城險固。恐爲後路之患,墮之。

東入塔裏堪山,攻諾司雷脫柯寨。

遣塔忽等使於金。

冬十月,復遣蒙古塔忽、訛里剌等使於金。

十二月,蘇爾灘入嗄比斯海島,聞其母妻被獲,幼子又爲帝所殺,心悸而卒。

是年,木華黎略地至真定府,金恆山公武仙降,木華黎承製授史天倪河北都元帥,以仙副之。

濟南嚴實籍大名、彰德、磁、洺、恩、博、滑、浚等州戶三十萬來降。

木華黎承製授實金紫光祿大夫、行尚書省事。

木華黎留實圍東平,分兵徇河北諸州。

董俊判官李全以中山叛。

15년 경진년(庚辰/1220년) 춘(春)에, 제(帝)가 포합이(布哈爾)를 친공(親攻)하였다.

그 추(酋)가 소부(所部) 2만여인(餘人)을 솔(率)하여 돌위(突圍)하고 주(走)하니, 아모하(阿母河)에 추급(追及)하여, 

진살지(盡殺之)하였고, 성민(城民)은 출항(出降)하였다.

이때에, 찰합태(察合台)와 와할태(窩闊台)가 이미(已) 와랄탈아(訛剌脫兒)를 발(拔)하였고, 그 수장(守將) 

이나극지극(伊那克只克)을 획(獲)하였으며, 행재(行在)에 함송(檻送)하니 주지(誅之)하였다.

술적(術赤)은 앞서 팔아진(八兒真) 등(等)의 성(城)을 공하(攻下)하였고, 아랄흑등(阿剌黑等)은 홀전(忽氈) 등(等)의 성(城)을 

공하(攻下)하였다.

하(夏) 5월에, 진(進)하여 살마률간성(撒瑪律干城)에 지(至)하였고, 술적(術赤) 등(等)의 3로(路)의 사(師) 역시(亦) 

성하(城下)에 박(傅)하였다.

화륵자미(貨勒自彌) 소이탄(蘇爾灘/술탄)이 살마률간(撒瑪律干)에 선거(先居)하였는데, 대병(大兵)의 지(至)를 문(聞)하니, 

둔주(遁走)하였고, 그 장(將) 아이발한(阿爾潑汗)으로 하여금 영성(嬰城/농성함)하여 고수(固守)하게 하였다.

제(帝)가 자별(者別)과 속부태(速不台)를 견(遣)하여 경기(輕騎)를 각솔(各率)하여 소이탄(蘇爾灘)을 추(追)하게 하였고,

또 탈소찰아(脫所察兒)로 하여금 2장(將)의 후원(後援)으로 삼았다.

제(帝)가 제황자(諸皇子)를 자솔(自率)하여 살마률간(撒瑪律干)을 위(圍)하니, 아아발한(阿兒潑汗)이 파사병(波斯兵)으로써 

출전(出戰)하였는데, 중복(中伏)하여 대패(大敗)하였다.

강리병(康里兵/캉글리 병)이 개문(開門)하고 출항(出降)하였고, 아아발한(阿兒潑汗)은 친병(親兵)을 인(引)하여 

돌위(突圍)하고 주(走)하였다.

제(帝)가 강리병(康里兵)의 반복(反覆)을 공(恐)하여, 이에 진주지(盡誅之)하였고, 

항장(降將) 파극갈륵멸리극(巴克曷勒蔑里克)과 애밀아아미(哀密兒阿米)로써 살마률간(撒瑪律干)을 수(守)하게 하였다.

하(夏)에, 제(帝)가 갈석(渴石)에서 피서(避署)하였다.

제(帝)가 소이탄(蘇爾灘)의 모(母) 토이감(土而堪) 합돈(哈敦)이 오이건적(烏爾鞬赤)에 재(在)함으로써, 단니세문(丹尼世們)을

견(遣)하여 왕유지(往諭之)하였다.

토이감(土而堪)이 부답(不答)하였고, 소이탄(蘇爾灘)의 처(妻)와 함께 마삼덕란(馬三德蘭)으로 분(奔)하였는데,

모두 자별(者別)과 속부태(速不台)에게 소획(所獲)하였다.

추(秋)에, 명(命)하여 술적(術赤), 찰합태(察合台), 와할태(窩闊台)는 오이건적(烏爾鞬赤)을 공(攻)하게 하였다.

제(帝)는 대군(大軍)을 자솔(自率)하여 특이미성(忒耳迷城)을 공(攻)하였고, 극지(克之)하였다.

새만(賽蠻)에 진지(進至)하여, 분군(分軍)하고 파달극산(巴達克山)을 약(略)하였고, 아모하(阿母河) 북(北)의 지(地)를 

실정(悉定)하였으며, 마침내 도하(渡河)하여, 파이흑성(巴而黑城)을 공극(攻克)하였다.

그 성(城)의 험고(險固)를 견(見)하니, 후로(後路)의 환(患)이 될까 공(恐)하여, 타지(墮之)하였다.

동(東)으로 탑리감산(塔裏堪山)에 입(入)하였고, 낙사뢰탈가채(諾司雷脫柯寨)를 공(攻)하였다.

탑홀(塔忽) 등(等)을 금(金)에 사(使)로 견(遣)하였다.

동(冬) 10월에, 몽고(蒙古) 탑홀(塔忽)과 와릴랄(訛里剌) 등(等)을 금(金)에 사(使)로 복견(復遣)하였다.

12월에, 소이탄(蘇爾灘)이 사비사(嗄比斯) 해도(海島)로 입(入)하였는데, 그 모(母)와 처(妻)가 피획(被獲)하고, 

유자(幼子) 또한 제(帝)에게 소살(所殺)함을 문(聞)하니, 심계(心悸/두려워함)하여 졸(卒)하였다.

이해에, 목화려(木華黎)가 약지(略地)하며 진정부(真定府)에 지(至)하였고, 금(金) 항산공(恆山公) 무선(武仙)이 항(降)하니, 

목화려(木華黎)가 승제(承製)하여 사천예(史天倪)를 하북도원수(河北都元帥)에 수(授)하고, 무선(仙)을 부(副)로 삼았다.

제남(濟南) 엄실(嚴實)이 대명(大名), 창덕주(彰德), 자주(磁), 명주(洺), 은주(恩), 박주(博), 활주(滑), 준주(浚) 등(等)의 

주(州) 호(戶) 30만(萬)을 적(籍)하여 내항(來降)하였다.

목화려(木華黎)가 승제(承製)하여 엄실(實)을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와 행상서성사(行尚書省事)를 수(授)하였다.

목화려(木華黎)가 엄실(實)을 유(留)하여 동평(東平)을 위(圍)하게 하고, 분병(分兵)하여 하북(河北)의 제주(諸州)를 

순(徇)하였다.

동준(董俊)의 판관(判官) 이전(李全)이 중산(中山)으로써 반(叛)하였다.



[칭기스 칸] 15년 1220년 봄에 황제가 부하라를 친히 공격하였다.

그 추장(쿡 칸)이 소속 부족 2만여인을 인솔하고 돌격하여 포위를 뚫고 도주하니 추격하여 아무다리아강(아모하)에 이르러 

모조리 살해하였고, 성 백성은 출성하여 항복하였다.

이때에 차카타이(찰합태)와 우구데이(와할태)가 이미 오트라르(와랄탈아/오다라르)를 함락하였고, 그 수비 장수 

이날축(이나극지극/가이르 칸)을 사로잡았으며 행재에 압송하여 보내니 주살하였다.

주치(술적)은 앞서 바르진(팔아진) 등의 성을 공격하여 함락하였고 알카이(아랄흑) 등은 호젠트(홀전) 등의 성을 공격하여 

함락하였다.

여름 5월에 진군하여 사마르칸트(살마률간) 성에 이르렀고 주치 등의 3로의 군사 또한 성 아래에 육박하였다.

호라즘(화륵자미) 술탄(소이탄)이 앞서 사마르칸트에 거주하였는데 대군이 이른 것을 듣더니 도주하였고 

그 장수 알파르 칸(아이발 한)으로 하여금 농성하여 굳게 지키게 하였다.

황제가 제베(자별)와 수부타이(속부태)를 보내 각각 경기병을 인솔하여 술탄을 추격하게 하였고, 또 토쿠차르(탈소찰아)로 

하여금 두 장군의 후원으로 삼았다.

황제가 여러 황자를 스스로 인솔하여 사마르칸트를 포위하니 알파르 칸이 페르시아(파사) 병으로써 출전하게 하였는데, 

매복에 걸려 대패하였다.

캉글리(강리) 이 성문을 열고 나와 항복하였고 알파르 칸은 친군을 인솔하고 돌격하여 포위를 뚫고 도주하였다.

황제가 캉글리 병이 다시 배반할까 두려워 이에 모조리 주살하게 하였고 항장 씨카트 알 물크(파극 갈륵 멸리극)와 

아미르 아미드 부주르그(애밀아아미)로써 사마르칸트를 수비하게 하였다.

여름에 황제가 갈석(에르디시)에서 피서하였다.

황제가 술탄의 모친 토간(토이감/타즈 앗 딘 토간) 카툰(합돈)이 우르겐치(오이건적/우룽게치)에 있음으로써 

다니시만드(단니세문)을 보내 회유하게 하였다.

토간이 답하지 않았고 술탄의 처와 함께 마잔다란(마삼덕란)으로 달아났는데 모두 제베와 수부타이에게 사로잡혔다.

가을에 명하여 주치, 차카타이, 우구데이는 우르겐치를 공격하게 하였다.

황제는 대군을 친히 인솔하여 티리미드(특이미) 성을 공격하였고 함락하였다.

진군하여 사이만(새만)에 이르렀는데 군을 나누어 파달극산을 약탈하였고, 아무다리아 강 북쪽의 땅을 모조리 평정하였으며

마침내 강을 건너 바르쿠(파이흑) 성을 공격하여 함락하였다.

그 성의 험하고 견고한 것을 보더니 퇴로의 우환이 될까 두려우 허물게 하였다.

동진하여 탈리칸(탑리감) 산에 들어갔고 낙사뢰탈가채를 공격하였다.

타쿠(탑홀) 등을 금에 사신으로 보냈다.

겨울 10월에 몽고 타쿠과 오리라(와릴랄) 등을 다시 금에 사신으로 보냈다.

12월에 술탄이 카스피(사비사) 섬으로 들어갔는데 그 모친과 처가 사로잡히고, 막내아들 또한 황제에게 살해된 것을 듣더니 

두려워하여 졸하였다.

이해에 무칼리가 땅을 공략하여 진정부에 이르렀고 금 항산공 무선이 항복하니, 무칼리가 편의종사하여 사천예를 하북 

도원수에 제수하고 무선을 부원수로 삼았다.

제남 엄실이 대명, 창덕주, 자주, 명주, 은주, 박주, 활주, 준두 등의 주의 30만호를 장부에 적어 항복하였다.

무칼리가 편의종사하여 엄실을 금자광록대부와 행상서성사에 제수하였다.

무칼리가 엄실을 남겨 동평을 포위하게 하고, 군을 나누어 하북의 여러 주를 돌았다.

동준의 판관 이전이 중산으로써 배반하였다.


요약.

1220년 칭기스칸은 호라즘 부하라를 함락하였고, 차카타이와 우구데이는 오트라르를 함락하고 

사신단을 죽인 이날축을 처형한다.

주치는 바르진/알카이/호젠트를 함락한다.

5월 3군은 합군하여 사마르칸트를 포위하였고, 술탄 무함마드는 도주한다.

칭기스칸은 제베/수부타이/토쿠차르에게 술탄 추격을 명한다.

사마르칸트의 캉글리 병사들이 성문을 열고 투항하자 칭기스칸은 캉글리인을 모조리 학살한다.

주치/차카타이/우구데이는 다시 우르겐치를 공략하였고 칭기스칸은 티리미드와 바르쿠를 함락한다.

이해 12월 무함마드 술탄은 카스피해 섬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사망한다.

한편 중원을 공략 중인 무칼리는 진정부/대명/창덕주/자주/명주/은주/박주/활주/준주를 접수한다.


-18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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