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사 태조 칭기스칸 19부-유럽침공 칼카강 전투! 신원사 태조 칭기스칸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틈틈이 원나라 태조 칭기스칸의 일대기를 연재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원나라 역사의 집대성이라 칭송받는 신원사 태조 본기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1부-의부 옹칸, 안다 자무카

2부-13쿠리엔 전투 자무카에게 대패하다!

3부-금나라의 백호장(자오드 코리)에 임명되다!

4부-등 돌린 옹칸을 다시 돕고 나이만군의 시체로 경관을 쌓다!

5부-타이치오트 멸망/자무카 구르 칸에 옹립되다!

6부-쿠이텐 전투!

7부-칼라칼지드 사막 전투! 그리고 옹칸의 패망!

8부-초원통일! 눈을 외국으로 돌리다!

9부-진정한 몽골군의 탄생!

10부-칸 금에 조공하러 갔다가 침을 뱉고 돌아오다!

11부-야호령에서 금 정예군을 몰살하다!

12부-삼로 진군으로 북중국을 초토화하다

13부-금황제 개봉으로 달아나다!(맹약 파기)

14부-수도함락, 여진족 영원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다!

15부-무칼리 요서 정벌, 금이 북진을 개시하다!

16부-호라즘 침공과 고려 강동성

17부-호라즘 무함마드 술탄 비탄에 빠져 죽다!

18부-호라즘 수도 우르겐치를 함락하다!

19부-유럽침공 칼카강 전투!

20부-초원으로 돌아오다!(4대 칸국 분봉)

21부-생애 마지막 전쟁에 나서다

22부-키요트 보르지긴 테무진 죽다!(연재완료)


원사 칭기스 카안

만주어 원사 칭기스 한

신원사 칭기스 칸

성무친정록 칭기스 가한

만주어 몽고원류 칭기스 카간

원조비사 칭기스 칸

신원사 본기 서기


만주어 요나라 태조 아보오지

만주어 금나라 태조 아구다

만주어 청나라 태조 누르가치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96%B0%E5%85%83%E5%8F%B2/%E5%8D%B7002

---------------------------------------------------------------------------

十七年,壬午春,以劄剌勒丁未獲,嘎自尼諸城復叛。

遣窩闊台討平之。

初,巴魯安之敗,海拉脫亦叛,至是帝遣按只吉歹討平之。

窩闊台既定嘎自尼,請進玫昔義斯單,帝曰:

「隆暑將至,宜遣別將攻之,汝勿往。」

三月,封昆倉山神爲元極王,大鹽池神爲惠濟王。

夏四月,道士邱處機謁帝於行在。

帝聞巴里黑復叛,自將討平之。

遂避暑於巴魯安。

以西域大定,設達魯花赤監治之。

秋,窩闊台來覲於古南柯而干城。

配克部酋薩拉爾阿黑默特來降,並獻軍糧,以地熱,令居民每戶舂黍米百斤,供士卒三人食。

帝欲從印度斯單經唐古特而歸,行數城,聞唐古特復叛,又以道路險惡,乃改途,渡質渾河,循故道至撒瑪律干。

或曰:左右見一角獸,形如鹿而馬尾,作人言曰:

「汝主宜早還。」

帝遂決意班師。

帝次布哈爾,召天方教士干曷世甫等述其教規。

帝曰:

「麥哈禮拜我不謂然,上帝降鑒無所不周,何爲拘拘於一地科?」

命自後祈禱之文,皆書御名,又命免天方教士賦役。

秋九月丙午朔,車駕渡阿母河,中途見邱處機,駐蹕於撒瑪律干。

金平陽公胡天祚以青龍堡降。

冬十月丙子朔,下詔班師。

十一月,金河中府降,以石天應爲兵馬都元帥守之。

十二月,車駕駐忽氈河,察合台、窩闊台自布哈兒來獻獵獲,術赤以疾不至。

是年,者別、速不含平奇卜察克,其酋遁入斡羅斯。

十八年癸未春正月甲寅,車駕發忽氈河,駐蹕赤兒赤克河。

二月庚辰,獵於東山,見大豕射之,馬踣,帝易馬而還。

自此兩月不出獵。

三月,國王木華黎卒。

夏,者別、速不台與斡羅斯戰於喀勒吉河孩兒桑之地,大敗之,獲其計掖甫、扯而尼哥等部酋,檻送術赤誅之。

詔以馬十萬匹犒師。

十月,金主殉卒,其太子守緒立。

宋復遣苟夢玉來聘。

西夏李遵頊傳位於子德旺。

17년, 임오년(壬午/1222년) 춘(春)에, 차랄륵정(劄剌勒丁)이 미획(未獲)함으로써, 알자니(嘎自尼)의 제성(諸城)이 

복반(復叛)하였다.

와할태(窩闊台)를 견(遣)하여 토평지(討平之)하였다.

초(初)에, 파로안(巴魯安)에서 패(敗)하자,해랍탈(海拉脫) 역(亦) 반(叛)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제(帝)가 안지길알(按只吉歹)을

견(遣)하여 토평지(討平之)하였다.

와할태(窩闊台)가 이윽고 알자니(嘎自尼)를 정(定)하였고, 매석의사단(玫昔義斯單)에 진(進)하기를 청(請)하였는데, 

제(帝)가 말하길

「융서(隆暑)가 장지(將至)하니, 마땅히 별장(別將)을 견(遣)하여 공지(攻之)하고, 너는 물왕(勿往)하라!」

3월에, 곤창산신(昆倉山神)을 봉(封)하여 원극왕(元極王)으로 삼았고, 대염지신(大鹽池神)을 혜제왕(惠濟王)으로 삼았다.

하(夏) 4월에, 도사(道士) 구처기(邱處機)가 행재(行在)에서 알제(謁帝)하였다.

제(帝)가 파리흑(巴里黑)의 복반(復叛)을 문(聞)하니, 자장(自將)하여 토평지(討平之)하였다.

마침내 파로안(巴魯安)에서 피서(避暑)하였다.

서역(西域)이 대정(大定)함으로써, 달로화적(達魯花赤)을 설(設)하여 감치지(監治之)하였다.

추(秋)에, 와할태(窩闊台)가 고남가이간성(古南柯而干城)에서 내근(來覲)하였다.

배극부(配克部) 추(酋) 살랍이아흑묵특(薩拉爾阿黑默特)이 내항(來降)하였고, 아울러 군량(軍糧)을 헌(獻)하였는데, 

지열(地熱)로써, 거민(居民)으로 하여금 매호(每戶)당 서미(黍米/기장쌀) 백근(百斤)을 용(舂/찧음)하게 하여,

사졸(士卒) 3인(人)에게 공(供/바침)하여 식(食)하게 하였다.

제(帝)가 인도(印度) 사단(斯單)을 종(從)하여 당고특(唐古特)을 경(經)하여 귀(歸)하고자 하였는데, 수성(數城)을 행(行)하자,

당고특(唐古特)의 복반(復叛)을 문(聞)하였고, 또 도로(道路)의 험악(險惡)으로써, 이에 개도(改途/길을 고침)하여, 

질혼하(質渾河)를 도(渡)하여, 순(循)한 연고(故)로 도(道)가 살마률간(撒瑪律干)에 이르렀다.

혹(或) 말하길 좌우(左右)가 일각수(一角獸/인도의 전설상의 뿔이 하나 달린 동물)를 견(見)하였는데, 형(形)이 녹(鹿)과 

마미(馬尾)와 같았는데, 인(人)이 언(言)을 작(作)하여 말하길

「여주(汝主)가 마땅히 조환(早還)하리라!」

제(帝)가 마침내 반사(班師)를 결의(決意)하였다.

제(帝)가 포합이(布哈爾)에 차(次)하였고, 천방교사(天方教士) 간갈세보(干曷世甫) 등(等)을 소(召)하여 

그 교규(教規/종교 상의 규정)를 술(述)하게 하였다.

제(帝)가 말하길

「맥합(麥哈)의 예배(禮拜)는 내가 동의하지는 않으나, 상제(上帝/텡게리)는 항감(降鑒/굽어 봄)하시어 

  부주(不周)하는 바가 없으니, 어찌 구구(拘拘)하게 1 지(地)에 과(科)하리오?」

명(命)하여 자후(自後)의 기도(祈禱)의 문(文)은 모두 어명(御名)을 서(書)하게 하였고, 또 명(命)하여 천방교사(天方教士)의 

부역(賦役)을 면(免)하게 하였다.

추(秋) 9월 병오일(丙午) 초하루에, 거가(車駕)가 아모하(阿母河)를 도(渡)하였고, 중도(中途)에 구처기(邱處機)를 견(見)하였고,

살마률간(撒瑪律干)에서 주필(駐蹕)하였다.

금(金) 평양공(平陽公) 호천조(胡天祚)가 청룡보(青龍堡)로써 항(降)하였다.

동(冬) 10월 병자일(丙子) 초하루에, 하조(下詔)하여 반사(班師)하였다.

11월에, 금(金) 하중부(河中府)가 항(降)하니, 석천응(石天應)을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로 삼아 수지(守之)하였다.

12월에, 거가(車駕)가 홀전하(忽氈河)에 주(駐)하였고, 찰합태(察合台)와 와활태(窩闊台)는 포합아(布哈兒)로부터 내(來)하여 

엽획(獵獲)을 헌(獻)하였고, 술적(術赤)은 질(疾)로써 부지(不至)하였다.

이해에, 자별(者別)과 속부태(速不含)가 기복찰극(奇卜察克)을 평(平)하였는데, 그 추(酋)는 알라사(斡羅斯)로 둔입(遁入)하였다.

18년 계미년(癸未/1223년) 춘(春) 정월(正月) 갑인일(甲寅)에, 거가(車駕)가 홀전하(忽氈河)를 발(發)하였고,

적아적극하(赤兒赤克河)에 주필(駐蹕)하였다.

2월 경진일(庚辰)에, 동산(東山)에서 엽(獵)하였는데, 대시(大豕/큰 돼지)를 견(見)하여 사지(射之)하였는데,

마(馬)가 북(踣/넘어짐)하였고, 제(帝)가 역마(易馬)하고 환(還)하였다.

이로부터 양월(兩月)에 출렵(出獵)하지 않았다.

3월에, 국왕(國王) 목화려(木華黎)가 졸(卒)하였다.

하(夏)에, 자별(者別)과 속부태(速不台)가 알라사(斡羅斯)와 더불어 객륵길하(喀勒吉河) 해아상(孩兒桑)의 지(地)에서 

전(戰)하였고, 대피지(大敗之)하였으며, 그 계액보(計掖甫)와 차이니가(扯而尼哥) 등(等) 부추(部酋)를 획(獲)하였고,

함송(檻送)하니 술적(術赤)이 주지(誅之)하였다.

조(詔)하여 마(馬) 10만필(匹)로써 호사(犒師)하였다.

10월에, 금주(金主)가 순(殉)이 졸(卒)하였는데, 그 태자(太子) 수서(守緒)가 입(立)하였다.

송(宋)이 구몽옥(苟夢玉)을 복견(復遣)하여 내빙(來聘/예물을 가지고 찾아옴)하였다.

서하(西夏) 이준욱(李遵頊)이 자(子) 덕왕(德旺)에게 전위(傳位)하였다.


[칭기스 칸] 17년 1222년 봄에 잘랄 앗 딘(차랄륵정)을 사로잡지 못하니 가즈닌(알자니)의 여러 성이 다시 배반하였다.

우구데이(와할태)를 보내 토벌하여 평정하게 하였다.

처음에 파르반(파로안)에서 패하자 해라트(해랍탈) 또한 배반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황제가 안치기다이(안지길대)을 보내 

토벌하여 평정하게 하였다.

우구데이가 이윽고 가즈닌을 정벌하였고 시스탄(매석의사단)에 진군하기를 청하였는데, 황제가 말하길

「무더위가 장차 이를 것이니 마땅히 다른 장수를 보내 공격하게 하고 너는 가지 말라!」

3월에 곤창산신을 봉하여 원극왕으로 삼았고, 대염지신을 혜제왕으로 삼았다.

여름 4월에 도사 구처기가 행재에서 황제를 알현하였다.

황제가 발흐(파리흑)가 다시 배반했다는 것을 듣고는 친정하여 토벌하고 평정하게 하였다.

마침내 파르반에서 피서하였다.

서역이 대략 평정되자 다루가치(달로화적)를 설치하여 감독하고 통치하게 하였다.

가을에 우구데이가 쿠나운 쿠르간(고남가이간) 성에서 와서 알현하였다.

부야 카부르(배극) 부족 추장 살라르 아흐마드(살랍이 아흑묵특/사라르아쿠)이 항복하였고, 아울러 군량을 바쳤는데,

땅이 뜨거우니 거주하는 백성들로 하여금 매호당 기장쌀 1백근을 찧게 하여 각각 사졸 3인에게 바쳐서 먹게 하였다.

황제가 인도 시스탄(사단)을 따라 탕구트(당고특)을 경유하여 돌아가고자 하였는데 몇몇 성을 지나자 탕구트(당고특/서하)가 

다시 배반했다는 것을 들었고, 또한 도로가 험하고 나쁨으로써 이에 길을 고쳐 페샤와르(질혼하)를 건너 따라간 연고로 길이 

사마르칸트(살마률간)에 이르렀다.

혹자가 말하길 좌우가 일각수(인도의 전설상의 뿔이 하나 달린 동물)를 보았는데 형상이 사슴이나 말 꼬리과 같았는데 

사람들이 말을 꾸며 말하길

「너희 주인이 마땅히 일찍 돌아가리라!」

황제가 마침내 회군을 결의하였다.

제가 부하라(포합이)에 머물렀고 천방교사 간갈세보 등을 불러 그 교리를 구술하게 하였다.

황제가 말하길

「메카(맥합)의 예배는 나는 동의하지는 않지만, 텡게리 신께서는 굽어 살피시어 두루 살피지 않는 땅이 없으신데

  어찌 구구하게 한 땅에만 헤아리겠는가?」

명하여 이후의 기도문에 모두 어명을 쓰게 하였고 또 명하여 천방교사의 부역을 면하게 하였다.

가을 9월 1일에 어가가 아무다리아(아모) 강을 건넜고 중도에 구처기를 보았으며 사마르칸트에서 주둔하였다.

금 평양공 호천조가 청룡보를 바치고 항복하였다.

겨울 10월 1일에 조서를 내려 회군하였다.

11월에 금 하중부가 항복하니 석천응을 병마도원수로 삼아 수비하게 하였다.

12월에 어가가 호젠트 강(홀전하)에서 주둔하였고 차카타이(찰합태)와 우구데이(와활태)가 부하라(포합아)로부터 와서 

사냥하여 얻은 것을 헌상하였는데, 주치(술적)는 병이 들어 이르지 못하였다.

이해에 제베(자별)와 수부타이(속부태)가 킵착(기복찰극)를 평정하였는데 그 추장은 러시아(알라사)로 달아나 들어갔다.

[칭기스 칸] 18년 1223년 1월 11일에 어가가 호젠트 강(홀전하)을 출발하여 치르치케 강(적아적극하)에 주둔하였다.

2월 7일에 동쪽 산에서 사냥하였는데 큰 돼지를 발견하여 쏘았는데 말이 넘어져 황제가 말을 바꾸고 돌아왔다.

이로부터 두달 간 사냥에 나가지 않았다.

3월에 국왕 무칼리가 졸하였다.

여름에(5월31일) 제베(자별)와 수부타이(속부태)가 러시아(알라사/우루스)와 더불어 칼카 강(객륵길하) 해아상의 땅에서 싸워,

대파하였으며 그 키예프(계액보)와 체르니고프(차이니가) 등 부족 추장을 사로잡아 함거에 태어 보내니 주치(술적)가 

주살하였다.

조서를 내려 말 10만필로써 군을 호궤하였다.

10월에 금 임금이 완안순이 졸하였는데 그 태자 완안수서가 옹립되었다.

송이 구몽옥을 다시 보내 내빙하였다.

서하 이존욱이 아들 덕왕에게 전위하였다.


1. 제베+수부타이 2만 몽골군 이라크, 그루지아 침공

2. 제베+수부타이 2만 몽골군 킵착, 러시아 침공

3. 칼카강 전투











요약.
1222년 칭기스칸은 호라즘 원정을 마무리짓고 다루가치를 파견하여 통치하고 회군을 결정한다.
1223년 몽골로 회군하던 칭기스칸은 치르치케 부근에서 사냥하다 말에 떨어져 부상을 입는다.
한편 칭기스칸은 제베와 수부타이에게 2만 몽골군을 주어 호라즘 무함마드 술탄을 추격하라 지시하였고, 
제베는 니샤푸르까지 추격하였으며 곧 무함마드는 카스피해의 섬으로 들어가 죽었고, 
아들 잘랄 앗 딘은 가즈니로 도주하였다고 칭기스칸에게 보고한다.
제베와 수부타이는 칭기스칸이 허락한다면 발 닿는 곳까지 가고 싶다며 말하고 몽골군을 이끌고 
이라크 하르-심난-라이-하마단-수자스-잔잔-카즈빈-아제르바이잔 을 거쳐 그루지아(조지아) 왕국으로 들어간다.
타브리즈-마라게-디야르바르크-이르빌-하마단-나흐치반-아란-사라우-아르다빌-바일라칸-간자-시르반-데브벤드-
티무르카할카(철문관)-샤마히-알란을 거쳐 다시 킵착으로 들어간다.
몽골군은 가는 곳마다 약탈과 학살을 자행했고, 도주한 킵착인들은 숙적인 러시아 공국에 협조를 요청한다. 
이에 러시아 공국연합은 대군을 편성하여 1223년 5월 칼카 강에서 몽골군과 대치한다.
러시아 북군은 칼라치아와 킵착, 남군은 키예프/체르니고프/볼리니아/쿠르스크/수즈달/로스토프 공국이었다.
칼라치아 므스트슬라프 흐라브리 대공은 1만기를 이끌고 칼카 강을 건너 몽골군을 기습하여 몽골 장수 카마베를 살해한다.
몽골군은 12일 동안 거짓 도주하였고 러시아 연합군은 이를 추격하다가 매복에 걸려 처참한 패배를 당한다.
러시아 연합군은 통상 8만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신원사에 따르면 북군의 주력인 칼라치아가 동원한 병력이 1만이니
남군 또한 그 정도일 것으로 생각된다.
키예프 대공과 체르니고프 대공이 사로잡혔고 주치에게 보내져 살해당한다.
한편 중원을 공략 중인 무칼리가 3월 사망하였고, 동생 다이순이 이어받아 전쟁을 지속한다.

-20부에서 계속-



메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