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사 본기 서기 3부-금 감정지령으로 몽고인을 학살하다(연재완료) 테무진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틈틈이 원나라 초기의 사서를 번역 중인데요, 오늘은 신원사 본기 중 서기를 번역해 볼까 합니다.


1부-몽고는 돌궐에서 나왔느니 회색눈의 푸른이리들

2부-술취해 황제의 수염을 만지고 금과 타타르의 원수가 되다


원사 칭기스 카안

만주어 원사 칭기스 한

신원사 칭기스 칸

성무친정록 칭기스 가한

만주어 몽고원류 칭기스 카간

원조비사 칭기스 칸

신원사 본기 서기


만주어 요나라 태조 아보오지

만주어 금나라 태조 아구다

만주어 청나라 태조 누르가치


1180년 이전 기록의 몽고산(蒙古山)

실위와 거란의 언어/몽올실위 관련 중국 정사 발번역

몽올실위(蒙兀室韋) 위치 비정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96%B0%E5%85%83%E5%8F%B2/%E5%8D%B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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於是,部衆共立合不勒第五子忽圖剌爲罕。

忽圖剌罕糾諸部復仇。

敗金人於境上,大掠而去。

是時,金熙宗皇統三年也。

其後,金大定間,童謠曰:

「達達來,達達去,趁得官家沒去處。」

金世宗聞之,曰:

「此必韃靼將爲國患。」

乃下減丁之令,歲歲用兵北邊,恣行殺戮。

蒙古諸部銜仇剌骨,亦出沒爲金邊患。

金丞相完顏襄乃築長城以限之,而使汪古部守其要隘。

至太祖伐金,汪古部反爲蒙古嚮道焉。

忽圖剌驍勇,力能折人,每食盡一羊,音吐甚洪,隔七蛉之遠猶聞之。

一日出獵,遇朵兒奔人欺其無從者,欲追而殺之。

忽圖剌之馬陷淖中,自馬上躍登於岸,追者駭走。

家人聞,遇朵兒奔,以爲必死,設筵祭之。

其妻獨不謂然。

及歸,忽圖剌曰:

「我出獵,而徒手返,何以對衆?」

復入朵兒奔牧羣,奪其馬。

中道獲野鴨卵,盛以鞾。

家人乃撤祭筵,以享其夫婦。

忽圖剌長子曰拙赤罕,後率所部千人歸於太祖;次曰阿勒壇,亦附太祖,後叛歸客烈亦部王罕。

初,俺巴該爲金人所殺,部衆會議立罕,推族人朵答兒主議。

朵答兒請使哈答兒禿克主之。

哈答禿克讓於莫圖根。

莫圖根曰:

「汝等公議立罕,則事可定。

  否則必有內亂。」

言畢而出,部衆遂共立忽圖剌爲罕。

爲及忽圖剌卒,而拉火力兒等欲立塔兒忽台爲罕,部衆不從。

於是諸部各立部長,不相統屬。

爲尼而倫部長者曰也速該,合不勒罕第二子把兒壇之也,是爲太祖皇考,追謚烈祖神元皇帝。

自此,塔兒忽台與烈祖有隙。

塔兒忽台者,合答安太石之子,爲泰亦赤兀部長。

故太祖屢爲泰亦赤兀部所困。

把兒壇娶於巴兒忽氏,曰蘇尼吉兒哈屯,生四子,長曰蒙哥禿乞顏,次曰捏坤太石。

捏坤太石長子曰火察兒,善射,從太祖攻討諸部,屢有功,後從攻塔塔兒違軍令,太祖奪其所獲,遂與阿勒壇奔王罕。

王罕敗,復奔乃蠻。

太祖平乃蠻,俱伏誅。

次爲烈祖。

次曰答力台,亦叛附王罕,後自歸於太祖,太祖宥之。

烈祖爲部長十三年,屢伐金。

又討塔塔兒,獲其二酋,曰帖木真兀格,曰庫魯布哈,諸部畏服。

客烈亦部王罕爲其叔父古兒堪所攻,乞援於烈祖。

烈祖逐古兒堪以定客烈亦之亂,王罕德之,與烈祖約爲諳達。

後烈祖爲太祖求婚於翁吉剌氏,中道至扯克兒之地,遇塔塔兒人以毒酒飲之。

祖暴疾,至家召察剌合額不格之子蒙力克,以太祖兄弟託之而崩,時太祖十三歲。

史臣曰:

「元人數典忘祖,稱其國姓曰奇渥溫氏,而舊史因之。

  我高宗純皇帝旣命館臣改譯,復據《蒙古源流》證元之國姓爲博爾濟錦氏,數百載相沿之謬,至我高宗始爲之釐訂焉。

  博爾濟錦卽孛兒只斤之異譯也。

  今蒙古喀兒喀諸部,非博爾濟錦氏不得爲台吉,蓋猶自別於庶姓雲。」

이에, 부중(部衆)이 합부륵(合不勒)의 제(第) 5자(子) 홀도랄(忽圖剌)를 공립(共立)하여 한(罕)으로 삼았다.

홀도랄한(忽圖剌罕)이 제부(諸部)를 규(糾)하여 복구(復仇)하여, 금인(金人)을 경상(境上)에서 패(敗)하였고, 

대략(大掠)하고는 거(去)하였다.

이 때가 금(金) 희종(熙宗) 황통(皇統/금 3대 황제 희종의 #3연호) 3년(1143년)이었다.

그후(後) 금(金) 대정(大定/금 5대 황제 세종의 #1연호, 1161년~1189년) 간(間)에, 동요(童謠)에 말하기를

「달달(達達)이 래(來)하고, 달달(達達)이 거(去)하니, 

  진(趁/틈을 탐)하여 관가(官家)의 몰(沒)한 거처(去處)를 득(得)하는구나!」

금(金) 세종(世宗)이 문지(聞之)하더니, 말하길

「이는 필시(必) 달달(韃靼)이 장차(將) 국환(國患)이 될 것이노라!」

이에 감정지령(減丁之令)을 하(下)하니, 세세(歲歲) 북변(北邊)에 용병(用兵)하였고, 살륙(殺戮)을 자행(恣行)하였다.

몽고(蒙古)의 제부(諸部)가 라골(剌骨/골수에 사무침)을 함구(銜仇/원수를 원망함)하였고,

역시(亦) 출몰(出沒)하여 금(金)의 변환(邊患)이 되었다.

금(金) 승상(丞相) 완안량(完顏襄)이 이에 장성(長城)을 축(築)하고 이로써 근지(限之/변경으로 삼음)하였는데,

이에 왕고부(汪古部)로 하여금 그 요애(要隘)를 수(守)하게 하였다.

태조(太祖)가 벌금(伐金)에 이르러, 왕고부(汪古部)가 반(反)하여 몽고(蒙古)의 향도(嚮道)가 되었다.

홀도랄(忽圖剌)은 효용(驍勇)하였는데, 역(力)이 절인(折人)을 능(能)하였고, 매(每) 1양(羊)을 모두 식(食)하였고, 

음토(音吐/말소리)가 심홍(甚洪/심히 큼)하였으며, 칠참(七蛉/일곱 번 숙박할 거리)의 원(遠)을 격(隔/사이가 뜸)하였어도 

오히려 문지(聞之)하였다.

일일(一日) 출렵(出獵)하였는데, 타아분인(朵兒奔人)을 우(遇)하였는데 그 무종자(無從者)를 기(欺/업신여김)하여,

추(追)하여 살지(殺之)하고자 하였다.

홀도랄(忽圖剌)의 마(馬)가 뇨중(淖中)에 함(陷)하였는데, 마상(馬上)으로부터 약(躍)하여 안(岸)에 등(登)하였고,

추자(追者)가 해주(駭走)하였다.

가인(家人)이 타아분(朵兒奔)을 우(遇)하였다는 것을 문(聞)하니, 필사(必死)를 이위(以爲)하였고, 

설연(設筵/자리를 깜)하고 제지(祭之)하였다.

그 처(妻)가 홀로 연(然)하다 부위(不謂)하였다.

귀(歸)함에 이르러, 홀도랄(忽圖剌)이 말하길

「내가 출렵(出獵)하여, 도수(徒手/맨손)으로 반(返)하였는데, 어찌 이로써 중(衆)을 대(對)하리오?」

다시 타아분(朵兒奔)의 목군(牧羣)으로 입(入)하여, 그 마(馬)를 탈(奪)하였다.

중도(中道)에 야압(野鴨/들오리)의 난(卵)을 획(獲)하였는데, 화(鞾/신발)로써 성(盛/담음)하였다.

가인(家人)이 곧 제연(祭筵)을 철(撤)하였는데, 이로써 그 부부(夫婦)를 향(享/흠향)하였다.

홀도랄(忽圖剌)의 장자(長子)는 왈(曰) 졸적한(拙赤罕)이라 하는데,

후(後)에 소부(所部) 천인(千人)을 솔(率)하여 태조(太祖)에게 귀(歸)하였다.

차(次)는 왈(曰) 아륵단(阿勒壇)이라 하는데, 역시(亦) 태조(太祖)에 부(附)하였고,

후(後)에 객렬역부(客烈亦部) 왕한(王罕)에게 반귀(叛歸)하였다.

초(初)에, 엄파해(俺巴該)가 금인(金人)이 소살(所殺)하자, 부중(部衆)이 입한(立罕)을 회의(會議)하였는데,

족인(族人) 타답아(朵答兒)의 주의(主議)를 추(推)하였다.

타답아(朵答兒)가 합답아독극(哈答兒禿克)으로 하여금 주지(主之)를 청(請)하였다.

합답독극(哈答禿克)이 막도근(莫圖根)에게 양(讓)하니, 막도근(莫圖根)이 말하길

「여등(汝等)이 입한(立罕)을 공의(公議)하면, 즉(則) 사(事)가 가정(可定)하고,

  부(否)하면 즉(則) 필히(必) 내란(內亂)이 유(有)할 것이다.」

언필(言畢)하고 출(出)하였고, 부중(部衆)이 마침내 홀도랄(忽圖剌)를 공립(共立)하여 한(罕)으로 삼았다.

홀도랄(忽圖剌)이 졸(卒)함에 이르러, 랍화력아(拉火力兒) 등(等)이 탑아홀태(塔兒忽台)를 한(罕)으로 입(立)하고자 하였는데,

부중(部衆)이 불종(不從)하였다.

이에 제부(諸部)가 각각(各) 부장(部長)을 입(立)하고, 서로 통속(統屬/일정한 통제 아래에 속함)하지 않았다.

니이륜(尼而倫) 부장(部長)이라 하는 자(者)는 왈(曰)하길 야속해(也速該)라 하는데,

합부륵한(合不勒罕)의 제(第) 2자(子) 파아단(把兒壇)의 아들로, 이는 태조(太祖)의 황고(皇考)이며,

열조(烈祖) 신원황제(神元皇帝)로 추시(追謚)하였다.

이로부터, 탑아홀태(塔兒忽台)가 열조(烈祖)와 더불어 유극(有隙)하였다.

탈아홀태(塔兒忽台)란 자(者)는, 합답안태석(合答安太石)의 아들로, 태역적올(泰亦赤兀) 부장(部長)이 되었다.

이런 연고(故)로 태조(太祖)가 누차(屢) 태역적올부(泰亦赤兀部)의 소곤(所困/괴롭힘을 당함)을 당하였다.

파아단(把兒壇)이 파아홀씨(巴兒忽氏)에 취(娶)하였는데, 왈(曰) 소니길아(蘇尼吉兒) 합둔(哈屯)이라 하며,

4자(子)를 생(生)하였는데, 장자(長)는 왈(曰) 몽가독걸안(蒙哥禿乞顏), 차왈(次曰) 날곤태석(捏坤太石)이라 하였다.

날곤태석(捏坤太石)의 장자(長子)는 왈(曰) 화찰아(火察兒)라 하였는데, 선사(善射)하였고,

태조(太祖)를 종(從)하여 제부(諸部)를 공토(攻討)하였고, 누차(屢) 유공(有功)하였으며,

후(後)에 탑탑아(塔塔兒)를 종정(從攻)하였는데 군령(軍令)을 위(違)하니,

태조(太祖)가 그 소획(所獲)을 탈(奪)하였고, 마침내 아륵단(阿勒壇)과 함께 왕한(王罕)에게 분(奔)하였다.

왕한(王罕)이 패(敗)하자, 다시 내만(乃蠻)으로 분(奔)하였다.

태조(太祖)가 내만(乃蠻)을 평(平)하자, 모두 복주(伏誅)하였다.

차(次)는 열조(烈祖)이고, 차왈(次曰) 답력태(答力台)인데, 역시(亦) 왕한(王罕)에게 반부(叛附)하였고,

후(後)에 태조(太祖)에게 자귀(自歸)하니, 태조(太祖)가 유지(宥之)하였다.

열조(烈祖)가 부장(部長)이 된 지 13년에, 누차(屢) 벌금(伐金)하였다.

또한 탑탑아(塔塔兒)를 토(討)하여, 그 2추(酋)를 획(獲)하였는데, 왈(曰) 첩목진올격(帖木真兀格),

왈(曰) 고로포합(庫魯布哈)이라 하였고, 제부(諸部)가 외복(畏服/두려워 복종함)하였다.

객렬역부(客烈亦部) 왕한(王罕)이 그 숙부(叔父) 고아감(古兒堪)의 소공(所攻)을 당하자, 열조(烈祖)에게 걸원(乞援)하였다.

열조(烈祖)가 고아감(古兒堪)을 축(逐)하여 이로써 객렬역(客烈亦)의 난(亂)을 정(定)하니,

왕한(王罕)이 덕지(德之)하였고, 열조(烈祖)와 더불어 약(約)하여 암달(諳達)로 삼았다.

후(後)에 열조(烈祖)가 태조(太祖)를 위하여 옹길랄씨(翁吉剌氏)에게 구혼(求婚)하였는데,

중도(中道)에 차극아(扯克兒)의 지(地)에 지(至)하여, 탑탑아인(塔塔兒人)을 우(遇)하였는데,

독주(毒酒)로써 음지(飲之)하였다.

열조(祖)가 폭질(暴疾/갑작스레 급한 병에 걸림)하였는데, 지가(至家)하여 소찰랄합액부격(察剌合額不格)의 자(子) 

몽력극(蒙力克)을 소(召)하였고, 이로써 태조(太祖) 형제(兄弟)를 탁지(託之)하고 붕(崩)하니, 이때 태조(太祖)는 13세(歲)였다.

사신(史臣)은 말한다.

「원인(元人)은 수전망조(數典忘祖/조상의 근본을 망각하고 잊음)하여,

  그 국성(國姓)을 칭(稱)하여 말하길 기악온씨(奇渥溫氏)라 하였으니, 이는 구사(舊史)로 인지(因之)한 것이다.

  우리 고종(高宗/청 6대 황제 건륭제) 순황제(純皇帝)가 이윽고 관신(館臣)에게 명(命)하여 개역(改譯)하게 하였고,

  다시 《몽고원류(蒙古源流)》에 거(據)하여 원(元)의 국성(國姓)이 박이제금씨(博爾濟錦氏)임을 증(證)하니,

  수백(數百) 상연(相沿/답습)의 유(謬/착오)를 재(載)하였고,

  우리 고종(高宗)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리정(釐訂/개정)하게 하였다.

  박이제금(博爾濟錦)은 즉(卽) 패아지근(孛兒只斤)의 이역(異譯)이다.

  지금(今) 몽고(蒙古) 객아객(喀兒喀)의 제부(諸部)는 박이제금씨(博爾濟錦氏)가 아니니

  태길(台吉)을 부득(不得)하였으며, 대개(蓋) 추장(猶)이 자별(自別/본디부터 다름)한 서성(庶姓)이다 운(雲)하였다.


*감정지령(減丁之令)

 : 금 세종이 몽고의 위협에 몽고 초원의 장정을 줄인다는 영을 하달하고, 매년 몽고로 출병하여 몽고인을 학살하였다.


이에 부족무리가 카볼의 5남 쿠투라(홀도랄)을 함께 카안으로 옹립했다.

쿠투라 카안이 여러 부족을 규합하여 복수하였는데 금인을 변경 위에서 깨트렸고 크게 약탈하고는 가버렸다.

이때가 금 희종 황통 3년(1143년)이었다.

그후 금 대정(금 5대 황제 세종의 #1연호, 1161년~1189년) 간에 동요에 말하기를

「달달이 왔다가, 달달이 가버리니, 이틈을 타고 관가의 몰락한 거처를 얻게 되는구나!」

금 세종이 듣더니 말하길

「이는 필시 달달이 장차 나라의 우환이 될 것이노라!」

이에 감정지령(減丁之令)을 내리니 매년 북쪽 변경에 출병하여 살륙을 자행하였다.

몽고의 제부가 골수에 사무치도록 원수를 원망하여 또한 출몰하여 금 변경의 우환이 되었다.

금 승상 완안량이 이에 장성을 쌓고 이로써 변경으로 삼았는데 이에 왕고부로 하여금 그 요새를 지키도록 하였다.

태조가 금을 정벌함에 이르러 왕고부가 배반하여 몽고의 향도가 되었다.

쿠투라는 날래고 용맹하였고 힘이 능히 사람을 꺾을 수 있었고,

매번 양 한마리를 모두 먹었으며 말소리는 심히 컸고, 7일 숙박할 먼 거리에서도 오히려 들을 수 있었다.

하루는 사냥을 나갔는데 타아분 사람과 조우하였는데 그 종자가 없는 것을 업신여겨 추격하여 죽이고자 하였다.

쿠투라의 말이 진흙 속에 빠졌는데 말위로부터 뛰어올라 언덕에 오르니 추격하던 자가 놀라서 달아났다.

집안 사람들이 타아분과 조우했다는 것을 듣고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자리를 깔고 제사지냈는데 

그 처가 홀로 동의하지 않았다.

돌아와 쿠투라가 말하길

「내가 사냥을 나가 맨손으로 돌아왔는데 어찌 이로써 무리를 대하리오?」

다시 타아분의 목장으로 들어가 그 말을 탈취하였다.

중도에 들오리의 알을 얻었는데 신발에 담았다.

집안사람들이 곧 제사상을 철수하고 이로써 부부를 흠향하였다.

쿠투라의 장자는 주치 카안(졸적한)이라 하는데 후에 소속 부족 천명을 이끌고 태조에게 귀부하였다.

다음은 알탄(아륵단)이라 하는데 역시 태조에 귀부하였는데, 후에 배반하여 케레이트 부족 왕 카안에게 귀부했다.

처음에 암바가이가 금인에게 피살당하자 부족 무리가 카안 옹립을 회의하였는데

족인 타답아를 주인으로 추대하자 의논하였다.

타답아가 합답아독극이 주인이 될 것을 청하였다.

합답아독근이 막도근에게 양보하니 막도근이 말하길

「너희들이 함께 카안 옹립을 의논하면 즉 일이 정해질 것이고

  그렇지 아니하면 즉 반드시 내란이 있을 것이다.」

말을 마치자 나가버렸고 부족 무리가 마침내 쿠투라를 함께 카안으로 옹립했다.

쿠투라가 졸함에 이르러 랍화력아 등이 타르구타이(탑아홀태/탈부타이)를 카안으로 세우자 하였는데 부족 무리가 따르지 않았다.

이에 여러 부족이 각각 부족장을 세우고 서로 통속하지 않았다.

니륜(니이륜) 부족장이라 하는 자는 말하길 예수게이(야속해)라 하는데,

카볼 카안의 2남 바르담(파아단)의 아들로 이는 태조의 황고이며 열조 신원황제로 추시되었다.

이로부터 타르구타이가 열조와 더불어 틈이 생겼다.

타르구타이란 자는 합답안태석의 아들로 타이치오드(태역적올/타이초트) 부족장이 되었다.

이런 연고로 태조가 누차 타이치오드의 괴롭힘을 당하였다.

바르담이 바라후氏에게 장가들었는데 말하길 수치길 우전(소니길아) 하툰이라 하며 아들 넷을 낳았는데

1남은 몽가독걸안, 2남은 네쿤 타이시(날곤태석)이라 하였다.

네쿤 타이시의 장자는 화찰아라 하였는데 궁술을 잘하였고 태조를 따라 여러 부족을 토벌하는데 누차 공을 세웠으며

후에 타타르를 정벌하는데 군령을 위반하니 태조가 그 획득한 것을 빼앗았는데, 마침내 알탄과 함께 왕 카안에게 달아났다.

왕 카안이 패하자 다시 나이만(내만)으로 달아났다.

태조가 나이만을 평정하자 (화찰아와 알탄을) 모두 처형하였다.

3남은 열조이고, 4남은 다리타이(답력태)인데 또한 배반하여 왕 카안에게 귀부하였고 

후에 스스로 태조에게 귀부하니 태조가 보살폈다.

열조가 부족장에 있은 지 13년 동안 누차 금을 정벌하였다.

또한 타타르를 토벌하여 그 추장 2명을 사로잡았는데, 말하길 테무진 올격(첩목진올격)과 코리 보카(고로포합)이라 하였고,

여러 부족이 두려워 복종하였다.

케레이트(객렬역) 부족장 왕 카안이 그 숙부 고아감의 공격을 당하자 열조에게 구원을 애걸하였다.

열조가 고아감을 축출하였고 이로써 케레이트의 난을 평정하니, 왕 카안이 덕이 있다 생각하였고

열조와 더불어 약조하여 안다(암달)로 삼았다.

후에 열조가 태조를 위하여 옹길랄씨(옹기라트)에게 구혼하였는데 도중에 초르고(차극아)의 땅에 이르러

타타르인을 만났는데 독주로써 마시게 하였다.

열조가 갑작스레 급한 병에 걸리니 집에 이르러 소찰랄합액부격의 아들 멩칼릭(몽력극)을 불러

이로써 태조 형제를 부탁하고는 붕어하니 이때 태조는 13세였다.


사신은 말한다!

「원나라 사람은 조상의 근본을 망각하여 그 국성을 칭하여 말하길 기악온씨라 하였으니 이는 옛사서로 인함이다.

  우리 고종(건륭제) 순황제가 이윽고 관신에게 명하여 다시 번역하게 하였고

  다시 《몽고원류》에 근거하여 원의 국성이 보르지긴氏(박이제금씨)임을 증명하였는데,

  수백을 답습한 착오가 실려 있었고 우리 고종(건륭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개정하게 하였다.

  보르지긴(박이제금)은 곧 보르지긴(패아지근)의 다른 번역이다.

  지금 몽고 칼가(객아객)의 여러 부족은 보르지긴씨(박이제금)가 아니니 타이지(태길)을 얻지 못하였는데,

  대개 추장들이 본디부터 다른 서자의 성씨다고 운하였다.」


요약.

암바가이 카안에 이어 카볼의 5남 쿠투라가 카안에 오른다.

쿠투라는 금에 복수전을 단행하였고, 이에 금 세종은 감정지령을 내리고 초원의 몽고인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쿠투라 사후 키요트 보르지긴氏는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카볼 카안의 2남 바르담의 3남 예수게이로 가계가 이어진다.

일족 타르구타이(탈부타이)는 타이치오드(타이초트) 부족장이 되어 예수게이와 틈이 벌어졌다.

예수게이가 타타르인에게 독살당하자 타이치오드 부족은 예수게이 휘하 부족민은 모두 타이치오드에게 투항하였고

테무진은 핍박을 받고 궁핍한 생활을 지속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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