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떠도는 풍문을 들어 제베가 테무진의 목에 독화살을 명중시켰고
이에 젤메가 피를 빨아내 테무진이 살아났으며
후에 제베가 투항하자 테무진은 이를 용서하고 <화살>이란 이름의 <제베>를 하사하여
본명 지르고아다이에서 제베로 이름을 바꿨다고 알고 있었는데요.
완전히 틀렸습니다!!!
우선 혼동이 있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쿠이텐(활역전) 전투에서 테무진이 목에 독화살을 맞았다.
젤메가 피를 빨아대 살아났다.
2. 쿠이텐 전투에서 제베가 적군에 있었다.
3. 테무진이 지르고아다이 투항후 제베란 이름을 하사하였다.
모두 팩트이긴 합니다. 단 순서와 지명이 뒤죽박죽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우선 쿠이텐 전투는 3번이나 있었습니다.
1. 1194년 키요트 테무진 vs 타이치오트 타르고타이
2. 1202년 키요트 테무진 vs 나이만 부이룩 칸+ 타이치오트 앙쿠 후쿠추
3. 1203년 키요트 테무진 vs 케레이트 옹칸
우선 1194년 테무진은 타이치오트 타르고타이와 쿠이텐 들판에서 싸워 타르고타이를 격파합니다.
이에 타이치오트 휘하 베수트 부족 지르고아다이(제베)는 도망갑니다.
보로골이 지르고아다이를 추격하였는데 이때 보로골은 테무진의 입술이 백색인 말을 타고 있었습니다.
지르고아다이는 보로골이 탄 말의 경추골을 정확하게 쏘아 맞춰고 달아날 수 있었지요.
후에 지르고아다이가 숲에 숨어있다가 결국 투항하였는데
테무진은 자신의 말의 경추골을 쏘아 맞춘 자라 하여 제베란 이름을 하사하였지요.
즉 제베의 투항은 1194년 소르칸 시라의 아들 칠라군과 함께입니다.
1194년 1차 쿠이텐 전투
신원사 제베 열전中
베수트인은 본디 타이초트(태역기적)에 붙어 태조와 더불어 사이가 나빴다.
태조가 쿠이텐의 들판에서 타이초트 등을 격파하였는데 베수트의 부족 무리가 무너져 흩어졌고 제베는 수풀 속에 숨었다.
태조가 사냥을 나가 발견하고는 영을 내려 보로골로 하여금 쫓아가 포박하게 하니,
박이본이 태조의 전마를 타고 갔는데 말의 입술색이 백색으로 몽고어에「찰한홀실문말려」라 이름을 삼았다.
보로골이 제베를 쐈는데 명중하지 못하였고 제베가 대항하여 쏘아 그 말이 쓰러졌고 마침내 도망쳐 가버렸다.
후에 토르간 시라와 함께 항복하여 왔다.
태조가 묻길
「쿠이텐의 전투에서 고개 위에서 쏴서 내 말의 경추골을 끊은 자가 누구인가?」
제베가 말하길
「나다! 만약 죽음을 내린다면 이 손바닥 만한 땅을 더럽히는데 그칠 것이나,
만약 그 죄를 사하여 준다면 원컨대 목숨을 바쳐 은혜를 갚겠다!」
태조가 그 기만하지 않은 것을 기뻐하며 마침내 용서하고 등용하였다.
성무친정록 1194년 기사中
타이치오트의 무리가 그 추장의 무도함에 고생하며 서로 고하여 말하길
「태자(테무진)는 자기의 옷으로 사람을 입히고, 자기의 말로써 사람을 태우니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은 필히 이 사람이다.」
이로 인하여 모두 귀부하여 왔다.
칠라우 바하두르와 제베 2인은 실은 타이치오트 일족 토다의 가인인데 또한 귀부하여 왔다.
처음에 상이 일찍이 타르고타이에게 사로잡혔는데 칠라우 바하두르의 부친 소르칸 시라가 은밀히 풀어 주었고,
이에 이로써 우리에게 귀부하였다.
제베의 온 것은 실은 힘이 다한 연고였다.
1202년 2차 쿠이텐 전투
신원사 태조 본기 1202년 기사中
가을에 나이만 부족 부이룩칸, 메르키트 추장 톡토아의 아들 쿠도, 타이치오트의 추장 앙쿠 후쿠추
또한 살지우트, 오이라트, 두르벤, 카타킨의 여러 부족이 연합하여 공격하여 왔다.
황제가 옹칸과 함께 옹고트 부족 실지울지트의 땅에서 회합하였다.
셍군이 뒤에 이르렀는데 산 협곡을 넘어갔는데, 나이만의 병력이 따라오더니
무당으로 하여금 물 가운데에 돌을 던지게 하고 이로써 눈바람을 불러오게 하였다.
갑자기 반대로 바람이 불자 나이만의 무리들이 크게 흩어졌고 쿠이텐의 땅으로 퇴각하여 이르렀는데
병사와 말이 얼어서 쓰러지고 협곡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은 자가 헤아릴 수 없었다.
자무카가 부족 무리를 인솔하여 응원하여 왔는데 부이룩칸의 패배를 보더니 곧 여러 부족을 크게 약탈하고는 가버렸다.
황제가 앙쿠 후쿠추를 스스로 추격하였는데, 목에 유시가 명중하여 상처가 심하였으나
마침내 앙쿠 후쿠추를 사로잡아 주살하였다.
성무친정록 1202년 기사中
부이룩 가한이 바꾸며 말하길
「저쪽 군이 분산되었으니 그 무리가 모이길 기다렸다가 내가 모두 단절시키겠노라!」
이때 아쿠추와 쿠두 2부족의 병력이 나이만을 따라 왔는데 선봉과 더불어 합병하였다.
장차 싸우게 되었는데 닐카의 군세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더니 마침내 돌아갔다.
닐카가 잇달아 또한 요새에 들어왔는데 때마침 아군이 전투를 헤아려 치중을 다른 곳에 두었다.
상이 왕 가한과 함께 알란 요새를 의지하여 벽으로 삼았고 쿠이텐의 들에서 대전하였다.
저쪽이 바람을 기원하였는데 바람이 홀연히 반대로 부니 눈 때문에 혼란에 빠졌고
군이 어지럽게 도랑에 빠지고 구덩이에 떨어지니 돌아갔다.
이때 자무카가 부이룩 가한을 따라 왔는데 중도에 자무카가 군을 인솔하여 돌아갔고
자신을 가한에 옹립한 자들을 만나더니 여러 부족을 모조리 토벌하고 약탈하였다.
몽골비사 1201년 기사中 (유원수 역주)
그 뒤 닭해(1201년)에 (중략) 알코이 샘에 모여 자다란의 자모카를 카로 추대하자! (중략)
다음날 전진하다가 쿠이텐에서 조우하여 싸우고 (중략)
나이만의 보이록 칸이 이탈하여 (중략)
옹 칸은 에르구네 강을 따라 자모카를 추격했다.
칭기스 카한은 오난 강 쪽으로 타이치오드의 아오초 용사를 추격했다. (중략)
칭기스 카한은 그 전투에서 목의 핏줄을 다쳐 지혈을 하려고 했으나 안 되었다. (중략)
막은 피를 젤메가 제 입에 피를 묻혀가며 계속 빨아 냈다.
즉 여러 부족이 자무카를 구르칸으로 옹립하였다가 테무진+옹칸 연합에게 격파되었고,
다시 나이만 부이룩 칸+메르키트잔당+타이치오트 잔당+자다란 자무카+기타 부족 등이
북과 동에서 공격하자 실지울지트 협곡에서 나이만을 위시한 연합군을 격파하였고
옹칸은 동쪽에서 오고 있는 자무카를 추격하고, 테무진은 타이치오트 잔당을 추격하다 화살을 목에 맞게 됩니다.
1203년 3차 쿠이텐 전투
이 전투는 쿠이텐 전투라기 보다는 칼라진 엘레트 전투, 혹은 발주나 전투로 불립니다.
2차 쿠이텐 전투이후 초원의 패권은 케레이트의 옹칸과 키요트의 테무진이 쥐고 있었습니다.
옹칸은 테무진을 배신하고 선공을 날렸고, 테무진은 칼라진 엘레트로 후퇴하였지요.
옹칸은 자무카+기타 부족 잔당과 연합하여 칼라진 엘레트를 급습하였고, 수적으로 불리했던 테무진군은 사기가 떨어지게 됩니다.
이에 테무진의 안다(의형제)였던 쿠일다르가 선봉장이 되어 케레이트 군의 중앙을 돌파하고
후방에 있던 쿠이텐 산 정상에 깃발을 꼽게 됩니다.
이에 테무진 군은 일제히 돌격을 감행하게 되지요.
물론 쿠일다르는 며칠 있다가 부상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신원사 태조 본기 1203년 기사中
망고드의 장수 쿠일다르와 우루우트의 장수 주르체데이를 선봉으로 삼아 해질 무렵에 이르도록 크게 싸웠다.
주르체데이가 셍군을 쏘아 그 뺨을 명중하자 옹칸이 비로소 군사를 거두어 들이고는 퇴각하였다.
황제가 중과부적으로써 급히 인솔하여 가버렸다.
다음날에 황자 우구데이, 대장 보오르초, 보로골이 비로소 이르렀다.
쿠일다르는 중상을 입었는데 상처가 터져 중도에 졸하였다.
집사 1203년 기사中 (김호동 역주)
칭기스 칸의 의형제였던 쿠일다르 세첸은
"칸이여! 나의 의형제여! 내가 나가겠습니다.
적의 등 뒤에 있는 저 꼭대기-그 이름은 쿠이텐이었다-에 나의 깃발을 꽂아 나의 용맹함을 보이겠습니다.
(중략)
쿠일다르는 신의 도움을 기대하며 즉각 말한 것처럼 적진을 통과해서 자신의 깃발을 그 쿠이텐 산정에 꽂았다.
그런데 문제는 몽골비사에서 발생합니다.
위에 언급한 2차 쿠이텐 전투 후에 소르칸 시라와 제베가 투항하는 기사가 실려 있다는 것이지요.
몽골비사 1201년 기사中 (유원수 역주)
다음날 타이치오드의 투두게의 사람들이었던 소르칸 시라와 제베도 왔다.
(중략)
다시 칭기스 카한이 "쿠이텐에서 후퇴와 포위를 거듭하며 싸우고 있을 때,
산등성이 위에서 나의 입이 흰 고라말의 목등뼈를 쏘아 부러뜨린 자가 누구냐?고 했다.
그 말에 제베가 "산 위에서 제가 쐈습니다.
즉 몽골비사는 2차 쿠이텐 전투에 1차 쿠이텐 전투의 제베를 끌어다 쓴 것이었습니다.
우선 몽골비사는 원 태종 우구데이칸 당시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는 성무친정록과
이를 바탕으로 기록된 앗시드 웃딘의 집사에 비하면 기록의 신뢰성이 상당 부분 떨어집니다.
년도나 인물, 순서 등이 뒤죽박죽인 경우가 상당히 많더군요.
성무친정록 및 신원사에는 쿠이텐 전투 직전 벌어진 4부 타타르 정벌전에
제베의 기록이 나옴으로 쿠이텐 전투의 제베는 당연히 테무진 소속이었습니다.
신원사 태조 본기 1202년 기사中
1202년에 황제가 차아안, 알치, 도타오드, 알로카이 4부 타타르를 친정하였는데 올쿠이 실지울지트까지 추격하여 이르렀다.
그 무리가 항복하니 황제가 모조리 주살하였다.
알탄, 코차르, 다리타이 3인이 군령을 위반하니 황제가 명하여 쿠빌라이와 제베로 하여금 그 포획을 빼앗게 하였다.
3인이 노하였고 마침내 다른 뜻이 있게 되었다.
가을에 나이만 부족 부이룩칸, 메르키트 추장 톡토아의 아들 쿠도, 타이치오트의 추장 앙쿠 후쿠추
또한 살지우트, 오이라트, 두르벤, 카타킨의 여러 부족이 연합하여 공격하여 왔다.
황제가 옹칸과 함께 옹고트 부족 실지울지트의 땅에서 회합하였다.
성무친정록 1202년 기사中
1202년에 올쿠이 실지울지트에서 출병하여 알치 타타르, 차아안 타타르를 정벌하였다.
여름에 둔병하고 더위를 피하였다.
싸움에 앞서 먼저 무리에게 맹세하여 말하길
「만일 적을 격파하고 패주하는 적을 추격한다면 버린 물건을 멀리서 바라보아도 삼가하여 돌아보지 말라!
군의 일이 끝나면 함께 나눌 것이니라!」
이윽고 누차 승전하였는데 족인 알탄, 코차르, 다리타이 3인이 약조를 어기니,
상이 명하여 쿠빌라이와 제베 두 장군으로 하여금 그 노획을 모조리 박탈하여 군중에 나누었다.
이 가을에 나이만 부이룩 가한이 메르키트 부족장 톡토아 베키, 두르벤, 타타르, 카타킨,
살지우트의 여러 부족 및 아쿠추 바하두르, 쿠투카 베키 등과 회합하였고 아군과 더불어 왕 가한을 침략하여 왔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제베는 1194년 1차 쿠이텐 전투에서 타이치오트 타르고타이 휘하로 테무진 말의 경추골을 맞췄다.
2. 제베는 1194년에 테무진에게 투항하였고 제베란 이름을 하사받는다.
3. 제베는 1202년 초 4부 타타르 정벌전에 종군한다.
4. 1202년 가을 2차 쿠이텐 전투에서 테무진은 패전한 타이치오트 잔당 앙추 아쿠추를 추격하다 화살이 목에 박혔다.
5. 젤메가 피를 뽑아줬다.
6. 몽골비사에 제베의 투항을 1202년 2차 쿠이텐 전투로 기록하였는데, 다른 사서들에는 1194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7. 제베가 테무진의 목을 맞췄다는 기록은 찾아보질 못하였다.
-끝-
최근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