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사 자무카 열전 1부-자지라트 추장 안다를 위해 출병하다! 테무진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몇몇 인물들에 대한 열전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테무진의 안다(의형제)이자 숙적이었던 자무카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인물 열전>

청사고

왕올당, 왕고, 다이샨, 태조 누르하치, 추옝, 슈르하치, 야르하치 

피옹돈, 호호리, 어이두, 안퍙구후르한푸차 군다이

잉굴다이어르더니 밬시양구리보르진특금마심, 캉카라도르곤도도아지거푸헝

하르졸(해란주)호오거망굴타이아민고이마혼/와산/제극탑합/공아지르가랑두두니칸

송사

한세충이치, 양재흥, 동관[방랍], 채경, 부언경, 곽약사, 반미, 이사사고구송강장방창, 황잠선묘부(유정언)진회

금사

명사

두송 이성량 모문룡

송서

만주팔기씨족통보
 

원문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96%B0%E5%85%83%E5%8F%B2/%E5%8D%B7117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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札木合,札只剌氏。

太祖九世祖孛端察兒生札只剌歹,其母乃札兒赤兀惕兀良合之婦,已有身,爲孛端察兒所掠,及生子,名以札只剌歹,

義謂他人子也,是爲札只剌氏之祖。

札只剌歹生土古兒歹,土古兀歹生不里不勒術魯,不里不勒術魯生合剌合答安,合剌合答安生札木合。

札木合幼與太祖親密,約爲按答。

太祖十一歲,於斡難河冰上爲髀石之戲,札木合以狍子髀石贈太祖,大祖以灌銅髀石報之。

又與太祖習射,以牛角骲箭贈太祖,太祖以柏木■頭骲箭報之。

二人情好甚篤。

烈祖卒,部衆多叛去,札木合亦率所部歸於泰亦兀赤。

太祖光獻皇后爲蔑兒乞人所掠,太祖求救於王汗,約札木助太祖。

太祖使合撒兒、別勒臺告於札木合,札木合允之,且曰:

「吾聞三種蔑兒乞:

  託黑脫阿在不兀剌客額兒之地,答兒兀孫在斡兒洹、薛涼格兩河間塔勒渾阿剌勒之地,答兒馬剌在合剌只客額兒之地。

  若以豬鬃草縛筏,徑渡勤勒豁河,至託黑脫阿所居,猶從天窗入室,其部衆可襲而虜之。」

議定,使王汗取道不兒罕合勒教,太祖待札木合於孛脫罕孛斡兒只之地。

札木合率二萬騎朔斡難河而西。

來會師。

既而,王汗與其弟札合敢不,分率二萬騎,東逾不兒罕合勒教,趨太祖行營客魯漣河源不兒吉之地。

太祖至不兒罕山塔納河邊,逆王汗不遇,乃改道至乞沐兒合阿因勒合剌合納,始與王汗軍合。

遂溯斡難河源至孛脫罕孛斡兒只,則札木合已先三曰至矣。

札木合慍曰:

「吾與人期會不避風雨,達達輩一諾如盟,何後也?」

王汗愧謝。

乃合軍而北結筏夜渡勤勒豁河,襲蔑兒乞部衆,大破之。

脫黑脫阿與答亦兒兀孫遁走,獲其妻孥,並執答兒馬剌。

太祖遂迎歸光獻皇后。

王汗返土兀剌河之黑林,太祖與札木合返豁兒豁納黑主不兒。

찰목합(札木合)은, 찰지랄씨(札只剌氏)다.

태조(太祖)의 구세조(九世祖) 패단찰아(孛端察兒)가 찰지랄대(札只剌歹)을 생(生)하였는데,

그 모(母)는 곧 찰아적올척(札兒赤兀惕) 올량합(兀良合)의 부(婦)였고, 이미(已) 유신(有身)하였는데,

패단찰아(孛端察兒)가 소략(所掠)하였고, 생자(生子)에 이르자, 찰지랄대(札只剌歹)이라 명(名)하였는데,

의위(義謂)하면 타인(他人)의 자(子)이다.

이가 찰지랄씨(札只剌氏)의 조(祖)가 되었다.

찰지랄대(札只剌歹)은 토고아대(土古兒歹)을 생(生)하였고, 토고올대(土古兀歹)은 부리부륵술로(不里不勒術魯)를 생(生)하였고,

부리부륵술로(不里不勒術魯)는 합랄합답안(合剌合答安)을 생(生)하였고, 

합랄합답안(合剌合答安)은 찰목합(札木合)을 생(生)하였다.

찰목합(札木合)이 유(幼)하여 태조(太祖)와 더불어 친밀(親密)하였는데, 약(約)하여 안답(按答)이 되었다.

태조(太祖)의 11세(歲)에, 알난하(斡難河) 빙상(冰上)에서 비석(髀石)으로 희(戲)하였는데,

찰목합(札木合)이 포자비석(狍子髀石/노루뼈로 만든 비석)으로써 태조(太祖)에게 증(贈)하였고,

태조(大祖)가 관동비석(灌銅髀石)으로써 보지(報之)하였다.

또 태조(太祖)와 함께 습사(習射)하였고, 우각박전(牛角骲箭/소뿔로 만든 화살촉)으로써 태조(太祖)에게 증(贈)하였고,

태조(太祖)는 백목두박전(柏木■頭骲箭/편백나무로 만든 고두리 화살촉)으로써 보지(報之)하였고,

2인(人)의 정호(情好)가 심독(甚篤)하였다.

열조(烈祖/예수게이)가 졸(卒)하자, 부중(部衆)이 많이 반거(叛去)하였고,

찰목합(札木合) 역시(亦) 소부(所部)를 솔(率)하여 태역올적(泰亦兀赤)에 귀(歸)하였다.

태조(太祖)의 광헌황후(光獻皇后/부르테)가 멸아걸인(蔑兒乞人)에게 소략(所掠)하였는데,

태조(太祖)가 왕한(王汗)에게 구구(求救)하였고, 찰목(札木/나무를 뽑음)하여 태조(太祖)를 조(助)하기로 약(約)하였다.

태조(太祖)가 합살아(合撒兒)와 별륵대(別勒臺)로 하여금 찰목합(札木合)에게 고(告)하게 하였는데,

찰목합(札木合)이 윤지(允之)하였고, 또한 말하길

「내가 듣기로 삼종(三種) 멸아걸(蔑兒乞)은, 탁흑탈아(託黑脫阿)는 부올랄객액아(不兀剌客額兒)의 지(地)에 재(在)하고,

  답아올손(答兒兀孫)은 알아원(斡兒洹)과 설량격(薛涼格) 양하간(兩河間)의 탑륵혼아랄륵(塔勒渾阿剌勒)의 지(地)에 

  재(在)하고, 답아마랄(答兒馬剌)는 합랄지객액아(合剌只客額兒)의 지(地)에 재(在)한다.

  만약(若) 저종(豬鬃/돼지털)과 초(草)로써 박벌(縛筏/뗏목을 얽음)하여, 근륵활하(勤勒豁河)를 경도(徑渡)하고,

  탁흑탈아(託黑脫阿)의 소거(所居)에 지(至)하여, 가히 천창(天窗)을 종(從)하여 입실(入室)하고,

  그 부중(部衆)을 가습(可襲)하고 노지(虜之)하자!」

의정(議定)하자, 왕한(王汗)으로 하여금 부아한합륵교(不兒罕合勒教)를 취도(取道)하게 하였고,

태조(太祖)는 찰목합(札木合)을 패탈한패알아지(孛脫罕孛斡兒只)의 지(地)에서 대(待)하였다.

찰목합(札木合)이 2만기(萬騎)를 솔(率)하여 알난하(斡難河)을 소(溯/거슬러 올락마)하여 이서(而西)하였고, 

래(來)하여 회사(會師)하였다.

얼마 안 있어, 왕한(王汗)이 그 제(弟) 찰합감부(札合敢不)와 함께, 2만기(萬騎)를 분솔(分率)하여,

동(東)으로 부아한합륵교(不兒罕合勒教)를 유(逾)하였고,

태조(太祖)의 행영(行營)인 객로련하원(客魯漣河源) 부아길(不兒吉)의 지(地)로 촉(趨)하였다.

태조(太祖)가 부아한산(不兒罕山) 탑납하변(塔納河邊)에 지(至)하였는데, 왕한(王汗)을 역(逆)하여 부우(不遇)하니, 

이에 개도(改道)하여 걸목아합(乞沐兒合) 아인륵합랄합납(阿因勒合剌合納)에 지(至)하였고,

비로소 왕한(王汗)과 함께 군합(軍合)하였다.

마침내 알난하원(斡難河源)을 소(溯)하고 패탈한패알아지(孛脫罕孛斡兒只)에 지(至)하였는데,

즉(則) 찰목합(札木合)은 이미(已) 3일(曰) 먼저 지(至)하였다.

찰목합(札木合)이 온(慍/성냄)하며 말하길

「내가 사람과 함께 기회(期會)하니 풍우(風雨)를 불피(不避)하였고,

  달달배(達達輩)와 일낙(一諾/한 번 승낙함)하여 여맹(如盟)하였는데, 어찌 후(後)하는가?」

왕한(王汗)이 괴사(愧謝/부끄러워 사과함)하였다.

이에 합군(合軍)하고 이북(而北)하여 결벌(結筏/뗏목을 묶음)하여 근륵활하(勤勒豁河)를 야도(夜渡)하여,

멸아걸(蔑兒乞) 부중(部衆)을 습(襲)하고 대파지(大破之)하였다.

탈흑탈아(脫黑脫阿)는 답역아올손(答亦兒兀孫)과 함께 둔주(遁走)하였고,

그 처노(妻孥)를 획(獲)하였으며, 아울러 답아마랄(答兒馬剌)을 집(執)하였다.

태조(太祖)가 마침내 광헌황후(光獻皇后)를 영귀(迎歸)하였다.

왕한(王汗)이 토올랄하(土兀剌河)의 흑림(黑林)으로 반(返)하였고,

태조(太祖)는 찰목합(札木合)과 함께 활아활납흑주부아(豁兒豁納黑主不兒)로 반(返)하였다.



자무카(찰목합)은 자지라트(찰지랄/자드란/자다란)씨이다.

태조의 9세조 보돈초르(패단찰아/부단차르)가 자지라다이(찰지랄대/자다라다이)을 낳았는데

그 모친은 곧 자르치오드 아당칸 오리앙카이(찰아적올척 올량합)의 부인이었고 이미 임신하고 있었는데

보돈초르가 약탈하였고 아들이 태어나자 자지라다이라 이름 지었다.

뜻은 타인의 자식을 일컫는다.

이자가 자지라氏의 시조가 되었다.

자지라다이는 투구우데(토고아대)을 낳았고, 투구우데는 부리 볼치로(부리 부륵술로)를 낳았고,

부리 볼치로는 카라 카다안(합랄 합답안)을 낳았고 카라 카다안은 자무카를 낳았다.

자무카가 어릴 때에 태조와 더불어 친밀하였는데 약조하여 안다(안답/의형제)가 되었다.

태조가 11세에 오논강(알난하) 얼음 위에서 비석(늑대의 넓적다리뼈로 만든 주사위)으로 놀고 있었는데

자무카가 숫노루 발목뼈로 만든 비석을 태조에게 주었고, 태조는 구리를 부어 만든 비석으로 보답하였다.

또 태조와 함께 활쏘기를 연습하였고 소뿔로 만든 화살촉을 태조에게 주었는데

태조는 편백나무로 만든 고두리 화살촉으로 보답하니 2인의 우정이 심히 돈독하였다.

열조(예수게이)가 졸하자 부족 무리가 많이 배반하여 가버렸고

자무카 역시 소속 부족을 인솔하여 타이치오트(태역올적)에 귀부하였다.

태조의 광헌황후(부르테)가 메르키트(멸아걸) 사람에게 약탈을 당했는데

태조가 옹칸(왕한)에게 구원을 구하였고 나무를 뽑아 태조를 돕기로 약조하였다.

태조가 카사르(합살아)와 벨구데이(별륵대)로 하여금 자무카에게 고하게 하였는데 자무카가 허락하였고 또한 말하길

「내가 듣기로 3종 메르키트 중에 (오도이드 메르키트) 톡토아(탁흑탈아)는 부쿠라 케헤르(부올랄 객액아/보오라 초원)의 

  땅에 있고

  (오와스 메르키트) 다이르 오손(답아 올손)은 오르콘(알아원)과 셀렝게(설량격)의 탈콘 섬(탑륵혼아랄륵)의 땅에 있고,

  (카아드 메르키트) 카아타이 다르말라(답아마랄)는 카라지 케헤르(합랄지 객액아/카라지 초원)의 땅에 있다. 

  만약 돼지털과 풀로 뗏목을 얽어 킬코강(근륵활하)를 가로질러 건너서,

  톡토아이 거주하는 곳에 이르러 가히 천창을 따라 실내로 들어가 그 부족 무리를 기습하여 포로로 삼자!」

의논이 정해지자 옹칸으로 하여금 보로칸 칼도노(부아한 합륵교/보로칸 성산)를 경유하게 하였고,

태조는 보토간 보오르지(패탈한 패알아지)의 땅에서 자무카를 기다리게 하였다.

자무카는 2만기를 인솔하여 오논강(알난하)을 거슬러 올라가 서진하여 와서 군을 회합하였다.

얼마 안 있어 옹칸이 그 동생 자아감보(찰합감부)와 함께 2만기를 나누어 인솔하고 동진하여

보로칸 칼도노를 넘어 태조의 행영지인 켈루렌 강의 발원지 부르기(부아길)의 땅으로 달려갔다.

태조가 보로칸 산 타나(탑납) 강변에 이르렀는데 옹칸과 역행하여 만나지 못하니

이에 길을 고쳐 키모르가(걸목아합) 아일 카라가나(아인륵 합랄합납)에 이르러 비로소 옹칸과 함께 군을 합류하였다.

마침내 오논강 발원지를 거슬러 올라가 보토칸 보오르지에 이르렀는데 즉 자무카는 이미 3일 전에 먼저 이르렀다.

자무카가 성을 내며 말하길

「내가 사람들과 함께 회합하기를 기약하며 비바람을 피하지 않았고,

  몽골 무리와 한 번 승낙하여 맹약을 맺었는데 어찌 늦었는가?」

옹칸이 부끄러워 사과하였다.

이에 군을 합치고 북진하여 뗏목을 묶어 킬코강을 야밤에 건너 메르키트 부족 무리를 습격하여 대파하였다.

톡토아는 다이르 오손과 함께 달아났는데 그 처자를 사로잡았으며 아울러 다르말라를 사로잡았다.

태조가 마침내 광헌황후를 맞이하여 돌아왔다.

옹칸은 토올라강(토올랄하)의 카라툰(흑림)으로 돌아왔고,

태조는 자무카와 함께 코르코낙 조보르(활아활납 흑주부아)로 돌아왔다.


요약.

자무카는 자지라트(자드란) 부족 출신이다.

자지라트 부족은 키요트 보르지긴(거센 물살+회색눈) 부족의 시조 보돈초르 뭉하크(사생아+멍청이)의 장남 가문이나,

실상 보르지긴 씨와는 모계만 같을 뿐 부계는 엄연히 다르다.

그러나 보돈초르가 형제들과 떨어져 혼자 살때 도움을 줬던 자르치오드(퉁지리후) 부족을 형 보코 카타키와 함께 공격하고

아당칸 오리앙카이의 부인 부단 하툰을 약탈하여 부인으로 삼았는데, 당시 부단은 임신상태였다.

보돈초르는 아이가 태어나자 다른 남자의 아이란 뜻의 <자지라 다이>라 이름 지었다.

자지라 다이의 가계는 투구우데-부리 볼치로- 카라 카다안을 거쳐 자무카로 이어졌으며

그 일족을 자지라 사람들이란 뜻의 자지라트 부족이 되었다.

자무카는 어릴 때 테무진과 오논강에서 함께 비석을 가지고 놀며 안다를 결의하였다.

예수게이 사후 테무진의 키요트 부족민들은 일족 최강 타이치오트 부족에게 모두 떠나버렸는데

자지라트 부족도 타이치오트 휘하로 들어갔다.

세월이 흘러 테무진은 메르키트에게 부르테를 약탈당했다.

이에 테무진은 옹칸에게 구원을 애걸하였고, 또한 자무카에게도 동생 카사르와 벨구데이를 보내 구원을 청한다.

자무카는 흔쾌히 수락하였고 이에 케레이트 옹칸의 2만 병력과 자지라트 부족 1만, 인근 부족군 1만을 더하여 

4만 대군으로 메르키트를 쳐들어 간다.

옹칸과 자무카군은 보토칸 보오르지에서 만나기로 약조하였는데 옹칸의 부대가 3일이나 늦게 되자

자무카는 성을 내었고 옹칸은 심히 부끄러워한다.

3종 메르키트(오도이드/오와스/카아드)를 기습한 연합군은 마침내 부르테를 되찾게 된다.

이후 옹칸은 본거지 카라툰으로, 자무카와 테무진은 코르코낙 조보르로 돌아와 동거동락하며 우정을 더한다.


몽골비사中 (유원수 역주)

<테무진 형제의 침소가 비었다는 것을 알고 내 애가 끊어졌다.

 가슴이 도려져 나갔다는 것을 알고 내 간이 아팠다.

 원수를 갚아 오도이드, 오와스 메르키트를 없애고 부르테 부인을 구하자!

 복수를 하여 모든 카아드 메르키트를 쳐부수고 카톤 부르테를 되찾자!>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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