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사 자무카 열전 2부-안다에서 호적수로 13쿠리엔 전투! 테무진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몇몇 인물들에 대한 열전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테무진의 안다(의형제)이자 숙적이었던 자무카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1부-자지라트 추장 안다를 위해 출병하다!


<인물 열전>

청사고

왕올당, 왕고, 다이샨, 태조 누르하치, 추옝, 슈르하치, 야르하치 

피옹돈, 호호리, 어이두, 안퍙구후르한푸차 군다이

잉굴다이어르더니 밬시양구리보르진특금마심, 캉카라도르곤도도아지거푸헝

하르졸(해란주)호오거망굴타이아민고이마혼/와산/제극탑합/공아지르가랑두두니칸

송사

한세충이치, 양재흥, 동관[방랍], 채경, 부언경, 곽약사, 반미, 이사사고구송강장방창, 황잠선묘부(유정언)진회

금사

명사

두송 이성량 모문룡

송서

만주팔기씨족통보
 

원문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96%B0%E5%85%83%E5%8F%B2/%E5%8D%B7117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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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祖以金帶牝馬贈札木合,札木合亦以金帶有角白馬贈太祖,重與太祖約爲按答,歲餘無間言。

一日,太祖與札木合同遊於忽勒答閤兒崖,札木合曰:

「吾緣崖而下,則放馬者有營帳可居,至澗底,則牧羊者有水可飲,真形勢之地也。」

太祖不答。

俟宣懿皇后至,告之。

時光獻皇后在側,言於太祖曰:

「吾聞札木合喜新厭舊,彼殆厭我矣。

  向所言。

  得勿有圖我之意乎?

  不如去之。」

太祖以爲然,乘夜間行。

西還滴闊納浯兒。

及太祖爲可汗,使阿兒該合撒兒、察兀兒罕三人告於札木合,札木合以太祖之去歸咎於阿勒壇、忽察兒之離間,以好言復太祖,

然心實忌之。

後札木合之第紿察兒居於斡列該不剌合之地,與太祖部下答兒馬剌牧地相近。

給察兒掠答兒馬剌之馬,答兒馬剌追之,伏於馬鬃上射殺給察兒,奪馬而回。

札木合怒,率所統十三部共三萬人來伐。

十三部者,曰泰亦赤兀、亦乞列思、兀魯兀特、布魯特、忙忽特、那牙勤歹、巴普剌思、巴阿鄰歹、合塔斤、撒勒只兀特、

朵兒邊、塔塔兒及札答蘭本部也。

是時,太祖在古連勒古之地,駙馬孛禿父捏坤在泰亦兀赤部下,遣使來告變。

太祖亟召集部衆,爲十三翼,以拒之。

戰於答蘭巴泐渚納。

太祖兵敗退。

札木合斷兀歹部人察合剌安之首,繫於馬尾而去。

태조(太祖)가 금대(金帶)와 빈마(牝馬/암컷 말)로써 찰목합(札木合)에게 증(贈)하였고, 찰목합(札木合) 역시(亦) 금대(金帶)로 

유각(有角)한 백마(白馬)로써 태조(太祖)에게 증(贈)하였고, 거듭 태조(太祖)와 더불어 약(約)하여 안답(按答)으로 삼았고,

세여(歲餘/1년 남짓한 동안) 간언(間言)이 없었다.

일일(一日), 태조(太祖)가 찰목합(札木合)과 더불어 홀륵답합아애(忽勒答閤兒崖)에서 동유(同遊)하였는데, 

찰목합(札木合)이 말하길

「나는 연애(緣崖)하여 하(下)하니, 즉(則) 방마자(放馬者)는 영장(營帳)에 있으며 가거(可居)하고, 

  간저(澗底/골짜기의 깊은 곳)에 지(至)하면, 즉(則) 목양자(牧羊者)는 유수(有水)하며 가음(可飲)하니,

  진(真)실로 형세(形勢)의 지(地)로다!」

태조(太祖)가 부답(不答)하였다.

사(俟)하여 선의황후(宣懿皇后/후엘룬)에게 지(至)하여 고지(告之)하였다.

이때 광헌황후(光獻皇后/부르테)가 재측(在側)하였는데, 태조(太祖)에게 어(言)하여 말하길

「내가 문(聞)하기로 찰목합(札木合)은 희신(喜新)하고 염구(厭舊)하니, 저쪽이 장차 염아(厭我)할 것입니다!

  지난번 말한 바는, 우리를 도모하고자 하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거(去)하는 편이 낫습니다.」

태조(太祖)가 그러하다 이위(以爲)하였고, 야간(夜間)을 승(乘)하여 행(行)하였다.

적활납오아(滴闊納浯兒)로 서환(西還)하였다.

태조(太祖)가 가한(可汗)이 됨에 이르러, 아아해(阿兒該), 합살아(合撒兒), 찰올아한(察兀兒罕) 3인으로 하여금 

찰목합(札木合)에게 고(告)하게 하였는데, 찰목합(札木合)이 태조(太祖)의 거귀(去歸)로써 아륵단(阿勒壇)과 

홀찰아(忽察兒)에게 구(咎)하여 리간(離間)하였는데, 호언(好言)으로써 태조(太祖)를 복(復)하니, 

그리한 것은 심(心)이 실(實)은 기지(忌之)한 것이었다.

후(後)에 찰목합(札木合)의 제(第) 태찰아(紿察兒)가 알렬해부랄합(斡列該不剌合)의 지(地)에 거(居)하였는데,

태조(太祖)의 부하(部下) 답아마랄(答兒馬剌)의 목지(牧地)와 더불어 상근(相近)하였다.

급찰아(給察兒)가 답아마랄(答兒馬剌)의 마(馬)를 약(掠)하니, 답아마랄(答兒馬剌)이 추지(追之)하였고,

마종(馬鬃) 상(上)에서 복(伏)하여 급찰아(給察兒)를 사살(射殺)하고는, 탈마(奪馬)하여 회(回)하였다.

찰목합(札木合)이 노(怒)하여 소통(所統)의 13부(部) 공(共) 3만인(人)을 솔(率)하여 내벌(來伐)하였다.

13부(部)라는 것은, 왈(曰) 태역적올(泰亦赤兀), 역걸렬사(亦乞列思), 올로올특(兀魯兀特), 포로특(布魯特), 망홀특(忙忽特), 

나아근대(那牙勤歹), 파보랄사(巴普剌思), 파이린대(巴阿鄰歹), 합탑근(合塔斤), 살륵지올특(撒勒只兀特), 타아변(朵兒邊), 

탑탑아(塔塔兒)와 더불어 찰답란(札答蘭) 본부(本部)였다.

이때에, 태조(太祖)는 고련륵고(古連勒古)의 지(地)에 재(在)하였는데, 부마(駙馬) 패독(孛禿)의 부(父) 날곤(捏坤)이 

태역올적(泰亦兀赤)의 부하(部下)에 재(在)하였고, 견사(遣使)하여 변(變)을 내고(來告)하였다.

태조(太祖)가 빠르게 부중(部衆)을 소집(召集)하였고, 13익(翼)으로 하여, 이로써 거지(拒之)하였다.

답란파륵저납(答蘭巴泐渚納)에서 전(戰)하였는데, 태조(太祖)의 병(兵)이 패퇴(敗退)하였다.

찰목합(札木合)이 올대부(兀歹部) 인(人) 찰합랄안(察合剌安)의 수(首)를 단(斷)하고, 마미(馬尾)에 계(繫/맴)하고는 

거(去)하였다.











태조가 금 허리띠와 암컷 말을 자무카에게 주었고, 자무카 역시 금 허리띠와 뿔이 있는 백마를 태조에게 주었으며 거듭 태조와 

더불어 약조하여 안다(안답)으로 삼았으며 1년 남짓 동안 이간하는 말이 없었다.

하루는 태조가 자무카와 더불어 골다가르 벼랑(홀륵답합아애)에서 함께 유람하였는데 자무카가 말하길

「나는 언덕 가장자리로 내려갈 것이니 즉 말을 유목하는 자는 게르를 치고 거주할만하고

  골짜기 깊은 곳에 이르면 즉 양을 유목하는 자는 물이 있어 가히 마실수 있으니 진실로 형세의 땅이로다!」

태조가 대답하지 않았다.

돌아와 선의황후(후엘룬)에게 이르러 고하였다.

이때 광헌황후(부르테)가 옆에 있다가 태조에게 말하길

「내가 듣기로 자무카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오래된 것을 싫어하니 장차 저쪽은 우리에게 염증을 느낄 것입니다!

  이번에 말한 바는 우리를 도모하고자 하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헤어지는 편이 낫습니다.」

태조가 그러하다 생각하였고 밤을 틈타 행하여 서쪽 아일 카라가나(적활납오아)로 돌아왔다.

태조가 칸(가한)이 됨에 이르러 아르카이(아아해), 카사르(합살아), 차오르칸(찰올아한) 3인으로 하여금 자무카에게 고하게 

하였는데, 자무카가 태조의 돌아가버림으로써 알탄(아륵단)과 코차르(홀찰아)를 책망하며 이간질하였는데 다시 태조에게 

좋은 말을 한 것은 실은 마음으로 시기한 것이었다.

후에 자무카의 동생 다이차르(태찰아)가 울레게이 불락(알렬해 부랄합)의 땅에 살았는데 태조의 부하 다르말라(답아마랄)의 

목장과 더불어 가까웠다.

다이차르가 다르말라의 말을 약탈하니 다르말라가 추격하여 말갈기 위에 매복하여 다이차르를 사살하여 말을 빼앗고는 돌아왔다.

자무카가 노하여 통솔하는 13부를 합쳐 3만 명을 인솔하여 정벌하여 왔다.

13부라는 것은 타이치오트(태역적올), 이키레스(역걸렬사), 우루우트(올로올특), 부르두트(포로특), 망고드(망홀특), 

노야킨(나아근대), 코룰라스(파보랄사), 바아린(파이린대), 카타킨(합탑근), 살지우트(살륵지올특), 두르벤(타아변), 

타타르(탑탑아)와 더불어 자다란(찰답란) 본부였다.

이때에 태조는 구렐구(고련륵고)의 땅에 있었는데 부마 보투(패독)의 부친 네쿤(날곤)이 타이치오트 부족 예하에 있다가 

사신을 보내 변을 고하여 왔다.

태조가 빠르게 부족 무리를 소집하였고 13익으로 하여 이로써 막게 하였다.

달란 발조드(답란 파륵저납)에서 싸웠는데 태조의 병이 패하여 퇴각하였다.

자무카가 우트(올대/네우스) 부족 사람 차가안 오아(찰합랄안)의 머리를 베어 말 꼬리에 매달고 가버렸다.



<테무진 키요트 부족 13익(13쿠리엔) 전투 편성도>

-신원사-

1익 : 후엘룬+올코노이드

2익 : 황제+친족

3익 : 불테추, 무르크 쿠란, 차우르카, 케레이트 부족

4익 : 데렝기, 코리다이

5익~6익 : 세체 베키, 타이추, 잘라이르 부족

7익 : 우투추, 쿠두, 아르당기

8익 : 창슈트, 웅구트

9익 : 다리타이, 코차르, 도코라트+네쿠즈+쿠리칸+사카이트+눈친 부족

10익 : 주치칸

11익 : 알탄

12익 : 다카이, 황화유특+수켄 부족

13익 : 네쿠즈 부족


-집사-

1익 : 우엘룬 에케+테무진의 외가

2익 : 칭기스 칸+자제+시위들

3익 : 불테추 바하두르(셈 카출리의 후예), 무쿠르 쿠란(하다르킨 부족), 차우르카(코쿨라스 부족)

4익 : 데렝기, 코리다이, 부다트 부족

5익, 6익 : 세체 베키, 타이추, 잘라이르 부족

7익 : 쿠두, 아르당기

8익 : 창슈트, 웅구르(바야우트 부족)

9익 : 다리타이 옷치긴, 쿠차르, 달루, 도코라트+네쿠즈+쿠리칸+사카이트+눈친 부족

10익 : 주치 칸

11익 : 알탄

12익 : 다카이 바하두르(콩코탄 부족), 수켄 부족

13익 : 겐두 치나, 우렉친 치나


-성무친정록-

1익 : 우에룬

2익 : 황제+형제

3익 : 불테추 바하두르, 투베겐 케레이트, 모코르 코란의 아다르킨 부족, 차코라의 코로라스 부족

4익 : 데렝기, 코리타이, 보다안

5익, 6익 : 잘라이르+아카 부족

7익 : 다리타이, 코차르, 도코란+너쿠스+코리칸+사아키트+눈친 부족

8익 : 뭉게두 키얀

9익 : 주치 카안

10익 : 알탄

11익 : 코란, 도다안

12익 : 옹기라트 부족, 타칸키 바토르의 수켄 부족, 자라우스 부족

13익 : 겐두 치나 부족, 우렉친 치나 부족


<자무카 13부족 연합군>

1. 자다란

2. 타이치오트

3. 이키레스

4. 우루우트

5. 노야킨

6. 코룰라스

7. 바린

8. 옹기라트

9. 카다긴

10. 살지우트

11. 두르벤

12. 타타르

13. 바룰라스 or 부르두트


<전투의 결과>

승전했다는 사서(집사/성무친정록)도 있으나 대다수 사서에서는 패전으로 기록함.



요약.

테무진+자무카+옹칸의 연합군이 메르키트를 공격하고 마침내 테무진의 아내 부르테를 되찾아 온다.

이후 테무진과 자무카는 다시 한번 안다(의형제)를 결의하고 1년간 동거하면서 유목한다.

자무카는 테무진에게 말을 유목하는 자는 초원으로, 양을 유목하는 자는 골짜기로 가자 말하고

뜻을 이해 못한 테무진에게 부르테는 헤어질 때가 왔음을 알린다.

이후 자무카에게 붙어있던 보르지긴의 일족들과 여러 부족민이 테무진을 따라온다.

일족들의 추대로 칸에 오른 테무진을 자무카는 축하하나 실상 시기한다.

1190년 어느 날 자무카의 동생 다이차르가 테무진의 부하 다르말라에게 사살당하는 일이 벌어지자

분노한 자무카는 13부족 3만명을 인솔하여 테무진을 급습한다.

이에 테무진은 달란 발조드에서 13익(쿠리엔)을 펼쳐 대항하나 대패한다.

이후 1194년까지 테무진은 세를 되찾지 못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된다.

한편 자무카는 13쿠리엔 전투 이후 치노스 귀족 70명을 삶아 죽이고 네우스 부족 차가안 오아의 목을 베어

말꼬리에 매달고 다니는 만행을 저질러 많은 부족들은 두려움으로 자무카를 바라보게 된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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