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사 자무카 열전 3부-구르칸 안다의 제안을 뿌리치고 죽다!(연재종료) 테무진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몇몇 인물들에 대한 열전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테무진의 안다(의형제)이자 숙적이었던 자무카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1부-자지라트 추장 안다를 위해 출병하다!

2부-안다에서 호적수로 13쿠리엔 전투!


<인물 열전>

청사고

왕올당, 왕고, 다이샨, 태조 누르하치, 추옝, 슈르하치, 야르하치 

피옹돈, 호호리, 어이두, 안퍙구후르한푸차 군다이

잉굴다이어르더니 밬시양구리보르진특금마심, 캉카라도르곤도도아지거푸헝

하르졸(해란주)호오거망굴타이아민고이마혼/와산/제극탑합/공아지르가랑두두니칸

송사

한세충이치, 양재흥, 동관[방랍], 채경, 부언경, 곽약사, 반미, 이사사고구송강장방창, 황잠선묘부(유정언)진회

금사

명사

두송 이성량 모문룡

송서

만주팔기씨족통보
 

원문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96%B0%E5%85%83%E5%8F%B2/%E5%8D%B7117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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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酉,宏吉剌、亦乞列思、豁羅剌思、朵兒邊、塔塔兒、撒勒只兀待、合塔斤等部會於刊河,立札木合爲古兒汗。

至禿拉河,舉足蹋岸土,揮刀斬林木,而誓曰:

「有泄此謀,如土崩,如木斷。」

遂潛師來襲。

有火力台者聞之,以語其妻舅麥兒吉台。

麥兒吉台使告於太祖,騎以剪耳白馬。

夜經一古闌,其將曰忽蘭把阿禿兒,曰哈剌蔑兒巴歹,見而執之。

然二將亦心附太祖,贈以良馬使去。

火力台遇載札木合白帳者,疾馳得免,見太祖具告其事。

太祖自古連勒古起兵,迎戰於亦提火兒罕之地,大敗之,札木合遁走。

明年,札木合又合乃蠻、蔑兒乞、斡亦剌、泰亦幾赤、朵兒邊、塔塔兒、合塔斤、撒勒只兀特諸部攻太祖,太祖與王汗合兵拒之。

太祖以阿勒壇等爲前鋒,王汗使其子桑昆爲前鋒。

阿勒壇漏師於札木合將阿不出。

次日,兩軍陣於闊亦田之地,札木合軍中有不亦魯黑、忽都合者,能以巫術致風雨,欲順風縱擊太祖。

忽反風,雨雪,天地晦冥,諸部兵不能進,多墜死澗谷中。

札木合見事敗,乃言:

「天不佑我!」

策馬潰圍而去。

諸都皆潰散。

札木合遂大掠合答斤等部。

自此札木合不能復振,降於王汗。

太祖與王汗伐乃蠻。

札木合言於王汗曰:

「帖木真按答曾遣使於乃蠻,今遷延不進,必與乃蠻通。」

王汗始疑太祖。

及太祖滅王汗,札木合復奔於乃蠻。

太祖親征乃蠻,札木合見太祖軍容甚盛,謂太陽汗曰:

「汝初視蒙古兵如羊古劷羔兒,謂蹄皮亦不留。

  今吾觀其氣勢,殆非昔比矣。」

遂引所部遁去,又遣使以乃蠻軍事告於太祖。

太祖擒殺太陽汗,朵兒邊、塔塔兒、合塔斤、撒勒只兀惕等部皆降。

札木合部衆盡潰,率左右五人遁入倘魯山。

一日,左右炙羱羊而食,札木合呵之,五人怒,乃縛札本合致於太祖。

札木合使謂太祖曰:

「鴉獲家鶩,奴執主人,按答必有以處之。」

太祖以辜恩賣主,不可恕,並其子孫誅之,命蒞殺五人於札木合之前。

使人謂札木合曰:

「我昔與汝爲按答,如車之有轅。

  汝自離我而去,今又相合,可以從我矣。」

札木合曰:

「吾兩人自幼爲按答,因爲人離間,故參差至此。

  吾羞赧不敢與按答相見。

  今按答大位已定,如不殺我,則似領有蝨,衿有剌,必使按答不能安寢,願賜速死爲幸,若使不見血而死,吾魂魄有知,

  猶當護按答子孫。」

太祖乃令其自殺。

或雲太祖卜殺札木合不入,及送於伊而乞歹,伊而乞歹截其手足。

札木合曰:

「此事之當然,使我獲彼,亦必出此也。」

札木合譎詐有口辨,時人以薛禪稱之。

嘗爲蔑兒乞人所敗,只餘三十人,無所歸。

使人告脫黑脫阿,請爲其子;許之。

乃往依脫黑脫阿。

一日,見樹間有雀巢,默識之。

越日,復過其地,乃謂衆曰:

「前年我至此,見有雀哺彀於此樹,不知是此否?」

往視之,果有省巢;衆服其強記。

後脫黑脫阿獨居一帳,無左右,札木合與三十人徑入。

脫黑脫阿疑懼,間其來何爲。

札木合曰:

「我來視護衛何如耳。」

脫黑脫阿益懼,以金盃酹馬潼於地,與之盟,盡返其部衆焉。

신유년(辛酉)에, 굉길랄(宏吉剌), 역걸렬사(亦乞列思), 활라랄사(豁羅剌思), 타아변(朵兒邊), 탑탑아(塔塔兒), 살륵지올대

(撒勒只兀待), 합탑근(合塔斤) 등(等)의 부(部)가 간하(刊河)에서 회(會)하여, 찰목합(札木合)을 입(立)하여 

고아한(古兒汗)으로 삼았다.

독랍하(禿拉河)에 지(至)하여, 거족(舉足)하고 안토(岸土)를 답(蹋)하였고, 휘도(揮刀)하여 임목(林木)을 참(斬)하였고, 

서왈(誓曰)하길

「이 모(謀)를 유설(有泄)하면, 토붕(土崩)과 같게 하라! 목단(木斷)과 같게 하라!

마침내 잠사(潛師)하여 내습(來襲)하였다.

화력태(火力台)란 자(者)가 있었는데 문지(聞之)하더니, 이로써 그 처구(妻舅/처남) 맥아길태(麥兒吉台)에게 말하니,

맥아길태(麥兒吉台)가 태조(太祖)에게 고(告)하게 하였고, 전이(剪耳)한 백마(白馬)로써 기(騎)하게 하였다.

야(夜)에 일고란(一古闌)을 경(經)하였는데, 그 장(將) 왈(曰) 홀란파아독아(忽蘭把阿禿兒), 

왈(曰) 합랄멸아파대(哈剌蔑兒巴歹)이 견(見)하고는 집지(執之)하였다.

그런데 2장(將) 역시(亦) 태조(太祖)에게 심복(心附)하였고, 양마(良馬)로써 증(贈)하고 사거(使去)하였다.

화력태(火力台)가 찰목합(札木合)의 백장(白帳)을 재(載)한 것을 우(遇)하였는데,

질치(疾馳)하여 득면(得免)하였고, 태조(太祖)를 현(見)하여 그 사(事)를 구고(具告)하였다.

태조(太祖)가 고련륵고(古連勒古)로부터 기병(起兵)하였고, 역제화아한(亦提火兒罕)의 지(地)에서 영전(迎戰)하여, 

대패지(大敗之)하였고, 찰목합(札木合)은 둔주(遁走)하였다.

명년(明年)에, 찰목합(札木合)이 또 내만(乃蠻), 멸아걸(蔑兒乞), 알역랄(斡亦剌), 태역기적(泰亦幾赤), 타아변(朵兒邊), 

탑탑아(塔塔兒), 합탑근(合塔斤), 살륵지올특(撒勒只兀特)의 제부(諸部)를 합(合)하여 태조(太祖)를 공(攻)하였는데,

태조(太祖)가 왕한(王汗)과 함께 합병(合兵)하여 거지(拒之)하였다.

태조(太祖)가 아륵단(阿勒壇) 등(等)으로써 전봉(前鋒)으로 삼았고, 왕한(王汗)은 그 자(子) 상곤(桑昆)으로 하여금 

전봉(前鋒)으로 삼았다.

아륵단(阿勒壇)이 찰목합(札木合)의 장(將) 아불출(阿不出)에게 누사(漏師/군사일을 누설함)하였다.

차일(次日)에, 양군(兩軍)이 활역전(闊亦田)의 지(地)에서 진(陣)하였는데, 찰목합(札木合)의 군중(軍中)에 

부역로흑(不亦魯黑)과 홀도합(忽都合)이란 자(者)가 있었는데, 능히(能) 무술(巫術)로써 풍우(風雨)를 치(致)하였고, 

순풍(順風)으로 태조(太祖)를 종격(縱擊)하고자 하였다.

홀연히(忽) 반풍(反風)하고 우설(雨雪)하였으며, 천지(天地)가 회명(晦冥)하니, 제부병(諸部兵)이 진(進)을 불능(不能)하였고, 

간곡중(澗谷中)에 추사(墜死)함이 다(多)하였다.

찰목합(札木合)이 사패(事敗)를 견(見)하더니, 이에 말하길

「천(天)이 나를 부우(不佑)하는구나!」

책마(策馬)하여 궤위(潰圍/포위를 무너뜨림)하고는 거(去)하였다.

제부(諸都/部의 오기)가 모두 궤산(潰散)하였다.

찰목합(札木合)이 마침내 합답근(合答斤) 등(等)의 부(部)를 대략(大掠)하였다.

이로부터 찰목합(札木合)이 복진(復振)을 불능(不能)하였고, 왕한(王汗)에게 항(降)하였다.

태조(太祖)가 왕한(王汗)과 함께 내만(乃蠻)을 벌(伐)하였는데, 찰목합(札木合)이 왕한(王汗)에게 언(言)하여 말하길

「첩목진(帖木真) 안답(按答)은 일찍이 내만(乃蠻)에 견사(遣使)하였고, 지금(今) 천연(遷延/시일을 질질 끎)하고 

  부진(不進)하니, 필히(必) 내만(乃蠻)과 더불어 통(通)한 것이다.

왕한(王汗)이 비로소 태조(太祖)를 의(疑)하였다.

태조(太祖)가 왕한(王汗)을 멸(滅)함에 이르러, 찰목합(札木合)은 다시 내만(乃蠻)에 분(奔)하였다.

태조(太祖)가 내만(乃蠻)을 친정(親征)하였는데, 찰목합(札木合)이 태조(太祖) 군(軍)의 용(容)이 심성(甚盛)함을 견(見)하더니,

태양(太陽) 한(汗)에게 위(謂)하여 말하길

「너는 초(初)에 몽고병(蒙古兵)을 새끼 양과 같이 시(視)하였고, 제피(蹄皮/종아리 가죽) 역시(亦) 부유(不留)할 것이라 

  위(謂)하였다.

  지금(今) 내가 그 기세(氣勢)를 관(觀)하니, 반드시 석비(昔比)가 아니니라!

마침내 소부(所部)를 인(引)하여 둔거(遁去)하였고, 또 견사(遣使)하여 내만군(乃蠻軍)의 사(事)로써 태조(太祖)에게 

고(告)하였다.

태조(太祖)가 태양한(太陽汗)을 금살(擒殺)하였고, 타아변(朵兒邊), 탑탑아(塔塔兒), 합탑근(合塔斤), 살륵지올척(撒勒只兀惕) 

등(等)의 부(部)가 모두 항(降)하였다.

찰목합(札木合)의 부중(部衆)이 진궤(盡潰)하였는데, 좌우(左右) 5인(人)을 솔(率)하여 당로산(倘魯山)에 둔입(遁入)하였다.

일일(一日)에, 좌우(左右)가 완양(羱羊/야생 양)을 자(炙/구움)하여 식(食)하였는데, 찰목합(札木合)이 가지(呵之/꾸짖음)하자, 

5인(人)이 노(怒)하였고, 이에 찰목합(札本合)을 박(縛)하여 태조(太祖)에게 치(致)하였다.

찰목합(札木合)이 태조(太祖)에게 위(謂)하게 하며 말하길

「아(鴉/갈까마귀)가 가목(家鶩/집오리)을 획(獲)하였고, 노(奴)가 주인(主人)을 집(執)하였으니,

  안답(按答)은 필히(必) 이로써 처지(處之)함이 있으리!

태조(太祖)가 고은(辜恩/은혜를 저버림)하고 매주(賣主)함으로써, 서(恕)를 불가(不可)하였고,

그 자손(子孫)과 더불어 주지(誅之)하였으며, 명(命)하여 5인(人)을 찰목합(札木合)의 전(前)에 리(蒞/다다름)하게 하여 

살(殺)하였다.

인(人)으로 하여금 찰목합(札木合)에게 위(謂)하여 말하길

「나는 예전에 너와 더불어 안답(按答)이 되어, 거(車)의 원(轅/끌채)이 있는 것과 같았다.

  너는 스스로 리아(離我)하고 거(去)하였는데, 지금(今) 또 상합(相合)하였으니, 이로써 종아(從我)함이 가(可)하지 않겠는가?」

찰목합(札木合)이 말하길

「우리 양인(兩人)은 유(幼)로부터 안답(按答)이 되었는데, 인(人)의 리간(離間)함으로 인(因)하여,

  이런 연고(故)로 참치(參差/서로 어긋남)하여 지차(至此)하였다.

  나는 수난(羞赧/부끄러워 얼굴을 붉힘)하여 감히(敢) 안답(按答)과 더불어 상견(相見)하지 못하겠노라!

  지금(今) 안답(按答)의 대위(大位)가 이정(已定)하였으니, 만약 아(我)를 불살(不殺)한다면, 즉(則) 비유하자면 영(領/옷)에 

  슬(蝨/이)이 있음이요, 금(衿/옷깃)에 랄(剌/어그러짐)이 있음이니, 필히(必) 안답(按答)으로 하여금 안침(安寢)을 

  불능(不能)할 것이다!

  원(願)컨대 속사(速死)를 사(賜)하여 행(幸)하게 하라!

  만약(若) 혈(血)을 불견(不見)하고 사(死)하게 한다면, 나의 혼백(魂魄)이 알리라!

  유당(猶當) 안답(按答)의 자손(子孫)을 호(護)하리라!」

태조(太祖)가 이에 영(令)하여 그가 자살(自殺)하도록 하였다.

혹운(或雲)하길 태조(太祖)가 찰목합(札木合)을 복살(卜殺)하려고 불입(不入)하였고, 이이걸대(伊而乞歹)에게 송(送)함에 

이르러, 이이걸대(伊而乞歹)이 그 수족(手足)을 재(截/끊음)하였다고 한다.

찰목합(札木合)이 말하길

「이 일은 당연(當然)하다, 나로 하여금 획피(獲彼)하였다면, 역시(亦) 필히(必) 이와 같이 출(出)하였을 것이로다!」

찰목합(札木合)은 휼사(譎詐/간사를 부려 남을 속임)하여 구변(口辨)이 있었는데,

이때 사람들이 설선(薛禪/세첸)으로써 칭지(稱之)하였다.

일찍이 멸아걸인(蔑兒乞人)에게 소패(所敗)하여, 단지(只) 30인(人)을 여(餘)하였고, 소귀(所歸)를 무(無)하였다.

사인(使人)하여 탈흑탈아(脫黑脫阿)에게 고(告)하여, 그 자(子)로 삼아 줄 것을 청(請)하였는데, 허지(許之)하였다.

이에 탈흑탈아(脫黑脫阿)를 왕의(往依)하였다.

일일(一日)에, 수간(樹間)에 작소(雀巢/참새집)가 있는 것을 견(見)하였는데, 묵식(默識/말없이 기억해둠)하였다.

월일(越日)에, 그 지(地)를 복과(復過)하였는데, 이에 중(衆)에게 위(謂)하여 말하길

「전년(前年)에 내가 여기에 이르러, 작(雀)이 있는 것을 견(見)하여 이 수(樹)에서 포구(哺彀/쏘아 맞춰 먹음)하였는데, 

  바로 이것을 부지(不知)하느냐?」

왕시지(往視之)하니, 과연(果) 작소(省巢)가 있었다.

중(衆)이 그 강기(強記/기억력이 뛰어남)를 복(服/두려워함)하였다.

후(後)에 탈흑탈아(脫黑脫阿)가 1 장(帳)에 독거(獨居)하였는데, 좌우(左右)가 무(無)하였고, 찰목합(札木合)이 30인(人)과 

함께 경입(徑入/곧장 들어옴)하였다.

탈흑탈아(脫黑脫阿)가 의구(疑懼/의심하여 두려워함)하였고, 무엇 때문에 왔는지 물었다.

찰목합(札木合)이 말하길

「내가 온 것은 호위(護衛)가 하여(何如)한지 시(視)하고자 함이다.

탈흑탈아(脫黑脫阿)가 익구(益懼)하였고, 금배(金盃)로써 마동(馬潼)을 지(地)에 뢰(酹)하고는, 여지맹(與之盟)하였는데, 

그 부중(部衆)을 진반(盡返)하였다.


史臣曰:

「札木合率十三部之衆,與太祖爭衡,可謂勁敵矣。

  然矜凶挾狡,反覆先常,卒爲左右所賣,非不幸也。

  泰亦兀赤或謂出於勃端察兒之孫納勤,拉施特曰:

 『蒙古金字譜,泰亦兀赤之祖爲扯而黑領昆,納勤救海都免於札剌亦之難,其牧地又近於領昆,故訛爲泰亦兀赤之祖焉。』。」 

사신(史臣)은 말한다!

「찰목합(札木合)이 13부(部)의 중(衆)을 솔(率)하여, 태조(太祖)와 더불어 쟁형(爭衡/서로 지지 않으려고 다툼)하였는데,

  가히(可) 경적(勁敵/억센 적수)이라 위(謂)할 만하였다.

  그러나 긍흉(矜凶/흉악함을 자랑함)하고 협교(挾狡/교활함을 믿고 의지함)하였으며,

  먼저 늘 반복(反覆)하니, 마침내 좌우(左右)에게 소매(所賣)하였으니, 불행(不幸)이 아닐 수 없다.

  태역올적(泰亦兀赤)은 혹(或) 발단찰아(勃端察兒)의 손(孫) 납근(納勤)에게서 출(出)하였다 위(謂)하는데,

  랍시특(拉施特/다시드 앗 딘)은 말하길

  『몽고(蒙古)의 금자보(金字譜)에, 태역올적(泰亦兀赤)의 조(祖)는 차이흑령곤(扯而黑領昆)이고,

    납근(納勤)이 해도(海都)를 구(救)하여 찰라역(札剌亦)의 난(難)에서 면(免)하게 하였고,

    그 목지(牧地)가 또한 영곤(領昆)에 근(近)하니, 

    이런 연고(故)로 와(訛)하여 태역올적(泰亦兀赤)의 조(祖)가 되었다.』

  하였다.」






1201년에 옹기라트(굉길랄), 이키레스(역걸렬사), 코룰라스(활라랄사), 두르벤(타아변), 타타르(탑탑아), 살지우트(살륵지올대), 카타킨(합탑근) 등의 부족이 겜강(간하)에서 만나 자무카를 구르칸(고아한)으로 옹립하였다.

투르베르 강(독랍하)에 이르러 발을 들어 언덕의 흙을 밟고 칼을 휘둘러 나무를 베며 맹세하여 말하길

「이 모의를 발설한다면 흙이 무너지듯이 하라! 나무가 끊어지듯이 하라!」

마침내 은밀히 군을 이끌고 기습하여 왔다.

코리다이(화력태)란 자가 있었는데 듣고는 이로써 처남 메르키타이(맥아길태)에게 말하고는

메르키타이로 하여금 태조에게 고하게 하였고 귀를 자른 백마를 타고 가게 하였다.

밤에 한 쿠리엔(진영)을 경유하였는데 그 장수 쿨란 바아토르(홀란파아독아)와 카라 메르키타이(합랄 멸아파대)이 보고는 사로잡았다.

그런데 2 장수 또한 태조에게 심복하였고 좋은 말을 주어 가게 하였다.

코리다이가 자무카의 백색 게르를 싣고 가는 자들과 조우하였는데 말을 치달려 몸을 피하였고

태조를 알현하고는 그 일을 모조리 고하였다.

태조가 구렐구(고련륵고)로부터 병력을 일으켜 이디 코로칸(역제 화아한)의 땅에서 반격하여 싸워 크게 격파하였고 자무카는 달아났다.

다음해에 자무카가 또 나이만(내만), 메르키트(멸아걸), 오이라트(알역랄), 타이치오트(태역기적), 두르벤(타아변), 타타르(탑탑아), 카타킨(합탑근), 살지우트(살륵지올특)의 여러 부족을 합하여 태조를 공격하였는데 태조가 옹칸(왕한)과 합병하여 막게 하였다.

태조가 알탄(아륵단) 등으로써 전봉으로 삼고, 옹칸은 그 아들 셍군(상곤)으로 하여금 전봉으로 삼았다.

알탄(아륵단)이 자무카의 장수 아브추(아불출)에게 군사 기밀을 누설하였다.

다음날에 양군이 쿠이텐(활역전)의 땅에서 진을 쳤는데 자무카의 군중에 부이룩칸(부역로흑)과 코도카(홀도합)이란 자가 있었는데,

능히 자다술(무당술)로써 비바람을 부를 수 있었고 바람을 따라 태조에게 군사를 풀어 냅다 공격하고자 하였다.

홀연히 바람이 반대로 불었고 눈비가 내렸는데 천지가 어두컴컴해졌고 여러 부족의 병력이 전진할 수가 없게 되었으며, 계곡 사이에 떨어져 죽은 자가 많았다.

자무카가 일이 잘못된 것을 보더니 이에 말하길

「하늘이 나를 돕지 않는구나!」

말을 채찍질하여 포위를 무너뜨리고 가버렸고, 여러 부족이 모두 허물어져 흩어졌다.

자무카가 마침내 카타킨(합답근) 등의 부족을 크게 약탈하였다.

이로부터 자무카가 다시 일어날 수가 없게 되었고 옹칸(왕한)에게 투항하였다.

태조가 옹칸과 함께 나이만(내만)을 정벌하였는데 자무카가 옹칸에게 말하길

「테무진 안다는 일찍이 나이만에 사신을 보냈고, 지금 시일을 질질 끌며 전진하지 않으니 필히 나이만과 더불어 내통한 것이다!」

옹칸이 비로소 태조를 의심하였다.

태조가 옹칸을 멸함에 이르러 자무카는 다시 나이만으로 달아났다.

태조가 나이만을 친히 정벌하였는데 자무카가 태조의 군의 위용이 심히 성한 것을 보더니 타양칸(태양한)에게 일컬어 말하길

「너는 처음에 몽고병을 새끼양과 같이 보았고 종아리 가죽 또한 남기지 않을 것이라 일컬었다.

  지금 내가 그 기세를 관찰하니 반드시 예전과 같지 않느니라!」

마침내 소속 부족을 이끌고 도망쳐 가버렸고 또 사신을 보내 나이만 군의 일을 태조에게 고하였다.

태조가 타양칸을 사로잡아 죽이고 두르벤(타아변), 타타르(탑탑아), 카타킨(합탑근), 살지우트(살륵지올척) 등의 부족이 모두 투항하였다.

자무카의 부족 무리가 모조리 흩어졌는데 좌우 5인을 인솔하여 탕로산(당로산)에 도망쳐 들어갔다

하루는 좌우가 야생 양을 구워 먹었는데 자무카가 꾸짖자 5인이 노하였고 이에 자무카를 포박하여 태조에게 이르렀다.

자무카가 태조에게 일컬어 말하길

「갈까마귀가 집오리를 사로잡았고, 노비가 주인을 사로잡았으니 안다가 반드시 이로써 처리함이 있으리라!」

태조가 은혜를 저버리고 주인을 팔았다 하여 용서하지 않았고 그 자손과 더불어 주살하였으며

명을 내려 5인을 자무카 앞에 이르러 죽이도록 하였다.

사람을 보내 자무카에게 일컬어 말하길

「나는 예전에 너와 더불어 안다가 되어 수레의 끌채가 있는 것과 같았다.

  너는 스스로 나를 버리고 갔는데 지금 또 서로 만났으니 이로써 나를 따르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자무카가 말하길

「우리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안다가 되었는데 사람들의 이간으로 인하여 이런 연고로 서로 어긋나 이에 이르렀다.

  나는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으니 감히 안다와 더불어 서로 보지 못하겠노라!

  지금 안다의 대위가 이미 정해졌으니 만약 나를 죽이지 않는다면 즉 비유하자면 옷에 이가 있음이요,

  옷깃에 어그러짐이 있는 것이니 필히 안다로 하여금 편히 자지 못하게 할 것이다!

  원하건대 빠른 죽음을 내려 준다면 다행이로다!

  만약 피를 보지 않게 죽여준다면 나의 혼백이 알리라!

  응당 안다의 자손을 보호하리라!」

태조가 이에 영을 내려 그가 자살하도록 하였다.

혹자는 말하길 태조가 자무카가 죽기를 바라고 들이지 않았고 알치다이(이이걸대)에게 보냄에 이르러,

알치다이가 그 수족을 끊었다고 한다.

자무카가 말하길

「이 일은 당연한 것으로, 내가 너희를 잡았다면 또한 반드시 이렇게 했을 것이니라!」

자무카는 간사하게 남을 속이는 말을 잘하였는데 이때 사람들이 세첸이라 칭하였다.

일찍이 메르키트 사람에게 패배를 당하여 단지 30인만 남아 돌아갈 곳이 없었다.

사람을 시켜 톡타아에게 고하여 그 아들로 삼아줄 것을 청하였는데 허락하였다.

이에 톡타아에게 가서 의탁하였다.

하루는 나무 사이에 참새집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말없이 기억해 두었다.

하루가 지나 그 땅에 다시 지나갔는데 이에 무리에게 일컬어 말하길

「작년에 내가 여기에 이르러 참새가 있는 것을 발견하여 이 나무에서 쏘아 맞춰 잡아먹었는데 바로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가서 보니 과연 새집이 있었다.

무리가 그 기억력이 뛰어남을 두려워하였다.

후에 톡타아가 한 게르에 혼자 있어 좌우가 없었는데 자무카가 30인과 함께 곧장 들어왔다.

톡타아가 의심하고 두려워하여 무엇 때문에 왔는지 물었다.

자무카가 말하길

「내가 온 것은 호위가 어떠한지 보고자 함이다.」

톡타아가 더욱 의심하였고 금 술잔으로 말 젖을 땅에 붓고는 더불어 맹약하였고 그 부족 무리를 모조리 돌려주었다.



사신은 말한다!

「자무카가 13 부족의 무리를 인솔하여 태조와 더불어 경쟁하였는데 가히 호적수라 일컬을만하였다.

  그러나 흉악하고 교활하여 먼저 늘 배신하니 마침내 좌우에게 팔림을 당했으니 불행이 아닐 수 없다.

  타이치오트는 혹 보단차르의 손자 나친에게서 나왔다 일컫는데 라시드 앗 딘은 말하길

  『몽고의 금자보(금책/알탄 다프타르)에 타이치오트의 시조는 차라카 링쿰으로

    나친이 카이두를 구하여 잘라이르의 난에서 면하게 하였고 또한 그 유목지가 링쿰에 가까우니

    이런 연고로 와전되어 타이치오트의 시조가 되었다.』

  하였다.」



요약.

1201년 테무진 키요트 부족의 세력확장에 두려움을 느낀 여러 부족들은 겜강에서 회합하고 자무카를 구르칸에 옹립한다.

자무카는 테무진과 이디 코로칸에서 회전하나 대패한다.

1202년 자무카가 다시 나이만을 끌어들여 테무진+옹칸 연합군을 격파하고자 하였으나

쿠이텐에서 기상악화로 자무카 연합군은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이후 자무카는 옹칸에게 의탁하여 옹칸과 테무진 사이를 이간질한다.

1203년 옹칸이 테무진을 칼랄진 엘레트에서 공격하자 테무진은 대패하여 발주나의 흙탕물을 마시며 와신상담한다.

테무진이 옹칸을 급습하여 격파하자 자무카는 다시 나이만 타양칸에게 달아난다.

1204년 테무진은 나이만을 공격하여 카라가나 전술로 타양칸을 살해한다.

자무카는 5명과 함께 달아났다가 탕로산에서 부하들의 배신으로 테무진에게 잡혀온다.

테무진은 자무카를 배신한 부하들과 그 일족 30여명을 처형하고 자무카에게 안다로써 다시 함께 하자고 제안한다.

자무카는 이를 거부하고 피를 보지 않고 죽여달라 말한다.

이에 테무진은 자무카의 뜻대로 그가 자살하도록 한다.

일설에는 테무진이 조카 알치다이에게 자무카를 보냈고, 알치다이가 그의 수족을 잘라 죽였다고 한다.

과거 자무카는 메르키트에게 공격당해 메르키트 톡타아에게 투항하였고 계략을 부려 톡타아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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