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사 케레이트 자아감보 열전 테무진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몇몇 인물들에 대한 열전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케레이트 옹칸의 동생이자 몽케칸과 쿠빌라이칸의 외조부인 자아감보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인물 열전>

청사고

왕올당, 왕고, 다이샨, 태조 누르하치, 추옝, 슈르하치, 야르하치 

피옹돈, 호호리, 어이두, 안퍙구후르한푸차 군다이

잉굴다이어르더니 밬시양구리보르진특금마심, 캉카라도르곤도도아지거푸헝

하르졸(해란주)호오거망굴타이아민고이마혼/와산/제극탑합/공아지르가랑두두니칸

송사

한세충이치, 양재흥, 동관[방랍], 채경, 부언경, 곽약사, 반미, 이사사고구송강장방창, 황잠선묘부(유정언)진회

금사

명사

두송 이성량 모문룡

송서

만주팔기씨족통보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96%B0%E5%85%83%E5%8F%B2/%E5%8D%B7118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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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罕弟札合敢不,幼時嘗爲唐古特所虜,唐古特語謂雄強曰贊,丈夫曰普,故稱君爲贊普,語訛爲札合敢不。

札合敢不受唐古特封,而有是稱,人遂呼以爲名。

太祖平乃蠻,札合敢不獻二女以降。

太祖納其長女,以次女賜少子拖雷,即莊聖皇后也。

札合敢不既降,以外戚之恩得自領部曲。

已而叛去,朮赤臺以計誘執之。

왕한(王罕)의 제(弟) 찰합감부(札合敢不)는, 유시(幼時)에 일찍이 당고특(唐古特)에게 소로(所虜)하였는데,

당고특(唐古特)의 어(語)로 위(謂)하길 웅강(雄強/씩씩하고 굳셈)을 찬(贊)이라 말하고, 장부(丈夫)는 보(普)라고 말하는데,

이런 연고(故)로 군(君)을 칭(稱)하길 찬보(贊普)라 하였는데, 어와(語訛)하여 찰합감부(札合敢不)라 하였다.

찰합감부(札合敢不)가 당고특(唐古特)의 봉(封)을 수(受)하였는데, 이 칭(稱)이 있었고,

인(人)이 마침내 명(名)으로 이위(以爲)하여 호(呼)하였다.

태조(太祖)가 내만(乃蠻)을 평(平)하자, 찰합감부(札合敢不)가 2녀(女)를 헌(獻)하고 이로써 항(降)하였다.

태조(太祖)가 그 장녀(長女)를 납(納)하였고, 차녀(次女)로써 소자(少子) 타뢰(拖雷)에게 사(賜)하였으니, 

즉(即) 장성황후(莊聖皇后)다.

찰합감부(札合敢不)가 이윽고 항(降)하자, 외척(外戚)의 은(恩)으로써 부곡(部曲)을 자령(自領)함을 득(得)하였다.

이이(已而)에 반거(叛去)하였는데, 출적대(朮赤臺)가 계(計)로써 유집지(誘執之)하였다.



칸(왕한)의 동생 자아감보(찰합감부)는 어릴 때에 일찍이 탕구트(당고특/서하)에게 포로가 되었는데,

탕구트의 말에 일컫기를 씩씩하고 굳센 것을 감(찬)이라 말하고 장부는 보(보)라고 말하는데,

이런 연고로 임금을 칭하길 감보(찬보)라 하였는데 말이 와전되어 자아감보(찰합감부)라 하였다.

자아감보가 탕구트에게 봉작을 제수받아 이 칭호가 있었고 사람들이 마침내 이름이라 생각하고 불렀다.

태조가 나이만을 평정하자 자아감보가 두 딸을 바쳐 이로써 항복하였다.

태조가 그 장녀를 취하였고, 둘째 딸은 막내아들 톨루이(타뢰)에게 하사하였으니 즉 장성황후(소르칵타니)다.

자아감보가 이윽고 투항하자 외척으로 은혜를 베풀어 부곡을 스스로 거느리게 하였다.

얼마 안 있어 배반하고 가벼렸는데 주르체데이(출적대)가 계략으로 유인하여 사로잡았다.


집사 부족지中 (김호동 역주)

자아 감보의 이름은 케레이데이였는데 탕구트인들이 그를 붙잡았을 때 그의 기민함과 능력의 탁월함을 보고 "자아 감보"라는 

이름을 지어 준 것이다. 이는 "나라의 대아미르"를 뜻하니, "자아"는 "나라"이고 "감보"는 "크다"는 의미이다.

(중략)

자아 감보에게는 네 딸이 있었다. 하나는 이름이 이바카 베키인데 칭기스 칸 자신이 취했고, 다른 하나는 이름이 벡투트미쉬 

푸진인데 큰 아들인 주치에게 주었으며, 셋째는 이름이 소르칵타니 베키인데 막내 아들 톨루이 칸에게 주어져 뭉케 카안, 

쿠빌라이 카안, 훌레구 칸, 아릭 부케 등 네 아들의 어머니가 되었고, 또 다른 딸은 웅구트 군주의 아들에게 주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칭기스 칸이 웅구트를 정복하여 그들이 복속하게 되었을 때, 그 딸을 손에 넣으려고 했지만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1204년 옹칸 사후 케레이트 부족장이 된 자아감보는 다시 안다인 테무진을 배신하고 나이만과 연합함


성무친정록 中

보름에 군기에 제사하고 이튿날 아침에 진군하여 나이만을 정벌하였다. 가을에 칼카강 켈테게이 산에서 다시 모였다. 

휘하 쿠빌라이와 제베 2인을 먼저 보내 선봉으로 삼았다. 타양 가한이 알타이로부터 이르러 캉가이 산의 카치르 오손 강에 

영을 세웠고 군을 인솔하여 대적하였다. 아군이 우르 강에 이르자 타양 가한이 메르키트 부족장 톡타아, 

케레이트 부족장 자아감보와 알린 타이시, 오이라트 부족장 쿠투카 베키과 더불어 자무카, 두르벤, 타타르, 카타킨, 

살지우트의 여러 부족과 함께 서로 연합하였다.


-자아감보의 최후-


몽골비사 中 (유원수 역주)

메르키드와 나이만을 섬멸하는 싸움에서 케레이드의 자카 감보는 그의 두 딸 때문에 제 속민들과 온전하게 살도록 놔두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적이 되어 이반한 것을 주르체데이가 유인하여 계책으로 붙들어 자카 감보를 끝장내 버렸다. 

그 자카 감보의 나라를 다시 멸하고 약탈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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