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라즘 술탄 <어? 어? 몽골군이 이정도였어??> 테무진 이야기

호라즘 왕국 7대 술탄 무함마드는 활발한 정복전쟁을 수행했습니다.

그의 군대 40만은 중동과 서아시아 대륙에서 감히 대적할 상대가 없는 최강이었지요.


칭기스칸의 위대한 장군 수부타이 中(리처드A. 가브리엘)

무함마드 2세는 정복한 땅이 워낙 방대해 제2의 알렉산더 대왕 또는 지상에 나타난 알라의 그림자라 불리기도 했다.

샤의 군대는 아주 강력했으며 연대기 작가들은 군사 수가 40만 명 정도였다고 주장한다.


1218년 그는 압바스 가문의 나시르를 칼리프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이라크 바그다드로 출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자그로스 산맥에서 혹독한 추위에 인마가 많이 살상하고 결국 수도 사마르칸트로 되돌아옵니다.

집사에는 이일을 술탄이 겪은 최초의 시련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편 이때 오트라르 성주 가이르 칸(이날축)이 몽골 사신단(상인)을 감금했는데 

어찌 처리해야 하냐는 보고가 올라옵니다.


술탄 : 열 받아 죽겠고만!!! 죽여!!!


그렇게 술탄은 금나라를 때려잡느라 정신이 없던 테무진 칸의 코털을 잡아당기게 됩니다.

게다가 술탄은 서요 멸망 후 동진하여 투르키스탄을 꿀꺽하게 됩니다.


술탄 : 드루와~ 드루와~ 


술탄의 어그로에 그야말로 빡이 돈 칭기스칸을 사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집사中 (김호동 역주)

이 이야기가 칭기스 칸의 마음에 얼마나 충격을 주었는지,

그는 자제할 수도 평정을 찾을 수도 없었다.

분노가 극에 달한 그는 홀로 언덕 위로 올라가 혁대를 목에 걸치고 모자를 벗은 뒤 얼굴을 땅에 댔다.


몽골비사中 (유원수 역주)

"내 황금 굴레를 사르타올 사람들에게 끊겼다"며

"오코나를 비롯한 100명의 사절단의 원수를 갚고 복수를 하러 사르타올 사람들에게 출정하자!"


테무진은 무칼리를 국왕으로 삼고 몽골기병2만, 거란병1만, 한족군1만을 주고

금을 정복하라 명하고 나머지 모든 장군과 병력을 이끌고 서역으로 출병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자신만만했던 술탄은 어찌 된 일인지 칭기스칸의 본대가 오기도 전에 전의를 상실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어찌 된 일이었을까요???


1219년 여름 칭기스칸은 서역으로 출정하면서 수부타이와 토가차르를 보내

힘의 공백이 생긴 서요로 도망가 활개 치고 있던 몽골의 배신자 키르키즈 부족과 투마트 부족, 

메르키트 잔당 쿠두를 제거하라 명하였습니다.

수부타이와 토가차르는 이들을 추격해 투르키스탄까지 갑니다.


이때 투르키스탄을 꿀꺽했던 술탄은 


"요놈들 봐라! 니네 죽었어! 고자리에 꼼짝 말고 있어!"


하고 대군을 이끌고 몽골군을 공격하러 갑니다.

호라즘 군대가 갑자기 나타나자 당황한 수부타이는 이렇게 전갈을 보냅니다.


"칸으로부터 호라즘과 전쟁하라는 허락을 받지 못했다!

 우리는 다른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수부타이의 말을 상큼하게 씹은 술탄은 곧장 공격을 명합니다.

그러나 수부타이가 누굴까요?

아직 무칼리의 무공에 가려 포텐이 터지지는 않았으나 

이후 몽골 최고의 장군으로, 호라즘에게는 재앙으로 기록된

그에 대한 전기를 다룬 서적까지 나온 인물이었습니다.


수부타이는 곧장 술탄의 중군을 향해 돌격을 감행하였고

술탄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몽골군의 파상공세에 눈이 휘둥그레졌고

결국 포로로 잡힐 상황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때 훗날 용맹하다 칭기스 칸에게 칭찬받았던 술탄의 아들 잘랄 앗 딘이 아버지를 구출하고

호라즘 군대는 퇴각하고 맙니다.


이 전투 이후 술탄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게 됩니다.

이를 집사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집사 中 (김호동 역주)

술탄은 그 전투가 있은 뒤 다시 사마르칸트로 왔다. 당혹과 주저함이 그를 엄습했고, 마음속의 불안이 겉으로 드러났다.

이제 적의 힘과 위력을 목격한 그는 분란을 일으킨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경악과 비탄이 매 순간 그를 사로잡았고, 그의 말과 행동에는 후회의 빛이 역력했다.

공포에 짓눌리는 바람에 올바른 의견의 문이 닫히고, 수면과 휴식도 사라져 버렸다.


이후 술탄은 야전에서 몽골군을 상대로 회전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 생각하고

40만의 군대를 지방 성에 분산 배치하여 수비에 치중하게 합니다.

해자를 파고 성을 보수하며 그는 지방에 이런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대처할 방법은 각자가 강구하라. 몽골군에게 대항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아들 잘랄 앗 딘은 이를 반대하며 

<모든 병사를 모아 회전해야 한다, 아버지는 후방으로 가시고 내가 죽음을 각오하고 회전하겠다!>

고 주장하였으나 술탄은 이를 무모한 행동이라 여기고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야전을 포기하고 수성전에 치중한 호라즘을 침공한 칭기스칸은

수많은 공성전을 펼치며 몽골군이 피해가 증가하자 매우 화가 났고, 결국 온갖 잔인한 방법을 쓰게 됩니다.

이전에 항복한 포로들을 성 앞으로 몰아 이들의 시체로 해자를 메운다던가,

함락한 성의 주민을 모조리 성 밖으로 끌고 나와 모조리 처형한다던가,

성을 모조리 파괴하여 평지로 만든다던가...........


집사 中 (김호동 역주)

그곳이 함락되자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다, 여하한 인간이든 어떤 종류의 가축, 짐승, 조류든 가리지 않고 모두 죽이고,

포로나 전리품은 하나도 취하지 말며, [그곳을] 사막으로 만들어 

이후로는 건물을 짓지 말고 어떤 인간도 그곳에 살지 못하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칭기스칸의 위대한 장군 수부타이 中(리처드A. 가브리엘)

몽골이 이슬람 국가와 벌인 이 첫 번째 전쟁은 결국 말살전이 되어 샤 왕국 인구의 5분의 4가 죽거나 노예가 되었다.

어느 역사가는 "단 3년 동안의 충돌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경우는 아마 없을 것이다.

몽골에 의해 자행된 냉혹하고 계획적인 대량 학살은 고대 아시리아인과 현대 나치의 만행만큼이나 끔찍한 수준이다"

라고 말했다.





















한편 여기는 중원 금나라

급보요!!! 달달 오랑캐놈들이 다 서쪽으로 떠났습니다아~~~
금 선종 : 오~~ 드디어 잃어버린 내 영지를 되찾게 되는구나!!
무칼리 : 저기요..... 저기....

                                         전쟁의 신 무칼리가 아직 있거든요???

                                         이제 시작해 볼까요? 지옥을?



4준 무칼리 구양은 전쟁의 신?

칭기스 칸 장군 서열1위가 된 무칼리 국왕


덧글

  • 3인칭관찰자 2020/03/02 23:14 #

    호라즘의 무하마드도 비범한 능력을 지닌 정복자형 군주였군요. 대적한 상대가 너무 나빴던 것이라고밖엔...
  • 길공구 2020/03/03 10:45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메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