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전해져 오는 집사나, 몽골비사 혹은 몽고문 사서 등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칸을 [칸/kan][카간/카안/kaγan/kagan][카안/ka'an][카한/kahan]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칭기스 칸 당시에는 [칸]이었을까? [카안]/[카간][카한]이었을까? 의구심이 드는데요.
보일 교수는 [카안]은 원태종 우구데이의 시호였고, 우구데이 시절까지는 [칸]을 썼다고 주장!
스기야마 마사아키는 뭉케 이후 [카안]을 사용했다 주장!
펠리오는 쿠빌라이 이후 [카안]을 사용했다 주장!
그에 반해 김호동 교수는 집사(랏시드 앗 딘 13C)와 세계정복자사(주베이니 13C)의 기록에
우구데이 즉위식에서부터 카안[ka'an]을 기록하고 있으며,
우구데이 생전 만들어진 백화성지비(白話聖旨碑) 등을 통해 우구데이 생전에 이미 [카안]이 쓰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김호동 교수의 말씀대로 집사에는 우구데이 즉위 당시 기록에 칸과 카안을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1227년 칭기스칸 사후 2년 동안 칸위에 공백이 있었고,
1229년 봄 몽골 초원에서 대 쿠릴타이가 열렸고 모든 몽골의 왕족과 장군들이 고향으로 모였으며
이곳에서 우구데이를 칸으로 옹립하게 됩니다.
집사 칸의 후예들 中 (김호동 역주)
모두 다 모자를 벗어 들어 혁대를 [벗어서] 어깨에 걸쳤다.
후케르일 즉 소해(1229년)에, 차카타이는 우구데이 카안의 오른팔을 잡고,
톨루이 칸은 그의 왼팔을, 숙부 옷치긴은 그의 혁대[를 잡고, 그]를 카안의 보좌에 앉혔다.
톨루이 칸은 술잔을 받쳐 들었다. 천막의 안과 밖에 있던 모든 참석자들은 아홉 차례 무릎을 꿇고,
"그의 칸위로 말미암아 왕국에 축복이 있으라!"고 말하며,
그에게 "카안(qaan)이라는 칭호를 부여해 주었다.
즉 [톨루이 칸]과 [우구데이 카안]을 구분하고 있으며 분명히 <카안>이란 칭호를 부여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칭기스칸 당시에는 칸은 곧 유일무이한 몽골의 칸이었기 때문에 [칸]이면 충분했지만
칭기스칸 사후에 점차 몽고 왕국이 거대해지고, 우구데이의 형들
즉 주치 가문과 차카타이 가문이 거의 독립적인 영지를 지니고 있었고,
이들도 그들 영지에서 칸이라고 불리는 마당에(혹은 이후에 불렸거나)
[카안], 즉 [대칸]이라는 칭호를 사용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론 :
1. 테무진 당시 칭호는 [칭기스 칸]이 맞다.
2. 카안/카간/카한의 시초는 우구데이 즉위식이다.
3. 이후 대칸인 카안과 칸의 사용은 구분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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