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제국 [카안]과 [칸] 김호동 교수님 논문 소개 테무진 이야기

일전에 대칸 즉 [카안]과 [칸]에 관한 글을 쓰면서

공식적으로 칭기스칸은 생전에 [칸], 이후에도 [칸]을 사용했으며

우구데이 즉위 이후에나 [카안/카간/카한]을 사용했다고 하였는데요.


이에 대해 김호동 교수님의 논문 <울루스인가 칸국인가? 몽골제국의 카안과 칸 칭호의 분석을 중심으로>를 

읽어보니 명쾌하게 정리가 되더군요.

간략히 정리해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테무진 : 생전 칭기스 칸

우구데이 : 생전 [카안], 쿠빌라이 이후(우구데이 카안)

구육 : 생전 [구육 칸] 드물게 [구육 카안]

뭉케 : 생전 [뭉케 카안]>[뭉케 칸] 혼용 → 공식칭호 [뭉케 칸]

쿠빌라이 : [카안] 명칭 정립

→ 우구데이 지칭 [카안]

→ 1280년 칙령 "칭기스 칸과 카안(우구데이)의 칙령에"

→ [카안]은 우구데이만 칭하는 것이 아닌 보편적인 [카안]으로 변화 중

   단 공식적인 칙령문에는 여전히 [카안]은 우구데이만 전칭함

테무르(울제이투) : [카안] 확립!

→ 우구데이 이후 모든 대칸에 [카안] 붙임/단 칭기스칸은 여전히 [칸]

   1294년 칙령 "칭기스 칸, 우구데이 카안, 세첸 카안(쿠빌라이)의 칙령에"

→ [카안]은 몽골 제국의 군주 한 사람만이 사용


파스파 문자로 새겨진 1294년 백화문 完者篤皇帝 馬年(1294) 中

ǰiƞɡis qɑn-u bɑ öködeė qān-u bɑ sečen qān-u bɑ ǰɑrliq

징기스 칸-우 바 우쿠데에 카안-우 바 세첸 카안-우 바 자리크

징기스 칸-의 도 우쿠데이 카안-의 도 세첸 카안-의 도 칙령



제왕들의 칸국은 언제부터 칸을 자칭/공칭하였는가?

1260년 주베이니 세계정복자의 역사中

 "군주의 보좌에 앉게 되면 칸이나 카안이라는 명칭 하나를 덧붙일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그의 다른 아들들과 형제들은, [본인의] 앞에서건 혹은 없을 때건 불문하고,

  태어날 때 정해진 바로 그 이름으로 부른다"



-주치 울루스(킵차크 칸국)

→ 주치 살아생전 [칸] 사용 없음, 그냥 이름 부름

→ 주치 사후 20년 후에나 주치 울루스 내부에서나 칸 사용

→ 주치-바투-베르케 [칸] 사용 없음, 그냥 이름 부름

→ 뭉케 테무르 1276년 [칸]사용 하고 선대 주치, 바투는 1280년 이후에나 존칭 부여


-차가다이 울루스(차가타이 칸국)

→ 차가다이-이수 뭉케-알구-바락-두아까지 모두 [칸] 사용 없음


-훌레구 울루스(일 칸국)

→ 일 칸은 본래 훌레구 울루스의 고유 명칭이 아님

   "1260년대 푸와티는 칭기스칸을 일칸이라 칭함, 집사에도 주치 울루스의 칸들을 일칸이라 칭함"

   본래 투르크인들이 몽골의 군주를 명칭으로 "일 칸"을 사용했다고 함

   훌레구가 그 지역 지배자가 되자 지역민들이 일 칸이라 부름

→ 1256년 훌레구를 내부적으로 [일 칸]이라 칭함, 공식 칭호 아님


-우구데이 울루스

→ 카이두 : [칸] 사용 없음,




결론

1. 테무진은 [칭기스 칸](생전에도 칸, 사후에도 칸)

2. 우구데이이 최초로 [카안] 전칭, 훗날 [우구데이 카안]도 사용되기 시작함

3. 구육 부터는 이름+카안 사용 시작함, 칸과 혼용

4. 1276년경 테무르(원 2대 황제 성종)부터 [카안] 확정

5. 서방 3칸국은 1250~60년대에 내부에서만 [칸] 사용, 제국 공식으로는 사용 못하고 이름만 사용함

6. 1276년 원나라 테무르가 [카안]을 공식화하면서

   3칸국들도 공식적으로 [칸] 사용하고, 선조들에게 [칸] 존칭 부여


-논문을 소개해주신 bogda ejen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꾸벅(__)(^^)-


P.S) Mise en Musique님의 말씀에 의하면 Khan(왕) qaγan(왕중왕 = 황제)의 구분은 유래가 흉노의 지배 계층인 

예니세이어에서부터 나왔다고 합니다.

고대 한국어의 “kε(고구려어의 皆, 백제어의 (鞬)吉支)” 중세 한국어의 “긔자”도 

동일 계통의 음가에서 영향받은 단어라고 하시네요.


P.S2) 폰트나리님께서 몽골비사의 카한/카안의 용례를 예로 들으시며 우구데이 이전, 

즉 칭기스칸 당시에도 카안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을 주셨는데

김호동 교수님의 논문에 라케빌츠 등의 몽골비사 용례 분석 연구자료를 소개하면서

1229년 우구데이 즉위 전에는 [카안] 칭호가 사용되지 않았고, [칸]으로 사용되었다고 언급되었네요.

카볼칸, 쿠툴라칸,암바카이칸,옹칸,부이룩칸,알탄칸,아르슬란칸 등등 칭기스칸도 마찬가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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