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사 무칼리 열전 1부-나는 무칼리다! (사준사구) 테무진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몇몇 인물들에 대한 열전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칭기스칸의 서열 1위 장군으로 금나라 정벌 총사령관 무칼리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인물 열전>

청사고

왕올당, 왕고, 다이샨, 태조 누르하치, 추옝, 슈르하치, 야르하치 

피옹돈, 호호리, 어이두, 안퍙구후르한푸차 군다이

잉굴다이어르더니 밬시양구리보르진특금마심, 캉카라도르곤도도아지거푸헝

하르졸(해란주)호오거망굴타이아민고이마혼/와산/제극탑합/공아지르가랑두두니칸

송사

한세충이치, 양재흥, 동관[방랍], 채경, 부언경, 곽약사, 반미, 이사사고구송강장방창, 황잠선묘부(유정언)진회

금사

명사

두송 이성량 모문룡

송서

만주팔기씨족통보
 

원문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96%B0%E5%85%83%E5%8F%B2/%E5%8D%B7119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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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華黎,札益忒札剌兒氏。

祖估列枯禿伯顏,父孔溫窟窪。

太祖徵主兒乞,師還,帖列枯禿伯顏使孔溫窟窪率木華黎與其弟不合,謁太祖於行在。

自是,遂留事左右。

孔溫窟窪從太祖徵蔑兒乞、乃蠻等部,數有功。

太祖與乃蠻戰,失利,率七騎走,飢不得食,孔溫窟窪獲一橐駝殺之,炙其肉以獻。

追騎至,太祖馬已憊,孔溫窟窪以己馬授太祖,身當追騎,死之。

後追贈推忠效節保大佐運功臣、太師、開府儀同三司、上柱國、魯國王,諡忠宣。

孔溫窟窪五子,木華黎其第三子也。

生時有白氣出帳中,神巫異之曰:

「此非常兒也。」

及長,身七尺,虯鬚黑麪,沈顏多智略,猿臂善射。

太祖徵塔塔兒,失道不知牙帳所在,夜臥澤中。

大雨佔,木華黎與博爾術張氈裘,蔽太祖,通夕侍立,足跡不移。

一日,太祖從十餘騎行山谷,顧謂木華黎曰:

「倘遇賊,奈何?」

對曰:

「願獨當之。」

已而,賊果自林中突出,矢如雨集,木華黎引滿向賊,三發殪三人。

賊問:

「爾何人?」

曰:

「我木華黎也。」

徐解馬韉,捍太祖出谷中,賊亦引去。

王罕爲乃蠻所敗,乞援於太祖曰:

「聞汝有四良將,能使助我否?」

時木華黎與博爾術、博爾忽、赤老溫以忠勇,號掇裏班屈律,譯言四駿馬也。

太祖乃遣木華黎等援之,與乃蠻戰於按台山,大敗之,返其所掠於王罕。

既而,王罕與太祖有隙,從太祖御王罕於合剌合勒,又從太祖襲王罕,兼程至徹徹兒溫都爾,夜斫其營,大破之。

王罕走死,諸部皆門風款服。

목화려(木華黎)는, 찰익특찰랄아씨(札益忒札剌兒氏/잘라이르)다.

조(祖)는 고렬고독백안(估列枯禿伯顏)이고, 부(父)는 공온굴와(孔溫窟窪/구운 오아)다.

태조(太祖)가 주아걸(主兒乞)을 징(徵)하였는데, 사환(師還)하자, 첩렬고독백안(帖列枯禿伯顏)이 공온굴와(孔溫窟窪)로 

하여금 목화려(木華黎)와 더불어 그 제(弟) 부합(不合)을 솔(率)하여, 행재(行在)에서 태조(太祖)를 알(謁)하였다.

이로부터 마침내 유(留)하여 좌우(左右)를 사(事)하였다.

공온굴와(孔溫窟窪)는 태조(太祖)를 종(從)하여 멸아걸(蔑兒乞)과 내만(乃蠻) 등(等)의 부(部)를 징(徵)하였는데, 수(數)차례 

유공(有功)하였다.

태조(太祖)가 내만(乃蠻)과 더불어 전(戰)하였는데, 실리(失利)하여, 7기(騎)를 솔(率)하여 주(走)하였는데, 식(食)을 

부득(不得)하여 기(飢)하였는데, 공온굴와(孔溫窟窪)가 1 탁타(橐駝)를 획(獲)하여 살지(殺之)하였고, 그 육(肉)을 

자(炙/구움)하여 이헌(以獻)하였다.

추기(追騎)가 지(至)하자, 태조(太祖)의 마(馬)가 이미(已) 비(憊/고단함)하였고, 공온굴와(孔溫窟窪)가 기마(己馬)로써 

태조(太祖)에게 수(授)하고는, 추기(追騎)를 신당(身當)하다, 사지(死之)하였다.

후(後)에 추충효절보대좌운공신(推忠效節保大佐運功臣), 태사(太師),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상주국(上柱國), 

노국왕(魯國王)을 추증(追贈)하였고, 시호(諡)는 충선(忠宣)이었다.

공온굴와(孔溫窟窪)는 아들이 다섯인데, 목화려(木華黎)는 그 제(第) 3자(子)였다.

생시(生時)에 백기(白氣)가 있어 장중(帳中)에 출(出)하니, 신무(神巫)가 이지(異之)하여 말하길

「이는 비상(非常)한 아(兒)로다!」

장(長)함에 이르러, 신(身)이 칠척(七尺)이었고, 규수(虯鬚/곱슬 수염)가 흑면(黑麪/검은 국수)이었고,

침의(沈顏/毅의 오기/침착하고 굳셈)하였고, 지략(智略)이 다(多)하였으며, 원비(猿臂/팔이 길고 힘이 있음)하여 

선사(善射)하였다.

태조(太祖)가 탑탑아(塔塔兒)를 징(徵)하였는데, 실도(失道)하여 아장(牙帳/본진의 장막)의 소재(所在)를 부지(不知)하였는데,

야(夜)에 택중(澤中)에 와(臥)하였다.

대우(大雨)가 점(佔)하였는데, 목화려(木華黎)가 박이술(博爾術)과 함께 전구(氈裘)를 장(張)하여,

태조(太祖)를 폐(蔽)하였고, 통석(通夕/밤을 새움)하고 시립(侍立)하였는데, 족적(足跡)을 불이(不移)하였다.

1일에, 태조(太祖)가 십여기(十餘騎)를 종(從)하여 산곡(山谷)을 행(行)하였는데, 목화려(木華黎)를 고위(顧謂)하며 말하길

「갑자기 우적(遇賊)한다면, 내하(奈何)하는가?」

대(對)하여 말하길

「원(願)컨대 독당지(獨當之)하겠습니다.」

이이(已而)에, 적(賊)이 과연(果) 임중(林中)으로부터 돌출(突出)하였고, 시(矢)가 우집(雨集)과 같았는데, 목화려(木華黎)가 

인만(引滿)하고 향적(向賊)하여, 삼발(三發)하고 삼인(三人)을 에(殪)하였다.

적(賊)이 문(問)하길

「너는 하인(何人)인가?」

말하길

「나는 목화려(木華黎)다!」

마천(馬韉/말의 안장 위에 덮는 헝겊)을 서해(徐解)하고는, 태조(太祖)를 한(捍)하여 곡중(谷中)을 출(出)하니, 적(賊)이 

역시(亦) 인거(引去)하였다.

왕한(王罕)이 내만(乃蠻)에게 소패(所敗)하자, 태조(太祖)에게 걸원(乞援)하며 말하길

「문(聞)하니 너에게 4 양장(良將)이 있다 하는데, 이들로 하여금 조아(助我)할 수 없겠는가?

이때 목화려(木華黎)가 박이술(博爾術), 박이홀(博爾忽), 적로온(赤老溫)과 함께 충용(忠勇)함으로써, 

철리반굴률(掇裏班屈律)이라 호(號)하였는데, 역언(譯言)하면 사준마(四駿馬)이다.

태조(太祖)가 이에 목화려(木華黎) 등(等)을 견(遣)하여 원지(援之)하였고, 내만(乃蠻)과 더불어 안태산(按台山)에서 전(戰)하여,

대패지(大敗之)하였으며, 그 소략(所掠)을 왕한(王罕)에게 반(返)하였다.

기이(既而)에, 왕한(王罕)이 태조(太祖)와 더불어 유극(有隙)하니, 태조(太祖)를 종(從)하여 왕한(王罕)을 

합랄합륵(合剌合勒)에서 어(御)하였고, 또 태조(太祖)를 종(從)하여 왕한(王罕)을 습(襲)하였으며,

겸정(兼程/배로 행군함)하여 철철아온도이(徹徹兒溫都爾)에 지(至)하여, 그 영(營)을 야작(夜斫)하였고, 대파지(大破之)하였다.

왕한(王罕)이 주사(走死)하였고, 제부(諸部)가 모두 문풍관복(門風款服)하였다.


무칼리(목화려)는 잘라이르씨(찰익특찰랄아)이며, 조부는 고렬고독백안이고 부친은 구운 오아(공온 굴와)다.

태조가 주르킨(주아걸)을 정벌하고 회군하였는데 첩렬고독백안이 구운 오와로 하여금 무칼리와 더불어 그 동생 부카(부합)를 

인솔하여 행재에서 태조를 알현하였다.

이로부터 마침내 남아 좌우에 종사하였다.

구운 오아는 태조를 따라 메르키트(멸아걸)와 나이만(내만)의 부족을 정벌하였는데 수차례 공을 세웠다.

태조가 나이만과 더불어 싸워 불리하였고 7기를 인솔하여 도주하였는데 먹을 것을 얻지 못하여 굶주렸고 구운 오아가 낙타 

1마리를 사로잡아 죽이고 그 고기를 구워 바쳤다.

추격 기병이 이르자 태조의 말이 이미 고단하니 구운 오아가 자기의 말을 태조에게 주고는 추격 기병을 몸소 담당하더니 

전사하였다

후에 추충효절보대좌운공신, 태사, 개부의동삼사, 상주국, 노국왕을 추증하였고 시호는 충선이었다.

구운 오아는 아들이 다섯인데 무칼리는 3남이다.

태어날 때 흰 기운이 있어 게르 가운데 나타나니 무당이 기이하게 여기며 말하길

「이는 범상하지 않은 아이로다!」

성장하자 몸은 7척이었고 곱슬 수염이 검은 국수와 같았으며 침착하고 굳세었고 지략이 많았으며 팔이 길고 힘이 있어 

활을 잘 쏘았다.

태조가 타타르(탑탑아)를 정벌하였는데 길을 잃어 본진의 게르의 소재를 알지 못하였는데 밤에 연못가에 누웠다.

큰비가 내리자 무칼리가 보오르초와 함께 가죽옷을 펼쳐 태조를 가리고 밤을 새워 시립하였는데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하루는 태조가 10여기를 이끌고 산속으로 들어갔는데 무칼리를 돌아보며 말하길

「갑자기 도적이 나타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대답하여 말하길

「원컨대 홀로 담당하겠습니다!」

얼마 안 있어 도적이 과연 숲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왔고 화살을 비처럼 쏘았는데 무칼리가 활을 당겨 적을 향하여 세 번 쏘아 

3명을 죽였다.

적이 묻기를

「너는 누구인가?」

말하길

「나는 무칼리다!」

말을 덮은 헝겊을 서서히 풀어 태조를 가리며 숲 속을 나오니 도적 또한 가버렸다.

옹칸(왕한)이 나이만에게 패배를 당하자 태조에게 구원을 애걸하며 말하길

「듣자 하니 너에게 4명의 좋은 장수가 있다 하는데 이들로 하여금 나를 도울 수 있겠는가?」

이때 무칼리가 보오르초, 보로굴, 칠라운과 함께 충용함으로써 두르벤 쿨루우드라 호칭하였는데 번역하면 4마리 준마다.

태조가 이에 무칼리 등을 보내 구원하게 하였고 나이만과 더불어 안태산에서 싸워 크게 격파하였고 그 약탈당한 것을 옹칸에게

되돌려줬다.

얼마 안 있어 옹칸이 태조와 더불어 틈이 생기니 태조를 따라 옹칸을 칼라지트(합랄합륵)에서 막았고, 또 태조를 따라 옹칸을 

기습하였는데 배로 행군하여 제지르 운두르(철철아 온도이)에 이르러 밤에 그 진영을 기습하였고 대파하였다.

옹칸은 달아나다 죽었으며 여러 부족이 모두 바라만 보고도 모두 복종하였다.


 


-4준 : 네마리 준마들, 두르벤 쿨루우드 이옌(dörben külüüd-iyen) → 보오르초, 무칼리, 보로굴, 칠라온

-4구 : 네마리 개들, 두르벤 노카스 이얀(dörben nokas-iyan) → 쿠빌라이, 젤메, 제베, 수부타이


테무진 당시 몽골 부족 및 주요 인물 현황

칭기스 칸 장군 서열1위가 된 무칼리 국왕

4준 무칼리 구양은 전쟁의 신?


요약.

무칼리는 잘라이르씨로 아버지 구운 오아를 따라 테무진에게 귀부한다.

구운 오아는 나이만과의 전투 당시 테무진을 대신해 죽었다.

성장한 무칼리는 신장 7척에 팔이 길어 활을 잘 쏘았으며 지략이 많았다.

테무진이 타타르를 공략하다 패전하여 연못가에서 노숙하였는데 무칼리와 보오르초가 밤새 가죽옷을 펼쳐 테무진이 

눈비에 맞지 않도록 하였다.

무칼리와 보오르초는 테무진이 칭기스칸이 된 후 좌우 만호로 최고 공신에 임명된다.

어느 날 테무진과 무칼리가 10여기로 산중에 들어갔다가 도적을 만났는데 무칼리의 활쏘기로 위기를 모면한다.

무칼리는 테무진의 4준 4구 중 4준이 된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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